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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20화 (220/438)

〈 220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2)

* * *

두드드, 오른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백지수가 입술을 떼고 하아, 하, 하고 숨 쉬면서 나를 노려봤다.

“하아... 뭐야?”

“봐야 돼.”

“봐.”

“응...”

오른손으로 폰을 꺼내고 고개만 돌려서 누군지 봤다. 정이슬이었다. 백지수가 나를 째려봤다.

“둘이 평소에 연락해?”

“그, 이슬 누나가 연락하라고 해서 억지로...”

“아 존나 너 연락하는 여자 몇 명이야.”

“... 별로 없어...”

“열 명 업다운.”

“그 기준이 뭐야...?”

“그냥 문자랑 전화 맘대로 하는 거지. 씹는 거 안 하고.”

“...”

“열 명 업다운.”

“그... 다운일걸...?”

“진짜 신뢰감 좆도 없네 개새끼.”

진동이 끊겼다. 곧바로 다시 폰이 울렸다. 백지수가 한숨 쉬었다.

“스피커폰으로 받아.”

“응...”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ㅡ온유!

“네 누나...”

ㅡ왜 이렇게 늦게 받아?

“그냥 저 자고 있었어요...”

ㅡ으응... 나 지금 유은이랑 같이 있는데 너 보러 가도 돼?

“네?”

ㅡ너 지금 지수네 별장에 있어?

백지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누나...”

ㅡ지수네 별장에 있구나?

“... 올 생각이에요?”

ㅡ지금 버스타러 가고 있어 우리.

“아니...”

ㅡ어 너 지금 한숨 쉬어서 유은이 흠칫 놀랐잖아.

“...”

ㅡ유은이 바꿔줄까? 아니 바꿔줄게.

서유은이 아, 어어, 저 괜찮은데,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이슬이 그냥 말해,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서유은이 언니이,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백지수가 조용히 한숨 쉬었다.

ㅡ오, 오빠...?

“응 유은아.”

ㅡ저 가면 안 될까요...?

백지수를 봤다. 백지수가 고개 저었다.

“안 될 거 같아...”

ㅡ... 알겠어요...

유은아 폰 줘봐, 라고 정이슬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ㅡ야 이온유 너 유은이 울릴 거야?

“... 유은이 울어요?”

ㅡ지금 엄청 울상이야.

ㅡ저 울상 아니에요...

ㅡ아냐 누가 봐도 울상이야 너 지금.

정이슬은 도저히 믿음이 안 갔다. 서유은도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았다. 그냥 둘 다 믿을 수 없었다.

ㅡ언니 조금만 목소리 줄여주세요...

ㅡ알겠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누나 유은이 진짜 울 거 같아요? 거짓말 같은 거 하지 말고요.”

ㅡ진짜라니까.

ㅡ거짓말이에요...

ㅡ유은이가 거짓말하는 거야. 눈물 사진 찍어서 보내줄 수 있어.

ㅡ어, 언니...!

ㅡ어 너 소리 지르지 말랬으면서 왜 나한텐 소리 질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ㅡ저거지. 가자 가자.

버스 카드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

ㅡ우리 지금 버스 탔어.

ㅡ언니가 제 손목 잡고 끌었어요...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쳐다봤다. 입이 벌어진 모습이 어이없어 보였다.

ㅡ보러 갈게 온유야.

ㅡ멋대로 가서 죄송해요 오빠...

“... 아냐 괜찮아.”

백지수가 고개를 내려 나를 째려봤다. 살짝 억울했다.

ㅡ히. 고마워 온유야.

ㅡ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백지수가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빨리 전화를 끊고 살려달라고 말해야 할 듯했다.

“그럼 누나랑 유은이 언제 오는 거예요?”

ㅡ대충 20분 정도 걸린다는데?

“알겠어요.”

ㅡ막무가내로 맘대로 가버려서 미안해. 문자랑 톡 보내고 디엠도 보냈는데 안 봐서 그냥 강행하기로 해버려서.

“네.”

ㅡ많이 삐쳤어?

“그런 건 아니고요.”

ㅡ으응... 미안해.

“괜찮아요.”

ㅡ고마워. 사랑해 온유야.

ㅡ언니...?

백지수가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기울여와 두 손으로 내 멱살을 잡았다. 침대가 조용히 삐걱거렸다. 소리가 잘 안 나서 다행이었다.

ㅡ어 뭔 소리 들렸는데?

“착각일 거예요.”

ㅡ유은아 들었어?

ㅡ뭐 들은 거 같긴 해요...

“뭐 없어요 누나.”

ㅡ그래?

“네.”

ㅡ그래 그럼...

“더 할 말 있어요?”

ㅡ딱히 없는데. 그래도 도착할 때까지 전화하면 안 돼?

백지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 돼요. 저 씻어야 돼요.”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서유은인 듯했다. 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은 정이슬인 듯했다.

ㅡ아 씻는 건 인정이지.

“네. 이따 봐요.”

ㅡ응.

전화를 끊었다. 백지수가 한숨을 쉬었다.

“씨발 섹스도 못하겠네...”

웃음이 나왔다.

백지수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쏘아봤다.

“웃어?”

“죄송해요.”

“아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미안해.”

“내가 미안이라고 말하지 말랬지.”

“근데 할 말이 그것밖엔 없어.”

“그냥 애초에 미안할 짓을 하지 말라니까?”

“이건 이슬 누나가 그냥 오는 거잖아.”

“그니까 이게 네가 애초에 이슬 언니를 처꼬셨으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냐!”

“...”

“아 씨...”

백지수가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이고 자기 오른발을 내려봤다.

“존나 유은이도 너 좋아하는데 걔도 막 달려드는 거 아냐?”

“유은이가 그럴까?”

“아 몰라 존나 진짜...”

백지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밑으로 쭉 내려 마른 세면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야.”

“응?”

“너 존나 정이슬이랑 서유은이 너 덮치면 둘이랑도 처사귈 거냐?”

“아니... 근데 정이슬이라고요...?”

“말실수. 순간 개빡쳐서.”

“...”

“그래서 둘이랑도 섹스하고 사귈 생각 있냐고.”

“...”

“존나 있나 봐?”

“그게 아니고... 그냥 확실하게 말하기엔 이미 세은이 있는 상태에서 너도 받았고 이젠 송선우도 있으니까 나도 내가 뭐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

“그럼 네 좆 서면 박아보고 그대로 사귈 거라고?”

“그런 건 아니지...”

“그럼 뭐 어떡한다는 건데.”

“그냥 최대한 밀어낼게...”

“...”

백지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근데 할 거면 너 존나 비호감으로 보이게 해. 철벽치고 말 끊고 무시하고 개지랄 다 해.”

“그건 좀 아니지 않아...?”

“그래. 존나 아닌 거 같은 짓 다 해서 정떨어지게 하라고.”

“...”

“알겠어?”

“... 노력할게.”

“어. 나 땀나서 씻어야 되니까 비켜봐.”

“응...”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백지수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눈을 찡그렸다. 백지수가 다리를 오므리고 오른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아 씨발...”

“왜 그래?”

“아니 나 갑자기 허벅지랑 허리 존나 아파 지금...”

“... 어떡해...?”

“아 몰라 씨발...”

백지수가 침대 위를 걷다가 바닥으로 내려오고 침대에 걸터앉더니 몸을 살짝 숙였다.

“아... 존나 아픈 체위도 안 했을 건데...”

“... 아픈 체위는 어떻게 알아요?”

“존나 찾아봤으니까 알죠 병신아...”

“... 너 진짜 야하다...”

“씨발 내가 그렇게 야하게 보였으면 김세은 말고 날 따먹었어야지 뭐 존나 툭하면 야하대...”

뭐라 답할 말이 없었다.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봤다. 입을 열었다.

“왜?”

백지수가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게 오른손을 들고 검지를 까딱였다. 다가가서 허리를 살짝 숙이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백지수가 두 손으로 내 목덜미를 붙잡고 입술을 포개왔다.

“하움... 쮸읍... 츄릅... 츄읍...”

백지수가 손을 떼고 두 손으로 내 쇄골을 툭 쳤다. 뒤로 물러났다. 백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를 쳐다봤다.

“근데 너 송선우랑 섹스하고 양치했지?”

“했어.”

“다행이네. 존나 간접키스 조질 뻔했는데.”

피식 웃었다.

“웃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표정 짓기 전에 생각하고 해라.”

“알겠어.”

“... 그래. 내려가서 송선우나 깨워.”

“응.”

“아 진짜 좆 같네. 입술 대 이온유.”

허리를 살짝 숙였다. 백지수가 내 얼굴을 잡았다. 입술을 맞댔다. 가볍게 입술만 맞추다가 혀를 넣었다.

“츄릅... 쮸읍... 츄읍... 하움... 됐어.”

됐어, 라고 말했다고 바로 뒤로 물러나면 왠지 서운해할 것 같았다. 그냥 계속 입술을 맞췄다. 백지수가 눈웃음 지었다. 정답이었던 듯했다.

“츄읍... 쯉... 진짜, 헤웁... 이제 진짜 됐어.”

두 번만 더 입술을 맞추고 머리를 뒤로 했다.

“응...”

몸을 똑바로 세웠다. 허리가 아팠다. 싱긋 웃은 백지수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뒤돌아 백지수 방을 나서고 1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송선우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다가가서 배 옆쪽에 걸터앉고 오른손을 뻗어 송선우의 왼 볼을 쓰다듬었다.

“선우야.”

송선우의 눈가가 떨렸다.

“선우야.”

송선우가 고개를 돌려 얼굴이 천장을 향하게 하고 작게 입을 열었다.

“응...?”

“깼어?”

“응...”

송선우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비몽사몽해보였다.

“어떻게 됐어...?”

“잘은 모르겠어. 근데 일단 느낌만 따지면 좀 잘 된 거 같아.”

“으응...”

송선우가 미소를 머금었다.

“잠깐 귀 대봐 온유야.”

“응.”

오른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잡고 몸을 숙여 송선우의 얼굴 가까이에 오른 귀를 댔다. 송선우가 두 팔을 뻗어 나를 안았다. 소리는 안 나는데 입김이 닿아서 귀를 간질였다. 피식 웃었다.

“뭐야.”

송선우가 킥킥 웃었다.

“그냥 장난.”

“나 간지러워.”

“알겠어.”

“빨리 말해줘.”

“응...”

송선우가 입김을 후 불었다. 목이 부르르 떨렸다. 고개를 돌렸다. 송선우가 히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근데 너 진짜 예쁘다.”

“고마워.”

미소 지었다. 송선우가 내 등에서 두 팔을 빼고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았다.

“온유야.”

“응.”

“만약에 안 되면 우리 몰래몰래 만나자.”

눈이 크게 떠졌다. 등줄기로 소름이 타고 흘렀다.

“응...?”

송선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세은이랑 지수 모르게 만나자고.”

“...”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하얬다. 입을 열었다.

“모르게 만나는 건 안 돼...”

“왜?”

“아니 난...”

말이 안 나왔다. 바보라도 된 듯 생각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넌 그래도 돼...?”

“그래도 되냐니?”

“나랑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게 되는 건데... 만족 못할 수도 있잖아...”

“아냐. 난 그게 오히려 더 좋은 거 같은데?”

“그게 왜...?”

“어차피 너랑 만나는 애들 다 너랑 사귀는 거 숨겨야 할 건데 세은이랑 지수는 둘이 그냥 똑같은 네 여자친구고 난 하나밖에 없는 네 비밀 여친인 거잖아.”

“... 그런 관점이 가능하구나...”

“나 똑똑하지.”

“어... 그런 거 같아...”

“흫.”

송선우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내 입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 도로 베개에 머리를 벴다.

“난 그냥 너만 있으면 돼 온유야.”

“... 고마워...”

송선우가 미소 지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웃음이었다.

한 번만 더 이기심을 부려야 할 듯싶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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