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12)
* * *
두 팔을 테이블에 대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정이슬이 서유은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언제 내려왔어 유은아?”
“아 저 오빠 깨서 움직이셨을 때 저도 일어나가지구 같이 내려갔어요...”
“으음... 그리고 뭐 했는데 둘이?”
“저...”
“네가 말해봐 이온유.”
백지수가 말했다. 괜히 목이 탔다.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냥 유은이가 술 마셔보고 싶대서 조금 마시게 해줬어.”
“뭐?”
백지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정이슬이 웃었다.
“진짜? 와. 너 개 대박이다 유은아.”
“제가요...?”
“어.”
정이슬이 시선을 갑자기 송선우에게로 돌렸다.
“근데 선우는 약간 안 놀란 눈치다?”
오른팔을 테이블에 대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유리 머들러로 자기 초코 라떼를 섞던 송선우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저 그냥 벙찐 거예요.”
“음. 인정. 진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니까요. 얌전한 고양이였네요 유은이가.”
정이슬이 두 팔로 자기 몸을 감싸 안고 나를 쳐다봤다.
“온유야 나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어.”
“왜요?”
“그 유은이가 여우였다고 생각하니까 오싹해졌어. 추운데 나 좀 안아줄래?”
돌 것 같았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졌다.
“저 화장실 좀 가도 돼요?”
“도망치냐?”
백지수가 쏘아붙였다. 아무래도 많이 화난 듯했다.
“아냐 나 진짜 급해져서 그래.”
“어. 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걸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을 누고 손을 씻은 다음 문을 열고 나왔다. 주방으로 돌아가 내 자리에 도로 앉았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왜 대화를 안 해요...?”
“아냐 네가 온 타이밍이 이상했던 거야.”
송선우가 말했다.
“으응...”
백지수가 폰을 꺼내서 켜봤다가 다시 오른 주머니에 넣고 나를 쳐다봤다.
“이온유 배달 온다니까 나가봐.”
“응...”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고 나가 대문을 열었다. 잠시 멍하니 바깥을 봤다. 왼편에서 바람이 불어서 왼 볼을 때렸다. 체감상 2분은 지난 느낌이었는데 오토바이 소리도 안 들렸다. 속으로 숫자를 셌다. 삼십사를 외는 순간에 오토바이가 보였다. 배달원이 다가오다가 나를 보고 멈춰섰다.
“배달, 시키셨어요?”
“네.”
“아 네.”
배달원이 내게 봉투를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으로 돌아갔는데 다 입을 다문 채 나를 쳐다봤다. 왜 이럴까. 비닐봉투를 내려놓고 하나씩 꺼냈다. 정이슬이 일어나서 나를 도왔다. 백지수가 음식이 담긴 종이상자를 열었다. 바비큐 삼겹살이 들어있었다. 송선우가 할라피뇨가 들어가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열면서 삼겹살을 봤다.
“오 맛있게 생겼다.”
“빨리 먹자.”
백지수가 답했다. 서유은이 비닐장갑이랑 젓가락을 각자의 앞에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류가 약간 어색했다.
“응...”
답하면서 비닐장갑을 왼손에 씌웠다. 뭘 먹을 생각은 딱히 안 들었다. 정이슬이 왼손에 모닝빵을 들고 플라스틱 빵칼로 가운데를 베어서 백지수에게 먼저 건넸다. 백지수가 고기에 소스를 발라 세 점을 넣고 할라피뇨, 양파를 넣은 다음 감자튀김도 두 개 끼워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지수 먹잘알.”
정이슬이 백지수를 보면서 감탄하고는 자른 모닝빵을 송선우랑 서유은에게 먼저 줬다. 송선우가 익숙하게 플래터를 쌓았다. 서유은이 송선우를 보면서 따라 하듯 넣었다. 다음 빵은 내가 받았다. 고기에 소스를 바르고 채소랑 같이 아무렇게나 넣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맵고 짭짤하면서 감칠맛이 도는 게 자극적이었다. 달리 말하면 중독적이었다.
*
ㅡ네가 좋아 너무 좋아
내 모든 걸 주고 싶어
서예은이 리메이크한 버전의 벨소리였다. 음식을 오물오물 씹던 서유은이 허둥대며 왼손에서 비닐장갑을 빼고 왼주머니에 손을 넣어 폰을 꺼냈다. 서유은의 표정이 굳었다.
ㅡ너에게만은 내 마음
난 꾸미고 싶지 않아
서유은을 바라보는 정이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아... 저 가 봐야 될 거 같아요...”
백지수가 젓가락을 쥔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먹고 가.”
“아뇨 저 불러서요...”
“부모님이?”
“네... 죄송해요...”
서유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선우가 서유은을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진짜 가?”
“네 저 가야 돼요...”
“으응... 잘 가.”
서유은이 두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요...”
“잘 가.”
백지수가 오른손을 흔들며 말했다.
“유은이 바이.”
정이슬이 두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잘 가.”
“네...”
송선우가 일어나서 두 팔을 벌렸다.
“유은아 언니 한 번만 안아주고 가주라.”
“네...”
서유은이 도도도 다가와 송선우를 껴안았다. 백지수랑 정이슬도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도 될 듯했다. 서유은이 백지수를 껴안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차례를 기다렸다. 서유은이 정이슬을 안고 내게 다가와 나를 꽉 끌어 안았다. 가슴이 뭉개지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자지가 바지 속에서 꿈틀거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서유은은 알아챌까? 걱정스러웠다. 서유은이 뒤로 물러났다. 눈시울이 약간 붉었다. 측은했다. 서유은이 뒷걸음질을 쳤다.
“저 갈게요...”
“... 응...”
서유은이 두 손을 흔들며 뒤로 걷다가 아예 돌아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다 같이 현관까지 같이 갔다. 서유은이 신발을 신고 진짜 가본다고 말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다 다시 잘 가라고 말했다. 서유은이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 다 같이 뒤돌아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정이슬이 입을 열었다.
“유은이 부모님이 엄하신가?”
“그런가 봐요?”
송선우가 답했다.
“으음... 이게 통금이면 좀 너무 빡센 거 같은데.”
“그니까요.”
“뭐 가족끼리 해야 할 거 있던 거 아냐?”
백지수가 자리에 앉으면서 송선우를 보며 말했다.
“음, 그런데 그렇다기에는 너무 사색이지 않았어?”
“중요한 건데 까먹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
“그럼 애초에 왔을 때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그건 또 그렇네.”
정이슬이 콧숨을 내쉬었다.
“그냥 속 시원하게 물어보고 싶다.”
“유은이가 말하기 꺼린 느낌이었잖아요.”
백지수가 말했다.
“그니까. 그래서 못 물어보겠어.”
정이슬이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
“온유 넌 무슨 일인 거 같아?”
“네?”
내가 짐작하는 건 서예은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난잡해서 도저히 정리되지 않았다.
“글쎄요.”
“으음... 나중에라도 물어봐야겠다.”
“월요일에 물어보죠.”
송선우가 말했다. 정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그러자.”
백지수가 플래터를 집어 들어 베어 물었다. 다들 남은 음식을 먹어치운 다음 쓰레기를 정리하고 손을 씻었다. 정이슬이 소파로 가 등을 묻었다.
“아... 너무 잘 먹었다... 고마워 지수야.”
백지수가 미소 짓고 정이슬의 왼편에 앉았다.
“잘 먹었음 됐어요.”
“응.”
정이슬이 나를 바라보고 오른편을 툭툭 쳤다.
“와서 앉아 온유야. 선우도.”
“네.”
선우가 정이슬의 오른편에 앉고 나를 쳐다봤다.
“일로 와.”
“자리 좀 좁아 보이는데?”
“창출하면 돼.”
“아냐 됐어.”
백지수의 왼편에 가 앉았다. 백지수가 왼손으로 내 오른 허벅지를 한 대 쳤다. 왠지 기분 좋아 보였다. 송선우가 백지수를 바라봤다.
“지수야.”
“응?”
“나도 오늘 여기에서 자도 돼?”
“... 너 외박해도 돼?”
“되지 당연히. 친구네인데.”
“그럼 나도 여기에서 자도 돼?”
정이슬이 물었다. 백지수가 눈을 굴렸다가 정이슬을 봤다.
“온유한테 물어보죠?”
“음? 왜? 네 자취방이잖아.”
“그냥요.”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안 된다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마땅히 그 이유로 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이슬이랑 송선우가 내 얼굴만 바라봤다.
“... 안 돼요.”
“왜?”
정이슬이 물었다.
“지수 집이니까요. 제가 맘대로 정하면 안 되죠.”
송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지수가 너한테 선택권을 줬잖아.”
“그래도.”
“음...”
“난 승복할게 온유야.”
송선우가 눈을 크게 뜨고 정이슬을 바라봤다.
“언니가 그럼 내가 뭐가 돼요.”
“네가 너지 뭐야.”
송선우가 피식 웃었다. 어떻게 잘 넘어간 듯했다. 한숨이 쉬고 싶었다. 정이슬이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근데 온유야.”
“네?”
“너 학교는 언제부터 나와?”
“저 목요일일걸요?”
“으응...”
“왜요?”
“그냥 너 없으니까 밴드부 뭔가 허전한 느낌 들어서.”
“오우.”
송선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정이슬이 미소 짓고 송선우를 바라봤다.
“별 뜻 없었어요 언니.”
“있던 거 같은데?”
“음, 굳이 찾으면 고백 멘트 느낌이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
정이슬이 나를 쳐다봤다. 왜 또 날 볼까.
“좀 설렜어 온유야?”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소리예요.”
정이슬이 송선우를 봤다.
“안 설렜다잖아!”
“왜 저한테 그래요.”
“몰라 그냥 탓하고 싶었어.”
오른 허벅지가 꼬집히는 느낌이 들었다. 백지수를 바라봤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눈썹을 올렸다. 백지수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소파에 등을 묻고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두 손으로 잡고 화면을 켰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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