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장례식 (22)
* * *
외할아버지가 베개를 베고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에 화장터 갈 거니까 빨리 자야 한다.”
“네. 근데 저 술 좀 마셔도 돼요?”
“... 적당히 마셔라.”
“취할 정도로만 마실게요.”
“... 너 네 주량 알 정도로 많이 마셔봤냐?”
“어제 저 할아버지랑 술 마셨잖아요.”
“그래 그럼...”
외할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조금만 마셔라... 다리 삐었는데 많이 마심 안 좋다...”
“네.”
소등하고 문을 여닫았다. 구석에 윤가영이 막걸리병과 양은그릇 하나랑 모둠전을 담은 접시 하나를 탁자에 두고 혼자 먹고 마시고 있었다. 음료수 냉장고에서 막걸리병을 둘 꺼내고 양은그릇도 왼손에 들어서 윤가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른 윤가영이 느리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온유야.”
뭔가 눈빛이 진지했다. 낮은 목소리도 평소의 윤가영이 내는 하이톤이랑은 사뭇 달랐다.
“네.”
“너 술 마셔도 돼?”
“외할아버지한테 허락받았어요.”
“그래도. 너 발목도 그렇고 미성년자인데...”
“괜찮아요.”
“... 알겠어.”
막걸리 병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마구 흔들었다. 숟가락으로 뚜껑을 탕탕 내려치고 뚜껑을 천천히 연 다음 그릇에 가득 부었다. 김치전을 하나 집어 먹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윤가영이 계속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릇을 내려놓았다.
“왜요?”
“... 그냥.”
“세상에 그냥이 어딨어요.”
“... 온유야.”
“네?”
“...”
윤가영이 두 손으로 양은그릇을 들어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 나를 바라봤다. 측은해진 눈빛이 평소의 윤가영이랑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약간 달랐다. 그러니까, 지금의 윤가영은 보다 어른스러웠다.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
“내가 못 할 짓 진짜 많이 했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내가...”
윤가영의 목이 멨다.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목을 감싸고 음,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 없이 했던 짓들 다 네가 말했던 대로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악의를 품고 그랬던 걸지도 몰라... 아니 아마 그랬을 거야... 멋있는 남편이랑 화목한 가정을 정말 간절하게 원했었으니까... 무의식적으로라도 네 어머니가 돌아올 엄두도 못 내게 하려 했을 거야... 미안해... 잘못했어... 진짜... 진짜 미안해...”
윤가영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슬픔이 전염될 거 같아서 눈을 감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윤가영의 울먹임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지로 내 마음만 몰아붙이고... 흑... 내 멋대로, 흡... 너 미워하기도 했어... 난 잘해주려 하는데, 윽... 내 맘 몰라준다 생각하고, 읍... 이기적으로, 끕... 진짜 난, 흡, 나밖에 몰랐어... 미안해...”
윤가영이 두 손 네 손가락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목이 멨다. 툭하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입으로 심호흡했다. 억지로 참아냈다.
“잘못했어...”
“...”
윤가영이 어깨를 들썩이며 끕, 윽, 하고 계속 울었다.
“그만 울어요.”
“흡... 응... 윽...”
“...”
심란했다. 분노, 억울함, 미움, 슬픔, 원망의 감정이 모조리 뒤섞여서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감정에 짓눌려서 죽을 것 같았다. 쏟아부을 곳이 필요했다. 윤가영이 아예 차라리 악인이었다면. 답답했다. 한숨을 쉬려 했는데 으흐흑, 하고 흐느낌이 나왔다. 볼에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서 음료수 냉장고에서 전통주를 둘 꺼내 양손에 들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혼자 있고 싶었다. 옥상에 의자가 있던 게 생각났다. 옥상으로 달려가서 문을 나서고 바로 의자를 세워 문이 안 열리게 했다. 안쪽 구석에 주저앉아서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왼손에 든 전통주를 내려놓았다. 오른손에 든 전통주를 따고 벌컥벌컥 마셨다. 술치고 꽤 달콤했다. 술을 마시면서 왼쪽을 내려보아 뭐인지 확인했다. 복분자주였다. 숨을 쉴 틈만 잠깐 술병을 입에서 뗐다. 목에 술을 끊임없이 들이부었다. 백지수한테 혼날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짠맛이 났다. 입안으로 눈물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위에 술을 부었다. 쓰고 달았다. 구역질이 났다.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내 등을 토닥여주면서 술을 뺏어줬을 텐데. 심장이 타는 느낌이었다. 입으로 호흡하는데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쿵쿵쿵, 하고 옥상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유, 딸꾹, 야... 흡... 거깄어...? 윤가영 목소리였다. 아직도 우나.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목에 술을 더 부었다. 죽고 싶었다. 혐오감이 차올랐다. 왼팔 소매를 걷어내고 오른손의 다섯 손톱을 세워서 왼팔 하완을 잡고 힘을 줬다. 하완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손톱을 뺐다. 탄식이 나왔다. 시원한 고통이 찾아왔다. 목에 더 술을 부었다. 구토감이 들었다. 몸을 숙이고 바닥에 토했다. 어지러웠다. 눈이 감겼다. 몸이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왼팔이 욱신거렸다. 구토감이 치밀었다.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구역질을 했다. 눈이 뜨였다. 처음 보는 하얀 이불이 보였다. 목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갈증이 났다.
“온유야...”
윤가영 목소리였다. 등이 쓸리는 느낌이 났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가영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목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났다. 입을 열었다.
“외조부모님은요?”
목이 갈라졌다. 윤가영이 눈을 크게 뜨고 탁자를 봐서 오른손으로 355ml 물 페트병을 잡고 내게 건넸다. 윤가영의 얼굴을 노려봤다.
“... 화장터 가셨어...”
“네.”
“물 안 마셔...?”
“...”
붕대가 감긴 왼팔을 뻗어 왼손으로 페트병을 잡고 뚜껑을 따 마셨다. 다리를 움직여 바닥을 디뎠다.
“안 돼!”
윤가영이 일어나서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짓눌렀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봤다.
“왜요?”
“... 너 오른손에 수액 꽂은 거는 다 맞아야 돼.”
“...”
오른손을 봤다. 진짜로 바늘이 꽂혀 있었다. 줄을 따라 시선을 올려봤다.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고개 돌려 윤가영을 쳐다봤다.
“더 빨리 떨어지게는 못 해요?”
“의사 부를게.”
윤가영이 벨을 눌렀다.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윤가영이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온유야...”
“... 좀만 나가볼래요? 저 생각 좀 할 거 있어서.”
“... 알겠어...”
윤가영이 병실에서 나갔다. 조용했다. 지금 보니 1인실이었다. 기분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살고 싶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겉만 봐도 성격이 유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나이 든 남자 의사가 다가왔다. 고개를 오른쪽 위로 쳐들어 팩을 올려봤다.
“저 이거 수액 좀 빨리 떨어지게 해주세요.”
“지금 속도도 빠른 거예요. 이 정도면 3분 지나면 다 떨어질 거고. 좀만 기다리는 게 어때요? 학생 몸도 성치 않은데.”
“그냥 빨리 떨어지게 해주세요.”
“... 알겠어요.”
의사가 나사를 돌리고 등받이 없는 갈색 원형 의자를 가져와 옆에 앉았다.
“안 바쁘세요?”
의사가 너그러이 웃었다. 울컥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학생.”
“...”
의사가 몸을 기울여와 오른손으로 내 오른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요.”
“...”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거 굿 윌 헌팅 명대사죠?”
의사가 빙긋 웃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의사가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이다가 오른손에서 직접 바늘을 빼고 나를 끌어안았다. 의사가 두 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학생 자해한 거 알면 어머니께서 슬퍼하실 거예요.”
“그걸 어떻게, 흑... 아시는데요...”
“제가 많은 환자를 봐오면서 안목이라 할 만한 게 생겼는지 처음 본 환자분이래도 그날 하루 몇 번만 관찰하면 환자분의 마음이 어떤지 느껴져요. 제가 학생 어머니를 본 건 이틀이나 됐으니까 확실히 알 수 있어요. 학생 어머니가 학생을 생각할 때마다 기쁜 마음을 가지셨다는 걸요. 사실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잠시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알았을 거예요. 학생 어머니가 학생한테 줄 편지를 쓸 때마다 미소 지으셨으니까요.”
“...”
의사가 나를 놓아주고 의자에 앉았다.
“스스로 미워져도 자신을 상처입히려 하지는 마요. 특히 먼지랑 세균이 넘치는 야외에서, 균으로 가득한 손톱으로 핏줄이 지나는 데에 상처입히고 기절해버리는 건 정말 절대 하면 안 돼요.”
픽 웃었다.
“아주 농담한 건 아니에요. 다행히 오른쪽으로 쓰러져서 망정이지 진짜 치명적이었을 수도 있었어요.”
“네.”
“만약 학생이 죽도록 힘들고, 자기 혐오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닥쳐오면, 그땐 학생이 정말 사랑하고, 또 학생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요. 그렇게 진정이 되면 날이 밝았을 때 병원으로 가요. 요즘 정신과 다니는 건 흠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 알겠습니다.”
의사가 빙긋 웃고 오른손으로 내 오른 어깨를 한 번 툭 친 다음 일어났다. 나도 일어섰다.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의사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병원 나가면 문 앞에 하얀 택시 있을 거예요. 외할아버지께서 학생분 친척분이 모시는 거인데 학생 깨면 꼭 말하고 타고 오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 감사합니다.”
의사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틀은 더 병원으로 와요.”
“알겠습니다.”
의사가 소리 없이 웃음 짓고 병실을 나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고, 마침내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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