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1)
* * *
송선우가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반 쯤은 감겨 있는 게 많이 졸려 보였다.우느라 진이 빠진 건가. 입을 열었다.
“자고 싶어?”
송선우가 배시시 웃었다.
“응...”
“자 그럼.”
“내가 소파에서자고 있음 지수가 무슨 생각하겠어...”
“괜찮아.나 올라가서 지수한테 말할 거야.”
“... 그래...?”
“응.”
“... 그럼 나도 너랑 같이 가서 얘기해야 하는 거 아냐...?”
“아냐. 내가 다 책임질게.”
송선우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고 두 팔을 벌려 내 목을 와락 껴안고 입술을 포개왔다. 혀를 섞었다.
“하움... 쮸읍... 츄읍... 헤웁... 츕...”
송선우가 입술을 떼고 내 얼굴을 바라봤다.
“사랑해 온유야...”
눈웃음 지었다.
“나도 사랑해.”
송선우가 빙긋 웃었다. 다시 입술이 덮쳐졌다. 한동안 키스하다가 송선우가 입술을 쪽 맞추고 얼굴을 멀리 했다.
“그럼 나 그냥 자...?”
“응. 너 깨기 전까지 내가 어떻게든 허락받을게.”
“흐흫. 진짜?”
“응. 근데 너 지금 웃는 거 완전 유치원생 같았어.”
“유치원생 같다니?”
“내가 아는 애가 딱 방금 너처럼 웃어서.”
“으응... 나처럼 예쁜 애야?”
피식 웃었다.
“귀여웠어.”
“크면 예쁠 거 같아?”
“뭘 그런 걸 생각해.”
“그냥 궁금해서.”
“예쁠 거 같아.”
“얼마나 예쁠 거 같은데?”
웃었다.
“너 지금 진짜 유치한 거 알아?”
“흫. 알아. 지금뭔가 약간 애 된 느낌이야.”
“그래?”
“응. 너랑 있어서 그런가?”
“나랑 있을 때마다 애 되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남들이랑도 같이 있을 땐 안 그래. 너랑만 있어서 이러는 거지.”
“그럼 다행이고.”
송선우가 히히 웃었다. 마주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이제 자.”
“알겠어.”
송선우가 쿠션을 베개 삼아 소파에 누웠다. 의자를 가져와 송선우의 머리 옆에 앉았다. 송선우가 눈을 깜빡이면서도 나를 쳐다보면서 시선을 맞췄다. 송선우가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나 좀 쓰다듬어주라...”
“응...”
오른손을 뻗어 송선우의 왼 볼을 쓰다듬고 귀를 만졌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송선우가 은은히 미소 짓고 눈을 감았다. 사랑스러웠다. 한동안 송선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손을 뗐다. 송선우가 새근새근 숨 쉬었다. 송선우의 봉긋하고 예쁜 가슴이 자연스레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갔다. 확실히 잠든 것 같았다. 이제 올라가서 백지수에게 내 새로운 죄를 고백해야 했다. 한숨이 나왔다. 일어서서 뒤돌아 계단을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고 백지수 방으로 들어갔다. 1층 거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모르는 백지수가 세상 흡족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깨우기도 미안했다. 앞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야 하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내 마음을 고백해야 하니 더 미안했다.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 백지수를 바라봤다가 침대 위로 두 다리를 올려서 양반 다리를 했다. 왼손을 뻗어 백지수의 오른 볼을 쓰다듬었다. 백지수의 눈두덩이가 떨렸다. 곧 백지수가 눈을 얕게 뜨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백지수가 미소 지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백지수가 두 팔을 벌려왔다. 몸을 낮춰 백지수를 안았다. 백지수가 내 왼 귀에 입을 대고 입술로 이를 감싸서 귓불을 오물거리다가 입김을 후 불었다. 간지러워서 킥킥 웃었다. 백지수가 히히 웃고 내 왼 볼에 입을 맞추고는 내 얼굴을 마주 보다가 눈을 감고 옆으로 누워 오른손을 침대에 댔다. 다시 자면 안 되는데.무슨 말을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데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너 왜 옷 입었어... 또 안 할 거야...?”
웃음이 나왔다. 백지수는 일상적으로 야했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침대를 더듬다가 내 오른 허벅지에 손을 댔다. 손이 그대로 위로 올라와 내 자지를 건드렸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씁쓸하게 웃고 오른손으로 백지수의 오른손등을 포갰다.
“나 고백할 거 있어.”
“응?”
백지수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크게 떴다.
“고백?”
“응...”
“너 김세은 얘긴 이미 했어. 술 취해서 까먹었어?”
“그 얘기 아니야...”
백지수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뭔데.”
백지수가 두 손으로 침대를 짚어서 상체를 일으켰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1층에 송선우 있어.”
“어? 걔가 왜 있는데? 네가 들여보냈어?”
“아니... 나 들어올 때 까먹고 현관문 안 잠갔는데 송선우 여기 와서 담 넘고 문 열려 있어서 들어왔대...”
“존나 미쳤네 송선우.”
“...”
“그래서 뭐 어떻게 된 건데?”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일단 약속해줘.”
“싫어. 걍 말해.”
“... 말 다 들어줘.”
“알겠으니까 그냥 말해.”
“응... 내가 일단 자고 있었잖아, 근데 느낌 좀 이상해서 깼는데 몸이 무거웠어. 눈 떠보니까 송선우가 내 몸 위에 있었어.”
“침대에서 그랬다고? 진짜 미친년인가?”
멋쩍게 웃고 고개 저었다.
“나랑 너 자고 있는 사이에 와서 내가 너 안고 자고 있는 모습 보고 나랑 너 떨어뜨리고 싶어서 나 업어서 소파에 눕혔대.”
“그래서 어쨌는데.”
“그래서... 걔가 또 키스했어...”
“아 씨발 진짜... 너 그런 거 아예 못 피해?”
“... 미안...”
“미안은 존나...!”
백지수가 두 손으로 이불을 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러 갈래로 주름이 생겼다. 백지수가 한숨 쉬었다.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그담엔 어쨌는데.”
“나 숙취 있기도 했고 금방 자다 깨서 막 안 될 거 같아 가지고 송선우 껴안고 몸 굴려서 소파 아래로 같이 떨어졌어. 근데 내려온 게 크게 의미가 없었어.”
“... 그래서.”
“송선우가 울어 가지고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자기 전부인데 뺏겼으니까 울 수밖에 없다고...”
백지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뭔 개소리야 네가 언제 걔 거였는데?”
“... 그냥 날 엄청 좋아했다는 뜻이야...”
“아니 그건 나도 알아.”
“...”
“뭐 뒤에 더 있어?”
“응...”
“빨리 말해 나 지금 존나 그라데이션으로 점점 빡쳐서 다 듣기도 전에 미치겠으니까.”
“그, 송선우가 나 포기 못 하겠다고 말하고 내가 안 된다고 하니까, 송선우가 우리 사진 다 찍었다고 하고 섹스 한 번 해주면 지운다고 말했어.”
“존나 개 씨발 년이네. 존나 제멋대로 집 처들어와서 협박을 해?”
“아니 그게 아냐...”
“뭐가 아니긴 아니야 씨발 병신아. 너 호구야?”
“들어봐...”
“내가 뭘 얼마나 더 들어야 되는데!”
“... 지수야...”
“아...”
백지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씨발... 말해...”
“... 고마워...”
“빨리 말하기나 하라고.”
“응... 송선우랑 섹스하고...”
“콘돔 썼지?”
“응...”
“다행이네...”
“...”
“이어서 말해.”
“... 걔가 아파서 눈물 흘린 거 보고, 옛날이랑 요즘 기억 다 주마등처럼 스쳐서 눈물 흘렀는데, 송선우가 내 얼굴 보고 왜 우냐고 그랬어. 네 맘 외면해와서 그게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걔가 나 키스하고 사실 사진 같은 거 찍은 거 없다고, 억지로 해서 미안하다고 해서 일어날까라고 물었어.”
“그나마 양심은 있네.”
“... 근데 내가 걔 손목 붙잡고 억지로 한 거 아니라고, 나 너 좋아한다고 말했어,”
“뭐?”
백지수가 두 손을 얼굴에서 떼고 나를 바라봤다.
“걔 보지에 자지 꽂은 상태에서?”
“... 응...”
“뒤지고 싶냐 씨발아?”
“...”
“개 미친 새끼가. 아...”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
“내가 왜 이런 개새끼랑 사겨서...”
“... 미안해...”
“존나 내가 미안해가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처말했는데, 존나 씨발 언제 알아듣는 건데 미친 새끼야...”
“...”
“그래서 그담엔 뭐 어떡했는데.”
“나 쓰레기라고 고백했어. 원래 김세은이랑 사귀면서도 책임지는 게 무서워서 좋아한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안 했다가 최근에 했고, 요즘 힘든 일 많아져서 너한테 의지해서 양다리 걸쳤다고. 그만큼 이기적인 놈이라고.”
“잘 아네.”
“... 미안.”
백지수가 손을 치우고 눈을 마주쳐왔다.
“존나 미안이라고 처말하지 마라.”
“... 응...”
“이어서 말해.”
“나 일그러진 놈이라서 김세은이랑 백지수 동시에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너한테 사랑받을 자격 하나도 없는 놈이라고 말하고,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
“그래서 걔가 너 사랑한대?”
“응...”
“좆 됐네 진짜... 너 그럼 지금 걔랑도 사귀려고 허락받으려는 거지.”
“... 어떻게 알았어...?”
“네가 그러니까 개 씨발아.”
입을 열었다가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갈 뻔해서 도로 다물었다. 자세히 보니 백지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제 김세은이랑 사귀고 있었다는 걸 고백했을 때보다는 덜 떠는 듯했다. 그래도 많이 화난 건 매한가지였다.
“너 존나 더 늘릴 거냐?”
“... 몰라...”
“더 늘어날 거 같아?”
“그게...”
“하아... 온유야.”
“응...?”
“여기선 그럴 거 같아도 아니라고 하는 거야.”
“... 네...”
“더 늘어날 거 같아?”
“... 근데 거짓말은 하면 안 되잖아...”
“씨발. 그럼 더 늘릴 거야?”
“... 아... 니요...”
“아 진짜 존나 좆 같게 하네.”
백지수가 두 손으로 침대를 한 대 내려치고 두 손을 뻗어와 내 목을 붙잡았다. 입술이 덮쳐졌다. 혀가 들어왔다.
“하움... 쯉... 츕... 헤웁... 쮸읍... 츄릅... 츄읍...”
숨 쉴 틈도 제대로 주지 않는 배려심 없는 키스였다. 이 정도로만 복수하고 용서해주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눈을 감고 받아들였다. 순간 몸에 있는 액체라는 액체는 다 여자한테 뺏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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