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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50화 (250/438)

〈 250화 〉 왜 그래요 (15)

* * *

별장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주방으로 가 따뜻한 물을 마셨다. 거실 쇼파에 앉고 폰을 켜 메시지 앱을 살폈다. 맨 위에 윤가영이 보낸 게 있었다. 또 뭔 말을 보냈을까. 그냥 보이는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에 오타가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눌러봤다.

[온유야 진자 미안해]

[용서해즈라]

[아니 용서까지는 안 헤주ㅕ도 되니까 애기만 해주라]

[나 지금 카페애 이썽]

애기만 해달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술을 마신 게 분명했다. 무슨 차이고 난 전여친도 아니고 술에 취해서 이런 문자를 보낼까. 어디 카페인지도 안 쓴 건 또 뭐고. 한숨이 나왔다. 카페에서 무슨 민폐를 끼치고 있을지 두려웠다. 전화 걸었다. 한숨을 두 번 쉬고 나서야 전화가 연결 됐다.

“어딨어요.”

ㅡ나, 여기가, ‘여늬’라는데...?

별장 근처 카페였다. 아니 내가 이쪽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을까.

“당신 나 스토킹해요?”

ㅡ아냐...

“하아... 거기서 기다려요.”

ㅡ으응...

외투를 걸치고 뛰어서 현관에 가 신발을 신었다.

ㅡ근데 온유야...

폰을 위로 들었다.

“네.”

ㅡ얘기 좀 계속해주면 안 돼...?

“왜요?”

우산을 챙기고 밖에 나와 문을 잠갔다.

ㅡ사람 있어서...

사람이 있다는 건 뭔 소리일까. 우산을 펼치고 일단 빠르게 뛰었다.

“그럼 아무말이나 해요.”

ㅡ으응... 와줘서 고마워...

헛웃음이 나왔다. 짜증이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화가 안 났다.

“네. 근데 사람 있다 한 거 진짜 뭐예요?”

ㅡ어...

속삭이는 소리였다.

ㅡ남자...

남자가 있다는 건 뭐지.

“남자가 옆에서 껄떡댄다고요?”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ㅡ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느낌이 조금 이상했어...

“당신이 이상하게 있으니까 그랬겠죠.”

ㅡ내가 왜...?

“비 오는 날 여자가 만취해서 카페에 혼자 있는 게 안 이상한 거 같아요?”

ㅡ으음...

멀리서 카페 건물이 보였다.

“그래서 카페 안 어디에 있어요.”

ㅡ그냥 입구 바로 옆에 혼자 앉을 수 있는 데에 앉았어...

“알겠어요. 끊을게요.”

ㅡ응...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뛰고 우산을 접어 오른팔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창가 오른쪽 자리에 앉아 있는 윤가영과 눈을 마주쳤다. 윤가영은 위에는 아이보리 색 끈 민소매에 가디건을 걸치고 아래에는 청바지를 입고 신발로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비바람을 맞아서인지 가디건의 부분부분, 그리고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서 처량해 보였다. 옷차림과 생김새, 그리고 술에 취해 풍기는 청승맞은 분위기 탓에 중학교 다니는 딸이 있는 엄마라고 연상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여러모로나잇값을 못 하는 여자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얼굴이 발그레한 윤가영이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온유야...”

쓸데없이 애틋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 사이가 어떻게 보일까. 팽 당한 줄로 알았던 여자가 곧바로 달려온 남자친구를 보고 감격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보일까. 그게 아니면 여자가 쓰레기 남자친구를 보고 사랑 탓에 다시 말려드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보일까. 뭐가 됐건 민망한 생각일 것은 분명했다. 낯부끄러웠다. 체온이 상승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편으로 다가가서 말없이 윤가영의 오른팔을 내 목 뒤로 올리고 왼팔로 등을 감쌌다. 윤가영의 살 내음과 샴푸 향이 함께 풍겨왔다. 아찔했다. 눈을 질끈 감고 윤가영을 일으켜 세운 다음 다시 눈을 떴다. 윤가영이 오른팔을 내 등 뒤로 감싸 내 오른 옆구리를 꽉 잡고 왼손을 뻗어서 테이크아웃 컵을 잡았다. 동작이 너무 느렸다. 아니 왜 이러는 걸까. 답답했다.

“빨리 나와요.”

“알겠어...”

윤가영이 발을 아장아장 내디뎠다. 하도 비틀거려서 내가 윤가영의 체중의 절반은 견뎌주는 것 같았다. 술을 얼마나 마셨으면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었을까. 경찰서로 잡혀가지 않은 게 신기했다. 오른손등으로 문을 열고 밖에 나가서 우산을 펼쳤다. 윤가영이 밖에 나가고 나서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뒤를 봤다.

“나 우산...”

한숨이 나왔다.

“안에 우산 있어요?”

“응...”

“버려요. 내가 사줄게요. 걸어요.”

“응...”

윤가영의 보폭에 맞춰서 느리게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집에 보내야 할 텐데 택시를 불러야 되나.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해야 하지?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윤가영 씨.”

“응...?”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왜...?”

“당신 나한테 잘못 안 저지르겠다고 안 했어요?”

“...”

윤가영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봤다.

“미안...”

“왜 또 실수하는데요?”

“... 미안해...”

한숨이 나왔다. 윤가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나 이 근처에 있는 거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인별이나 막 찾아보다가...”

“sns로 뭘 어떻게 안다는 거예요.”

“... 너일주일인가 전에 유치원에서 봉사활동 했다는 거 알아 가지고... 대충 그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다가...”

“그래서요.”

“사과해야 되는데, 히끅, 그 생각하고... 어떡할까, 어디 있을까 고민하고... 히꾹...근데 또 사과하러 간다고 생각하니까,못할 거 같아서... 히끅, 제정신으로는 안 될 거 같고, 가슴이 답답해서... 히꾹... 술 마시고 무작정, 유치원으로... 히끅...”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없었으면 어떡했으려고. 진짜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윤가영이 히끅, 하고 딸꾹질했다. 윤가영의 왼손에 들린 컵 뚜껑이 들썩였다. 윤가영이 딸꾹질할 때마다 그랬다.왠지 불길했다. 컵을 뺏어야 하나 싶었는데 손이 모자라서 할 수가 없었다.

“유치원으로 뭐요.”

“그냥 무작정 유치원으로 와봤다가... 히끅... 되게 예쁜 여자 한 명, 문 앞에 있는 거 봤어... 히꾹...”

강예린 말하는 건가?

“그래서요.”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누구야...?”

헛웃음이 나왔다.

“왜 궁금한데요 그게?”

“네여자친구야...? 히꾹...”

“친구 어머님이에요.”

“아...”

윤가영이 입이 벌어진 채로 마냥 나를 보다가 딸꾹질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왜요?”

“히끅...거짓말 안 해도 돼... 네 나이에, 히끅... 여자친구 있을 수 있으니까...”

“아니라고요.”

“히꾹... 정말...?”

“네.”

내가 왜 이런 거를 윤가영한테 해명해야 하는 거지. 어이없었다.

“그분 봐서 뭐했는데요?”

“으응...? 히끅...”

윤가영의 목이 발개졌다.

“어...”

“말해요.”

“히꾹... 도망쳤어...”

“왜요?”

“왠진 나도 모르겠어... 히끅... 그냥, 그냥 뛰었어...”

윤가영은 모든 이유가 그냥이었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게 그리 많은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조용히 한숨 쉬었다. 발을 계속 뻗었다. 어느새 백지수 별장이 눈에 보였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당신 돌아갈 수는 있어요?”

“응...? 당연하지... 폰이랑 지갑 있으니까...”

윤가영이 오른팔을 내 몸에서 뗐다. 나만 윤가영을 안기 뭐해서 나도 놓아줬다. 그러니 윤가영의 자세가 불안정해졌다. 윤가영이 오른손을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가만두기 너무 불안해서 뒤에서 왼팔로 윤가영의 배를 끌어안았다. 오른 주머니에서 지갑이랑 핸드폰을 꺼낸 윤가영이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뭐, 뭐해...?”

“받쳐주는 거예요. 당신 넘어질까 봐.”

“... 고마워...”

“폰 화면 켜봐요.”

“어...? 응...”

윤가영이 오른손 엄지를 꼼지락거려서 화면을 켰다. 배터리가 절반은 채워져 있었다.

“확인했어요.”

“응...”

윤가영이 폰이랑 지갑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갈 생각 없어요?”

“어...? 아...”

“당신 딸꾹질은 또 왜 안 해요?”

“어...? 히끅...”

헛웃음이 터졌다.

“선택적 딸꾹질이에요?”

“아니 이게, 히꾹... 네가 나 안아줘서 순간 놀라 가지구... 히끅... 멈췄다가, 다시 또 놀라서... 히꾹...”

“됐어요.”

“응...”

“당신 집 갈 마음 없어요? 폰 꺼내서 택시 불러야 되는 거 아니에요?”

“... 히꾹...”

윤가영이 가만히 바닥만 내려봤다. 콧숨을 내쉬었다. 윤가영이 간지러웠는지 목을 부르르 떨었다. 내 콧김이 센 건가 아니면 윤가영의 감도가 좋은 건가. 분간이 잘 안 됐다.

“답 좀 해요.”

“나...”

윤가영이 또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우산의 살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흘렸다. 고개를 다시 내리고 입을 열었다.

“일단 걸어요.”

“응...”

왼팔로 계속 윤가영을 안은 상태로 윤가영의 오른편에 섰다. 윤가영이 오른팔을 내 뒤로 감아 내 옆구리를 붙잡았다. 윤가영이 굼벵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면서 꾸준히 히꾹, 하고 딸꾹질했다. 뭐라 한소리 하고 싶었다.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꾹 참았다. 윤가영이 컵에 꽂힌 빨대를 물고 빨아들이다가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하더니 기침을 해댔다.

“사레들렸어요?”

윤가영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몸을 숙여 커흑, 크흑, 하고 기침만 했다. 이 사람이 택시에서 내려서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는 할 수는 있을까? 긍정적인 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보살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해 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결국에는 내가 해야 할 거였다. 진짜 윤가영은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냥 들어와서 술 좀 깨고 나가요. 잠이라도 자든가 해서.”

윤가영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면서 나를 올려봤다.

“정말...? 히꾹...”

“네.”

“진짜 그래도 돼...?”

“그러라고 말한 거잖아요.”

“히끅... 고마워... 근데, 네 친구네면 또 그렇지 않아...? 히꾹...”

“친구 별장 같은 데라 평소에 저만 있고 아무도 없어요.”

별장을 향해 걸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제가 친구네에 있음 못 들어가겠다고 생각했으면 왜 찾아왔는데요?”

“... 지금 생각했어...”

헛웃음이 나왔다.

“대단하네요.”

“미안...”

“됐어요.”

“...”

윤가영이 말없이 빨대를 물어 한 모금 빨아 마셨다. 술이랑 커피가 상극이랬는데.

“커피 아니죠?”

“응... 핫초코야...”

“네.”

윤가영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순간 가슴이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했다. 괜히 부끄러웠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봤다. 윤가영은 왜 웃었을까. 조용히 한숨 쉬었다.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윤가영이 바로 입을 열었다.

“왜 한숨이야...?”

“당신 때문이죠.”

“으응... 미안...”

“됐다니까요.”

“... 응...”

윤가영이 고개를 숙여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윤가영의 긴 속눈썹이랑 커다란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쪼옥쪼옥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급히 올렸다. 꿈속에서 윤가영이 내 정액을 꿀꺽꿀꺽 마셔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성욕과 죄악감 따위의 것이 뭉쳤다. 가슴이 타는 듯했다. 마음속에 윤가영이 들어와 난동이라도 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끔찍하게 심란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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