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강간 아다 따였습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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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스팸, 베이컨, 당근, 양파를 잘게 다졌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을 킨 다음 파를 먼저 넣어 파기름을 내고 채소랑 고기를 넣어줬다. 소금을 약간만 넣고 후추를 뿌려 나무 주걱으로 슬슬 섞으면서 볶아주다가 숟가락을 꺼내 한 입 먹어봤다. 밥을 넣는 걸 생각하면 간이 약간 심심한 듯했다. 소금을 조금만 더 넣고 섞은 다음 즉석밥을 두 공기 넣어 주걱 끝으로 으깨주고 잘 섞어줬다. 그릇에 계란을 다섯 개 까고 소금을 넣은 다음 우유를 살짝만 부었다. 다른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두르고 손잡이를 들어서 팬 전체에 기름이 묻게 손목을 돌렸다. 도로 가스레인지에 팬을 내려놓고 다시 나무 주걱을 들어 볶음밥을 섞어줬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불을 올리고 버터를 조금만 잘라 넣었다. 약불로 바꾸고 계란물을 반만 넣은 다음 왼손으로 팬 손잡이를 잡아 살살 흔들면서 길이가 긴 나무젓가락으로 계란을 약하게 휘저었다. 볶음밥을 나무 주걱으로 한 번 빠르게 섞어주고 불을 껐다. 오믈렛을 만드는 팬을 기울여서 계란이 측면에 모이게 했다. 나무 주걱으로 끝을 조금씩 누르면서 모양을 긴 반원 형태로 만들었다. 볼이 깊은 흰 접시에 볶음밥을 반 담아주고 완성한 오믈렛을 올리고는 뚜껑을 덮었다. 오믈렛 팬에 다시 기름을 두르고 버터를 잘라 넣어 불을 켜고 약불로 줄였다. 다른 팬을 꺼내 물이랑 돈까스 소스, 굴소스, 케찹, 알룰로스를 넣은 다음 불을 켰다. 오믈렛 팬에 남은 계란물을 다 넣고 팬을 살살 흔들면서 나무젓가락으로 휘저었다. 소스는 끓어올랐을 때 불을 약하게 줄이고 숟가락으로 휘저어주고 불을 껐다. 아까랑 똑같이 오믈렛을 만들고 볼이 깊은 흰 접시에 볶음밥을 담은 다음 오믈렛을 올렸다. 다른 접시에 올린 뚜껑을 빼고 소스를 균등하게 부었다. 폰을 켜 백지수에게 전화 걸었다. 바로 연결됐다.
“내려오세요.”
ㅡ네.
“전화 끊습니다.”
ㅡ끊으세요.
“넵.”
전화를 끄고 접시 앞에 숟가락을 하나씩 놓은 다음 컵 두 잔을 테이블에 올려 뒀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고 자리에 앉은 다음 옆 의자를 꺼내놓았다. 발소리가 들려서 계단을 봤다. 검은 브라에 검은 레이스 팬티만 입은 백지수가 계단을 내려오고 가슴을 출렁거리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백지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열었다.
“술 안 마셔?”
“마실 거야?”
“난 너 마시면 마시고.”
백지수가 내 왼편에 앉고 테이블에 왼팔을 댄 다음 왼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봤다.
“안 마셔도 돼?”
“난 너 있음 될 거 같은데.”
백지수가 입꼬리를 올리고 오른손을 들어 내 왼 볼을 장난스럽게 꼬집었다.
“너 왜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해?”
“너한테 배워서?”
백지수가 히 웃었다.
“진짜 존나 기특하네.”
“고마워.”
“근데 한편으론 좆 같은 것도 있어.”
“왜?”
“너 존나 나한테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여자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잖아. 그래서 존나 송선우랑 이슬 언니도 홀려 가지고 키갈한 거고.”
“... 미안해...”
“됐어 이 개자식아.”
백지수가 가볍게 입술을 포개고 일어섰다. 뭐 하려는 걸까. 계속 눈으로 좇아서 보는데 백지수가 냉동고를 열고 온더락 잔을 두 잔 꺼내 얼음 세 개씩 넣었다. 그러고는 맥캘란을 가져와 부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거 우리 오빠가 준 거 맞지.”
“응...”
백지수가 맥캘란 뚜껑을 닫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자리에 앉아 잔을 들어 눈앞으로 올렸다.
“갑자기?”
“술은 갑자기지.”
나도 잔을 들어서 살살 부딪었다. 조금만 홀짝 마시고 숟가락을 들었다. 오므라이스를 우물거렸다. 백지수가 오므라이스를 먹고 맥캘란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야.”
“응?”
“너 근데 어쩔 거야?”
“어쩔 거냐니?”
“김세은이랑 나. 존나 둘 동시에 사귀는 게 말이 되는 건 아니잖아.”
“...”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백지수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맥캘란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근데 나 김세은이랑 너 둘 중 한 명도 포기 못하겠어.”
“아니 그건 알겠어. 근데 여기가 대한민국이잖아, 무슨 존나 중동 국가가 아니라.”
“...”
“결혼식 안 하고 사실혼으로 다 같이 살 거야? 그럼 나랑 김세은이 너 공유하면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살 수 있을 거 같아?”
“...”
“막말로 어떻게 사이좋게 지낸다고 해도 사람들한테 들키면 어떡할 건데? 기적 같이 안 들킨다 해도 애 낳을 때 되면 어떡할 건데? 애 안 가지면 된다는 말하면 뒤져.”
“... 그런 말 안 해...”
“다행이네.”
백지수가 맥캘란을 한 모금 마시고 진지한 안색을 한 채 나를 쳐다봤다.
“나 네 애 무조건 낳을 거야.”
“... 응...”
“... 너 김세은한테도 고백했다매. 걔는 어떻게 한다고 말한 거 없어?”
“별로 없었어... 아, 항상 자기를 첫째로 생각하고 대하라고만 말했어.”
“그래?”
“응...”
“그래서 걔를 우선시하겠다?”
“...”
“난 뒷전으로 제치고?”
“그런 건 아니지...”
“나도 동등하게 대해.”
“...”
“못해?”
“잘 할게...”
“잘 할게가 아니라, 동등하게 대하라고.”
“...”
“아 진짜 존나 답답하네. 너 나 사랑 안 해?”
“사랑해...”
“그럼 나한테만 사랑 바칠 수 있는 거 아니면 존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해야 할 거 아냐.”
“... 알겠어...”
“말꼬리 흐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 알겠어.”
“사랑한다고 해봐.”
“사랑해 지수야.”
백지수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왼 볼에 입술을 쪽 맞춘 다음 손을 놓고 도로 앉았다.
“나도 사랑해 이 빌어먹을 새끼야.”
웃음이 나왔다.
“웃어?”
“네가 웃게 해줘서 웃었어.”
“하여튼 말은 존나 쓸데없이 예쁘게 해요.”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
“하... 진짜 씨발...”
“왜?”
“너 존나 잘생겨서 그런가 네 얼굴만 보면 화가 잘 안 나.”
“너도 진짜 예뻐.”
“하아... 아 진짜 존나 누가 타임머신 안 만드나?”
“왜?”
“과거로 가서 김세은이 너 따먹기 전에 너 덮치게.”
픽 웃었다.
“그럼 1학년 때인데 그때 너 나 좋아했어?”
“네, 개 좋아했어요 씨발 놈아.”
“그냥호감 말고 막 남자로 좋아했다고?”
“어 이 말귀 못 알아먹는 새끼야.”
“미안해.”
“아 존나...”
백지수가 두 팔을 테이블에 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가 미워진다 진짜...”
“왜?”
“아니이...”
백지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나 지금 진짜 존나 개 빡쳐야 되는데 화가 막 안 나서 밉고, 너 존나 울상지을 때마다 내가 잘못한 거 같아서 미워져 씨발...”
반사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두 팔을 벌려서 백지수를 안았다.
“나 씨발 나중에 부모님이랑 오빠한테 어떻게 말해...”
“...”
“존나 친구 하나랑 남자친구 공유한다고 고백해야 돼?”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너 우리 아빠랑 오빠가 알면 너 진짜 적어도 반은 뒤질 거 알아?”
“... 알아...”
“알면 왜... 하...”
“...”
왼손으로 백지수의 등을 쓸었다. 기분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아 됐어. 밥 먹어.”
“... 너 괜찮아...?”
“몰라 일단 먹고 자.”
“... 응...”
두 손으로 백지수의 몸을 토닥이고 두 팔을 풀어줬다. 백지수가 얼굴에서 두 손을 떼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오므라이스를 한술 뜨고 입에 넣었다. 나도 오므라이스를 한 입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백지수가 말없이 오므라이스를 먹고 술을 홀짝이기를 반복했다. 맥캘란이 다 떨어져서 백지수가 일어나서 잭 다니엘을 가져왔다. 콜라랑 같이 섞어서 잭 다니엘을 만든 백지수가 오므라이스를 한 입 먹고 잭 다니엘을 한 모금 마셔대서는 금방 취해버렸다. 접시를 다 비운 백지수가 접시를 멀리 밀어내고는 두 팔을 포개 테이블에 대고 이마를 팔 위에 올렸다.
“너 설거지한 다음에 나 안고 올라가서 침대에 눕혀줘...”
“알겠어.”
내 잔에 있는 잭 다니엘을 다 마셔버리고 일어서서 설거지했다. 테이블로 돌아갔는데 백지수가 잠들어 있었다. 의자를 좀 더 뒤로 빼서 백지수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나도 살짝 취한 느낌이었다. 천천히 발을 디뎌 2층으로 올라가고 백지수 방에 들어가 침대에 백지수를 눕혔다. 속옷만 입었으니 이불을 가슴까지 올려서 덮어줬다. 새근새근 숨 쉬며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감은 눈과 닫힌 입술이 아름다웠다. 침대에 기어들어 가 같은 베개를 쓰고 같은 이불을 덮었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다. 그럴수록 더 미안해졌다. 아무래도 금방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조심히 침대에서 내려갔다. 화장실에서 얼굴에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다음 1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에서 피곤해질 때까지 마늘빵을 조금씩 입에 넣으면서 잭 콕만 홀짝였다. 조금 정신이 없다 싶을 때 일어서서 왼발을 바닥에서 띄우고 두 팔을 양옆으로 벌렸다.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왼발로 바닥을 디뎠다. 이십사 초 정도 버틴 듯했다. 콜라를 냉장고에 넣고 잔을 싱크대에 둔 다음 양치하고 계단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 백지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기어들어 가 백지수랑 같은 이불이랑 베개를 쓰고 눈 감았다. 왼팔을 벌려 백지수를 껴안았다. 샴푸 향이 마음을 안정시켰다. 금방 잠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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