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사고 (14)
* * *
송선우가 폰을 만지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기고 나왔다.
“택시 불러.”
“응.”
폰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신발을 신고 같이 밖으로 나갔다. 송선우가 대문을 닫고 오른손 검지로 택시를 가리켰다.
“온 거 같은데.”
“그렇네.”
다가가서 뒷문을 열었다. 송선우가 먼저 안에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다. 따라 들어가서 문을 닫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송선우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괜히 멋쩍었다. 송선우의 왼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송선우가 폰을 꺼내고 화면을 내려봤다가 나를 바라봤다.
“엄마 전화 왔어.”
“어, 받아.”
“응.”
송선우가 전화를 연결하고 왼 귀 가까이에 폰을 댔다.
“응 엄마.”
ㅡ선우 씨.
“네, 어머니.”
ㅡ그렇게 갑자기 문자만 툭 보내고 밖에서 자면 어떡해요.
“죄송해요.”
ㅡ애초에 계획이 있었던 거야? 그럼 얘기를 했어야지.
“아냐. 그냥 진짜 갑자기 결정한 거라서 얘기 못 했어.”
ㅡ그래. 그럼 친구네에서 잤다가 바로 학교 가고 그러는 거지?
“응.”
ㅡ알겠어. 교복은 챙겼니?
“챙겼어요.”
놀 거면 새벽까지 놀지 말고, 자정쯤 되면 자.
“당연하지.”
ㅡ엄마 없다고 학교 지각하지 말고 잘 자둬.
“친구 있으니까 지각 안 해.”
ㅡ그래.
“응. 엄마도 잘 자. 아빠한테도 잘 자라고 전해줘.”
ㅡ넌 엄마한테 그런 걸 시키니.
“흫. 해줘어.”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알겠어.
“고마워.”
ㅡ응. 더 할 말 없니?
“없어요.”
ㅡ그래. 끊어라.
“알겠어요. 바이.”
ㅡ응.
송선우가 전화를 끊고 폰을 다시 왼 주머니에 넣었다. 송선우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순간 송선우의 부모님을 비롯해 김세은, 백지수의 부모님을 마주해서 허락받으려 드는 상황이 상상됐다. 다들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더 깊이 떠올리기라도 한다면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도시의 불빛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야.”
송선우 목소리였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응?”
“내일부터지?”
학교 가는 거 말하는 건가.
“응.”
“드디어 밴드부 죽돌이 컴백하는 거네?”
“글쎄.”
송선우의 두 눈이 커졌다.
“강성연 잘 안 들어온대.”
“알아.”
“그럼 왜? 뭐 현타 왔어?”
“아니. 그냥 왠지 잘 안 들어갈 거 같다는 느낌 들어.”
“어어? 너 이온유 맞아?”
“맞아요.”
“근데 왜 이러지?”
송선우가 오른손을 뻗어 내 왼 볼을 주물주물 만졌다가 손을 뗐다.
“일단 사람 같기는 한데.”
피식 웃었다.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
“아니 뭔가 복선 비슷한 느낌이라서.”
“무슨 복선?”
“뭐 이제 노래 안 한다거나 그런.”
웃었다.
“복선 아니야.”
“그럼 다행이고.”
“근데 요즘 연극부 뭐 하는지 알아?”
“연극부? 음.”
송선우가 눈을 위로 올렸다가 아, 하고 소리 냈다.
“그 얘기를 안 했네.”
“뭐?”
송선우가 눈빛을 밝혔다.
“내가 오늘 너무 심심해서 동아리 시간에 학교 갔거든?”
피식 웃었다.
“선생님들이 혼내지 않았어?”
“조금 혼났어. 아무튼, 배우 한 명 연기 특강 왔거든? 누군지 맞춰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정보가 너무 없잖아요.”
“일단 진짜 개 유명해.”
“성별은?”
“여자. 이 정도만 해도 일단 엄청 추려진 거야.”
“우리나라에 있는 유명 여배우라고 하면 잠깐 생각해도 엄청 많지 않아?”
“그럼 하나 더, 요즘 활동을 잘 안 해.”
“음.”
“더 줘야 돼?”
“더 줘보세요.”
“우리 밴드부에 있는 사람 중에 성씨 같은 사람 있어.”
웃었다.
“아니, 김 씨 있고, 송 씨, 백 씨, 이 씨, 진짜 엄청 많은데. 이건 힌트라고 보기 어려운 거 아니야?”
“아냐. 한번 잘 생각해 봐.”
“에바야.”
“아, 더 힌트 주면 너무 쉬운데.”
“지금은 못 맞추겠어.”
“알겠어. 배우 겸 가수야. 이제 끝.”
갑자기 서예은이 떠올랐다. 절로 입이 벌어졌다.
“어?”
송선우의 두 눈이 커졌다.
“누군지 알 거 같아?”
“아마?”
“누군데?”
“서예은.”
“맞아! 바로 맞추네. 마지막 힌트는 주면 안 됐는데.”
“근데 그 사람이 왜 왔는데?”
“음, 여동생 보러 왔다고 했어.”
“여동생 보러 강연을 와? 대박이네.”
“뭐 겸사겸사였지 않았을까?”
“그런가.”
“근데 너 누가 여동생인지는 안 궁금해?”
“어? 우리 학교에 서 씨 한 명밖에 없지 않아?”
“그렇긴 하지. 근데 안 신기해? 유은이랑 서예은 배우가 자매라는 게?”
“신기하지...”
“왜 이렇게 안 신기한 거 같지 근데? 원래 알고 있었어?”
“응...”
“어떻게?”
“본인이 얘기해줘서.”
“헐.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해줬대.”
“글쎄.”
“넌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 말해야 했던 거야?”
“어어, 그건 모르겠는데. 말 못 할 것도 아니지 않아?”
“으응...”
“근데 나 하나 확실한 거 있어.”
“뭔데?”
“너 나한테 연락 진짜 너어무 안 해. 진심 섭섭한 수준으로 안 해.”
“... 미안.”
“좀 자주자주 해.”
“알겠어.”
송선우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왔다.
“약속.”
“응.”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송선우가 오른손 엄지를 앞으로 뻗었다.
“도장 찍어.”
“알겠어.”
엄지를 맞댔다.
“서명도 해.”
“응.”
엄지랑 소지를 떼고 약지, 중지, 검지로 서로의 손바닥을 간질였다. 송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흐흫... 이제 복사도 해.”
“네.”
손바닥을 펴고 맞대서 뒤로 느리게 뺐다. 송선우가 갑자기 왼손으로 내 오른손 손등을 착 때렸다.
“뭐야?”
“코팅.”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코팅해야 돼?”
“하지 마.”
“왜?”
“이건 나만 하면 돼.”
“어째서요.”
“난 원래 연락 많이 하니까.”
“에반데.”
“에바 하나도 아니야.”
송선우가 양손을 뗐다. 그러고는 두 손을 빠르게 자기 양쪽 주머니에 넣었다. 송선우가 나를 쳐다보면서 눈웃음 지었다.
“너 진짜 애 같다.”
“칭찬 감사.”
“그냥 애도 아니고 유치원생인데 괜찮아?”
“유치원생? 오히려 좋아.”
“음? 왜?”
“난 그냥 영원히 어렸으면 좋겠어. 어른 안 되고.”
“으응...”
“왜는 안 물어봐?”
“왠지 나도 알 거 같아서.”
“오. 넌 무슨 이유 때문에 어른 되기 싫은데?”
솔직히 말하면 결혼이 눈앞에 부닥쳐올 거 같아서였다.
“그냥, 현실적인 문제를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니까.”
“으음.”
“너는?”
“난 일단 네가 말한 것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항상 재미만 추구할 수 없게 된다는 거? 그런 거 때문에 어른 되기 싫어.”
“싫은 것도 해야 하고 그래야 되니까?”
“응. 일단 뭐 밥벌이만 생각해도 그러니까.”
“그치.”
“근데 내가 이상한 게, 그 나이 되면 마냥 노는 것도 즐겁지는 않을 거 같아.”
“일 안 하고 노는 거 얘기하는 거야?”
“응.”
“왜? 돈 많은 백수 최고 아니야?”
“나는 그게 아닐 거 같아. 내가 쉬면 쉬는 만큼 다른 사람이 일할 거고, 나는 거기에 빌붙는 거일 테니까, 그러면 놀다가도 그 생각 나서 속이 불편할 거 같아.”
“만약에 네가 비트코인이나 주식 같은 거 대박 나서 놀기만 해도 되는 거면?”
“근데 그건 내가 안 할 거 같아.”
“으응. 그럼 즐거운 걸 직업으로 가지면 되지 않아?”
“그렇긴 한데, 취미가 직업이 되면 재미없어진다는 소리도 있어서.”
“그건 본인이 해봐야 아는 일 아닐까?”
“그런가?”
“그래서 너 일단 뭐 하고 싶은데 나중에?”
송선우가 갑자기 박수했다.
“그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문제가 또 있어요.”
“에반데.”
“아니 진짜로. 원래는 트레이너 같은 거나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엔 배우도 재밌을 거 같다, 그런 생각 들어 가지고.”
“오 그래?”
“어.”
“근데 배우 진짜 좋은데? 너 연기도 잘하고.”
송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하고 또?”
“키 크잖아.”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꼭 그 소리를 들어야겠어요?”
“네. 빨리해보세요.”
“예쁘잖아.”
“흠. 따로 들으니까 약간 이상하다. 처음부터 다시 쭉 말해봐.”
살짝 어이없었다.
“빨리.”
“알겠어.”
송선우가 히 웃었다.
“나 연기도 잘하고 또 뭐?”
“키 크고 얼굴도 예쁘니까.”
“흐흫... 그렇긴 하지.”
택시가 정차했다. 기사님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금 눈치가 보였다.
“근데 우리 진짜 주접떠는 거 같다.”
“왜, 주접 좀 떨면 안 돼?”
“도착했어요.”
기사님이 말했다. 송선우의 두 눈이 커졌다.
“아, 네. 감사합니다.”
송선우가 오른손 검지로 내 왼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빨리 내려.”
“응.”
차 문을 열고 내린 다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송선우가 감사합니다, 라고 다시 한번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아줬다. 택시가 떠나갔다. 송선우가 택시를 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 나 개 창피해.”
피식 웃었다. 송선우가 양손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웃음 어떡해, 위로를 해줘야지.”
“너 귀여워서 웃었어요.”
송선우의 눈이 휘어졌다. 송선우가 오른손을 주먹 쥐고 내 왼팔을 가볍게 툭 쳤다.
“갑자기 또 주접떠는 거 뭔데?”
“둘만 있으니까.”
“그럼 맨날 둘이서만 같이 있어야겠네.”
“어떻게 하시려고요?”
“방법은 많지.”
순간 냐아, 하고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잿더미가 총총총 다가오고 있었다.
“잿더미다.”
“어? 어디?”
송선우가 양손으로 내 양팔을 붙잡고 오른 볼을 내 왼팔 상완 옆에 붙였다.
“잿더미이.”
송선우가 내 팔에서 두 손을 떼고 무릎을 꿇어 양손을 뻗었다. 잿더미가 송선우에게로 달려갔다. 송선우가 잿더미를 양손으로 붙잡고 들었다. 그러고는 왼팔로 잿더미의 등을 받쳐 품에 안았다.
“오랜만이야.”
오른손을 뻗어 잿더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잿더미가 눈을 감았다.
“왜 나한테 안 왔어 잿더미야.”
잿더미가 냐아, 울었다. 송선우가 히죽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내 맘이라는데?”
“섭섭하다 잿더미야. 내가 더 오래 알았는데.”
잿더미가 또 냐아아, 하고 울었다.
“자기는 예쁜 언니가 더 좋대. 그리고 빨리 문이나 열래.”
“얘 한 번밖에 안 울었는데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요?”
“냐, 아, 아, 하고 세 음절로 울었잖아. 음 높낮이도 미세하게 바뀌었고. 못 들었어?”
“설득력 있네요.”
“그치? 빨리 문 열어.”
“네.”
대문 앞으로 가 키링을 꺼내고 열쇠를 꽂았다.
이제 진짜 백지수를 마주하겠구나. 갑자기 실감이 났다.
두려움을 그러안은 채, 나는 앞으로 발을 뻗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