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 학교 가는 날 (1)
* * *
알람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양옆을 봤다. 왼편에 백지수가 있고 오른편에 송선우가 있었다. 한 명도 깨지 않게 조심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서 빠져나가 알람을 껐다. 아침을 만들어야 할 거였다. 1층으로 내려가고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부터 눴다. 얼굴에 물을 끼얹고 화장실을 나와 폰을 켰다. 윤가영한테 문자가 와 있었다.
[밖에서 자는 거니?]
[잘 자]
아차 싶었다. 밤에 잘 자라고 문자로도 보내놓아야 했는데.
[못 보고 답장 안 해서 미안해요.]
[연락 미리 안 한 것도요.]
[일어났어요?]
숫자가 사라졌다.
[응]
깼구나.
[밥은 먹었어요?]
[아직이야. 방금 깨 가지구.]
[그럼 챙겨 먹어요.]
[알겠어.]
[어제 얘기는 다 했어요.]
[용서해준 거 같아요.]
[다행이다.]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 집에 갈게요.]
답장이 잠시 안 왔다.
[고마워.]
[아니에요.]
[학교 갔다가 보러 갈게요.]
[응.]
[이따 봐.]
[그래요.]
[근데 온유야.]
[네?]
[아냐.]
[그냥 말해요.]
[일주일에 두어 번은 집에서 있어줄 수 없나 해서...]
내가 필요한 걸까.
[알겠어요.]
[응(행복하게 미소 짓는 이모티콘)(행복하게 미소 짓는 이모티콘)]
윤가영이 내가 보낸 문자를 보면서 빙긋 웃는 모습이 상상됐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네.]
[전화 잠깐 해도 돼?]
[해요.]
전화가 왔다. 연결했다.
ㅡ사랑해 온유야...
픽 웃었다.
“나두요.”
ㅡ응... 끊을게...
“더 할 말 없어요?”
ㅡ응...
“그래요 그럼.”
전화가 끊겼다.
[근데 그 말만 할 거면 왜 전화까지 했어요?]
[문자로 하는 거는 조금 이상한 거 같고, 네 목소리도 듣고 싶고 그래 가지구...]
[알겠어요.]
[이따 봐요.]
[응.]
[기다리고 있을게.]
[네.]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화이트보드 앞으로 가 뭐라 쓰여있는지 확인했다. 아침에 길거리 토스트라고 쓰여있었다. 일단 씻는 것부터 해야 할 듯했다. 팬티를 챙기고 화장실에 들어가 빠르게 샤워했다. 거실로 가 교복을 입었다. 주방에 가 테이블에 폰을 내려놓고 재료들을 꺼냈다. 채소들을 채 썰고 보울에 계란을 깠다.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하고 채 썬 채소를 투하했다. 살짝 섞어주고서 프라이팬 두 개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불을 켰다. 두 프라이팬 모두에 버터를 녹이고 한쪽에는 계란 반죽을, 옆에는 식빵을 넣어 구웠다. 다 만든 것은 흰 접시에 옮겼다.
구운 식빵 세 쌍에 계란 속을 넣고 설탕을 뿌린 다음 케챱을 짜냈다. 반으로 잘라놓고 흰 그릇을 가져와 뚜껑처럼 덮었다. 2층으로 올라가 백지수 방에 들어갔다. 침대 위로 올라 무릎으로 기어 백지수랑 송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살살 흔들어 깨웠다.
“아침 만들었어.”
백지수가 몸을 뒤척였다.
“아으응...”
송선우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아침...?”
“응.”
“뭔데...?”
“길거리 토스트.”
“으응...”
“마실 거는 했어?”
백지수가 물었다.
“아니 아직. 뭐 할까?”
“카페 라떼.”
“알겠어.”
“나두 해주라...”
송선우가 말했다.
“응.”
“고마워...”
“빨리 내려와 다 식어.”
“으응...”
백지수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벌써 학교 갈 준비했네...”
“응.”
“급한 일 있어?”
“아니?”
“근데 왤케 빨리 준비해...”
“몰라.”
“흐음...”
백지수가 다시 눈을 감았다. 피식 웃었다.
“자지 말고 내려오세요.”
송선우가 왼손으로 백지수의 오른 옆구리를 주물렀다.
“얘 자면 내가 깨울게.”
“응.”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송선우의 왼 손목을 잡았다.
“만지지 마...”
송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알겠어. 나랑 내려가자 온유야.”
노브라에 티셔츠만 입고 밑에는 팬티 차림인 송선우가 침대에서 일어나 내게 달려왔다.
“가자.”
송선우가 내 오른팔을 붙잡아 팔짱을 끼고 걸어가려 했다. 백지수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다가 이불을 집어 던지듯 밑으로 내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송선우처럼 노브라에 티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는 백지수가 가슴을 출렁이며 뛰어와 내 왼편에 붙었다. 자지가 곧장 솟아올랐다. 백지수가 시선을 내려 내 자지를 바라봤다.
“또 섰네.”
“어?”
송선우가 밑을 봤다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눈꼬리를 휘어 웃고 있었다.
“아침부터 하고 싶어?”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하기 싫어?”
“그런 것도 아니고.”
다 같이 계단을 밟았다. 셋이서 팔짱을 낀 채 걸어서 조금 움직이는 게 어정쩡했다.
“지수 아직 생리하지?”
백지수가 송선우를 노려봤다.
“섹스할 생각하지 마.”
“흐흫... 알겠어.”
“...”
백지수가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내가 다 어색했다. 발을 맞춰 주방으로 향했다.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가 커피를 내렸다. 송선우가 오른손에 토스트를 든 채 왼편에 왔다.
“안 배고파?”
“괜찮아.”
“입 벌려봐.”
어쩔 수 없을 듯했다. 입을 벌렸다. 송선우가 토스트를 입에 넣어주고는 왼손으로 내 턱 밑을 받쳤다. 한 입 베어 물었다.
“흐흫...”
송선우가 뒤로 돌아갔다. 우물우물 씹으면서 스팀 밀크를 만들었다. 컵 세 잔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스팀 밀크를 부은 다음 유리 머들러로 섞었다. 백지수가 오른편에 와서 잔을 같이 옮겨줬다. 백지수가 자기 잔에 바닐라 시럽을 붓고는 나를 쳐다봤다.
“너도 필요해?”
“응.”
“어.”
백지수가 시럽을 천천히 넣었다.
“멈추라고 해.”
“이 정도면 됐어.”
“응.”
“나도 넣어주라.”
“알아서 해.”
백지수가 송선우에게 시럽을 건넸다. 송선우가 히 웃었다.
“차별하는 거야?”
“아니 그냥 원하는 만큼 넣으려면 본인이 넣는 게 제일 좋으니까.”
“흐응...”
송선우가 시럽을 잡고 잔에 붓고는 왼손을 뻗어왔다. 유리 머들러를 건네줬다. 송선우가 머들러로 커피를 섞고는 한 모금 마셨다.
“음. 달다.”
“사천 원이야.”
백지수가 툭 말했다. 송선우의 눈이 커졌다.
“응?”
“숙박하고 취식하고 이제 씻기까지 할 건데 사천 원이면 싸지.”
송선우가 히히 웃고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너 진짜 귀엽다 지수야.”
“...”
백지수가 대답 없이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도 토스트를 한 입 했다.
“톡으로 보낼까?”
“...”
백지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됐어.”
“아니 진짜 줄 수도 있는데.”
“됐다니까.”
“아냐 줄래.”
송선우가 폰을 꺼냈다. 백지수가 눈을 찡그렸다.
“아 왜 그래.”
“기다려봐.”
“보내지 말라니까.”
“이미 보냈어.”
“아니...”
백지수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송선우가 백지수를 바라봤다.
“지수야.”
“왜.”
“나도 여기에서 같이 지내도 돼?”
“미쳤어?”
“민폐 안 끼칠게.”
“아니, 민폐 돼. 민폐야.”
“설거지나 장보는 거, 그런 귀찮은 거 다 내가 할게.”
“잡일은 이온유 시키면 되고, 장은 따로 안 봐도 돼.”
“고기 굽는 거는 내가 잘하잖아.”
“고기 그렇게 자주 안 구워 먹어.”
“너무 깐깐하다. 난 그냥 너랑 온유랑 같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하루하루 보내려고 하는 건데.”
순간 뜨악했는지 백지수의 입이 살짝 삐뚤어졌다. 백지수가 하아, 하고 한숨 쉬었다. 송선우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백지수가 토스트를 들어 입 가까이에 대다가 접시에 도로 내려놓았다.
“아니 어떻게 오순도순 지내는 게 가능하다는 건데. 온유 사이에 끼고 너랑 나 둘이 같이 있으면.”
“할 수 있지. 아니 되게 해야지.”
“내가 물은 게 그게 아니잖아. 어떻게 하느냐를 묻는데 왜 당위를 꺼내.”
“어떻게는 솔직히 너도 알잖아. 중요한 거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거, 당위고.”
“...”
“너랑 나 말고도 세은이도 있잖아. 지금에야 온유가 어떤 때는 너한테 가고 어떤 때는 나한테 오고 하면서 한 명씩 만나 가지고 서로가 공유하는 느낌 안 나게 어떻게 한다고 해. 그런데 나중에는 세은이도 껴서 세 명 돼 가지고 그러면 어떡할 거야. 온유 스케줄도 생겨서 시간도 없어지면 어쩔 거고. 같이 있는 시간 너무 모자라진다고 서로 불만 생기게 될 건데, 그럼 결국에는 다 같이 같은 공간에서 있으면서 온유 공유하는 식으로 살게 되지 않겠어?”
“... 그거는 나중 일이지.”
“아니 나중 일이래도, 일단 익숙해져야지.”
“몰라. 익숙해지는 거야 나중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당장 내 심정은 네가 여기에 쭉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싫어.”
송선우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오른손으로 가슴을 짚었다.
“이건 진짜 상처다.”
“응.”
“응이 뭐야.”
“그래. 미안.”
“미안하면 여기에서 지내게 해줘.”
“싫어.”
“흐응... 아니 근데 진짜 불공평해.”
“왜?”
“온유 맨날 너랑만 있잖아. 나한테 따로 찾아오지도 않고. 하루는 너랑 있고 하루는 나한테 와주거나 해야 되는데.”
“그건 얘한테 뭐라 해야지.”
“근데 온유가 그러겠다고 하면 네가 뭐라 할 거 아냐?”
“그건 내 자유고.”
송선우가 콧숨을 내쉬고 나를 쳐다봤다.
“너 나 좀 보러 오고 하면 안 돼?”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한테 찾아가는 거는 너희 부모님 때문에 부담돼서.”
“흐응... 그럼 내가 지수처럼 자취를 하거나 했으면 왔을 거야?”
“그랬을걸?”
“그런데 만약에 진짜 그런다고 치면, 너 하루는 여기에서 자고 하루는 내가 자취하는 곳에서 자고 하는 거야? 그건 또 아니지 않아?”
“그렇네.”
“그냥 지수랑 내가 같은 곳에서 사는 게 네 입장에는 훨씬 낫지?”
백지수가 나를 째려봤다. 송선우가 픽 웃고는 아, 하고 소리 냈다.
“왜 째려봐서 답 강요해 지수야.”
“내가 언제.”
“방금 그랬잖아.”
“나 답 강요한 적 없어. 그리고, 네가 대답 유도하는 거는 괜찮아?”
속이 얹히는 느낌이었다.
“싸우지 마...”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안 싸웠어.”
“그니까.”
“...”
“그래서, 넌 선우도 여기에서 같이 있으면 좋겠어?”
“... 나는 괜찮은데 네 의견이 중요하지.”
“그래?”
백지수가 씩 웃고 송선우를 바라봤다.
“미안해 선우야.”
송선우가 불쌍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고는 히잉, 하고 소리 냈다.
백지수가 은은히 미소 지은 채 토스트를 한 입 했다. 얼굴이 상당히 흡족해 보였다.
“... 근데 나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집에서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아.”
백지수의 눈이 커졌다.
“왜?”
“새엄마 때문에?”
송선우가 물었다. 멋쩍게 웃었다.
“응...”
백지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그 여자도 네 여자친구된 거야?”
“... 맞아.”
“아...”
백지수가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너 집 갈 때 나도 따라가도 돼?”
송선우가 느닷없이 물었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여동생 있어서 너무 자주는 안 될 거 같아.”
“으응.”
백지수가 눈도 안 뜨고 입을 열었다.
“선우 가면 나도 갈 거야.”
송선우가 백지수를 보며 흫, 하고 웃었다.
조금 피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