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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32화 (232/438)

〈 232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14)

* * *

방에 돌아가 씻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 잠이 안 왔다. 두드드, 테이블에 올려놨던 폰이 진동했다. 뒹굴어서 오른손으로 폰을 잡고 확인했다. 백지수였다. 바로 연결했다.

ㅡ와. 나 외로워.

뭐라 답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택시를 부르고 외투를 걸친 다음 뛰어서 밖에 나섰다. 백지수에게 문자 보냈다.

[바로 택시 부르고 나왔어.]

바로 숫자가 사라졌다.

[응]

절로 미소 지어졌다. 하늘을 올려봤다. 보름이 가까운지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문을 열자마자 백지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백지수가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달려들어서 나를 와락 껴안았다.

“나 오늘 그날이었으니까 봐줘.”

미소 지어졌다. 왼손을 뒤로 뻗어 문을 닫고 백지수를 마주 안았다.

“당연히 봐줘야지. 나도 미안해 지수야.”

“... 응...”

“사랑해.”

“나도 사랑해...”

미소 지었다. 백지수가 나를 올려봤다.

“미안하니까 네가 나중에 뭐 잘못해도 내가 한 번은 봐줄게.”

“고마워.”

“사양은 절대 안 하네?”

“네가 선심 써서 주는 거니까.”

“말은 또 잘해요.”

히죽 웃고 허리를 뒤로 살짝 젖혀 백지수를 안아 들었다. 백지수가 꺅, 하고 소리 지르고는 킥킥 웃었다.

“아 하지 마...”

“알겠어.”

백지수를 내려놓았다. 백지수가 두 팔을 풀고 내게서 떨어져서는 두 발짝 뒷걸음질 쳤다. 양팔은 벌린 그대로였다. 눈썹을 올렸다. 백지수가 히 웃었다.

“나 안아서 방으로 데려다줘.”

“알겠어.”

문을 잠그고 신발을 벗은 다음 오른팔을 백지수의 무릎 뒤에 넣고 왼팔로 백지수의 등을 받쳐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 백지수 방으로 들어갔다. 백지수를 눕히고 오른편에 함께 누웠다. 백지수가 옆으로 누워 나를 바라봤다. 몸을 꿈틀대서 백지수에게 가까이 가 오른팔로 백지수를 껴안았다. 백지수도 나를 마주 안으면서 이마를 내 가슴에 박았다. 상체에 백지수의 가슴이 짓뭉개져서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발기했다. 자지가 백지수의 몸을 툭 건드렸다.

“오늘은 섹스 안 할 거야.”

“응...”

백지수가 피식 웃고 왼손으로 내 오른 옆구리를 주물렀다.

“삐쳤어?”

“아니.”

“생리 끝나면 존나 따먹어줄 테니까 참아.”

“알겠어.”

백지수가 아이처럼 웃었다.

“존나 알겠어래.”

“왜애.”

“왜애?”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봤다.

“진짜 개 귀엽네 미친놈이.”

“네가 더 귀여운 듯.”

“지랄한다.”

백지수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사랑해.”

백지수가 왼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고 몸을 위로 끌어와 내 입술에 가볍게 입맞췄다.

“나도 사랑해 이 개자식아.”

“개자식이 뭐야 사랑하는 사람한테.”

“개자식 맞으니까.”

살폿 웃었다. 백지수의 왼 볼에 입술을 맞췄다. 백지수가 콧숨을 내쉬었다.

“왜?”

“너 웃기만 하면 기분 나아져서. 슬퍼하면 좆 같고. 그래서 조울증 환자 된 느낌 나.”

“흐응...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럼 나 보면서 맨날 웃어 미친놈아. 울지만 말고.”

“알겠어.”

“그래. 말 못 지키기만 해봐.”

“지킬게.”

“... 어.”

백지수가 다시 내 가슴에 이마를 댔다.

“... 어디 가지 마...”

“안 가 절대. 왜 그런 말을 해.”

“... 너 가고 없을 때 혼자 침대에 누웠는데, 폰 보다가 순간 나 되게 초라하다고 느꼈어.”

“... 왜 그런 걸 느껴...”

“내가 느끼고 싶어서 느낀 게 아니잖아.”

“...”

“나 이제 잘 거야.”

“응... 잘 자...”

“너도 잘 자.”

백지수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오른팔을 백지수의 몸에 딱 붙게 해서 백지수를 끌어당기듯 안았다. 상체에 백지수의 숨결이 닿았다. 백지수의 호흡이 금세 규칙성을 띠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오른손으로 느리게 백지수의 날개뼈 뒤를 어루만졌다.

입 틈새로 조용히 한숨 쉬었다. 품에 백지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크게 안심 됐다. 입을 짝 벌려 하품했다. 따뜻해서 잠이 솔솔 왔다. 두 눈을 감았다.

진동이 느껴졌다. 빛무리가 두 눈두덩이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

“지수야...”

대답이 안 들렸다. 어디 나갔나. 일요일인데 나랑 같이 있지. 오른팔을 뻗었다. 폰이 만져졌다. 잡아 들고 침대에 놓은 다음 오른눈만 떠서 확인했다. 윤가영이었다. 연결하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왜요.”

ㅡ병원 갔니...?

“아뇨.”

ㅡ그럼 같이 갈래...?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왜요.”

ㅡ그래도...

“됐어요. 나 혼자 가요. 끊어요.”

ㅡ응...

전화를 끊었다. 폰을 잡은 채 1층으로 내려갔다. 백지수가 안 보였다. 문자를 보내놓은 게 없나 확인했다. 있었다.

[나 오늘 집에서 자야 돼]

[누나 없다고 막 울지 말고]

[나갈 거면 문단속 제대로 하고. 알겠지?]

피식 웃었다.

[알겠어요]

폰을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 갔다. 딱히 배고프지는 않았다. 택시를 부르고 외투를 걸친 다음 밖에 나갔다. 택시 번호를 확인하고 뒷자리에 탑승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창밖을 봤다. 두드드, 오른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꺼내봤다. 김민준 실장이었다. 연결해서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여보세요.”

ㅡ여보세요. 온유 학생.

“네.”

ㅡ오늘 여동생분 오디션 보는 거 같이 오기로 했잖아요.

“네.”

ㅡ일단 11시에 먼저 서로 만나고 같이 밥 먹은 다음에 오디션 보러 가는 게 어떤가 생각하는데 어때요?

“집에 오시는 거예요?”

ㅡ그쵸.

“네 그래요.”

ㅡ오케이. 좋네요. 점심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그건 제 여동생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ㅡ어. 온유 학생 여동생분이랑 사이 그렇게 안 좋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둘이 어떻게 괜찮아졌나 봐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아 진짜 궁금하네요 무슨 사이인지.

멋쩍게 웃었다.

ㅡ뭐 궁금한 거 있어요?

“아뇨 딱히 없어요.”

ㅡ알겠어요. 그럼 이따 봐요.

“네.”

전화가 끊겼다.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택시가 정차했다.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나왔다. 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대로 가는데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걸어가면서 옆모습을 봤는데 그냥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윤가영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나? 대체 왜? 어이없었다.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걸어가서 접수하고 뒤돌아봤는데 오른쪽에 다섯 발자국이면 걸을 거리에 윤가영이 서 있었다.

“온유야.”

헛웃음이 나왔다. 의자 쪽으로 걸어갔다. 윤가영이 내 오른편에 붙었다.

“왜 여깄어요?”

“너랑 있고 싶어서.”

“하...”

오른쪽 끝 의자에 앉았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앉았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온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응. 너라면 바로 올 것 같았고, 실제로도 왔잖아.”

“만약에 나 바로 안 왔으면 어떡했을 거였어요?”

“음... 그래도 일단 기다리지 않을까...?”

“뭐 점심 먹을 시간에도 안 왔으면요.”

“대충 먹고 또 기다렸겠지...?”

“아니 당신 진짜 바보예요?”

윤가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언성 높이지 마...”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고 콧숨을 내쉬었다. 미칠 것 같았다.

“수아 오디션 너도 보러 가는 거지...?”

“네.”

“으응...”

“걔가 전화 안 했어요?”

“몰라...? 했나 확인해야겠다...”

윤가영이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시선을 돌려 괜히 티비를 봤다.

“음, 문자 와 있었어. 열한 시에 가는 거래. 우리 빨리 돌아가야겠다.”

“일일이 보고 안 해도 돼요.”

“넌 알고 있었어?”

“네.”

“매니저님이 너한테 따로 전화한 거야?”

“네. 귀찮게 막 캐묻지 마요.”

윤가영이 헤 웃었다. 심란했다.

“물어볼 거 다 물어봤어. 답해줘서 고마워 온유야.”

“...”

“너 진짜 착한 거 같아.”

“됐어요.”

내 이름이 불렸다. 일어나서 의원실로 향했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붙었다.

“밖에 있어요.”

“응.”

윤가영이 의자에 앉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

“팔 걷어보세요.”

“네.”

왼팔을 걷어서 보여줬다. 중년 남자 의사가 의자를 끌어오더니 두 손으로 내 팔 밑을 받치고 붕대를 천천히 풀었다.

“상처가 깊지 않기도 했는데, 그렇다 쳐도 진짜 빨리 낫네요. 고등학생이라서 그런가.”

“... 근데 저 내일도 와야 해요?”

의사가 웃었다.

“내일은 안 와도 될 거 같은데, 만약 오늘이나 내일 아픈 느낌 있으면 와요. 왼팔은 되도록 쓰지 말고.”

“네.”

의사가 의자를 끌어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렸다.

“약 일주일 치 처방해줄 테니까 꼬박꼬박 먹어요. 덧나지 않게 잘 보시고.”

“알겠습니다.”

의사가 미소 지었다.

“나가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잘 가요.”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섰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고 바로 일어서서 내 왼편에 붙었다. 안색이 왠지 안 좋았다. 그냥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고 접수대로 걸어갔다. 처방전을 받고 돈을 낸 다음 병원을 나서서 약국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윤가영이 앞을 봤다가 나를 쳐다보기만을 반복했다. 부담스러웠다.

“왜요.”

“... 그냥...”

“부담스러워요.”

“미안해...”

윤가영이 앞을 봤다. 처방전을 주고 의자에 앉았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앉았다. 서글퍼 보이는 두 눈이 처량했다. 한숨이 나왔다.

“무슨 일인데요.”

“... 아냐...”

“무슨 일 있잖아요.”

“없어...”

콧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없다 한 거예요.”

“응...”

내 이름이 불렸다. 일어서서 약을 받았다. 윤가영이랑 같이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 있는 택시를 하나 잡아서 탔다. 주소를 불렀다. 택시가 출발했다. 옆에서 침울한 기운을 내는 윤가영이 신경 쓰였다. 윤가영이 두 손을 자기 허벅지 위에 다소곳이 올리고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온유야...”

“네.”

“너 오늘도 밖에서 자...?”

“저도 몰라요.”

“으응...”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앞 유리를 봤다. 본인이 말하기 싫어하는데 내가 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좌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몸이 흔들렸다. 한순간 잠들은 모양이었다.

“일어나 온유야.”

윤가영 목소리였다. 눈 떴다. 윤가영이 택시 문을 열었다. 윤가영이 먼저 내렸다.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뒤따라 내렸다.

“배 안 고파 온유야...?”

“괜찮아요. 이따 실장님 오면 같이 점심 먹기로 하기도 했으니까.”

“으응...”

윤가영이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집 문을 열고 신발을 벗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데 영상 소리가 들렸다. 영화라도 보는 듯했다. 더 들어가 보니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티에 검은 돌핀팬츠를 입은 이수아가 소파에 등을 편히 기댄 채 티비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화면을 봤는데 유지태랑 이영애가 있었다. 옛날 영화 같았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가 다시 티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수아의 오른편에 가 앉았다. 왠지 나를 어색해하는 느낌이었다.

“뭐야?”

“‘봄날은 간다’.”

“으응... 근데 이건 왜 봐?”

“공부.”

“공부?”

“오늘 오디션 보잖아.”

“음...”

이수아가 영화를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음은 또 뭔데?”

“아니 그냥 딱히 할 말 없어서 소리 낸 거야.”

“어.”

“왜 이리 날 서 있어.”

“... 존나 떨려서.”

피식 웃었다.

“너 긴장한 거 왤케 웃기냐?”

“아 뭐래 존나. 엄마는?”

“올 거야.”

이수아가 고개를 들어 현관 쪽을 봤다.

“엄마!”

“응.”

고개를 돌렸다. 윤가영이 보였다. 이수아가 일어나더니 두 팔을 벌려서 윤가영에게 다가갔다. 윤가영이 이수아를 안았다.

“엄마 쟤가 나 놀려.”

“쟤라니 오빠한테.”

“아 나보고 막 비웃는단 말야.”

“또 과장한다.”

“아니 나 떨린다고 말했는데 긴장한 거 웃긴다면서 막 웃었다니까?”

“그래?”

윤가영이 나를 바라봤다.

“비웃진 않았어요. 그냥 긴장 풀어주려고 그런 거예요.”

“그렇다는데?”

이수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야 그게 어떻게 긴장 풀어주는 거야?”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이수아의 왼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허벅지 살이 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발기했다. 난감했다. 괜히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에 올려 꼬았다.

“너 오빠한테 자꾸 야야거리지 마.”

“아 엄마아...”

“말 험하게 하는 버릇 고쳐. 이제 연기자 돼야 하는데 너 카메라 앞에서 혹시라도 실수로 욕하면 어떡할 거야.”

“아 나 안 그래...”

“그래. 안 그럴 거라고 믿는데, 일단 지금부터 조심하자.”

“알겠어...”

윤가영이 이수아를 놓아줬다. 이수아도 윤가영을 안은 팔을 놓아줬다.

“배 안 고파 우리 딸?”

“조금 배고파.”

“뭐 먹을래?”

“으음... 근데 이따 점심 먹어야 돼서 뭐 먹음 안 될 거 같은데.”

“알겠어. 그럼 일단 씻고 나갈 준비해.”

“응. 엄마도 가는 거지?”

“... 오빠랑 같이 가.”

“엄만 안 가?”

“응...”

“왜?”

“내가 간다고 뭐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같이 가도 되는 게 맞나 싶어서...”

“내가 괜찮은데 왜.”

“... 알겠어 같이 가자.”

이수아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응. 근데 나 영화 좀만 더 보고 씻을게.”

“그래. 엄만 좀 누워 있을게.”

“응.”

윤가영이 계단으로 향했다. 이수아가 뒤돌아서 이쪽으로 다가와 내 왼편에 앉았다. 이수아가 영화를 재생했다. 한은수가 자동차 문을 왈칵 열고 두 손을 자동차 시트에 대서 이상우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ㅡ라면, 먹을래요?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나온 거구나.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봤다. 이수아의 눈빛이 퍽 진지했다. 이수아가 나를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뭐.”

아닌 척하면서 나를 은근 의식했나. 살폿 웃었다.

“아냐 됐어.”

“개 싱거워.”

이수아가 갑자기 티비를 끄고 일어났다.

“왜 일어나?”

“명대사 봤으니까. 이제 준비도 해야 돼고.”

“어...”

이수아가 자기 방 쪽으로 걸어가서 그대로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조금 얼떨했다. 폰을 꺼내 켜봐서 시간이 남은 걸 확인하고 다시 티비를 켜 영화를 재생했다. 이대로 있다가 김민준 실장이 왔을 때 나가면 될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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