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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72화 (272/438)

〈 272화 〉 학교 가는 날 (3)

* * *

택시에서 내리고 밴드부로 향했다. 송선우랑 백지수가 양옆에 붙었다. 송선우가 앞으로 살짝 달려 내 앞에 가고는 뒷걸음질 치며 나를 바라봤다.

“어디 가?”

“밴드부.”

“반에 안 가고?”

“응.”

“왜?”

“이슬 누나가 불러서.”

“흐으응...”

백지수가 더 물어오지 않았다. 추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송선우가 백지수를 바라봤다.

“지수야 매점 갈래?”

“뭐 사게?”

“아이스크림. 온유야 너도 뭐 사줄까?”

“어, 응. 고마워.”

“뭐 먹을래?”

“소프트콘. 초코 맛으로.”

“응. 가자 지수야.”

송선우가 백지수의 왼팔을 채서 팔짱을 꼈다. 둘이 매점으로 향했다. 뭔가 이상한데. 그냥 기분 탓인 거 같았다.

밴드부로 갔다. 무대 위 등받이 없는 의자에 정이슬이 폰을 보며 앉아 있었다. 정이슬이 나를 보고는 빙긋 웃으면서 폰을 왼 주머니에 넣었다.

“온유!”

정이슬이 자기 왼편에 있는 의자를 왼손으로 내려쳤다.

“앉아!”

“네.”

정이슬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왜 불렀어요?”

“헐. 너무너무 단도직입적이고 딱딱한 거 아냐? 이 주 만에 봤는데 살짝은 소프트하고 애틋하게 대해주지.”

웃음이 나왔다.

“음. 웃는 거는 합격.”

“실격은 어떻게 당해요?”

“실격은 당하실 수가 없어요.”

“근데저 실격 당하고 싶은데.”

정이슬이 애교스럽게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너 너무 강경하게 미는 거 같아.”

“누나가 너무 다가와서 그러는 거예요.”

“그럼 미는 대로 떠밀리면 네가 도로 당겨주기라도 할 거야?”

“그대로 보내야죠.”

“그래서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거야.”

정이슬의 폰이 울렸다.

“전화 좀 받을게.”

“네.”

정이슬이 갑자기 일어서고는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정이슬이 문 쪽으로 걸어가서 전화를 연결하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응, 지금 와,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이슬이 돌아오면서 폰을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뭐예요?”

정이슬이 빙긋 웃었다.

“있어.”

순간 밴드부 입구 쪽에서 부원들이 쏟아지듯 왔다. 박철현이 맨 앞에서 오른손을 말아 쥐고 앞뒤로 흔들어대면서 느닷없이 내 이름을 불러댔다.

“이온유! 이온유!”

박철현이 연호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 같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 이름을 불렀다.

“이온유! 이온유!”

웃음이 나왔다.

“아니 뭐예요 진짜...”

정이슬이 히 웃었다.

“부장과의 감동적인 재회식?”

송선우가 내게 다가와서 초코 소프트콘을 건네줬다.

“먹어.”

“고마워.”

서유은이 양손으로 삼각 초콜릿을 소중히 든 채 내 쪽으로 조용히 다가와 건넸다.

“오빠 초콜릿 드세요...!”

“고마워 유은아.”

왼손으로 받고 주머니에 넣었다. 박철현이 어으, 하고 소리 냈다.

“분위기 모야모야.”

“아무 분위기도 아닌데 괜히 이상하게 몰아가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피식 웃었다. 소프트콘 뚜껑을 열고 부원들의 면면을 봤다. 강성연만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찾아가서 먼저 말을 건네야 할 듯했다.

부원들이 다들 모여줘서 기분은 좋은데 살짝 어색했다. 고마워요, 라고 수줍게 말했다. 부원들이 미간을 찌푸리고 탄식했다.

“존나 너 한번 깨물어 봐도 돼?”

백지수가 말했다.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초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함이 입을 가득 채웠다.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밴드부에서 나왔다. 반으로 돌아가는데 김수원이 하회탈 쌤이 나를 부른다고 말해줬다.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의 자리를 찾았다. 서류를 정리하던 하회탈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부르셨다고 해서요.”

“어. 그래. 그냥 얼굴 좀 보려 했다. 괜찮냐?”

“네.”

“그럼 됐고. 반으로 가자.”

하회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반으로 향했다.

“시험공부는 어떡하냐 너?”

“친구들한테 물어봐야죠.”

하회탈이 소리 없이 한숨 쉬었다.

“그래. 뭐 궁금한 거 있는데 애들한테 물어도 잘 모른다고 그러면 선생님 찾아가고 해라.”

“네.”

문을 넘어 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이온유 왔네, 라고 나를 아는 체하던 친구 한 명이 하회탈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하회탈이 단상에 올라 짧게 조례를 마치고 반에서 나갔다. 친구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이 주 쉬다 온 후기 좀.”

누군가가 나한테 질문을 해온 친구의 등을 찰싹 때렸다.

“근데너 중간고사 어떻게 보냐? 이제 몇 주 남았지?”

“삼 주 남았어.”

“이거 처음으로 이온유 넘을 각 떴냐?”

“내가 지금부터 빡공부하면 너는 이길 듯.”

내가 답했다.

“그럼 함 내기할래?”

“뭐 걸 건데?”

“대충 만 원?”

애들이 에이, 하고 질타했다.

“야 만 원이 뭐냐.”

“적은 거 같음 네가 보태든가.”

“그건 아니죠.”

“과목은 뭐로 할 건데?”

내가 물었다.

“영어?”

“그래.”

“아 씨 갑자기 후회되네.”

“응 이미 걸었죠. 절대 못 물리죠.”

깐족거리는 친구 한 명이 놀리듯 말했다.

“근데 나 잠깐만.”

내가 말했다.

“왜?”

“나 좀 일어서게.”

“어.”

애들이 물러났다. 자리에서 일어서고 고개를 두리번거려 강성연을 찾았다. 강성연은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강성연한테 다가갔다. 반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강성연의 의자 왼편에서 무릎을 꿇고 올려봤다.

“성연아.”

강성연이 나를 곁눈질하다가 어떻게 결심했는지 내게 시선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응...?”

“그때 때려서 미안해.”

“... 나도 미안해.”

살폿 미소 지었다.

“근데 너 얼굴 아직 살짝 부은 느낌 있는 거 같은데 괜찮아?”

“이거 금방 가라앉는대.”

“으응.”

미치도록 어색했다. 애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더 기분이 미묘했다. 강성연이 차라리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대했으면 조금 편했을 텐데. 빨리 이 불편한 무드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냥 대놓고 말해야 할 듯싶었다.

“성연아.”

“응?”

“나 용서해주라.”

강성연이 살폿 웃었다.

“용서할게...”

오른손을 뻗었다.

“그럼 이제 화해해주라. 이건 조금 조급한가?”

강성연이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웃음 지었다. 강성연이 처음으로 진짜 여자애처럼 보였다. 강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강성연이 마주 오른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세 번 흔들었다.

“이제 놓을까?”

“너 먼저 놔...”

“응.”

손을 놓았다. 강성연이 손을 놓고 자기 허벅지 위에 다소곳이 얹었다. 되게 이상하네. 양손 손가락들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성연이 왼손으로 책상을 붙잡은 채 몸을 내 쪽으로 살짝 숙이고 오른손으로 내 무릎을 털어줬다. 강성연의 시선이 내 하반신에 가 있는 게 의식됐다. 자지가 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이제 내가 할게. 고마워 성연아.”

“응...”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그, 나 외투 어딨어...?”

“여기.”

강성연이 의자 등받이에 반 접어 걸어놓았던 외투를 잡고 내게 건넸다. 양손으로 받았다.

“고마워.”

“응.”

바로 교복 위에 걸쳤다. 자리에 앉아 있는 강성연이 계속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일단 반을 나섰다. 발이 절로 밴드부로 향했다. 백지수가 내 왼편에 붙었다. 백지수가 존나, 라고 낮게 목소리를 냈다.

“뭐한 거야?”

“화해.”

“진짜 개 어색했어, 보는데.”

“그니까.”

“... 그래서 화해 끝난 거야?”

“화해는 끝났지. 근데 이제 또 가까워져야지.”

“와, 개 숨 막히겠네. 옆에만 있어도.”

픽 웃었다.

“안 숨 막히게 잘해볼게요.”

“제발 그래 주세요.”

“네.”

“근데 너 지금 밴드부 가는 거야?”

“응.”

“밴드부실이 거의 집이네. 귀소본능 있는 것처럼 돌아가는 거 보면.”

“그니까. 왤케 안락한지 모르겠어.”

백지수가 코웃음 쳤다. 함께 밴드부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

“노래 안 불러?”

“응.”

백지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베이스 기타가 있는 쪽으로 갔다.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켜 보았다. 강예린에게서 온 문자가 있었다.

[성연이랑 잘 화해해줘.]

[욕심이지만, 애들이랑 어울릴 수 있게 이끌어도 줬으면 해.]

[너무 요구만 해서 미안해. 나중에 어떻게든 사례할게.]

[미안하고 고마워 온유야.]

강예린도 참 지극정성이었다.

[알겠어요.]

금방 숫자가 사라졌다. 문자가 오는 것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걸까.

[고마워 온유야.]

[진짜 네가 말하는 거면 뭐든지 할게.]

백지수가 베이스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낮고 단조로운 소리가 차츰 볼륨이 커졌다. Red Hot Chili Peppers의 Can't Stop이었다.

[아니에요.]

[너무 보답하려고 안 하셔도 돼요.]

백지수가 리프를 치다 말고 베이스를 내려놓고 내게 다가왔다. 폰을 내려봤다.

[고마워서 그래.]

[저 진짜 괜찮아요.]

[주신 케이크는 맛있게 먹었어요. 감사해요.]

[저 이제 수업 들을게요 어머님.]

[응.]

백지수가 내 왼편에 왔다. 폰을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누구랑 문자한 거야?”

“강성연 어머님.”

백지수의 눈이 커졌다.

“왜?”

“그냥 성연이랑 화해해달라고 문자하셔서.”

백지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근데 그 사람이 너 나락 떨구려고 한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근데 왜?”

“저번에, 가 아니라 어제 내가 봉사활동 하는 곳에 와서 밖에서 기다리다가 용서해달라고 케이크 주면서 부탁해 가지고.”

“케이크?냉장고에 있던 게 그거였어?”

“응. 그리고 나중에 나 학폭 논란 떴을 때 빨리 사라지게 하려면 성연이랑 화해는 해야 됐으니까, 성연이 어머님이 뭐라 안 하셔도 화해는 할 거였어.”

“으응.”

“이제 쉬는 시간 다 지난 거 아니야?”

“그런가?”

“그런 거 같은데. 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지수가 뒤따라 일어나고는 내 왼 손목을 잡았다.

“왜?”

백지수가 말없이 밴드부 문 쪽에 시선을 던졌다가 나를 쳐다봤다.

“... 너 아까 있잖아.”

언제 말하는 거지.

“송선우랑 했던 거, 그거 나한테도 해줘 봐.”

“... 혀 빨아 달라고?”

“응.”

“...”

백지수가 나를 째려봤다.

“안 할 거야?”

“일단 문부터 잠그자.”

“응.”

백지수를 이끌고 걸어가 문을 잠갔다. 최대한 구석 쪽으로 가고 멈춰섰다. 백지수가 나를 올려보면서 혀를 살짝 내밀었다.

“더 빼봐.”

“창피해...”

“더 빼야 할 수 있어.”

“...”

백지수가 혀를 더 내밀어왔다. 입술을 오므리고 백지수의 혀를 쪼옵쪼옵 빨았다. 백지수가 눈을 감고 있다가 양손으로 내 가슴을 밀었다. 뒤로 물러났다.

“존나...”

“존나 뭐?”

“... 아냐.”

“또 해줄까?”

“... 반 가야지.”

“응.”

밴드부실을 나섰다. 백지수가 정면을 보면서 나랑 나란히 걷다가 입을 열었다.

“좀 이따 해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응.”

백지수가 살짝 거리를 두었다. 반으로 돌아가고 수업 들을 준비를 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강성연이랑 말을 섞었다. 체육 시간에도 강성연한테 붙었고, 점심시간에는 옆자리에 앉았다. 강성연도 점점 나랑 아무 일도 없던 듯 얘기했다.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성연도 같이 일어나서 잔반을 버린 뒤 내 오른편에 붙었다.

“... 고마워... 그리고...너한테 욕했던 거, 장례식장 안 갔던 거, 다 미안해...”

“됐어. 괜찮아.”

답하면서 밴드부를 향해 걸어갔다. 강성연이 본관 쪽으로 발을 뻗었다.

“넌 밴드부 안 와?”

“좀 어색해서.”

“와, 그냥. 밴드부 그만둘 거 아니잖아.”

“... 응.”

강성연이 내 왼편에 붙었다.

“... 진짜 고맙다...”

피식 웃었다.

강성연이 원래 이렇게 소심한 애였나. 살짝 생소하기까지 했다.

밴드부실 문을 열었다. 경쾌한 드럼 소리가 귀에 꽂혀왔다.

뭔가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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