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203화 (203/438)

〈 203화 〉 장례식 (18)

* * *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장례지도사 뒤에 서서 수의를 입혀드리는 모습을 모조리 지켜봤다. 수의를 입은 어머니는 아무 근심도 고통도 없어 보였다. 돌아가신 게 당신에게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찢어졌다. 내가 걱정하지 않게 애써 웃음 지어 보이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떠올랐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눈물이 흘러나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김세은이랑 백지수가 생각났다. 난 둘을 절대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됐다. 난 이준권이 되어서는 안 됐다. 어머니가 느낀 슬픔을 그 둘이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외조부모님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어머니를 그러안았다. 외조부모님이 계속해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고 명복을 비는 말을 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셨을 때 다가서서 어머니의 배에 왼 볼을 가까이 해 어머니를 잠시 안고 어머니의 왼 귀에 입을 가까이 대서 잘할게요, 모두에게, 라고 속삭였다. 뒤로 물러섰다. 습신을 신으신 어머니께서 좋은 곳에 가시기를 빌었다. 왼편에 윤가영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 숙이고 있었다. 기도하는 듯했다. 곁에 있어주신 친척분들도 어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장례지도사가 어머니의 몸에 줄을 감으려 했다. 반대편에 서서 묶는 걸 도왔다. 어머니의 몸에 일곱 개의 매듭을 지어 자세를 곧게 했다. 천을 칭칭 감으며 고깔을 씌워 대렴을 마쳤다. 이제 어머니는 온통 하얬다. 어머니의 몸 옆에 하얀 천을 씌운 소나무 관이 있었다. 친척 두 분과 외할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몸을 조심히 들어 관에 넣었다. 하얀 천을 덮고 관뚜껑을 씌웠다. 호흡이 어려워졌다. 입으로 숨 쉬었다. 외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봐서 미소 지어 보였다. 장례지도사가 하얀 배경에 검은 글자로 ???이라 써진 붉은 우단 관보를 덮었다. 어머니는 정말 돌아가신 거였다. 뱃속이 쿡쿡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견디기 어려웠다. 다들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외할아버지에게 잠시 숨을 돌리겠다고 말하고 물이랑 함께 청심환을 넘긴 다음 밖으로 나섰다. 어지러웠다. 속이 울렁거렸다. 몸을 숙인 채 걸어서 나무 벤치에 앉았다.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숨이 도통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왼편에 윤가영이 다가와 자리에 앉고 오른손으로 내 등을 쓸어줬다. 왼팔을 빙 돌려서 윤가영의 오른팔을 쳐냈다. 윤가영이 잠시 나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다시 오른손으로 내 등을 쓸었다. 고집이 왜 이렇게 세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말이 안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윤가영이 또 따라와서 왼편에 앉았다. 다시 일어나서 원래 앉았던 곳에 앉았다. 윤가영이 또 왼편으로 와 앉았다. 짜증 났다.

“가요.”

“어떻게 가...”

“그냥 일어나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든 해서 다른 데로 가면 되잖아요.”

“...”

“그냥 내가 일어날게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윤가영이 같이 일어났다.

“왜 일어나요?”

“너 일어났으니까...”

“...”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윤가영이 또 나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지금 나랑 장난해요?”

“아니...”

헛웃음이 나왔다. 말이 도통 통하지를 않았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요?”

“... 미안해...”

“그럼 좀 가라고요.”

“응...”

윤가영이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나 뒤로 걸어갔다. 한숨 쉬면서 시선을 돌렸다. 살구나무를 봤다. 바람이 불었다. 살구나무 가지가 살랑거리면서 연분홍빛 꽃잎이 흔들렸다. 두드드, 오른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안 꺼냈다. 받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지 전화가 끊기지 않았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순간에 진동이 끊겼다가 곧바로 폰이 다시 울렸다.

“온유야 너 전화 온 거 같은데...?”

흠칫 놀랐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획 돌렸다. 윤가영이 서 있었다.

“아니 아직도 안 갔어요?”

“... 미안...”

“하...”

“... 근데 그거 안 받아도 돼...?”

“몰라요.”

“...”

전화가 끊겼다. 곧바로 다시 울렸다.

“받아야 하지 않을까?”

“왜요?”

“외할아버지일 수도 있잖아...”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면 어떡할래요?”

“나 뭐 걸어야 돼...?”

어이없었다.

“네. 걸어봐요.”

“뭐 걸까...?”

“아무거나 말해봐요.”

“음...”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다시 안 걸리네...?”

“네. 근데요?”

“그리 안 중요한 거 같은데 꼭 해야 해...?”

“빠져나가려 하는 거예요?”

“...”

“빨리요. 시간 없어요.”

윤가영이 왼쪽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밥 사줄까...?”

헛웃음이 나왔다.

“저도 밥 사먹을 돈은 있어요.”

“그래도 내가 뭐 걸 게 딱히 없는데...”

“그럼 그거 줘요.”

“뭐...?”

“부탁권이요.”

“부탁권?”

“제가 언제 한 번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거 있으면 들어주는 거예요.”

“으응...”

“줄 거예요?”

“음... 그럼 외조부모님 연락이라서 네가 지면 나한테 부탁권 주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요.”

“불공평하잖아...”

“나 화나게 한 값이라 생각해요.”

“... 알겠어...”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켜고는 통화 최근기록을 봤다. 최근 두 통은 김민준 실장이 한 거였다. 어느새 내 왼편에 와 앉은 윤가영이 내 폰을 보고 입을 열었다.

“김민준 실장이 누구야...?”

“AOU 엔터 실장이요.”

“아 그 저번에...?”

“내 허락 없이 내 방 들어와서 다 들쑤신 날 기억하는 거예요?”

윤가영이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미안해...”

“됐어요.”

“... 고마워...”

“당신 또 내 허락 없이 들어오면 그땐 진짜 엄청 혼낼 거예요.”

윤가영이 고개 들었다. 은은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혼낸다니...”

“그럼 때린다고 해요?”

“그건 또 좀...”

“거봐요.”

“그래도 나이 차가 얼만데...”

“열네 살 차이잖아요. 막말로 누나 동생이라고 해도 될 정돈데 혼낼 수도 있죠.”

윤가영이 뱅긋 웃었다.

“넌 누나 막 혼내고 그래?”

“글쎄요. 누나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 근데 너 되게 나빴다.”

“뭐가요?”

“아무리 그래도 나 네 새엄만데 누나라고 하려 하고 혼낼 생각도 하려 하잖아.”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혼나기 싫음 혼날 짓을 하지 마요.”

“... 진짜 나빴어.”

“됐어요.”

폰을 봤다. 김민준 실장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전화를 안 받으니 보낸 모양이었다. 눌러봤다.

[일요일에 온유 학생 여동생분 보기로 했어요.]

[톡 프사 보니까 예쁜 건 확실히 알겠더라구요.]

[연기 얼마나 잘하는지 확인한 다음에 여동생분까지 계약서 쓸지 말지 결정할 거예요.]

“헉...”

윤가영을 봤다.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왜 허락도 안 했는데 내 폰 봐요?”

“미안해...”

답하지 않고 김민준 실장에게 전화 걸었다. 오른 귀 가까이에 폰을 댔다. 윤가영이 일어서서 내 오른편으로 와 앉았다. 수신음이 여섯 번 가고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온유 학생!

“네.”

ㅡ그 여동생분 진짜 연기까지 잘해요?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ㅡ저 기대해요 그럼?

“네. 마음대로 하세요.”

ㅡ알겠어요.

“네. 근데 연기 확인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ㅡ아, 그건 오디션 하나 있는데 준비일 같은 거 없이 당일에 바로 하게 해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게 만약 진짜 잘 되면 바로 배역도 딸 수 있는 거고요. 근데 사실 배역 따는 건 그리 기대하는 게 아니고,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캐릭터를 이해하고 몰입하는지 보려 하는 거예요.

“좋네요.”

ㅡ좋다니 제가 더 좋네요. 근데 온유 학생 일요일에 여동생 오디션 보는 거 보러 안 올래요?

윤가영이 오른편에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 글쎄요?”

윤가영이 두 손으로 내 오른 팔뚝을 잡고 약하게 주물렀다. 헛웃음이 나왔다.

“근데 일단 새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ㅡ그래요?

윤가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기 싫은 거 같아요.”

윤가영이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말 바꿔서 죄송한데 가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네. 알겠어요.

윤가영이 왼손 검지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째려봤다. 윤가영이 입을 옴싹였다. 너도, 너도, 라고 하는 듯했다. 왼손을 들어 검지랑 중지를 세워 보였다. 윤가영이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갈게요.”

ㅡ음, 좋네요. 근데 왜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해요?

“평소에 그냥 좀 신중하려고 노력하거든요.”

ㅡ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숙고하는 거 보면 여동생분이랑 막 친근한 건 아닌가 봐요?

“약간 그래요.”

ㅡ음, 근데 방금 신중하려 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진짜 좋은 습관이에요. 앞으로 주욱 유지해줬으면 좋겠어요.

피식 웃었다.

“알겠어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고마워요. 전 이제 할 말 다 끝났는데,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저도 없어요.”

ㅡ그럼 끊을까요?

“네. 다음에 봐요.”

ㅡ그래요. 끊을게요.

“네.”

전화가 끊겼다. 시종일관 나를 쳐다보던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그 손가락 두 개 든 거 부탁권 두 개라고 한 거지...?”

“네. 이제 저 부탁권 세 개예요.”

“뭐...?”

폰을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윤가영이 내 오른팔을 잡고 흔들었다.

“이거 사기야아!”

“그러게 저처럼 신중했어야죠.”

“아니 진짜... 거짓말쟁이...”

픽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요.”

“...”

윤가영이 일어섰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붙었다. 왼손을 옆으로 뻗어 거리를 만들고 걸어갔다. 윤가영이 빠르게 걸어 나를 앞질렀다가 내 왼팔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냥 왼팔을 내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윤가영이 왼편에 붙었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 분명 왜 한숨을 쉬냐고 물을 거였다. 그냥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고 콧숨을 내쉬었다. 심경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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