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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79화 (279/438)

〈 279화 〉 새엄마의 남편이자 새여동생의 새아빠 (3)

* * *

“엄마 나 이제 할 거 없지.”

“응.”

“오케이.”

이수아가 내 옆자리에 앉고 멀뚱멀뚱 나를 쳐다봤다.

“왜?”

“고기 안 구워?”

윤가영의 뒷모습을 봤다.

“구울까요?”

“응. 구워줘. 고마워 온유야.”

휴대용 가스버너의 불을 켰다. 이수아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엄마 또 오빠만 편애하고.”

불판에 차돌박이를 올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하고 고기 굽는 소리가 났다.

윤가영이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김치볶음밥이 담긴 프라이팬을 잡아 든 뒤 몸을 돌렸다. 윤가영의 얼굴에 걸쳐진 미소가 아름다웠다. 윤가영이 나랑 이수아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순간 그 자리에서 굳었다. 이내 윤가영이 다시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편애라니.”

“편애 맞잖아. 오빠한테만 고맙다는 말 많이 해주구.”

“아니야. 우리 딸한테도 사랑한다고 하잖아.”

윤가영이 테이블에 프라이팬을 내려놓고 나를 마주 보는 쪽에 앉았다.

“온유야 내가 고기 구울까?”

“제가 해도 돼요.”

“아냐 내가 할게. 집게 줘.”

“알겠어요.”

윤가영에게 집게를 건넸다. 윤가영이 다 구워진 차돌박이를 접시에 옮기고 불판에 다시 고기를 올렸다.

“먹자 얘들아.”

“응.”

이수아가 나무주걱을 잡고 그릇에 볶음밥을 펐다. 윤가영이 내게 시선을 맞췄다. 이수아가 주걱을 윤가영에게 내게 건넸다. 윤가영이 계속 나만 쳐다봤다. 이수아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엄마.”

“응?”

윤가영이 그제야 이수아를 바라봤다.

“아, 미안...”

윤가영이 이수아의 손에서 주걱을 가져가고 자기 그릇에 밥을 펐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지그시 보다가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퍼 입에 넣었다. 어딘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왠지 자기 엄마만 아니었다면 한마디 했을 것 같았다.

윤가영이 내게 주걱을 건네다가 뒤로 뺐다.

“왜요?”

“내가 밥 퍼줄까?”

이수아가 고개를 들어 윤가영을 봤다.

“엄마 뭐야?”

“어?”

“왜 나한테는 그런 거 해준다고 안 하고 오빠한테만 물어봐?”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엄마 자꾸 그러면 나 진짜 삐친다?”

“알겠어, 안 할게...”

“아니 하지 말란 거는 아니야. 나한테도 잘 해달라는 거지.”

“으응...”

“... 나 주걱 줘.”

“더 먹게?”

“일단 줘.”

“응...”

윤가영이 이수아에게 주걱을 주었다. 이수아가 나무주걱을 받고 내 그릇에다가 밥을 퍼줬다. 밥이 그득하게 쌓여갔다. 아니 왜 나한테 스트레스를 푸는 거야.

“그만 줘도 돼.”

“어.”

이수아가 주걱을 프라이팬에 걸쳐지게 놓았다.

“엄마 고기 다 타는 거 아냐?”

이수아가 물었다. 윤가영이 집게로 차돌박이들을 빠르게 뒤집었다. 조금씩 탄 자국이 있었다.

“조금 탔네...”

이수아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윤가영을 봤다.

“엄마 오늘 무슨 일 있어?”

“아냐 별일 없어. 괜찮아.”

“...”

“제가 할까요? 아니 제가 할게요. 줘요.”

왼손을 뻗었다. 윤가영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내게 집게를 건넸다.

“고마워...”

불판을 보는데 이수아가 상추에 차돌박이를 세 점 얹고 밥도 두 스푼을 넣으면서 큼직하게 싸기 시작했다. 제게 저 작은 입에 들어가기는 할까 싶었다. 이수아가 끝부분을 가까스로 끌어모으고 오른손으로 잡아서 내 입 앞에 들이밀었다. 당황스러웠다. 윤가영의 눈이 커졌다.

“수아야!”

이수아가 윤가영을 봤다.

“왜?”

“... 쌈 크기가 너무 크잖아...”

“아니 오빠 배고플 거 같아서.”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오빠 아직 밥 한 숟가락도 안 먹었지?”

“그렇긴 하지.”

“그래서 배고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안 배고팠어.”

“배고프긴 했던 거잖아.”

진짜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수아가 왼손으로 오른팔을 받쳤다.

“그럼 좀 먹어. 나 팔 빠져.”

차돌박이를 접시에 옮기고 불을 껐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고기 이 정도만 할까요?”

“응...”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 무시해?”

“아냐.”

“하 씨... 그럼 빨리 좀 먹어.”

“수아야, 오빠한테 하 씨가 뭐야.”

“아 오빠 이렇게 말해도 별로 신경 안 써. 그치?”

살짝 어지러웠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혼란스러웠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빨리 입 벌려. 여동생이 싸준 건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큰데. 이수아의 눈을 바라봤다. 눈빛에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진짜 내 입에 들어갈 때까지 고집을 부릴 작정인 듯했다. 입을 벌렸다. 이수아가 쌈을 내 입 안에 넣었다. 이수아가 손을 뒤로 뺄 생각을 안 했다.

“이대로 입 오므려 오빠. 샐 수도 있으니까 잡는 거야.”

그러게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서는. 따지고 싶었다. 천천히 입을 오므렸다. 이수아가 손을 뒤로 빼는 듯하다가 오른손 검지를 내 입 안에 넣고는 눈웃음 지었다. 아니 진짜 미친 건가. 이수아가 킥킥 웃으면서 손가락을 빼냈다.

윤가영의 어깨가 살짝 옴츠러들더니 상체가 눈에 안 띌 정도로 부르르 떨렸다.

“이수아!”

이수아가 윤가영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오빠한테 뭐 하는 짓이야!”

“장난.”

이수아가 여전히 미소를 띠운 채 나를 쳐다봤다.

“미안해 오빠.”

“너 진짜...”

윤가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가정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건가? 빨리 쌈을 씹어 넘기고 어떻게 중재를 해야 할 듯했다. 저작 운동을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반복했다.

“맛있어?”

이수아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얘가 왜 자꾸 이럴까. 나를 멕이려고 하는 건가? 속내가 짐작이 안 됐다.

여전히 나만을 바라보는 윤가영의 눈빛에 측은함이 물들었다.

“온유야 먹기 힘들어?”

고개를 저었다.

“...”

윤가영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

“왜?”

“너 오빠한테 자꾸 이상한 장난치지 마.”

“나 이번이 처음 장난친 거야.”

“말대꾸할 거야?”

이수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 나 진짜 서운해진다?”

“... 너 자꾸 그러면 엄마도 속상해.”

“엄마가 왜 속상해. 엄마가 원한 거 아냐? 나랑 오빠 장난도 칠 정도로 친해지고 하는 거?”

“장난은 서로 안 불편해야 장난이지.”

“오빠가 불편하다고 말이라도 했어?”

“... 물어보면 불편하다 할걸?”

“엄마가 오빠 마음을 어떻게 알아?”

“마음을 알고 말고 이거는 당연한 거잖아 수아야. 씹기도 힘든 쌈 만들어서 억지로 먹이고, 입 안에 손가락까지 넣었다 빼면 당연히 불편하지.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진짜 둘 다 왜 이러는 거지. 불편해서 속이 얹힐 것 같았다. 음식을 다 삼켜버리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 진짜 괜찮아요.”

“오빠가 괜찮다잖아.”

윤가영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그래 봤자 화난 강아지처럼 보여서 귀엽기만 했다.

“내가 말했잖아,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속으로는 불편할 거라고.”

“아니 오빠가 괜찮다는데 왜 엄마가 오빠 심리 상태를 결정해.”

“온유가 너 생각해서 혼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해준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는 왜 자꾸 나 혼내?”

“...”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흔들리는 게 울먹이기라도 할 듯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입꼬리가 올라갈 것만 같았다. 왼손으로 입을 한 번 가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빠르게 고민하고 손을 뗀 다음 입을 열었다.

“저 진짜 괜찮아요. 수아 혼내지 마요.”

“...”

윤가영의 시선이 살짝 밑으로 내려갔다. 오른 팔꿈치로 이수아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이수아가 목을 옴츠리며 부르르 떨었다. 간지러운 걸 못 견디나?

“왜?”

“엄마한테 사과드려.”

“... 미안해 엄마.”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아냐... 나도 미안해...”

상황이 일단락됐으니까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그런데 윤가영이 기죽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죄송해요.”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수아 챙겨준 거잖아... 고마워, 오히려...”

이수아가 미간을 좁힌 채 나를 쳐다봤다. 이수아가 왼손 검지로 내 오른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눈을 마주쳤다.

“왜?”

“아니 그냥.”

“말해.”

“됐어. 심심해서 걍 찌른 거야.”

이상하네.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펴서 입에 넣었다. 온도가 좀 많이 식어 있었다.

이수아도 숟가락을 들고 볶음밥을 한 입 했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엄마 밥 식었어.”

“응...? 데울까...?”

“아냐 아직 괜찮아.”

“으응...”

“빨리 먹자.”

“어...”

윤가영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깨작깨작 먹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푸고 입 안에 넣는 것부터 음식을 씹는 것까지 기계적으로 보였다. 내가 한 번 두둔을 안 해줬다고 이렇게까지 생기를 잃을 일인가.

새아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새엄마라니. 또 입꼬리가 올라갈 것만 같았다. 진짜 미치도록 귀여웠다.

윤가영이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윤가영이 살짝 웃고 숟가락으로 또 밥을 펐다. 이수아가 윤가영이랑 나를 번갈아 보다가 오른 왼 옆구리를 쿡 찔렀다.

“또 왜?”

“밥 다 먹고 내 방 와.”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이수아를 바라봤다.

“방에는 왜 불러?”

“오빠랑 대본 연습하려고. 오빠 오늘 내가 불러 가지고 집 온 거야.”

“... 정말...?”

“응. 저녁잘 먹었어 엄마.”

이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들고 싱크대에 놓았다.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윤가영이 이수아를 보다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툭 건드리기만 하면 정말 눈물이라도 흘릴 듯싶었다. 윤가영의 입술이 벌어졌다.

“온유야...”

“네.”

“...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존나 귀여웠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알겠어요.”

의자에서 일어나 윤가영에게 다가가고 껴안아 줬다. 윤가영이 바로 나를 마주 안으면서 이마를 내 상체에 박았다. 윤가영의 두 팔이 내 몸을 죄어왔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윤가영이 많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잠시만 윤가영을 보듬어주고 이수아에게 가봐야 할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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