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학교 가는 날 (7)
* * *
강예린에게 문자 보냈다.
[오늘은 안 될 듯해요.]
숫자가 금방 사라졌다. 아직도 나를 기다렸나? 아마 아닐 거였다. 무슨 연애 초기도 아니고 강예린 같은 사람이 폰만 잡고 기다릴 리가 없었다.
[그래. 저녁 맛있게 먹어.]
[어머님도요.]
[성연이한테 저녁 맛있게 먹으라고 전해주세요.]
[응.]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갔다. 밖으로 나가려 복도를 걷는데 문 앞에 강성연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온유야.”
조금 당황스럽네.
“어?”
답하고 계속 걸었다. 강성연이 벽에서 등을 떼고 내 왼편에서 걸었다.
“오늘 안 오냐?”
대뜸 안 오냐니.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 느껴졌다. 강예린이랑 문자를 나눈 것이 떠올랐다.
“너희 집 안 가냐고?”
“응.”
“못 가. 미안.”
“... 그래.”
강성연이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강성연은 왜 아직 학교에 남아있던 거지. 강예린이 나랑 같이 집에 오라는 지시라도 내렸나.
“근데 성연아.”
“응?”
“너 왜 복도에서 서 있었어?”
“너 기다리느라.”
“... 어머님이 시킨 거야? 나 데리고 오라고?”
“뭐?”
강성연의 눈썹과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 거 아냐. 내가 뭔 마마걸도 아니고.”
마마걸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솔직히 털어놓으면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럼 다행이고.”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미친놈.”
픽 웃었다. 말투는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 같은데. 위축된 것도 살짝은 다시 펴진 거 같고.
교문을 향해 걷는데 강성연이 계속 내 왼편에 붙었다. 얘는 밴드부 안 가나? 거의 나처럼 죽돌이였는데. 마음이 쓰였다. 멈춰 서고 강성연을 내려봤다.
“너 오늘 밴드부 안 가?”
“응.”
“... 왜?”
강성연이 멋쩍게 웃었다.
“그냥.”
“... 그래.”
“너 근데 집 어떻게 가냐?”
“대중교통 써야지.”
“우리 엄마 온다고 했는데 태워줄까?”
아무리 봐도 마마걸인데.
“왜 그렇게 보냐?”
“아냐. 태워줘.”
“어. 교문에서 좀 더 나가 있자.”
“그래.”
강성연이랑 교문을 나섰다. 강성연이 말없이 계속 걷다가 멈춰 섰다. 따라서 그 자리에 멈췄다. 강성연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눈살을 살짝 찡그린 채 도로를 바라봤다.
“성연아.”
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봤다. 키 차이가 심한 게 갑자기 확 느껴졌다. 얘가 키가 160이 됐나?
“왜?”
“...”
강성연의 정수리 위에 오른손을 댔다.
“너 키 진짜 작다.”
“씨발?”
오른손을 떼고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내가 원래 이 얘기하려 한 건 아닌데, 그냥 너 보니까 키 작은 게 눈에 들어와서.”
강성연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좆 같네...”
“미안.”
“그래서 하려 했던 말이 뭔데?”
“몰라 까먹었어. 근데 진짜 아무 말이었을걸. 심심해서 시간 때우려고 너 부른 거라 가지고.”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방금 한 게 아무 말 아니야 근데?”
“어 그렇네.”
“개 병신.”
흰색 테슬라 세단이 감속해오다가 우리 앞에 멈췄다.
“오신 거 같은데.”
“응?”
강성연이 내 시선을 좇아 테슬라 차량을 보았다.
“아 맞네.”
조수석 차창이 열렸다.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강예린이 조수석 시트에 양손을 얹고 나를 쳐다봤다. 검은 브라와 함께 강예린의 뽀얀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런 거부터 보이는 거지. 내가 이상한 건가. 죄송스러웠다. 강예린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안녕 온유야.”
“안녕하세요.”
“빨리 타.”
“네.”
강성연이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나를 쳐다봤다.
“들어와.”
“응.”
가방을 앞으로 메고 차 안으로 들어가 강성연의 오른편에 앉고 문을 닫았다. 강예린이 차창을 도로 닫고 내비게이터를 보았다. 바로 주소를 말했다. 강예린이 바로 입력하고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나를 바라봤다.
“너 센스 되게 좋다 온유야.”
살폿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시간 안 되니?”
“네. 할 게 좀 있어서.”
“으응... 알겠어.”
강예린이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았다. 강예린이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아 차선으로 끼어들었다. 등이 뒷좌석에 붙었다.
“온유야.”
“네.”
“그럼 혹시 언제쯤 시간 되니?”
“이번 주는 안 될 거 같아요. 다음 주 중에 갈게요.”
“그래. 심심하거나 하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놀러 와. 미리 말해두면 저녁도 차려줄게.”
“아 엄마 좀...”
강성연이 난처한 듯 말미를 흐리고 나를 봤다.
“미안해.”
“괜찮아. 미안해할 것도 아니고.”
강예린이 미소를 머금었다. 친구 어머니한테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진심으로 귀여워 보였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온유야.”
살폿 웃었다.
“네.”
강성연이 눈을 좁게 뜨고 강예린이랑 나를 번갈아 봤다.
“둘이 왤케 죽이 잘 맞아?”
“딸, 오바하지 마.”
“알겠어.”
강예린이 백미러를 흘깃 봤다.
“삐친 거 아니지?”
“아냐 이런 거로 왜 삐져.”
“미안해.”
“안 삐쳤다니까.”
“그냥 미안해서 말했어.”
“응.”
강성연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차창 너머를 바라봤다.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시선을 정면으로 하여 앞을 내다봤다. 익숙한 길로 접어들고 이내 우리 집이 보였다. 강예린이 속도를 차차 줄이고 정차했다.
“여기지?”
“네 맞아요.”
“되게 좋은 데 사는구나.”
멋쩍게 웃었다.
“얘 좀 보내줘 엄마.”
강성연이 말했다.
“그럴 거였어. 잘 가 온유야.”
“네.”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강성연이 나를 쳐다봤다.
“잘 가.”
“응. 너도 잘 가.”
“어.”
강예린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잘 가.”
“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님.”
“응.”
뒷문을 닫았다. 세단이 금방 출발했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키링을 찾았다. 오른손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꺼내고 열쇠를 잡아 대문을 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고 화장실에서 세수부터 했다. 얼굴에도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양치까지 했다.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그냥 교복을 벗고 몸을 씻었다. 물기를 닦고 드라이어까지 한 다음 검은 반팔 티셔츠랑 검은 반바지를 입었다.
방을 나서고 거실로 갔다. 검은 로카 반팔 티에 검은 돌핀팬츠 차림을 한 이수아가 소파에 드러누운 채 폰을 보고 있었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왔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야?”
“뭐가.”
“오빠 대접 어디?”
“이 씨.”
이수아가 폰을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두 발을 바닥에 닿게 했다. 그러고는 소파에 등을 붙여 앉아서 나를 올려봤다.
“됐어?”
“조금은?”
“뭐가 더 필요한데.”
“리스펙?”
이수아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미친 거 아냐?”
“뭐가 미쳐.”
이수아의 오른편에 앉았다.
“요구할 수도 있는 거지. 사람 사이 존중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더구나 내가 네 오빠인데.”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 너 왤케 진지함?”
웃음이 나왔다.
“그러는 네 안색이 더 심각한데요?”
“전혀 아닌데?”
“거울 보여줄까?”
“봐도 똑같을 건데.”
“너 진짜 유치하다.”
“내가 유치한 거면 나랑 티키타카 조지는 너는 나잇값 오지게 못 하는 거죠?”
“나는 너랑 놀아주다 보니까 이러는 거지.”
“변명 니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진짜 존나 유치해.”
“이응.”
“아 개 싫어.”
“개 싫으면 왜 내 옆에 있음?”
“네가 나 불렀잖아.”
“응? 내가 언제 불렀는데?”
“집에 와서 같이 대본 보자며.”
“그건 그거고. 방금 내가 소파로 오라고 하지는 않았잖아.”
“그럼 내가 차라리 너 무시해야 됐던 거야?”
“그것까지는 아니지. 왤케 극단적이세요?”
“저기 죄송한데 반말을 하든 존댓말을 하든 하나만 해주세요.”
“싫어. 내 맘임.”
“아 스트레스받아.”
“으. 말투 존나 개 극혐.”
“내 말투가 왜?”
“존나 가식적이었어. 약간 방송용으로 말 순화시켜서 한 느낌.”
“연예인도 아닌데 내가 그런 걸 왜 해.”
“그래서 더 킹 받았어. 아직 뭐 방송 같은 것도 안 하는데 말 가려서 해 가지고.”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게 중요함.”
“아...”
아찔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수아가 애처럼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이수아의 눈웃음이 싱그러웠다.
“킹 받았어?”
“어. 존나 킹 받았어.”
“말투 개 극혐.”
“이번엔 또 왜.”
“그냥 너랑 안 어울려.”
헛웃음이 나왔다.
“왜?”
“너랑 놀아주기 힘들어서.”
“내가 놀아준 거지. 폰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 가지고 말 섞어준 건데.”
“그래 네가 이겼다.”
“응.”
“대본은 언제 보게?”
“저녁 먹고.”
“그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수아가 눈으로 나를 좇았다.
“할 말 있어?”
“응. 너 옷 왜 나랑 커플티임?”
“우연이야.”
“어.”
“기분 나빠?”
“아니.”
“그럼 왜.”
“그냥 기분 이상해서.”
“응.”
“근데 어디 가?”
“저한테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지랄 니은. 그래서 어디 가냐니까?”
“주방.”
“어.”
“왜, 내가 밖에 나가기라도 할 줄 알았어?”
“... 너 진짜 그럼 존나 쌍욕 박을 거야.”
피식 웃었다.
“안 그래.”
“그럼 됐고.”
이수아가 시선을 내려 폰을 붙잡았다. 이수아의 긴 속눈썹이 눈을 가렸다. 갑자기 이수아가 나를 붙잡은 채 오빠라고 부르면서 미안하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아야.”
“어?”
이수아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왜?”
“아냐 그냥.”
“왜? 걍 시원하게 말해.”
“너 저번에 나 붙잡고 오빠라고 부르면서 미안하다고 한 거 생각나 가지고.”
“...”
이수아의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야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피해?”
“뭐래.”
이수아가 시선을 내리고 폰을 잡더니 화면을 켜 아주 빠른 속도로 패턴 잠금을 해제하려 했다. 그러다 다섯 번을 헛손질하여 잠금을 못 풀고 대기하라는 문구가 떴다.
“창피하시구나.”
이수아가 폰을 뒤집어서 내려놓고 나를 올려봤다. 부끄러움이 물든 것이 보이는 얼굴이 퍽 귀여웠다.
“너 좀 귀엽다?”
“존나 지랄 좀...”
피식 웃었다.
“그만할게.”
“... 어.”
이수아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한번 마구 헝클여보고 싶었다. 충동을 참아내고 주방으로 갔다. 윤가영은 없었다. 곧 저녁 시간이라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냉장고를 열었다. 식재료들을 훑는데 갑자기 윤가영이 보고 싶어졌다.
빨리 확인하고 직접 올라가 봐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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