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학교 가는 날 (4)
* * *
드럼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드럼 의자에 앉아 있던 김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성연과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둘이 진짜 화해한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미안하다고 했어요.”
“으응.”
김민우가 강성연에게 드럼 스틱을 건넸다. 강성연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양손으로 드럼 스틱을 받들었다.
“나 온유랑 매점 좀 갈 건데 뭐 사다 줄까?”
“아뇨, 저 괜찮아요.”
“웰치스라도 사올게. 가자 온유야.”
“네.”
김민우를 따라 부실을 나섰다. 김민우가 잠깐 걷다가 한번 획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정면을 봤다.
“온유야.”
“네.”
“무릎 꿇었다면서?”
“네.”
“그럼 진짜 성연이랑 화해하고 용서까지 다 한 거야? 성연이 밴드부에 다시 들어올 수 있게 이끄는 것도 할 생각이고?”
“화해 용서 다 했고, 어느 정도 이끌어주는 것도 해야죠.”
“... 근데 왜? 오늘 화해하자고 말한 것도 네가 했는데 밴드부 스며드는 거 정도는 본인이 하게 둬도 되지 않아?”
“성연이가 자존감이 좀 떨어진 거 같아서 힘들어보여 가지고 약간 끌어주기는 해야겠다 싶어서요. 그리고 화해는 걔가 선뜻 저한테 와서 화해하자고 말 걸기는 힘들 거라 생각해서 좀 이해되는 편이에요.”
“음. 화해하자고 하는 거는 힘들 수 있겠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걔가 너한테 다가가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는데, 네가 걔한테 갔다는 게 좀 어이없어 나는.”
멋쩍게 웃었다.
“너도 이건 인정이지.”
“그렇긴 한데 성격이나 그런 거 때문에 힘들 수는 있으니까 이해는 해요.”
김민우가 감탄 같은 탄식을 했다.
“이해력 만렙이네.”
“감사합니다.”
“어. 진짜 네가 짱이다.”
픽 웃었다. 같이 매점으로 들어갔다.
“뭐 마실 거예요?”
“나 콜라. 내가 살게.”
“아뇨 제가 살게요.”
콜라 두 병이랑 웰치스 포도 맛을 꺼냈다. 현금으로 계산하고 나왔다. 김민우가 양손을 뻗어왔다.
“웰치스 내가 들게.”
“네.”
웰치스랑 콜라를 건넸다. 김민우가 왼손에 웰치스를, 오른손에 콜라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애들이 예전처럼 성연이 대할 거 같지는 않은데.”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니까. 근데 그거까지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지 뭐.”
“... 그래도 겉돌지는 않게 형이 좀 도와줘요.”
김민우가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지극정성이야?”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알겠어.”
김민우가 콜라 뚜껑을 따려는지 오른손 검지랑 엄지로 웰치스를 잡았다.
“웰치스제가 들게요.”
“어 고마워.”
웰치스를 왼손으로 받았다. 김민우가 편하게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김민우가 부실 문을 열어줬다. 안에 들어가고 강성연에게 다가갔다. 강성연이 드럼을 치다 멈추고 일어났다. 웰치스를 건네줬다.
“... 고마워.”
“응.”
“얼마야?”
“그냥 내가 사는 거야.”
“응...”
“드럼 실력은 안 녹슬었어?”
김민우가 툭 물었다.
“... 안 녹슬었어요.”
“한번 쳐봐.”
“네.”
강성연이 드럼 의자로 돌아가고 웰치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성연이 양손에 드럼 스틱을 쥐고 고개를 들었다.
“뭐 칠까요?”
“아무거나 해. 하고 싶은 거.”
김민우가 답했다. 강성연이 나를 쳐다봤다.
“뭐 해?”
피식 웃었다.
“해피. 퍼렐 윌리엄스 노래.”
“응.”
강성연이 입으로 숨을 한 번 쉬고는 바로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김민우가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들었다. 확실히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듯했다.
강성연이 흘깃흘깃 나를 봤다.
“그만 치고 싶어?”
“계속해?”
“맘대로.”
강성연이 프레이즈를 끝내고 바로 멈췄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웰치스를 들고 드럼에서 걸어 나왔다. 강성연이 캔을 따 벌컥벌컥 마셨다.
부실 문 쪽을 봤다. 1학년 부원들이 밖에서 보고 있었다. 왠지 강성연 때문인 것 같았다. 다가가서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
“들어와도 돼.”
“안에 성연 선배...”
키보드를 두드리는 여후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입 부원이야.”
애들이 웃었다.
“장난이고, 화해했어.”
“네. 들었어요.”
“응? 소문난 거야?”
손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 있는 사람들 다 알아요, 막말로.”
“헐. 몰랐네.”
어찌 됐든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들어와. 성연이가 행실이 별로인 거지 사람이 나쁜 건 아니니까.”
애들이 또 작게 웃었다. 미소를 띠면서 왼손을 부실 쪽으로 가리켰다.
“들어와 이제. 그리고 가능하면 최대한 성연이 어색하지 않게 잘 대해줘.”
“네.”
손정우가 답했다. 1학년 애들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뻣뻣했던 강성연이 고목이 되어버렸다. 픽 웃었다. 오른손바닥을 내보이며 강성연을 가리켰다.
“2학년 신입 드러머 강성연이야. 인사해 애들아.”
손정우가 제일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애들이 뒤따라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애도 있었고 입만 벙긋거리는 애도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봐야 할 거였다.
이다음부터는 강성연이 잘해야 했다. 내가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강성연이 미소를 지었다. 언뜻 봐도 멋쩍은 듯했다.
“어 안녕.”
어색했다. 숨 막히는 침묵이 찾아왔다. 의자에 앉은 김민우가 눈을 굴리다가 나를 쳐다보며 눈썹을 올렸다. 도와줄까 하고 묻는 느낌이었다. 얕게 고개를 젓고 강성연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양손으로 강성연의 어깨를 주물렀다.
“너무 많이 굳으셨어요.”
강성연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나를 올려보며 픽 웃었다.
“신입이라서 그랬어.”
“여기 애들 착하니까 긴장 풀어도 돼.”
“응.”
강성연의 어깨를 두 번만 더 주무르고 놓았다.
솔직히 이쯤 했으면 할 수 있는 건 진짜 다 한 거 같은데. 강성연이 뭐라도 해줬으면 했다.
그런데 강성연 성격상 뭔가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듯했다.
환영식 같은 거라도 해야 하나. 그런 거까지 하는 거는 진짜 조금 그런데.
김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내게 다가와 내 등을 툭툭 쳤다. 도와주려는 걸까. 고마웠다.
“저 화장실 좀 갈게요.”
“응.”
김민우가 듬직하게 답해주었다. 빠르게 부실을 빠져나갔다.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본관으로 향하면서 콜라 뚜껑을 따 한 모금을 마셨다. 반으로 가는 동안 콜라를 틈틈이 마셔 아예 비워버렸다. 페트병을 분리수거하고 사물함에서 양치 도구를 꺼냈다. 칫솔에 치약을 짜고 바로 입에 넣었다. 화장실로 가 양치하고 칫솔을 케이스에 넣었다. 양치 도구함을 오른 주머니에 쑤셔 넣고 변기 칸 안에 들어갔다. 바지를 내리고 자지를 꺼내 방뇨했다. 역시 이 안에서 소변을 누는 게 편했다.
바지를 올리고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아무도 안 쓰는 작은 데 있지]
[네가 반성문 썼던 데]
[거기로 와]
[노크는 빠르게 다섯 번만 해]
[딱 다섯 번만]
[밥 다 먹은 거 다 아니까 빨랑빨랑 튀어와]
갑자기 왜 부르는 건지.
[알겠어]
폰을 왼 주머니에 넣고 변기 칸을 나섰다. 손을 씻고 백지수가 부른 곳으로 걸어가 문을 다섯 번 두드렸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백지수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었다. 시선이 교차했다.
“빨리 들어와.”
“응.”
안으로 들어가면서 답했다. 백지수가 문에서 벽 쪽으로 몸을 피하듯 서고 휙휙 손짓했다.
“빨리 닫아...!”
백지수의 목소리가 조용하면서도 다급했다. 뒤돌아봐서 문손잡이를 잡아 급히 닫고 바로 잠가버렸다. 고개를 돌려 백지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왜?”
“안으로 들어와.”
백지수가 먼저 안쪽으로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백지수의 왼편에 앉아 얼굴을 마주 보았다.
“왜?”
“내가 아침에 뭐라 했어.”
“아침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들은 말이 너무 많아서 하나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 느낌이었다.
“밴드부실 나오면서 말한 거 있잖아.”
“... 이따 해 달라고?”
“응.”
백지수가 두 팔을 벌렸다. 백지수를 품에 안았다. 백지수가 나를 마주 안으면서 눈웃음 지었다. 함께 웃었다. 백지수가 내 왼 볼에 입술을 가볍게 맞췄다.
“너 양치는 했지?”
“오기 전에 했어.”
“으응...”
“키스부터 할까?”
“좋아.”
백지수의 입술에 내 입을 포갰다. 곧장 혀가 얽혀들어 왔다.
“아움... 쮸읍... 헤웁... 하웁... 츄릅... 쮸읍... 츕... 하움... 츄읍...”
백지수가 양손으로 내 옆구리를 잡았다. 자지가 솟아올랐다.
“하움... 아움... 헤웁... 쮸읍... 츄읍...”
백지수가 입술을 떼고 머리를 살짝 뒤로 뺐다.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백지수가 두 손을 내 허벅지에 얹었다. 그러고는 혀를 내밀어왔다. 붉은빛의 혀는 벌써 침이 있어서 빛을 품고 있었다.
엉덩이를 옮겨 몸을 조금 더 가까이 했다. 양손으로 백지수의 옆구리를 잡았다. 백지수가 순간 흠칫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대로 백지수의 혀를 받아들이고 쪼옵쪼옵 빨았다. 백지수의 얼굴이 금세 흐물흐물 녹아들었다. 백지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기분이 썩 좋은 모양이었다. 백지수랑 서로 혀를 빨면서 추잡스럽게 섹스하고 마음껏 질싸할 날이 기대됐다.
갑자기 강성연이 머리에 떠올랐다.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애가 나한테 이렇게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목도한다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발상만으로 짓궂은 의문이었다. 하지만 눈웃음 지어졌다.
백지수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백지수를 마주 안았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성연이도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았으면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