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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29화 (229/438)

〈 229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11)

* * *

2층으로 올라가서 방으로 들어가 서유은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히 침대 위를 무릎으로 기어서 백지수의 두 팔을 잡고 흔들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끄응, 소리를 낸 백지수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왜...”

“일어나.”

“으응...”

백지수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가 왼쪽을 봤다.

“송선우는.”

“밑에 있어...”

백지수가 오른손을 들어 손짓했다. 얼굴을 가까이 했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왼 귀를 잡고 잡아당겼다. 입을 꾹 다물고 귀를 가까이 댔다.

“너 나 잘 때 송선우랑 섹스했어?”

흠칫 놀랐다. 눈이 크게 떠졌다.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어. 몇 시야?”

“여섯 시 넘었어...”

“나 폰 줘봐.”

“응...”

침대에서 내려가 백지수의 폰을 들고 오른팔을 뻗어 건네줬다. 백지수가 양손으로 폰을 잡고 조작했다.

“삼십사 분 있다 온대.”

저녁 얘기를 하는 건가.

“되게 빨리 오네.”

“그러게.”

백지수가 폰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들어 다시 손짓했다.

“왜?”

“둘 깨우게?”

“...”

상체를 숙이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백지수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입술이 맞닿았다. 바로 아래에 정이슬이 있는데 깨면 어쩌려고 이럴까. 발기했다. 백지수가 세 번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 손을 떼줬다. 내가 백지수의 볼을 잡고 두 번 입술을 맞춘 다음 몸을 뒤로 물렸다. 백지수가 싱긋 웃고 정이슬을 바라봤다.

“언니. 일어나.”

백지수가 왼편을 봤다.

“유은아. 일어나.”

백지수가 양옆으로 팔을 뻗어 정이슬이랑 서유은을 잡고 흔들었다.

“다 일어나.”

“으으응...”

“네에...”

정이슬이랑 서유은이 몸을 뒤척였다.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나가봐.”

“응...”

“내려가서 송선우 깨우고.”

“알겠어.”

“선우 언니 밑에 있어요...?”

서유은이 눈을 반쯤 뜨고 백지수를 쳐다보며 물어봤다.

“얘가 그렇대.”

정이슬이 눈을 뜨고 머리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두리번거렸다.

“뭐야 선우 없어?”

“저 밑에 있는데 내려와서 물 마시고 소파에서 자고 있어요.”

“으응... 많이 피곤했나?”

“그런가 봐요.”

백지수가 정이슬이랑 말하는 나를 쏘아보다가 말이 끝나자 입을 열었다.

“내려가서 빨리 선우 깨워.”

“알겠어.”

밑으로 내려갔다. 송선우가 곤히 자고 있었다. 잔 지 얼마 안 됐는데 깨우기 미안했다. 일단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바라봤다. 송선우가 호흡할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진정됐다. 미소가 지어질 것 같았다. 입꼬리를 의식해서 일부러 무표정을 지었다.

“오빠 왜 선우 언니 보고 있어요...?”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헤어드라이어를 쓰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이 살짝 젖은 서유은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 그냥 깨우면 안 될 거 같아서.”

“으음... 그럼 밥 오면 깨울까요?”

“응.”

서유은이 내 왼편에 다가와서 멈춰섰다.

“오빠.”

“응.”

“저 오빠가 만든 초코 라떼 먹고 싶은데 해주실 수 있어요?”

“어? 지금 해줄게.”

“어어... 막 바로 안 해주셔도 돼요...”

“아냐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감사해요...”

주방으로 가서 양손 검지랑 중지를 써 손잡이를 잡아 컵을 내게 꺼냈다. 내 왼편에 붙어 졸졸 따라다니던 서유은이 두 손을 뻗어왔다.

“도와드릴까요...?”

피식 웃었다.

“아냐 괜찮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서유은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오빠는 안 드세요...?”

“하난 내 거야.”

“그럼 다른 한 명은요...?”

“선우는 아직 자고 있으니까.”

“아... 근데 그냥 지금 하시는 게 편하지 않아요...?”

“그렇긴 해.”

“그럼 지금 하시는 게 낫지 않아요...?”

“당장 안 깨워도 만들어 두는 건 되니까요...”

미소 지었다. 냉장고에서 초코 소스를 만들 재료들을 꺼내고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내 편의 안 봐줘도 되는데.”

“아...”

서유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해요...”

냄비에 생크림을 넣었다.

“죄송할 건 아니고. 무안하게 하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

설탕이랑 다크초콜릿을 넣고 불을 켜 레버를 돌려 약불로 바꿨다.

“아니에요...”

“고마워 생각해줘서.”

“...”

거품기로 슬슬 섞었다. 달콤한 향이 확 풍겨왔다.

“유은아 이거 섞어줄래?”

“네, 네!”

서유은이 왼편에 딱 붙었다. 백지수랑 송선우에게서 맡았던 샴푸 향이 풍겨왔다. 아찔했다. 오른손에 든 거품기를 넘겼다. 서유은이 냄비에 시선을 고정하고 손목을 돌려 거품기로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섞었다. 살폿 웃었다.

“고마워.”

서유은이 나를 쳐다보면서 눈웃음 지었다.

“히. 제가 더 감사해요.”

미소로 답하고 물러나서 수건을 찾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스팀완드를 감싸서 잠깐 틀었다. 1000ml짜리 스테인리스 스팀피쳐를 꺼내 우유를 붓고 공기를 주입했다. 스팀피쳐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서유은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조금 있다 끄면 되겠다.”

“앗, 네.”

서유은이 슬슬 섞다가 초코 소스가 잘 녹았을 때 불을 껐다. 왼손으로 냄비를 들고 테이블로 가 컵의 옆면에 초코 소스를 흘렸다. 초코 소스가 천천히 내려가고 바닥에 깔렸다. 서유은이 감탄했다.

“벌써 맛있어요...”

피식 웃었다.

“무슨 의민지 전달됐어.”

서유은이 히죽 웃었다.

“그쵸.”

“응.”

컵에 초코 소스를 다 넣고 스팀 밀크를 적당히 나눠 부은 다음 섞어줬다. 초코 라떼 위에 휘핑크림을 올려 양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마셔봐도 돼요...?”

“응.”

서유은이 유리 머들러를 가져와 빠르게 내용물을 섞어버리고 나를 쳐다봤다.

“왜?”

“이거 어떡해요?”

“그냥 다른 잔에 놓으면 되지.”

서유은이 멋쩍게 히 웃었다.

“혹시 몰라서요.”

서유은이 머들러를 다른 컵에 넣고 자기 잔을 양손으로 들었다.

“감사해요.”

“응.”

“근데 오빠 진짜 너무 친절해요.”

서유은이 재빨리 다시 입을 열었다.

“콩깍지 같은 거 아니에요.”

“아냐 나 따지고 보면 별로야 되게.”

“너무 겸손이에요.”

서유은이 잔을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다가 도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왜 안 마셔?”

“이대로 다 마셔버리기 전에 언니들 불러오려고요.”

웃었다.

“너 말 진짜 예쁘게 한다.”

서유은이 살폿 웃었다.

“오빠한테는 못 이겨요.”

서유은이 뒤돌아서 다다다 달려 계단을 올라갔다. 의자에 앉아 컵을 하나 잡고 가만히 내려봤다. 이내 계단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봤다. 서유은이 나를 바라보며 달려와 의자를 꺼내 앉고는 자기 잔을 양손으로 잡아 들었다. 저장해놓은 도토리를 찾아 두 손에 소중히 쥐는 다람쥐처럼 보였다. 웃었다.

“왜 웃어요...!”

“너 다람쥐 같아서.”

“...”

서유은이 콧숨을 내쉬었다. 미소 지었다.

“왜 그래.”

“그냥 동물에 비유될 때 맨날 작은 동물에 비유돼서요...”

“으응... 상처가 될 수도 있구나. 미안해.”

“아뇨 오빠 잘못 아니에요...”

“... 너 진짜 자격지심 안 가져도 된다니까.”

“흐응... 근데 제가 맘먹은 대로 안 돼요...”

“... 안 되겠다. 너 자존심 회복할 때까지 맨날 너 옆에서 칭찬 퍼부어줄 사람 있어야겠어.”

서유은이 미소 지었다.

“그거 완전 오빠잖아요. 칭찬 폭격기.”

피식 웃었다. 주변시야로 백지수랑 정이슬이 계단에서 내려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서유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백지수가 의자를 꺼내 앉아서 나를 쏘아봤다.

“왜 선우 안 깨웠어?”

“너무 곤히 자서. 미안.”

정이슬이 백지수 오른편에 있는 의자에 앉으려다가 어정쩡하게 섰다.

“내가 선우 깨울까?”

“아뇨 저 밥 오면 깨울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냐 선우 일어나면 자기 혼자만 재워둔 거 섭섭해할 수도 있어.”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가 깨울게.”

정이슬이 바로 소파로 달려가 송선우 앞에서 멈춰섰다. 정이슬이 무릎을 꿇더니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선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 일어나아아아아아아아.”

“아...”

탄식을 한 송선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언니... 저 일어났어요...”

정이슬이 미소 지었다.

“응. 다 일어났어. 주방으로 와.”

“알겠어요...”

“내가 손 잡아줄까?”

“네...”

송선우가 다리를 소파에서 내리고 두 손을 내밀었다. 정이슬이 일어나서 양손으로 송선우와 깍지끼고는 뒤로 당겼다. 송선우가 일어나서 정이슬과 걸어왔다. 정이슬이 백지수 옆으로 가고 송선우가 서유은 옆에 가 앉았다. 서유은이 송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니 언제 내려와서 잔 거예요?”

“나... 별로 안 됐어.”

서유은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어! 근데 저도 중간에 깨서 소파에서 잤는데 일어나니까 침대였어요!”

정이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 소리야?”

“그냥 말 그대로예요.”

“어?”

정이슬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유은을 봤다. 백지수가 나를 째려봤다. 뭔가 오해를 살 느낌이었다. 정이슬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유은이 소파에서 자서 제가 침대로 옮겨줬어요.”

“음... 근데 너 왼팔도 아프잖아.”

“아프진 않아요.”

“그래도. 붕대도 감았는데.”

서유은의 두 눈이 측은해졌다.

“죄송해요 오빠...”

“아냐 걍 자게 두면 됐는데 내가 한 거니까 안 미안해해도 돼.”

“그니까.”

백지수가 까칠한 투로 툭 말했다.

“지 혼자 고생 자처한 거잖아. 왜 미안해해.”

정이슬이 미소를 머금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옆으로 몸을 기울여 백지수를 껴안았다.

“온유야 지수 화났잖아. 빨리 사과해.”

“아뇨 저 안 화났어요.”

정이슬이 백지수를 바라봤다.

“그럼 웃어주라. 너 웃는 거 보고 싶어.”

백지수가 어깨를 흔들었다.

“아 안 화났어요.”

“웃어줘 그럼.”

“재밌는 것도 없는데 왜 웃어요.”

“그냥 웃어주면 풀어줄게.”

백지수가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 지었다. 정이슬이 백지수를 놓아줬다. 분위기가 한결 풀린 듯했다.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눈웃음을 지었다가 시선을 돌렸다.

고맙긴 한데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사소한 고민이 하나 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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