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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49화 (249/438)

〈 249화 〉 왜 그래요 (14)

* * *

“온유야!”

강성연 어머니, 강예린의 목소리였다. 뒤에서 물웅덩이를 밟아 찰박거리는 소리가 마구 들렸다.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내가 밖에 나왔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강예린이 쫓아오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바닥을 보면서 걷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 최대한 웅덩이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려 했지만, 속도를 높인 탓에 발뒤꿈치로 웅덩이를 밟는다거나 하여 물이 튀었다. 바지 밑단이 젖어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잠깐만!”

소리가 큰 게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듯했다. 떼어놓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습해서 쾌하지 못한데 더 젖기는 싫었다. 뒤돌아봤다. 왼손에 펼치지 않은 우산을 들고 오른손에는 케이크를 들고 있는 강예린이 숨을 헐떡이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강예린의 상체를 가린 흰 와이셔츠는 함빡 젖어버려서 강예린의 몸에 착 달라붙어 복근과 이수아 정도 되는 가슴을 받친 검은 브래지어를 드러냈다. 그 밑으로 하체를 조여드는 블랙 스키니진이 강예린의 커다란 골반과 허벅지의 윤곽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바지 밑단으로 물방울이 맺혀 강예린의 하얀 스니커즈 위로 똑똑 떨어졌다. 비가 오는 탓에 입어도 입은 보람이 없는 옷들이었다. 자지가 눈치 없이 서버렸다. 짜증 났다.

“하아...”

강예린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강예린이 천천히 다가왔다. 가만히 서서 강예린을 기다릴까 하다가 마주 다가섰다. 우산으로 강예린의 위를 가려줬다. 강예린이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 무슨 할 말이 있길래 찾아왔어요.”

“그냥...”

강예린이 몸을 바르르 떨면서 작게 한숨 쉬었다. 입김이 강예린의 얼굴을 스치면서 위로 올라갔다.

“많이 추워요?”

“...”

강예린이 나를 쳐다보지 않고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 외투는 어디다 놨어요.”

“유치원에 벗어놨는데, 너 잡으려고 급히 나오느라...”

“...”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강예린이랑 나를 흘겨보고 지나갔다. 반대편 도로에서 꽤 노골적으로 강예린이랑 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돌리는 남자도 있었다. 화났다. 말없이 검은 외투를 벗어 강예린의 등 뒤로 덮었다.

“일단 써요.”

강예린이 말없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추워서 그런지 얼굴이 발그레했다.

“고마워...”

강예린이 왼손에 든 우산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옷을 여며 가슴 앞을 덮었다. 크기가 커서 외투가 강예린의 엉덩이까지 덮었다.

“팔까지 넣어요.”

“아냐...”

“빨리요.”

“...”

강예린이 왼팔을 먼저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케이크를 반대편에 들고 오른팔을 넣으려 했다. 반대쪽을 잡아줘서 넣기 쉽게 해줬다. 강예린이 두 팔을 외투 안에 넣고 나를 올려봤다.

“할 말이 뭔데요.”

“... 부탁 하나만 하려고...”

“...”

강예린이 왼손에 든 케이크를 양손으로 잡아서 내게 건넸다.

“우리 성연이 좀 용서해줄 수 있어...?”

“...”

강예린의 눈꼬리가 처졌다. 강예린의 고양이 같은 날카로운 인상이 무너져내리고 그 위로 암울함과 미안함이 덧씌워졌다.

“미안해...”

“...”

“성연이가, 하아... 학교에 가고 나면 많이 힘들어해... 가는 것도 힘들어 하고... 얼굴이 안 좋아... 애들이 다, 성연이 보면 피하나 봐...”

“...”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강예린이 무릎을 꿇었다. 다리 사이에 있던 강예린의 우산이 바닥에 떨어졌다. 강예린이 오른손에 케이크를 든 채 왼손으로 내 오른 허벅지 옆을 잡았다. 강예린이 내 자지가 불거진 쪽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끄러웠다. 강예린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창피해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 용서해줘... 성연이 좀 봐줘...”

“일어나요.”

“... 알겠어...”

강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강예린이 무릎 꿇은 탓에 강예린의 바지 무릎 쪽 면과 내 외투 밑부분이 젖었다. 강예린이 왼손으로 외투 밑단을 잡고 끌어모아서 물기를 짜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강예린이 나를 올려봤다.

“더렵혀서 미안해...”

“...”

“뭐든지, 온유 네가 원하는 건 정말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우리 성연이 좀 용서해줘...”

“...”

가슴으로 먹먹함이 차올랐다. 강예린의 얼굴에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강예린의 전적인 지지를 받는 강성연이 부러웠다. 강예린이 간절한 눈빛을 하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제발... 내일 학교 가면, 보기도 싫겠지만, 성연이한테 먼저 다가가서 화해하자고 손 좀 뻗어줘...”

“...”

목이 멨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강예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우니...?”

“...”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서로 나오겠다고 머릿속에서 다투는 느낌이었다. 한숨을 쉬었다. 으흐윽, 하고 연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예린이 서글픈 눈을 하고 케이크를 왼손으로 들고는 오른손으로 내 가슴을 쓸었다.미안해...뭐가 미안한데요... 강예린이 답하지 않았다. 멀리 도로에서 차 소리랑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만 들렸다.안 미안한 거죠...?아니야... 호흡이 도저히 가다듬어지지 않았다.강성연 걔, 걔가 우리 엄마 장례식도 안 온 거 알아요...?강예린의 두 눈이 더욱 처졌다. 평소의 고양이 눈이 지금은 강아지 눈으로 바뀌었다.나는, 저는 걔랑 싸우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갔는데... 걔는 그때도 저 쓰레기로 매도하고, 인생 망해보라고 몰아붙였는데... 제가 또 사과하고 화해해야 돼요...?강예린이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도로 다물기를 반복했다. 강예린이 내 가슴팍에 오른손을 댔다.미안해... 목이 멨다. 침을 삼켰다.우리 엄마 장례식도 안 온 애인데... 걔가 저랑 화해는 하고 싶대요...? 강예린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하고 싶을 거야... 겨우 하는 말이 추측이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럼 왜 그랬는데요!강예린의 눈빛에 측은함이 물들었다.미안해...머리가 뜨거워졌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오른손에 든 우산을 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릎을 꿇었다. 찰박이는 소리가 들리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미안해, 라는 강예린의 말만이 귀에 맴돌았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와 온몸을 스쳤다. 추웠다. 등에 닿는 가녀린 손만이 작은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왜 강예린이 나를 위로하는 걸까.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고 노력한 사람인데. 나는 왜 강예린에게서 위안을 찾는 걸까.

“미안해 온유야...”

“...”

“성연이가 어머님 장례식에 못 간 줄은 몰랐어...”

“안 온 거예요...”

“... 미안... 성연이가 안 간 줄은 몰랐어... 장례식이 있다는 얘기도 안 해줘서... 나라도 갔어야 했는데... 미안해...”

“...”

“아무것도 모르고, 성연이 말만 듣고서 너한테만 죄를 씌우고 값을 물려서 미안해...”

“...”

“다 내 잘못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변호사한테 다 맡기고... 내가 잘못해서... 성연이가 그렇게... 못 되게 군 거야...”

“...”

“다 내 잘못이니까... 죗값은 내가 다 치를게... 그러니까, 성연이는 용서해줘...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까...”

“...”

“제발...”

“... 제가 당신한테 얻을 게 뭐가 있는데요.”

“... 네가 원하는 건 다 할게...”

“...”

“원하기만 하면... 뭐든 말만 하면... 내 몸이라도 줄 테니까...”

가슴팍을 세게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심장이 크게 쿵쾅, 하고 뛰었다.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 강예린을 노려봤다. 강예린이 어깨를 흠칫 들썩이면서 내 등을 쓰다듬던 왼손을 뗐다.

“개소리하지 마요.”

“... 미안...”

강예린이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새어 나오다가 흐윽,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나왔다. 침을 삼켰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 오른쪽을 흘겨봤다. 강예린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케이크는 뭐예요? 저 놀리려고 가져온 거예요?”

“아냐...”

“그럼, 왜 가져 왔는데요.”

“... 내가 사과를 잘 못 해서... 내가 시간 들여서 만든 거로 미안함을 대신 표현하려 한 건데... 미안해... 케이크 말고 다른 거로 만들걸... 생각이 짧았어...”

“... 됐어요.”

“고마워...”

“...”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예린이 재빨리 오른손으로 케이크를 들고 왼손으로 우산 손잡이를 잡아서 일어섰다. 강예린이 내 오른편에 가만히 선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바람이 불면서 빗방울들이 강예린과 나의 몸을 때렸다. 말없이 허리를 굽혀 오른손으로 강예린의 우산을 잡아 바닥에 탁탁 내려쳐서 빗물을 털어내고 강예린에게 건넸다. 강예린이 멋쩍게 웃었다.

“나 손이 부족한데...”

그러고는 강예린이 케이크를 든 오른손을 내밀었다.

“받아줄래?”

“...”

그냥 내 우산이나 주면 될 건데. 뭐라 말하기도 지쳤다. 오른손을 뻗어 받았다. 강예린이 넘겨주면서 서로의 손끝이 스쳤다. 강예린의 오른손이 순간 흠칫 떨렸다. 강예린이 나를 쳐다보면서 연한 분홍빛을 띤 입술을 열었다.

“고마워...”

“...”

왼손에 든 강예린의 우산을 건넸다. 강예린이 오른손으로 받고 왼손에 든 내 우산을 내게 건넸다. 왼손으로 받고 강예린의 머리 위를 덮어줬다.

“고마워...”

“얼마나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그냥 고마워서...”

강예린이 우리가 선 자리의 반대편으로 장우산을 펼쳤다. 빗방울이 팍 튀어나갔다. 강예린이 우산 안에 들어갔던 빗물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나를 올려봤다.

“이제 안 가려줘도 돼...”

“당신이 벗어나요.”

강예린이 당황스러운 듯 웃었다. 윤가영한테 말하던 버릇이 왜 지금 튀어나왔을까.

“당신이라니...”

“죄송해요. 제가 말버릇이 이상해서...”

“괜찮아.”

강예린이 우산을 봤다가 다시 나를 올려봤다.

“왜 안 나가요?”

“... 그냥...”

“그냥 아니잖아요.”

“... 지금 아니면 얘기 못 들을까 봐...”

“... 용서해줄게요.”

“정말...?”

“제가 허튼소리라도 하나요?”

“아니...”

강예린이 고개 저었다.

“아니야... 고마워...”

“...”

“혹시 시간 있으면,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성연이랑 같이 먹을래...?”

“... 생각해볼게요.”

강예린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래. 고마워.”

강예린이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빠르게 잠금을 풀고 전화 앱을 켰다. 강예린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왔다.

“왜요?”

“네 전화번호 좀 받으려고...”

“...”

강예린의 손에서 폰을 가져가서 빠르게 키패드를 치고 전화 걸었다. 오른 주머니에 있는 내 폰이 진동했다. 바로 통화를 끊었다.

“됐죠?”

“고마워...”

강예린이 외투를 벗으려 했다. 왼손으로 외투를 붙잡았다. 강예린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냥 입어요.”

“...”

“집에서 강성연한테 주고 내일 학교 갈 때 가져가라고 하든가 해요. 날씨도 춥고, 비 때문에 옷도 다 젖어서 민망하실 건데.”

“... 고마워...”

“네.”

“... 너 진짜 착하구나...”

“됐어요.”

“아냐... 진짜 고마워...”

“... 저 갈게요.”

“응...”

강예린이 오른쪽으로 걸어가서 자기 우산 아래로 가서 섰다. 강예린이 계속 나를 쳐다봤다. 할 말이 있는 거 같아서 가만히 기다렸다. 강예린이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외투는 성연이 통해서 내일 바로 줄게.”

“네.”

“아니면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져가도 돼. 저녁 말고 언제 오든 상관없어. 나 오늘 일 다 뺐으니까...”

“생각해볼게요.”

“응... 고마워.”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어 보였다.

“네. 이제 저 좀 놔주세요.”

“... 알겠어. 잘 가.”

“어머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고마워.”

“네.”

고개를 숙였다. 강예린이 나를 보다가 유치원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잠시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대로 발길을 옮기다가 뒤돌아봤다. 강예린도 뒤를 돌아보고 있어서 바로 눈이 마주쳤다. 괜히 뜨끔해서 앞을 봤다가 다시 뒤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예린이 멋쩍게 웃고 나를 보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다시 정면을 보며 걸어갔다.

한숨이 나왔다. 천천히 속도를 높여 달렸다. 바지 밑단에 물이 튀었다. 이미 젖은 거, 별 상관없었다.

지수가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고 돌아오면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배가 꺼졌을 때 케이크를 먹으면서 얘기를 꺼내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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