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 왜 그래요 (7)
* * *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저 들어갈게요.”
온유야, 하고 강혜린이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컴퓨터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는 하얀 박스티 차림의 강혜린이 오른팔을 책상에 대고 턱을 괸 채 나를 쳐다봤다.
“누나 옷 입은 거 되게 캐주얼하네요.”
“응. 너 일단 일로 와 봐.”
“네.”
일단 문을 닫고 가까이 갔다. 강혜린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편히 묻었다. 의자의 각도가 기울어지면서 강혜린의 전신이 보였다. 강혜린은 밑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박스티는 강혜린의 가슴이 너무 커서 그런가 배 쪽 면이 살과 맞닿아 있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공기가 그대로 배 쪽으로 비집고 들어와서 추울 것처럼 보였다. 티를 바지 안에 집어넣는다거나 해서 조치를 취해야 할 듯했다. 강혜린이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너무 목적지향적으로 접근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예요?”
“아니 너 봉사활동 끝나고 문자 한 번 안 하다가 처음 연락해서 딱 하는 말이 봉사활동 하러 가도 되냐는 게 뭐야.”
“연락하기는 하지 않았어요?”
“음. 내가 언니 얘기하려고 연락했던 거 빼고 없지 않아?”
“어...”
왠지 맞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강혜린이 피식 웃었다.
“아니. 미안하다고는 안 해도 돼.”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어요.”
강혜린이 아이처럼 킥킥 웃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너 진짜 엄청 능글맞은 거 같아.”
“아닐 거예요.”
“아니긴 무슨. 너 점심 먹고 가는 거랬지?”
“저 문자로 점심시간에 간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그치. 근데 그냥 먹고 가. 뭐 약속 있는 거 아니면.”
“약속 같은 건 없는데요...”
“그럼 먹고 가. 애들한테 음식 설명해줘야지.”
“네. 알겠어요.”
강혜린이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저번에 갔던 반으로 가. 너한테 삐친 강은 쌤 있을 거야.”
“삐쳤다뇨?”
강혜린이 히죽 웃었다.
“너 강은 쌤한테도 연락 한 번 안 했지.”
“... 왜요?”
“어젠가 강은 쌤이 약간 서운한 기색하고 와서 네가 나한테는 연락했냐고 물어본 적 있었거든.”
“... 그래도 봉사활동 끝난 날에 감사하다고는 문자 보냈던 거 같은데...”
“어? 진짜? 너 나한테는 그런 문자 안 보냈잖아?”
말문이 막혔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누나랑은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랬으니까...”
“좀 서운하다?”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강혜린이 눈웃음 지었다.
“어. 잘 달래줘.”
“알겠습니다.”
“말투 너무 딱딱한데?”
히 웃었다.
“그냥 해봤어요.”
“나 순간 너 거리 두는 줄 알고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고.”
“저 이제 애들 보러 갈게요.”
“응. 근데 너 기타 안 가져 온 거야?”
“네.”
“오. 이제는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아이들을 휘어잡으시겠다?”
웃었다.
“무슨 소리예요. 오바하지 마요.”
“오바라니. 너 언어 표현 과감하게 선택한다? 내가 열 살 많으니까 너보다는 밥그릇을 삼천 번은 더 비웠을 건데.”
“그럼 뭐 해요 몸은 제가 훨씬 더 큰데.”
강혜린이 아이같이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너 진짜 잘 받아친다.”
“고마워요.”
“됐어. 빨리 가. 봉사시간 날먹하면 안 되니까.”
“누나 날먹이란 말도 써요?”
“너 가만 보니까 자꾸 나 멕이려 한다?”
히 웃었다.
“장난이에요. 누나랑 있으면 저도 모르게 짓궂어지나 봐요, 애처럼.”
“왜 나랑 있으면 그러는데?”
“누나가 애 같아서요?”
“어쭈. 나보다 훨씬 어린 게 나를 애 취급하시겠다?”
“그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
“굳이 따진다고 하면, 맞먹는 거에서 제가 살짝 더 낮은 느낌?”
강혜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 그러면 진짜 혼난다?”
“어떻게 혼낼 건데요?”
“몰라. 어른이 이런 말 하면 그냥 무서워해. 그게 예의야.”
배시시 웃었다.
“어? 웃어?”
“죄송해요.”
“와. 지금 진짜 화 한 번 내야 할 타이밍인데 화가 안 난다.”
“감사해요.”
강혜린이 콧숨을 내쉬었다.
“됐어. 나 잡고 만담 그만하고 이제 진짜 가.”
“근데 붙잡은 거는 제가 아니라 누나잖아요.”
“씁. 멈춰. 이제 너 그만 요망해.”
웃음이 터졌다.
“또 웃는다?”
“누나가 웃기게 말했잖아요.”
강혜린이 미소 지었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살짝 흔든 뒤 진지한 표정을 짓고 눈을 떠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내가 웃지 말라 했는데 참았어야지. 너 아예 이 자리에서 혼날래?”
“아닙니다. 진짜 가겠습니다.”
강혜린이 픽 웃었다.
“그래.”
“진짜 갈게요.”
“응.”
뒤돌아 원장실을 나가고 몇 번 열어봤던 문을 찾아 열었다. 유강은이 보여서 바로 고개 숙였다.
“안녕하세요 강은 쌤.”
“안녕하세요 온유 쌤.”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였다. 신발을 벗으며 고개 들었다. 하윤이가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바닥 위로 올라가서 무릎을 굽힌 다음 두 팔을 벌려 안아주고 그대로 들어서 일어났다. 다른 애들도 내 쪽으로 다가와서 두 팔을 벌려댔다.
“저도 안아줘요!”
“온유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노래 불러주세요!”
“오늘 기타 왜 안 가져왔어요?”
나는 입이 하나밖에 없는데 답해줘야 할 질문이 너무 많았다.
“선생님이 기타 오늘 까먹고 못 가져왔어요.”
“내일도 와요?”
“내일까지만 올 거예요.”
하윤이가 오른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웃음이 나왔다.
“하윤아 왜 그래.”
“쌤 왜 애들 봐요?”
“질문하니까 보고 답해줘야지.”
“제가 제일 먼저 왔잖아요.”
“그래서 너 안아줬잖아.”
“흐응...”
김정수라는 명찰을 단 남자애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온유 선생님 오늘은 언제까지 있는 거예요?”
“점심 먹고 갈 거예요.”
정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돼요!”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유치원이 특별한 건가 미운 애들이 없었다. 아니면 내가 애들을 가끔 봐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를 맑은 눈으로 봐주는 애들이 좋다는 것이었다.
“빨리 가서 미안해요.”
“미안하면 계속 있어 주세요!”
“안 돼요.”
하윤이가 오른손으로 내 왼 볼을 주물러댔다.
“하윤아. 선생님 얼굴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선생님 저도 안아주세요!”
“얘들아. 온유 선생님 괴롭히지 말고 일로 와요.”
유강은이 말했다. 몇몇이 쫄래쫄래 유강은을 향해 걸어갔다. 하윤이를 좋아한다던 남자아이 이지성과 김민정이라 써진 명찰을 달고 있는 여자아이가 남아서 나를 쳐다봤다.
“하윤아, 지성이랑 민정이도 안아달라는 거 같은데 조금만 양보해줄래요?”
“저는 안 안아줘도 돼요!”
이지성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민정이는 안아달라고 여기 있는 거 맞지?”
김민정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
“저 신청곡 있어요.”
“신청곡? 나 기타 안 가져왔는데 괜찮아?”
김민정이 오른손 검지로 피아노를 가리켰다.
“저기 피아노도 있구, 음, 악기 없이 노래 불러주는 것도 듣고 싶어요.”
살폿 웃었다.
“알겠어. 뭐 불러줄까?”
“적재 ‘잘 지내’요!”
“알겠어. 이따 불러줄게.”
“이제 저 봐주세요.”
하윤이가 말했다.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하윤이를 바라봤다. 표정이 퍽 뚱했다.
“표정이 왜 이렇게 우울해요 우리 하윤이?”
“안 우울해요.”
“그럼 웃어볼래요?”
“싫어요.”
“그럼 선생님 속상해지는데.”
하윤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응...”
피식 웃었다. 귀여워도 정말 너무 귀여웠다. 왼손 엄지로 하윤이의 오른 볼을 만졌다. 하윤이의 표정이 차츰 풀렸다. 아마 하윤이는 자기에게 관심을 줬으면 한 모양이었다.
“우리 하윤이 잘 지냈어?”
“흐흫. 적당히 잘 지냈어요.”
웃었다.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데?”
“그냥 선생님 없을 때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기쁨?”
“와. 너 대박이다 하윤아. 나중에 작가 해야겠는데? 표현력이 너무 좋아서?”
“흐흫. 잘했으면 들썩들썩 해주세요.”
“알았어 해줄게.”
오른팔에 반동을 주어 들썩거렸다. 하윤이가 까르르 웃었다.
“흐흫. 선생님.”
“응?”
“선생님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에요?”
“그치.”
“왜 안 갔어요?”
“나 하윤이 보러 왔어.”
“흐흫. 그래도 돼요?”
“응.”
“그럼 학교 다니지 말고 일로 와요 아예!”
“그건 너무 파격적이라 안 되겠는데.”
“왜요? 지금은 왔잖아요.”
“상황 같은 게 어떻게 잘 맞아서 올 수 있었던 거야.”
“그럼 나중에는 안 올 거예요?”
멋쩍게 웃었다. 하윤이가 볼을 부풀렸다.
“안 올 거라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어.”
“내려놔 주세요.”
“어. 우리 하윤이 삐쳤어?”
“네.”
“진짜 내려놔 줄까?”
“놔줘요.”
“알겠어.”
천천히 스쿼트 자세를 하고 내려가 왼무릎부터 바닥에 닿게 했다.
“내려놓지 마요!”
심한 변덕이었다. 심술을 부리는 게 너무 표가 났다. 하나 귀여워서 밉지는 않았다. 입꼬리가 올라가기만 할뿐이었다.
“왜 갑자기?”
“제 맘이에요!”
“그래. 알겠어.”
오른손으로 하윤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반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애들을 보고 있던 유강은과 눈을 마주쳤다. 팔에 반동을 줘서 잠시 들썩거려줬다.
“하윤아.”
“네.”
“나 잠깐만 너 내려놔도 돼?”
“왜요?”
“선생님 조금 힘들어서?”
“저 무거워요?”
“아니. 내가 요즘 잠도 잘 못 자고 운동도 안 해서 그런가 약간 피곤해 가지고. 금방 나아질 거야.”
“흐음... 알겠어요.”
“고마워.”
“흐흫. 네.”
다리를 굽히고 하윤이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유강은에게 다가가 왼편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고개를 돌려 유강은을 바라봤다.
“강은 쌤.”
유강은이 나를 보는 대신 오른편에 있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
“저희 밥 언제 먹을까요?”
“점심 같이 먹잖아요.”
“그거 말구요.”
“... 혜린 쌤이랑 얘기해요.”
“강은 쌤은 어떡하구요 그럼?”
“몰라요.”
살폿 웃었다.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
“제일 먼저 부를게요.”
“... 그냥 민정이가 요청한 거로 불러주세요.”
“알겠어요.”
피아노 의자에 앉고 커버를 위로 올렸다. 폰으로 악보를 찾고 가볍게 음계를 두드렸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 봤다가 다시 피아노를 내려봤다. 숨을 들이쉬고 성대를 울렸다.
ㅡ나는 잘 지내 요즘 잠이 좀 없어졌어
그것 말고는 거의 똑같은 하루를 보내
반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내게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졌다.
하회탈 쌤 말대로, 나는 가수를 해야 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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