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왜 그래요 (16)
* * *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윤가영이 허리를 앞으로 숙여 컵을 놓고 신발을 벗었다. 뭔가 넘어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두 손으로 윤가영의 허리를 잡았다. 뭔가 후배위 자세를 취한 느낌이었다.
“온유야...”
윤가영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부끄러웠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요.”
“무슨 소리야...”
“...”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자지에 피가 몰릴 것만 같았다. 윤가영의 허리를 잡은 두 손을 놓았다. 신발을 다 벗은 윤가영이 왼손으로 컵을 잡고 몸을 세워 현관 바닥에 발을 디뎠다. 나도 뒤늦게 신발을 벗고 문을 잠갔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 모르게 기분이 야릇했다. 윤가영의 오른편에 서서 왼팔로 윤가영의 허리를 감았다. 윤가영이 오른팔로 내 등 뒤를 감아 내 허리를 잡았다. 천천히 걸었다. 숨소리만 들렸다. 코로 윤가영의 샴푸 향이 맡아졌다. 윤가영을 거실로 끌고 가 소파 앞에 섰다.
“앉아요.”
“응...”
윤가영이 소파에 풀썩 앉고 두 손으로 컵을 잡은 채 나를 올려봤다.
“할 말 있어요?”
“... 아니... 근데 있긴 있지...”
픽 웃었다.
“있는 거예요 아님 없는 거예요? 하나만 해요.”
“있어...”
“그럼 해요.”
“... 미안해 온유야... 지금도 무리하게 찾아와서 또 피곤하게 해서 미안해...”
“끝이에요?”
“...”
윤가영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봤다. 흥, 하고 콧숨을 내쉬고 윤가영의 오른편에 앉았다.
“혼낸 거 아니에요.”
“... 진짜...?”
“네.”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러면 무슨 뜻이었는데...?”
“사실 혼낸 거 맞아요.”
“...”
윤가영이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어딘지 모르게 애교스러웠다. 그냥 생긴 게 그런 건가. 윤가영이 입술을 열었다.
“뭐야...”
“당신 축 늘어져서 당근 준 거예요.”
“...”
“술은 얼마나 마신 거예요?”
“... 되게 많이 마셨어... 토할 정도로...”
“그러고 밖에 나왔어요? 그 차림으로?”
“...”
윤가영이 고개를 숙여 자기 몸을 내려봤다. 윤가영의 시선에는 가슴이 전체 시야의 몇 퍼센트나 차지할까? 느닷없는 변태 같은 의문이었다.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나 옷차림 이상해...?”
“겉으로 보면 이상하지는 않죠. 예뻐요 오히려.”
“... 그럼 왜...?”
“상황 같은 게 안 맞는다 해야 하나. 일단 데이트하러 갈 때 입을 법한 옷이잖아요. 아무리 봐도 새아들 생각하면서 자위한 여자가 새아들한테 용서 구하러 갈 때 입기적당한 옷은 아니죠.”
윤가영이 눈을 밑으로 깔았다. 안 그래도 발그레한 윤가영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졌다.
“미안해...”
피식 웃었다.
“당신 어제 나한테 한 말은 기억하고 있어요?”
“무슨 말...?”
“그냥 저한테 들켰을 때 한 말들이요.”
“...”
“기억하나 봐요?”
“몰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윤가영은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나를 몇 번이고 곤란하게 했는데 조금 정도는 골려줘도 될 거였다.
“술 마시고 자위했어요?”
“... 그런 이상한 질문 하지 마...”
“취할 정도로 술 마시면 자위한다면서요.”
“...”
윤가영이 소파 왼편에 핫초코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꿈에 또 나 나왔어요?”
“... 그만해애...”
윤가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조금만 더 하면 꼭 울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한 듯했다.
“그만할게요.”
“... 고마워...”
반응이 약간 느린 느낌이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가만히 보니 윤가영의 몸이 양옆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 지금 졸려요?”
“... 조금...”
“독하게 취한 상태에서 졸음도 오는데 용케 정신은 차리고 있네요.”
“... 너 나 지금 혼내는 거지...”
“아뇨.”
“...”
“원래 졸렸던 거예요?”
“아니... 안에 들어오고 따뜻해지면서 편해지니까 갑자기 잠 와...”
“... 당신 지금 나한테 애교 부려요?”
“응...?”
윤가영이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왜...?”
“당신 말하는 거 들으면 뭔가 애교 부리는 느낌 들어요.”
“아닌데...”
“... 그래요.”
“진짜 아니야...”
“알겠어요. 그 옆에 놓은 핫초코나 다 마셔요 일단.”
“응...”
운가영이 왼손으로 컵을 잡고 쪼옥쪼옥 빨아들였다. 꿈에서 내 자지를 물고 정액을 삼켰던 윤가영의 얼굴이 겹쳐졌다. 자지가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 났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주방 쪽을 봤다.
“당신 점심은 먹었어요?”
“브런치로 먹었어...”
“네. 올라가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면서 빨대를 입에서 뺐다.
“어디로...?”
“침대에 누워야죠.”
“같이...?”
“미쳤어요?”
“... 미안...”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짜증스럽게도 침대에 같이 눕는다는 것을 상상하자마자 자지가 반응해서 바지를 툭툭 건드렸다. 윤가영이 빨대를 물고 핫초코를 흡입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니 나보다는 내 하반신을 보고 있었다. 윤가영이 계속 보기 민망했는지 시선을 양옆으로 돌리며 집 내부를 훑었다. 내가 너무 과잉 의식해서 윤가영이 내 자지만 보고 있었다고 착각한 건가. 윤가영은 원래 별생각 없이 멍하니 있으면서 별장을 둘러보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윤가영이 핫초코를 다 마셨는지 호오옵, 하고 공기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윤가영이 물고 있던 빨대를 놓아주고 침을 삼켰다.
“그거 테이블에 놓고 올라가요. 제가 치울 테니까.”
“으응... 고마워...”
“네.”
윤가영이 좌식 테이블에 컵을 놓고 두 손으로 소파를 짚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가영이 바로 몸을 휘청였다. 반사적으로 두 손을 뻗어 윤가영의 양 겨드랑이를 받쳤다. 윤가영이 나를 바라봤다.
“고마워...”
윤가영을 똑바로 세우고 두 손을 놓았다.
“당신 걸을 수는 있어요?”
윤가영이 멋쩍게 히 웃고 소파에 도로 풀썩 앉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웃을 일 아니에요.”
윤가영이 입술을 입 안에 넣고 이로 깨물었다. 웃음이 나왔다.
“뭐해요?”
“웃으면 안 되니까...”
“...”
한숨 쉬었다.
“한숨...”
“한숨 뭐요?”
“쉬지 마...”
“왜요. 내가 한숨 쉬고 싶은데.”
“... 나 너 한숨 쉬는 거 싫어...”
“내가 당신 싫은 거 하면 안 되고 당신 좋은 거 해줘야 돼요? 당신 남편도 아닌데?”
“... 미안해...”
피식 웃었다.
“뭐만 하면 미안하다고 그래요.”
“그것 말고 할 말이 없으니까...”
“죄송합니다도 있잖아요.”
“근데 너한테 하기에는 이상하잖아...”
“난 당신한테 반말한 적 있는데. 당신이 나한테 존댓말 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지 않아요?”
“... 그거 농담이야?”
“네. 재미없었던 거 같네요. 죄송해요.”
윤가영이 입꼬리를 약간 올렸다.
“아냐 내가 유머 감각이 없어서 못 웃었어...”
픽 웃었다.
“됐어요. 어떻게 올라갈지나 생각해봐요.”
“... 음...”
“그냥 여기까지 왔던 것처럼 부축받겠다고 바로 말 못해요?”
“...”
“뭐 어떡하려고요. 말 좀 해봐요.”
“나 못 걷겠어...”
“그럼 어떡해요.”
“나 안아 들어서 옮겨줄 수 있어...?”
“당신 애예요?”
“... 그럼 소파에서 잘게...”
“안 돼요.”
“왜...?”
“저 1층에서 있을 건데 당신 있으면 신경 쓰여서 안 돼요.”
“...”
“여태 잘 부축 받았는데 지금은 뭐가 문제여서 못 받는데요?”
“... 너 왜 자꾸 나 꾸짖어...”
“이상하니까 그러죠.”
“... 나 올 때도 똑바로 못 걸었잖아... 지금은 가만히 서서 균형도 못 잡는 수준인데, 계단 밟으면 넘어질지도 모르고... 근데 네 부축 받고 있다가 그러면 너도 다칠 수 있으니까... 그런 일 없게, 부축 말고 네가 나 안아주고 가면 어떤가 싶어서 얘기한 거야...”
“균형도 못 잡을 정도인 사람치고 말은 되게 조리 있게 하는 거 같은데요.”
윤가영이 욱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윤가영이 말을 다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진짜 뭐요?”
“나빴어...”
웃음이 나왔다.
“안아 들어서 옮겨줄게요.”
“정말...?”
“거짓말이에요.”
“...”
윤가영이 소파에 드러눕고 눈을 감았다. 픽웃고 윤가영 앞으로 다가갔다.
“진짜 옮겨줄게요.”
“거짓말이잖아...”
“아니에요. 당신 약간 요령 부리고 그런 느낌이라서 놀리는 거로 대신 값 치른 거예요.”
“...”
윤가영이 말없이 두 팔을 벌리고 앞으로 뻗었다. 안아 들어달라고 하는 건가. 왼무릎을 꿇고 두 팔을 윤가영의 무릎과 등 뒤에 넣었다. 윤가영이 눈을 뜨고 두 팔을 내 목 뒤에 감았다.
“꽉 잡았어요?”
“손깍지 꼈어...”
“네.”
천천히 일어났다. 뒤돌아 빠르게 걸어서 계단을 밟았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다 시선을 돌려 집 안을 살피기를 반복했다. 2층에 가 오른손으로 백지수 방 문손잡이를 잡고 연 다음 왼발로 밀었다. 윤가영을 침대에 눕혔다. 윤가영이 내 목을 감은 두 팔을 놓지 않았다.
“옆에 있을 거야...?”
“저 놓고 말해요.”
윤가영이 말없이 두 팔을 풀어줬다. 상체를 세웠다.
“나가줄게요.”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나갈 거예요. 애초에 1층에 있겠다 했잖아요.”
“...”
“자요. 술 깨면 나갈 준비하고요.”
“알겠어...”
윤가영이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윤가영이 가디건을 벗고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내려놓았다. 끈 민소매만 남아서 윤가영의 가슴이 특히 부각되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민망스러워서 바로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었다.
“온유야...”
뒤돌아봤다. 윤가영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네?”
“나 아주 간단하게만 씻음 안 돼...?”
“뭐 옷 갈아입어야 돼요?”
“그건 아니고...”
“씻어요. 뭘 그런 걸 허락받아요.”
“응...”
윤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가영의 몸이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휘청였다. 왠지 그대로 있으면 윤가영이 씻는 것도 도와달라는 미친 소리를 할 것만 같았다. 상식적으로 절대 그럴 리 없었지만 불길했다. 바로 방을 나서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밟아 1층으로 내려갔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타는 느낌이었다.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이온 음료를 꺼내고 잔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속에 일어난 불길은 해소되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지. 갈증 같기는 한데. 이해가 안 됐다. 난 뭘 바라는 걸까. 설마 윤가영을 원하는 건가? 체온이 급상승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술 생각이 간절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