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 사고 (13)
* * *
택시에서 내리고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예엡.”
택시 뒷문을 닫고 폰을 꺼내 전화 어플을 켰다. 송선우를 찾고 전화 걸었다. 곧 연결됐다.
ㅡ웬일이야? 먼저 전화하고?
“너 지금 어딨어?”
ㅡ왜? 나 지금 쉬고 있는데.
“집에 있어?”
ㅡ응.
“그럼 좀 나와줘.”
ㅡ너 지금 근처에 있어?
“대문 바로 앞에 있어.”
ㅡ어? 왜 갑자기?
“말할 거 있어서.”
ㅡ으응...
“지금 부모님 집에 계셔?”
ㅡ아... 니...?
왜 이렇게 대답을 이상하게 하지.
ㅡ잠깐만 기다려 봐...
“응.”
ㅡ어...
“전화 끊을게.”
ㅡ응...
전화를 끊었다. 얼마 안 가 대문이 열렸다. 검은 후드티에 회색 레깅스 차림의 송선우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송선우의 입술이 열렸다.
“안녕...?”
픽 웃었다. 송선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웃냐?”
“웃겨서 웃었어요.”
송선우가 눈꼬리를 휘고는 흫, 하고 웃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와서 말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얘기가 뭐예요?”
“그냥... 조금 길어.”
“음. 그럼 안에 들어와.”
“감사합니다.”
“응.”
송선우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송선우가 신발을 벗으며 문을 잠갔다. 거실 쪽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롱소파 오른쪽 끝에 앉았다. 송선우가 나를 내려봤다.
“뭐 마실래?”
“아냐 괜찮아.”
“오키.”
송선우가 내 왼편에 붙어 앉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함 얘기해보세요.”
“... 응...”
송선우의 두 눈이 커졌다.
“너 갑자기 조금 이상해졌다?”
“왜...?”
“아니 그냥 무슨 버튼 누른 거처럼 한순간에 의기소침해져서.”
“... 들으면 충격받을 얘기라서 그랬어.”
“뭐길래 그래.”
“미리 미안해.”
“... 진짜 무섭게 왜 그래. 그냥 빨리 말해봐.”
“응.”
입을 열었다. 뭘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막막했다. 한숨이 나왔다.
“선우야.”
“어...”
“자초지종을 얘기할까 아님 딱 결과만 따로 말할까.”
“... 들으면 내가 화나기라도 할 만한 내용이야?”
“응...”
“그럼 처음부터 얘기해봐.”
“알겠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찾아온 주말에 이수아의 오디션을 따라갔다. 그날 집에 돌아갔는데 윤가영이 술 취해서 주방에서 의자에 앉은 채 테이블에 엎드려 자는 것을 보았다. 술 마시는 모습을 여태 본 적이 없었는데, 라고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됐다. 툭툭 쳐 깨웠는데, 안색이 안 좋은 얼굴에 어머니 모습이 겹쳐져서 침대에서 자게 부축해줬다. 그런데 그다음 날에도 윤가영이 술을 마시고 주방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때도 깨워서 침대에 옮겨줬다. 그러고 왜 술을 마시냐고 물었다. 윤가영은 이준권이 자기를 버린 거 같다고 답했다.
“또?”
“응...”
“와...”
“욕해도 돼.”
“진짜 미쳤네. 그 사람.”
“응...”
“그래서 그담에 어떻게 됐는데?”
“으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윤가영을 달래주고, 윤가영이 잘 수 있게 잠깐 옆에 있다가 나왔다. 다음날에도 윤가영이 술을 마셔서 챙겨주고 침대에 눕힌 다음 내 방에 들어갔다. 잠깐 폰을 보며 시간을 보낼 때부터 주방으로 가서 점심을 챙겨 먹을 때까지 윤가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어머니처럼 죽지나 않을까 걱정돼서 위로해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위로 올라갔다. 방문을 여는 순간 본 것은 수건을 밑에 깔고 앉은 채 내 이름을 부르면서 자위하고 있는 윤가영이었다.
송선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존나 진짜로?”
“응...”
“개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네가 새아들이잖아 그 사람 입장에?”
“그치...”
“와... 돌겠다...”
“...”
“그래서 너 어떡했는데?”
“... 여기부터는 그냥 쭉 이어서 말해야 할 거 같은데.”
“알겠어. 말 안 하고 들을게.”
“고마워.”
“빨리 이어서 얘기해.”
“응.”
일단 빠져나오고 지수 별장으로 갔다. 다음날에 윤가영이 나를 찾으면서 내가 봉사활동 하는 곳을 알아 가지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나를 찾다가 카페에 자리 잡았다. 그때 윤가영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윤가영이 민폐를 끼칠까 봐 바로 찾아가서 밖으로 끌고 나왔다. 반쯤 끌고가듯 부축하면서 왜 마셨냐고 물어봤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려 찾아가려고 했는데, 맨정신으로는 말을 못 할 거 같아서가 대답이었다. 당시 비가 오고 있었고, 윤가영이 많이 취한 상태라서 집에 혼자 돌려보내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술에 깰 수 있게 잠시 잘 수 있도록 지수 별장으로 데려갔다. 윤가영을 침대에 눕히고는 주방으로 가서 술을 조금 마셨다. 어제 본 광경 때문에 심란했던 탓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윤가영이 침대에 누운 채 자는 척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고 얼굴이 상기된 게 뭔가 하고 있던 것 같아서 궁금증이 들어 가지고 이불을 들어서 확인해봤다. 윤가영은 자위하고 있던 거였다. 순간 이성을 잃고 덮쳐서 콘돔 없이 몸을 섞었다. 이후 윤가영이 사후 피임약을 먹기는 했지만 임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송선우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언뜻 봐도 멍한 표정이었다.
“어...?”
“...”
“잠깐만. 내가 방금 들은 걸 해석을 좀 해야겠거든?”
“...”
송선우의 앞에 가 무릎을 꿇었다. 송선우가 입술을 열었다.
“그니까, 네가 그, 새어머니랑 섹스한 거지...? 콘돔도 없이...?”
“응...”
“...”
“미안해...”
“... 미쳤어?”
“... 미안...”
송선우가 콧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진짜로 애 가졌으면 낳아야 되잖아...?”
“응...”
“근데 애 낳으면 너는 어떡해...?”
“모르겠어...”
“야... 모르겠어라고 하면 안 되지...”
“생각해봐야지...”
“... 근데 네가 네 새엄마랑 섹스한 거 지수는 알아?”
“너한테 먼저 왔어...”
“으응...”
송선우가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표정이 살짝 밝아진 느낌이었다. 자기한테 먼저 말한 게 큰 의미인 건가? 중대사라면 중대사라 할 수 있으니 그럴 법도 한 듯했다.
“지수한테도 가야 되지?”
“응...”
“그럼 나도 같이 가. 부모님한테 오늘 친구네에서 자고 바로 학교 가겠다고 문자 보낼 테니까.”
근데 만약에 같이 갔다가 백지수 아빠랑 오빠가 같이 있으면 어떡해야 할까. 송선우의 두 눈이 커졌다.
“왜? 안 돼?”
“... 같이 가자...”
“뭐 걸리는 거 있어?”
“혼날 거 같아 가지고.”
“지수한테?”
“응.”
“너무 처맞으면 내가 커버쳐줄 테니까 같이 가자.”
“... 그래.”
“탐탁지 않아 보입니다?”
“아냐. 그냥 좀 무서워서.”
“맞을까 봐?”
“응...”
송선우가 픽 웃었다.
“몸은 개 크면서 지수한테 맞는 게 무섭다고?”
내가 두려운 건 그게 아닌데. 이걸 설명하기도 뭐했다. 송선우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나한테도 맞아야겠네.”
“... 응...”
송선우가 피식 웃었다.
“진짜 맞을 거야?”
“맞아야지...”
“그럼 일단 내 옆으로 와.”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소파를 팡팡 쳤다. 복싱한다 했지.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도 송선우의 오른편에 가 앉았다.
“몇 대 맞을래?”
“네가 때리고 싶은 만큼...”
“딱 만 대만 때리고 싶은데 적립해두는 거 안 돼?”
“적립은 좀...”
“아니 하루에 다 때리지는 못할 거 아니야. 하루 지나면 못 쓴다고 해서 몇백 대 넘게 주먹 욱여넣으면 너 빈사 상태 될지도 모르고.”
“... 지수한테도 얘기하러 가야 되니까, 딱 기절하기 전까지만 때리고 멈춰주면 안 될까?”
송선우가 웃으면서 두 손으로 내 왼 어깨를 잡고 몸을 내 쪽으로 숙여왔다. 송선우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샴푸 향이 코로 들어왔다. 송선우가 잠시 끅끅대다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아... 너 왜 귀엽냐?”
“응...?”
“왜 귀여워서 나 화 수그러들게 해.”
“...”
“지금 진짜 화내야 되는 타이밍인데. 미쳤냐고 막 소리 지르면서, 멱살 잡고 흔들고, 주먹으로 막 때리고.”
“...”
“근데 그렇게 막 화가 나지는 않아. 네가 말한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안 믿겨 가지고 그런 건지 뭔지. 아니면 그냥 세은이랑 지수한테서 너 뺏은 내 입장에 뭐라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모르겠어.”
“...”
“너 양치하고 왔어?”
“응...”
“키스할래?”
“좋아...”
송선우가 눈웃음 지으면서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송선우가 얼굴을 가까이 해오면서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고 입술을 포갰다. 혀를 섞었다.
“아움... 하움... 츄읍... 쮸읍... 하웁... 헤웁... 쯉... 츄릅... 쯉...”
송선우가 혀를 내빼왔다. 입술을 오므리면서 송선우의 혀를 쪼옵, 하고 빨았다. 송선우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양손으로 내 양팔 상완을 잡아 세게 힘을 주었다. 쥐어짜이는 느낌이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송선우가 아차 싶었는지 곧장 힘을 풀어주었다.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입술을 만졌다.
“너 혀는 왜 빨아...?”
“별로였어?”
“아니, 당황스럽게 하니까...”
송선우가 오른손을 다시 내 왼 어깨에 얹었다.
“한번 다시 빨아봐.”
“응.”
얼굴을 가까이 했다. 송선우가 나를 껴안으면서 눈을 감았다. 송선우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붉은 혀가 밖으로 나왔다. 입술을 오므리면서 빨았다. 혀가 아주 길지는 않아서 빨아주는 길이가 약간 짧았다.
“쪼옵... 쪼옥... 쫍... 쪼옵... 쪽... 쪼옵...”
송선우가 입술을 오므리고는 눈을 떴다. 송선우의 눈빛이 몽롱했다.
“진짜 존나 야한데... 너 이거 누구한테 배웠어...?”
“배웠다니...”
“배운 거 아냐?”
“...”
“김세은이야?”
“...”
“세은이 개 변태였구나... 혀가 길긴 하더니...”
“... 세은이 아니야.”
“그럼 백지수?”
“...”
“네 새엄마?”
“...”
“개새끼.”
“미안해.”
“말로만?”
“...”
“미안하면 내 혀 빨아봐.”
“네...”
“내가 입술 오므릴 때까지 빨아.”
“알겠어요...”
“다시 빨라면 다시 빨고.”
“네...”
송선우가 눈웃음 짓고는 혀를 내밀었다. 얼굴을 가까이 해 송선우의 혀를 빨았다.
송선우가 내 몸을 껴안고 눈을 감고 음, 으응, 하고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뭔가 음미하는 듯했다.
선우는 이렇게 넘어가 주는 걸까. 물론 뭔가를 더 요구할 법했지만,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기를 원하든 값을 싸게 치른 것일 터였다.
백지수도 선우처럼 봐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막연한 걱정이 차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