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화 〉 수아 오디션 (3)
* * *
윤가영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누구예요?”
“수아. 받을게?”
“네.”
윤가영이 전화를 연결하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ㅡ엄마 나빴어.
이수아의 목소리를 들은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거기 있기 어색해서 그랬어.”
ㅡ엄마가 왜 어색해.
“안 어울리잖아...”
ㅡ다 엄마 배우로 알았을걸?
“아니야아...”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엄마 옆에 오빠는 있어?
윤가영이 나를 흘깃 봤다.
“있어...”
ㅡ으응... 그럼 오빠 데리고 1층 라운지로 와줘.
“알겠어...”
ㅡ엄마.
“응?”
ㅡ둘이 사이는 언제 좋아진 거야?
“... 글쎄...? 왜...?”
ㅡ그냥 좀 신기해서.
“으응...”
ㅡ알겠어. 끊어.
“응...”
전화가 끊겼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라운지로 가자.”
“네. 가요.”
먼저 일어났다. 윤가영이 따라 일어섰다. 접시랑 컵을 나무 쟁반 위에 올려놓고 들었다. 윤가영이 두 손을 뻗어왔다.
“그냥 가만히 있어요. 내가 가져다 놓을 테니까.”
“고마워...”
카운터 쪽으로 가는데 윤가영이 뒤에 졸졸 따라붙었다. 조금 부담스러웠다. 카운터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직원이 감사하다고 말해왔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문 쪽으로 갔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서서 걸음 속도를 맞췄다.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 윤가영이 걸으면서 나를 올려봤다. 무시할까. 그러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봐서 신경이 쓰였다. 윤가영을 내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뭐 나한테 할 말 있어요?”
“아니 딱히.”
“그런데 왜 그렇게 봐요.”
“보면 안 돼...?”
“부담스러워요.”
“응... 알겠어.”
윤가영이 정면을 바라봤다. 볼수록 느끼는 것인데 사람은 착했다. 한숨이 나왔다. 윤가영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뭐 걱정 있어...?”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왜 한숨 쉬어...?”
“당신 때문에요.”
“나 때문에...?”
“네.”
“나 뭐 잘못했어...?”
“잘못이야 많이 했죠.”
“...”
윤가영의 눈이 서글퍼졌다.
“미안...”
“꾸짖을 마음으로 얘기한 거 아니에요.”
“... 고마워...”
“됐어요.”
방송국 입구로 들어가 라운지 안에 들어섰다. 이수아랑 김민준 실장이 의자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본 김민준 실장이 미소 지으며 일어났다. 이수아도 일어나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미간이 찌푸려져 있는 게 나한테 불만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폰 안 봤어?”
“응.”
“개 당당하게 말하네.”
김민준 실장이 피식 웃었다.
“사이 되게 좋은가 봐요.”
이수아가 김민준 실장을 슬쩍 봤다.
“안 좋아요.”
“알겠어요.”
윤가영이 두 손을 뻗으면서 이수아에게 다가가서 이수아의 두 팔을 잡았다.
“우리 딸. 오디션은 잘 본 거 같아?”
“몰라 나도.”
이수아가 나를 쏘아봤다.
“옆에 얘 없어 가지고.”
“내가 왜 있었어야 됐는데?”
“나랑 호흡 맞췄는데 갑자기 사라졌잖아. 몰입 깨지게.”
“근데 내가 들어가는 것도 조금 이상하잖아.”
시선을 돌려 김민준 실장을 봤다.
“그쵸?”
“글쎄요. 그냥 들어가도 됐을 거예요.”
이수아가 왼손을 주먹 쥐고 내 가슴을 툭 치는 시늉을 했다.
“그렇다잖아.”
“그럼 미안.”
윤가영이 나랑 이수아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가슴이 약간 간지러웠다. 김민준 실장을 봤다.
“저희 이제 돌아가는데 태워주시는 거죠?”
“아 당연하죠.”
“그럼 나가죠.”
먼저 문 쪽으로 향해 걸었다. 윤가영이랑 이수아, 김민준 실장이 옆에 붙었다. 김민준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다 집으로 가세요?”
이수아가 김민준 실장을 봤다.
“아뇨 저 친구 만날 거예요. 집 가는 중간에 제가 내려달라고 할 테니까 그때 내려주세요.”
“알겠어요.”
그럼 내가 윤가영이랑 단둘이 집에 같이 있게 되는 건가. 카페에서 같이 있었을 때도 엄청 어색했는데. 집에 같이 있음 불편해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저도 이수아랑 같이 내려주세요.”
“그래요.”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봤다.
“너는 왜?”
윤가영이 이수아의 등을 약하게 한 대 때렸다.
“오빠한테 너라니.”
“아 엄마...”
“오빠한테 예의있게 말할 때도 됐잖아.”
“알겠어... 그냥 습관이라 그래...”
김민준 실장이 눈웃음 지은 채 이수아랑 윤가영을 보면서 밴 쪽으로 걸어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나도 밴 앞으로 가서 뒷문을 열었다. 뒤돌아서 윤가영을 바라봤다. 윤가영이 나를 보면서 눈썹을 올렸다.
“안 타니?”
“먼저 타요. 제일 나중에 내리잖아요.”
“아... 알겠어.”
윤가영이 히 웃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윤가영의 웃음은 언제 봐도 보기 좋았다. 윤가영이 먼저 밴에 올랐다. 나중에 다가온 이수아가 나를 올려보고 입을 열었다.
“나 먼저 타?”
“내가 먼저 탈까?”
“아냐 나 먼저 탈게.”
“그럼 올라가.”
“그럴 거였어.”
이수아가 먼저 올라서서 가운데 좌석에 앉았다. 뒤따라 오르고 차 문을 닫았다. 김민준 실장이 이미 벨트를 착용한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이 엄청 좋은 거 같은데. 아니에요?”
이수아가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면서 입을 열었다.
“별로 안 좋아요.”
“네.”
김민준 실장이 앞을 봤다.
“출발할게요.”
“네에.”
윤가영이 답했다. 밴이 움직였다. 등이 좌석에 붙었다.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수아 오디션 같이 들어가서 보셨나요?”
“네. 봤죠.”
“수아 연기 잘하는 거 같던가요?”
“엄청 잘해요. 진짜 재능이라고밖에 말 못 할 만큼. 원로배우랑 자기만의 영역 같은 걸 구축한 그런 연기 잘하는 배우들 보면 뭔가 아우라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따님이 연기할 때 그런 게 벌써 느껴져요.”
윤가영이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그래요?”
“네. 저 회사 돌아가면 바로 계약서 준비할 테니까 우리 회사에 사인할 수 있게 따님이랑 온유 학생 설득 좀 해주세요.”
윤가영이 미소 지었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보면서 픽 웃고는 오른손 검지로 윤가영의 왼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윤가영이 간지러운지 웃으면서 두 손으로 이수아의 왼손을 잡았다.
“아 하지 마...”
“그렇게 좋아 엄마?”
“응... 우리 딸이랑 온유 인정 받았으니까...”
또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김민준 실장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얘 계약 조건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으음... 당장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데요.”
이수아가 백미러를 봤다.
“저 얘... 오빠랑 비교해서 조건 비슷하게도 안 해주면 사인 안 할 거예요.”
김민준 실장이 멋쩍게 웃었다. 당혹스러운 느낌이 커 보이는데 뭔가 재밌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가영이 왼손으로 이수아의 오른 허벅지를 주물렀다.
“수아야 왜 그렇게 말해...”
“... 그럴 수도 있지.”
김민준 실장이 백미러를 흘깃 봤다가 입을 열었다.
“최대한 피력해볼게요. 수아 학생 계약 조건 잘 받을 수 있게.”
윤가영이 고개를 한 번 얕게 숙였다.
“감사해요...”
김민준 실장이 미소 지었다.
“네. 근데요 온유 학생.”
눈을 크게 떴다.
“네?”
“온유 학생 연기도 할 거예요?”
“연기요?”
“네. 저번에 한다고는 들었던 거 같은데, 확실하게 답 들어놓으려고요.”
“... 할 생각은 있어요.”
“으음. 네. 알겠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헛웃음이 나왔다.
“고맙다는 말이랑 미안하다는 말이 왜 같이 나와요.”
“연기도 해준다고 해서 고맙고, 온유 학생 고생길 열은 거 같아서 미안해 가지고요.”
“얼마나 고생할 거 같으면 미안하다고까지 해요?”
“그냥 음악 활동에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드라마나 영화 촬영까지 하면 진짜 체력적으로 버거울 거예요. 최대한 조율하겠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들 거예요.”
“얼마나 힘든데요...?”
윤가영이 물었다.
“드라마 촬영 같은 건 온종일도 모자라서 밤까지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틀이나 하루 간격으로 다시 촬영 들어가고, 아니면 촬영하고 다음 날 촬영하고 그렇게 연속으로 하기도 하니까. 적응하기까지는 많이 힘들죠. 사실은 적응하고 나서도 힘들고.”
“아...”
윤가영이 나를 봤다.
“진짜 할 수 있겠어...? 가수랑 배우...?”
“나 걱정하지 말고 수아나 걱정해요. 운동도 별로 안 하고 체력도 안 좋은 거 같던데.”
“뭐래 너 나 운동하는 거 보기는 했냐?”
“못 봤으니까 걱정하는 거지. 봤으면 걱정 안 했고.”
“아 개 짜증 나 말하는 거.”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이수아 양 볼을 잡고 주물주물거렸다가 손을 뗐다.
“입조심.”
“아 알겠어...”
김민준 실장이 큭큭 웃었다. 차가 교통신호에 걸렸다. 이수아가 창밖을 내다봤다. 이수아의 두 눈이 커졌다.
“어? 저 지나쳤어요.”
“그래요? 많이 지나친 거예요?”
“아뇨 많이 지나친 건 아니에요. 걸어가면 돼요. 이따 내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바로 내려주세요.”
“알겠어요. 온유 학생도 같이 내릴 거예요?”
“네.”
차가 다시 움직였다. 윤가영이 나를 바라봤다.
“그럼 온유 넌 집에 안 오는 거야...?”
“몰라요 저도.”
“으응... 알겠어...”
차가 속도를 늦추다가 멈춰섰다. 문을 열고 김민준 실장을 보며 감사하다고 말한 다음 먼저 내렸다. 이수아가 김민준 실장에게 감사하다 말하고 내리고는 윤가영을 보면서 두 손을 흔들었다. 윤가영이 마주 두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수아야 온유야.”
“네. 잘 들어가요.”
“엄마 바이.”
“응...”
차 문을 닫아줬다. 이수아가 차가 떠나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를 올려봤다.
“넌 뭐 해 이제?”
“몰라 그냥 돌아다니겠지.”
“너 또 나 친구들이랑 있는데 튀어나올 거 아니지?”
피식 웃었다.
“그래 줄까?”
“좆 까. 안 되거든.”
“알겠어.”
이수아가 픽 웃었다.
“왤케 착해졌어?”
“나 원래 착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
“진짜 헛소리다 이건.”
“응 아니야.”
“흣. 존나 개 유치해.”
“너만 하겠어요?”
“지금 건 아까 거보다 더 유치했어.”
“네에 네에.”
이수아가 살폿 웃었다. 도로 위의 차들이 속도를 줄여갔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이수아가 신호등을 흘깃 보고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누나 이제 친구들 보러 갈게요?”
“가.”
“누나 없다고 울지 마? 길 못 찾겠으면 경찰서 찾아가기. 알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이수아가 킥킥 웃었다.
“어.”
이수아가 몸을 돌려 횡단보도로 뛰어갔다. 양옆으로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뛰어가는 뒷모습이 왠지 경쾌해 보였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지금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이상했다.
내가 날 이해할 수 없던 게 하루 이틀인가. 그냥 별생각 없이 넘기는 게 상책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