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 왜 그래요 (5)
* * *
윤가영이 양손으로 왼쪽 발을 주물러댔다.
“쥐 안 풀려요?”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응...”
“뭐 아픈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냐...”
“...”
윤가영을 계속 보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서 그냥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배달 어플을 열고 대충 둘러봤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윤가영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윤가영 씨.”
윤가영이 발을 주무르다가 나를 올려봤다.
“응...?”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나 배달시킬 건데.”
“나 없는데...”
“그냥 아무거나 말해봐요. 나 점심 먹을 거 생각 안 나서 그러는 거니까.”
“음... 피자...?”
“피자 왜요?”
“그냥 네가 물어봐서 얘기한 건데...?”
“그니까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 배달이래서 치킨 피자 떠올리고, 피자가 더 당겨서 말했는데...?”
픽 웃었다.
“알겠어요. 그럼 메뉴는요.”
“메뉴까지 내가 말해야 돼...?”
“그냥 아무거나 말해봐요.”
“어... 불고기...?”
“왜요?”
윤가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도로 넣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거야...”
“남으면 당신도 먹일 거니까 진지하게 얘기해요.”
“어...?”
“나 한 판 다 못 먹어요.”
“... 그럼 나 하와이안 피자.”
“미쳤어요?”
“왜...? 진짜 맛있는데...?”
“아니 어떻게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린 걸 돈 주고 먹어요?”
“맛있으니까 돈 주고 사먹지... 너도 먹어보면 맛있다고 생각할걸?”
“글쎄요.”
“글쎄요가 아니라, 너 폰 줘봐. 내가 맛있는 데 찾아줄게.”
윤가영이 두 손을 내뻗어왔다. 오른손을 내밀어 폰을 건넸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받고 엄지로 화면을 두드린 다음 다시 내게 폰을 건넸다. 두 손으로 받았다.
“여기서 주문하라고요?”
“네가 원하면?”
“시킬게요.”
주문했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만약에 제 입에 안 맞아서 많이 남기면 그거 당신이 다 먹어야 돼요.”
“... 너무 억지 아냐...?”
“당신이 맛있을 거라고 먹어보게 시킨 거니까 감수해요.”
“... 알겠어...”
“아직도 발 저려요?”
“응...”
“손은 씻을 거예요?”
“씻어야지...”
“내가 부축이라도 해줘요?”
“... 그래 주라.”
“네.”
윤가영에게 다가가 다리를 굽혀 왼무릎이 바닥에 닿게 했다. 윤가영의 오른팔을 잡고 내 목 뒤로 보내 오른 어깨로 가게 해서 고정했다. 그런 뒤 왼팔로 윤가영을 안아주듯이 하여 잡고 일으켜 세웠다. 싱크대 앞에서 멈췄다.
“고마워...”
윤가영이 어정쩡하게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신 물을 틀어줬다. 윤가영이 손을 씻고 타월로 물기를 닦았다. 내가 대신 물을 잠갔다.
“아직도 발 저려요?”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며 멋쩍게 웃었다.
“이게 잘 안 풀리네...?”
“올라가서 누워야 되잖아요.”
“응...”
“또 부축해줘요?”
“... 근데 나 걷기 힘들어... 사실 지금 서 있는 것도 좀 어려워...”
“그럼 어떡해요.”
“나 일단 앉을래...”
윤가영이 바로 바닥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양손으로 왼발을 주물렀다. 살짝 어이없었다.
“안 올라갈 거예요?”
윤가영이 나를 올려봤다.
“올라가야지... 근데 발이 저린데 어떡해...”
“얼마나 저리면 계속 그러는데요?”
“나도 모르겠어...”
“... 당신 그러고 바닥에 있으면 나 엄청 신경 쓰이는 거 알아요?”
“...”
윤가영이 고개를 숙였다.
“알지...”
“...”
콧숨을 내쉬었다.
“내가 업어서 올려다 주기라도 해요?”
“어...?”
윤가영이 다시 고개를 쳐들어 나를 쳐다봤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걸 진지하게 받았나.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내가 업어주냐고요.”
“... 그래 줄 거야...?”
“...”
이렇게 되면 안 업어준다고 하는 것도 이상한데.
“네.”
“...”
윤가영이 말없이 두 팔을 벌려왔다. 진심인 모양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냥 윤가영에게 다가가 등을 내보이며 무릎을 굽혔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윤가영과 눈을 마주쳤다.
“업혀요.”
“고마워...”
윤가영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으로 바닥을 디디고 기어와 내 등에 올라왔다. 윤가영의 가슴이 부드럽게 짓눌려왔다. 발기했다. 윤가영의 두 팔이 내 목을 휘감았다. 윤가영의 살 내음이 풍겨왔다. 윤가영의 숨결이 귀에 닿아왔다. 귀에 닿는 입김의 주기가 빠른 게 왠지 호흡이 가쁜 듯했다. 한숨을 쉬고 두 팔을 뒤로 해 윤가영의 허벅지를 고정하려 했다. 두 손등에 윤가영의 엉덩이가 닿았다. 음, 하고 윤가영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실수예요.”
“알아...”
속삭이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다. 흐음, 하고 콧숨을 내쉬었다. 일어나서 윤가영을 데려가 침대에 눕혀야 하는데 계속 이러면 고역일 듯했다.
“온유야...”
아니 말을 왜 이렇게 야릇하게 하지?
“왜요?”
“나 조금 창피한데...”
“그럼 어떡하라고요?”
“그냥 놔주라...”
“당신이 팔을 풀면 될 거 아니에요.”
“응...”
윤가영이 내 목을 감은 두 팔을 풀고 내 등에서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자지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바지 안쪽에 들어가게 조정했다. 뒤돌아서 윤가영을 내려봤다. 주저앉아 있는 윤가영이 두 손으로 오른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어쩔 건데요 이제?”
“걸어가야지...”
“나 당신 여기 있는 거 싫다니까요?”
“... 그래도...”
한숨 쉬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윤가영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 그러면 온유야...”
“뭐요.”
“안아 들어주는 건 어때...?”
“... 진심이에요?”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아니지 아무래도...?”
“... 업는 거랑 안아 드는 게 뭔 차인데요.”
“아냐 미안해...”
“아니 생각이 있었으니까 말했을 거 아녜요. 말해봐요.”
“... 가슴이 안 닿잖아...”
“...”
맞는 말이긴 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안아 드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싫으면 안 그래도 돼...”
윤가영이 시선을 내렸다. 눈빛이 처연했다. 속이 답답했다. 그냥 안아 들어서 옮겨야 하나. 생각해보면 업어주려고도 했는데 안아 드는 걸 못할 이유도 없었다.
소리 없이 한숨 쉬고 입을 열었다.
“그냥 하죠.”
윤가영이 고개를 들었다.
“응...?”
“안아 들어주겠다고요.”
무릎을 굽혔다. 윤가영이 나를 보고만 있었다.
“... 무릎에 팔 좀 넣게 삼각형으로 만들어 봐요.”
“알겠어...”
윤가영이 몸을 옆으로 하고 다리를 구부렸다. 오른팔을 윤가영의 무릎 뒤로 넣고 왼팔로 윤가영의 등을 받쳤다.
“내 목 붙잡아요.”
“응...”
윤가영이 두 손으로 내 목을 휘감고 깍지를 꼈다. 윤가영의 살 내음이 다시 올라왔다. 천천히 일어섰다. 느리게 걸었다. 윤가영이 불안했는지 내 목을 잡아당겼다. 불편해서 멈춰섰다.
“그럴 거면 그냥 목에 팔 감아요.”
“응...!”
윤가영이 두 팔로 내 목을 휘감았다. 윤가영의 가슴이 내 가슴에 맞닿아왔다. 윤가영의 가슴이 아주 짓눌리는 것은 아닌데 그래서 오히려 더 야한 느낌이었다. 윤가영의 가슴이 너무 큰 탓이었다.
“다 됐어요?”
“응...”
걷기 시작했다. 윤가영의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밟았다. 윤가영의 온기가 느껴졌다. 윤가영의 숨결이 내 오른 귓불을 간질였다. 바지 속에서 자지가 껄떡거렸다. 난 왜 발기할까. 한없이 불쾌했다.
“미안해...”
“뭐가요.”
“그냥... 지금 이러는 거...”
“됐어요.”
오른손으로 윤가영 방 문손잡이를 잡아 열고 왼발로 밀어 안에 들어갔다. 윤가영을 침대에 눕혔다.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뒤로 스트레칭을 한 다음 윤가영을 내려봤다. 윤가영이 입을 다문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할 말 있어요?”
“... 아니...”
척 봐도 거짓말이었다.
“있죠?”
“... 나 무거웠어...?”
피식 웃었다. 윤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웃어어...”
“제가 생각했던 답변이 아니어서요.”
“...”
“안 무거웠어요.”
“... 고마워...”
“그냥 뻐근하기만 했지.”
“...”
윤가영이 몸을 돌려 나를 등졌다. 픽 웃었다.
“애예요? 삐치게?”
“... 애 아니어도 삐칠 수는 있는 거 아냐?”
“그건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삐치는 건 조금 아니지 않아요? 당신은 어른인데.”
“... 나 애초에 삐친 거 아니거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
이쯤에서 돌아가야 할 텐데 윤가영이 풍기는 우울한 분위기가 도저히 윤가영을 외면하기 어렵게 했다. 윤가영의 침대에 걸터앉고 오른손으로 시트를 짚었다.
“술은 왜 마셨어요?”
“...”
“말 안 할 거예요?”
“... 그냥 마셨어...”
“...”
말해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으니 피자가 오면 같이 먹고 얘기하면서 말하게 해야 할 듯했다.
“당신 그대로 잘 거예요?”
“나 자라고 여기에 눕힌 거 아냐?”
“그렇긴 하죠.”
“그럼 자야지.”
“아니 자지 마요.”
“... 그럼 나 뭐 하라고.”
“나 피자 오면 같이 먹는 거죠. 뭐 하긴 뭘 해요.”
“...”
“배불러서 싫어요?”
“... 아니...”
“두어 조각만 먹어요.”
“알겠어...”
“당신 평일에 집에 혼자 있으면 뭐 해요?”
“그냥 집안일하고 쉬지... 아님 운동하거나 요리법 찾고...”
“그게 끝이에요?”
“응...”
“... 당신 나랑 얘기하기 싫어요?”
“아냐...”
“그럼 왜 그렇게 대화가 툭툭 끊기게 말해요.”
“...”
“그럴수록 더 신경 쓰여요.”
우리 엄마 생각나고.
“... 미안...”
“됐어요.”
자리에서 일어나고 방을 빠져나갔다. 주방에 가서 냉수랑 온수를 섞고 단숨에 절반을 마셨다. 의자를 꺼내 앉았다. 한숨이 나왔다.
왜 윤가영이 눈앞에 있으면, 윤가영을생각하기만 하면 이렇게 심란해지는 건지. 난 마음 쓰기 싫은데. 속이 답답했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따가 피자가 오면 올라가서 왜 술을 마셨는지 솔직하게 말하게 해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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