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학교 가는 날 (5)
* * *
한동안 백지수랑 서로 혀를 빨아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차를 두고 각자 나가기로 정하고 내가 먼저 밖으로 나섰다.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문자 앱을 확인했다. 송선우에게서 온 것이 있었다.
[너 어딨어?]
[화장실 간 거 아님?]
[어딨냐고 두 번 묻습니다.]
[어딨냐고 세 번째 묻습니다.]
[어딨냐고 다섯 번째 묻는 때는 내가 너를 묻을지도 모릅니다.]
[는 농담이고 진짜 너 어디야?]
[즉답 요망]
헛웃음이 나왔다. 부실을 향해 걸어가면서 키패드를 두드렸다.
[너 문자 보내는 거 개 웃겨.]
[그래?]
[그건 뭐 됐고]
[너 지금 어딨으세요?]
[나 양치하고 잠깐 쉬다가 부실 가는 중.]
[빨리 와]
강성연이 뭔 짓이라도 했나.
[왜?]
[뭔 일 생겼어?]
[아니]
[걍 너 보려고 부른 건데]
[응.]
[근데 너 지수랑 있었어?]
[지수는 왜?]
[지수가 부실에 없으니까 네가 지수랑 있다가 오는 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서]
예리했다.
[정답이야?]
[.]
[점 뭔데]
[나 부실 곧 도착해.]
[어]
[내가 나갈게]
밴드부실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부실 문이 열리고 송선우가 나왔다. 송선우가 고개를 돌리다 바로 나를 발견하고는 내게 걸어왔다.
“내가 답 맞혔지?”
“응.”
“지수 진짜 약다.”
살폿 웃었다.
“약다고 할 정도야?”
“응.”
송선우가 내 왼팔을 한 번 세게 주물렀다가 놓았다.
“넌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미안.”
“됐어.”
송선우가 부실 쪽으로 걸어갔다. 왼편에서 나란히 걸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이슬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ㅡNothing's perfect but it's worth it
After fighting through my tears and finally you put me first
Beyoncé의 Love On Top이었다. 드럼은 강성연이 치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정이슬이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왼손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ㅡBaby it's you
You're the one I love
부원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세상에.
ㅡYou're the one I need
You're the only one I see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면서 부원들을 훑었다. 김민우는 없었다. 수능 공부라도 하러 간 걸까. 진짜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이거 끝나기까지 엄청 걸릴 건데. 어떻게든 멈춰야 했다. 강성연에게 다가가 양팔을 교차해 x 표시를 했다. 강성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드럼을 치다가 소리를 점점 줄였다.
ㅡYou put my love on top top top top top
드럼 소리가 사라졌다. 정이슬이 노래 부르다 말고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보았다. 다른 악기 소리들도 끊겼다. 강성연이 왼손에 든 드럼 스틱으로 나를 가리켰다.
“부장이 멈추랬어요.”
정이슬이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연인이 삐친 척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누나가 저로 장난쳐서요.”
정이슬이 입을 다물었다. 원래 같았으면 장난 아닌데 같은 소리를 했을 텐데. 확실히 변한 듯했다.
“죄송해요.”
“흐음... 그렇게 미안하면 나랑 듀엣 하나 하자.”
“무슨 곡이요?”
“몰라. 일단 적립해둘게.”
“적립이요?”
“응.”
정이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내가 물었다. 정이슬이 두 손을 올려 자기 가슴 위를 가리듯이 했다.
“갑자기 나에 대한 흥미가 생긴 거야?”
“안 알려주셔도 돼요.”
“아냐 나 교무실 가야 돼서 그래.”
“넵. 잘 가세요.”
정이슬이 애교스럽게 미간을 좁히고 뒷짐을 진 채 뒷걸음질 쳤다.
“너 그러다 언제 한 번 혼날지도 몰라.”
“잘못했어요.”
“주시할 거야.”
정이슬이 밴드부실을 나섰다. 서유은이 나를 쳐다봤다.
“오빠 노래 부르실래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너 부실 와서 아직 한 곡도 못 불렀지?”
“네... 근데 오빠도 아직 한 곡도 안 부르지 않았어요...?”
“그렇긴 하지. 근데 1학년들 호흡 맞추는 거 한번 보고 싶어서.”
1학년 부원들의 면면을 봤다.
“지금 가능한 곡 있어?”
“어...”
서유은이 고개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아마 ‘일레븐 일레븐’ 될 거예요.”
“그럼 들려줄 수 있어?”
“네.”
1학년 부원들이 일어났다. 강성연이 드럼 스틱을 홀더에 놓고는 드럼 의자에서 일어나서 나한테 다가왔다. 1학년 애들이 자리로 갔다. 서유은이 기타를 잡고 의자에 앉았다. 서유은이 코드를 잡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서유은의 입술이 열리고 맑은 소리가 부실에 퍼졌다.
ㅡIt's 11:11
오늘이 한 칸이 채 안 남은 그런 시간
송선우가 왼손 검지로 애 오른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른손바닥으로 막았다. 송선우를 보면서 눈썹을 치켜세웠다. 송선우가 왼손 검지로 내 왼편에 있는 강성연을 가리켰다. 왜 이렇게 붙냐고 하는 건가.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어깨를 들썩거리고 관객석으로 가 앉았다. 왼쪽에 강성연이 앉아 다리를 꼬았다. 오른쪽에는 송선우가 앉고 눈을 살짝 찡그린 채 잠시 나랑 강성연을 보다가 1학년 애들을 보았다.
ㅡ이 시간이 전부 지나고 나면
이별이 끝나있을까 Yeah
강성연은 아직 부원들에게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건가. 원래 성격은 좀 외향적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지금껏 많이 위축된 모양이었다. 최소한 며칠은 케어해줘야 할 듯했다.
너무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노래를 청해놓고 집중하지 않는 것은 무례한 짓인데. 지금이라도 잘 들어야 할 거였다. 서유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귀를 기울였다.
부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서유은이 고개를 돌려 입구가 있는 쪽을 보았다. 나도 누가 온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서유은이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서유은의 시선을 좇아 같은 곳을 봤다. 백지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백지수가 송선우를 보고 나를 본 뒤 강성연을 봤다. 백지수가 눈을 찌푸렸다. 백지수가 내 등 뒤로 와서 팔짱을 끼고 섰다.
ㅡI believe I'll be over you
서유은이 입술을 다물었다. 노래가 끝났구나. 양손을 들어 박수했다. 송선우가 높은음으로 환호하면서 짝짝 손뼉을 쳤다. 강성연이랑 백지수도 작게 박수 소리를 냈다. 1학년 부원들이 미소를 띠었다.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입을 열었다.
“좋은데?”
서유은이 빙긋 웃었다.
“감사해요...”
“진짜 다 호흡도 잘 맞았어.”
송선우가 말했다. 목덜미가 쿡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뒤를 봤다. 백지수가 오른손 검지로 강성연을 가리켰다가 바로 손을 내려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강성연이 왜 내 옆에 붙어있느냐고 추궁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성연한테 내 옆에서 떨어지라고 하고 그 자리에 백지수를 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어깨를 들썩이고 앞을 봤다.
또 목덜미가 쿡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뒤를 돌아봤다. 백지수가 입꼬리를 오른쪽으로 삐죽였다. 방향이 입구 쪽인데. 나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얘들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부장 데리고 사올게.”
“어?”
송선우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백지수를 쳐다봤다.
“그럼 나도 가.”
송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성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선우랑 백지수가 강성연을 노려봤다. 강성연이 입을 열었다.
“온유랑 내가 들고 올게.”
송선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딘가 비틀어진 느낌이 났다.
“아냐 나랑 온유만 있음 돼. 무슨 피난 갈 것처럼 바리바리 싸 들고 올 것도 아니니까.”
“나 좀 걷고 싶어서.”
“으응. 그렇구나.”
강성연이 왜 이러지? 애들이랑 있기 싫은 건가?
“그럼 일단 다 같이 가자.”
내가 말했다.
“밴드부 톡방에다가 먹고 싶은 거 정리해서 올려. 내가 사줄게.”
“넵 감사합니다.”
손정우가 싹싹하게 대답했다. 서유은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다른 애들도 감사하다고 한마디씩 말해왔다.
“응.”
강성연, 송선우, 백지수랑 다 같이 밖으로 나오고 주욱 걸었다. 강성연이 내 왼편에, 송선우가 내 오른편에 서고 백지수는 송선우의 오른편에 섰다.
강성연이 진짜 왜 이럴까. 부원들이 싫은 티를 내는 걸까? 그런데 애들이 워낙 착해서 그 이유는 아마 아닐 거였다. 가장 강성연을 싫어할 백지수도 당장 대놓고 강성연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시선을 살짝 내려 운동장 바닥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어쩌면 강성연은 애들이 자신을 꺼림칙하게 여긴다고 생각을 해서 혼자 겁을 먹고 자리를 피한 걸지도 몰랐다.
만약 내 생각이 맞으면 몇 주가 흐른다고 해도 강성연이 옛날처럼은 애들과 잘 지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한 번 정도는 상담을 받아보도록 권유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성연이 어머님한테 문자를 해야 할 듯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