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사고 (12)
* * *
누구를 먼저 찾아가야 할까.아무리 생각해도 백지수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당일에는 송선우를 보러 가지 못하게 막을 것만 같았다. 만약 백지수가 송선우에게 가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정말로 가라는 의미가 아닐 거였다. 아무래도먼저 송선우를 보러 가야 할 것 같았다. 송선우네를 목적지로 택시를 부르고 외조부모님께 안녕히 계시라 인사를 올린 뒤 밖으로 나섰다.
택시 뒷좌석에 올라타고 폰을 켜 봤다. 여섯 시 사십구 분이었다. 빨리 가도 아홉 시는 넘을 듯했다. 그럼 지수가 별장에 들어갔을 때 나는 없을 텐데. 어떻게 문자를 남겨둬야 할까. 한숨이 나왔다. 문자 앱을 열었다. 강예린에게서 온 문자가 있었다. 강예린의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뀌기라도 할 듯 잠시 뚫어져라 봤다. 결국에는 바뀌지 않았다. 차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눌러봤다.
[온유야. 외투 빌려줘서 고마워. 덕분에 감기에 안 걸린 거 같아.]
[여섯 시 다 되어가는데 저녁은 먹었니?]
[성연이랑 나는 아직 안 먹었어. 너도 안 먹었으면 우리 집으로 와. 맛있게 차려줄게. 식재료는 많으니까 메뉴 먹고 싶은 거 말만 해줘. 바로 준비해서 너 올 때 딱 조리 마쳐놓을게.]
다음 문자랑은 시간상 텀이 약간 있었다.
[여섯 시 반 되면 성연이랑 나 먼저 저녁 차려서 먹을게. 그때 넘어서 온다고 해도 돼. 기다리고 있을게.]
[만약 저녁 안 먹었으면 차려줄 테니까 공복으로 와도 돼. 웬만하면 입에 맞을 거야. 자신 있어.]
그런데 강성연은 버스킹을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지수가 강성연은 버스킹에 안 참여한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확실히 강성연이 따돌려지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버스킹에 안 간 거야 결국에 본인 선택이었겠지만.
그나저나 강예린은 나랑 강성연의 사이를 다시 좋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모양이었다. 강성연은 강예린이 나랑 자신의 사이를 이어붙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과연 알까? 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성연이 어머님.]
한 삼초가 지난 거 같은데 바로 숫자가 사라졌다.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응 온유야.]
[저녁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응.]
쓰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 십 초 정도가 흐르고 다음 문자가 왔다.
[뭐 먹었니?]
겨우 이 말을 하려고 고민했던 건 아닐 거 같은데.
[갈비찜이요.]
[갈비찜 맛있지.]
[요리는 한식 좋아하니?]
[맛있는 건 다 좋아해요.]
[아 그래?]
[내가 양식 쪽이라서.]
[한식도 좋아하기는 해요.]
[그렇구나...]
[왜요?]
[한식 좋아하면 배워서 해주려고.]
[굳이 그래 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미안해서 그래.]
[여섯 달 정도는 격일로 네 전속 요리사처럼 일할까도 생각하고 있어.]
[아니 일 년.]
[괜찮아요.]
[진짜 안 그러셔도 돼요.]
[내가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그러시면 제가 미안해질 거 같아요.]
[미안하면 안 되는데.]
[너무 부담 가지지 마.]
[부담돼요. 일도 많으실 건데 저한테 시간 쓰시면 안 되잖아요.]
[아냐. 다 내가 계산해서 격일로 관리만 하면 되겠다 하고 너한테 얘기한 거야.]
[그럼 고생이 세 배는 느는 거 아니에요? 보통이면 이틀은 걸리는 일을 하루 만에 다 하는 거로 축약하고, 제 전속 요리사 일까지 하시는 거면.]
[그러다 쓰러지시면 오히려 제가 성연이한테서 미움받고 사람들한테서 욕만 먹을 거예요.]
[마음은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그냥 식사 대접만 딱 한 번 받을게요. 그거면 충분해요.]
화면에 쓰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일 분 삼십 초 정도가 지나고 나서 답장이 왔다.
[너 정말 착하구나.]
[아니에요.]
[미안해.]
[갑자기 뭐가 미안하다고 하시다는 거예요.]
[내가 잘못했던 거. 그거 생각나서.]
[넌 착한 애인데.]
[잘못했어.]
[저 별로 안 착해요.]
[아니야. 내가 알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뭐라 답장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강예린의 문자가 이어졌다.
[너 연예인 한다고 했잖아.]
[네.]
[나중에 학교 폭력 관련으로 논란 생기고 하면 내가 전면에 나서서 인터뷰하고, 안 커지게 최대한 막을게.]
[감사해요.]
[그리고 너 만약에 요리 방송 같은 거 할 생각 있으면 그때 내가 같이 출연할게.]
[요리 방송이요?]
[응.]
[너 요리 잘한다고 해서.]
[어느 분이요?]
[강예린.]
[내 여동생.]
[네.]
[네가 봉사활동 다니던 유치원 원장 선생님 있잖아.]
[알아요.]
[요리 방송할 생각 있니?]
[하면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럼 나중에 진짜 생각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줘.]
[혹시 정기적인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거예요?]
[응.]
[근데 어머님 여태 방송 같은 거 안 나오시지 않았어요?]
[그렇긴 하지.]
[그럼 좀 부담스러우시지 않으세요?]
[글쎄. 부담 같은 건 안 느낄걸.]
[방송 같은 거 제의 들어오면 그냥 일만으로 성공하고 유명해지는 모습 보여주려고 거절한 거지 부담 같은 거 때문에 거절하지는 않아서.]
[그럼 만약에 저랑 요리 방송하신다고 했을 때, 그 프로그램이 너무 잘 돼서 막 일 년 넘게 지속되고 그러면 어떡해요?]
[계속하는 거지.]
[그래도 괜찮으세요?]
[주에 한 번 정도야 시간 낼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진심으로 고려하는 것 같았다.
[근데 저 진짜 안 그래 주셔도 돼요.]
[아냐. 내가 괜찮아.]
[혹시 네가 안 괜찮거나 한 거니?]
[네. 조금요.]
[그럼 문제네.]
[근데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나 꽤 유명하고 여태 한 번도 한 적 없어서 꽤 가치 있을 거야.]
여기에서 거절하면 또 말을 되풀이하게 될 것만 같았다.
[알겠어요. 감사해요.]
[응.]
[외투는 내일 성연이 통해서 줄까?]
[네. 근데 어머님이 저랑 다시 사이좋게 하려고 하는 거 성연이는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
[반응은 어때요?]
[성연이도 바라는 거 같아.]
[그럼 다행이네요.]
[고마워.]
[뭐가요?]
[성연이랑 화해해줄 마음 먹어줘서.]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납작 엎드리는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강성연을 정말 끔찍이도 아끼는 모양이었다.
[언제 한 번 밥 먹으러 와.]
[집이든 어디든.]
[먼저 문자만 넣어주면 준비해놓을게.]
[네. 감사해요.]
[내가 더 고마워.]
[시간 보니까 내가 너무 오래 붙잡은 거 같네.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응. 필요할 때 문자해 줘.]
[네.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잘자 온유야.]
[네 (웃는 이모티콘)(웃는 이모티콘)]
화면에 쓰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이십여 초가 지나고 또 문자가 왔다.
[(콧물 방울을 만든 채 잠자는 이모티콘)(콧물 방울을 만든 채 잠자는 이모티콘)(콧물 방울을 만든 채 잠자는 이모티콘)]
이걸 이모티콘으로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문득 고양이 같은 얼굴의 강예린이 양손으로 폰을 붙잡은 채 어떻게 답장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키패드로 뭐라 쓰다가 엄지로 이모티콘 창을 누르고, 자는 이모티콘을 찾아 세 번 눌러 전송하는 강예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 상상하니 귀여웠다. 친구 어머니를 떠올리고서 귀엽다고 느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귀엽다고 생각하면 안 될 거였다. 그냥 내가 미친놈인 거일 터였다.
뒤로 가기를 누르고 백지수를 찾아 눌렀다. 문자를 보내온 게 조금 있었다.
[너 여기 있어야 됐는데]
[심지어 너 찾는 사람도 있었어]
[그냥 오지 그랬냐]
[지금이라도 올래?]
[이 새끼 문자 안 보네]
[전화도 안 받아?]
[이따 너 뒤졌다.]
[진짜 문자 좆도 안 보네]
[뒤지고 싶냐?]
[존나 너 나랑 연애하는 거는 맞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전화를 했다니. 바로 최근 기록을 확인했다. 백지수한테서 전화가 온 내역이 둘 있었다. 진동 모드로 해서 못 느꼈던 듯했다. 섬뜩했다. 뱃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이따 백지수가 별장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없으면 백지수는 분명 돌아버릴 거였다. 그리되면 백지수가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당장은 어떻게든 변명해야 했다.
[죄송해요]
[제가 외조부모님 좀 찾아뵙느라 못 봤어요]
읽었다는 표시가 안 떴다. 버스킹해서인가? 빨리 봤으면 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숫자가 사라졌다. 이윽고 쓰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
[인증샷 내놔]
[제가 지금 택시 타고 있어서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gps 정보 보낼게요]
맵 어플을 켜 현 위치를 캡처하고 문자 앱을 켰다.
[빨리 보내라]
바로 전송했다.
[어]
[보셨죠?]
[내가 어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근데 뭐 어쩌라고]
[어쩌라니요...?]
[네가 외조부모님 계시는 지방으로 내려가서 진짜 외조부모님을 뵀는지 다른 여자랑 떡을 쳤는지는 내가 모르잖아]
[저 진짜 뵀어요]
[외조부모님 번호나 내놔]
[전화하시려고요?]
[이따가 하게]
[네]
[두 분 다 내놔]
[알겠어요]
곧장 전송했다.
[근데 왜 이 시간에 내려갔는데]
[뵙고 싶어서요]
[지금 말장난하냐?]
[상담 좀 받고 싶어서 내려갔어요]
[무슨 상담]
[여자친구가 많아서...]
[개 미친놈]
[죄송해요]
[병신]
[잘못했어요]
[ㅉ]
[그래서 별장 언제 도착할 거 같은데]
[아홉 시는 넘어야 할 거 같아요]
[빨리 쳐 올라와라]
[내일 학교도 가는데 미친놈이]
[넵]
[뒤질 준비나 하고 있어]
어쩌면 별장에 도착했을 때 현관에 백도식이랑 백도영이 함께 서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번에 나랑 별 사이가 아니라고 말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럴 리는 없을 건데. 괜히 무서웠다.
[답장.]
[봐주세요]
[ㅈㄲ]
[죄송해요]
[죄송ㅇㅈㄹ]
[ㅈㄴ 처신 잘해라]
[네]
[연락 또 씹으면 그땐 진짜 뒤져]
[조심할게요]
[그래]
[감사합니다]
[어]
일단은 넘어간 것 같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윤가영이랑 했다는 걸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예상이 도저히 안 됐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직 완전히 짙어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크지 않은 산의 녹음이 실루엣처럼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