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장례식 (17)
* * *
외할머니가 지쳐 잠들어 계신 게 보였다. 그냥 나도 잠깐 자야 할 듯싶었다. 폰으로 열한 시에 알람을 설정하고 눈을 감았다. 수마가금방 찾아왔다.
온유야.
외할아버지 목소리였다.
“온유야.”
“... 네...”
“그 여자 또 왔다.”
눈을 떴다.
“또요...?”
“그래. 네가 좀 나와봐라.”
“네...”
일어서서 하얀 문을 열고 나갔다. 신발장 앞에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서 있는 윤가영이 보였다.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에코백 찾아요?”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요?”
“... 너랑 같이 있고 싶어...”
“... 내가 몇 번을 안 된다고 했는데 왜 자꾸 고집부려요?”
“미안해...”
흠, 하고 콧숨을 내쉬었다.
“나 말고 우리 외할머니한테 허락받아요.”
“진짜...?”
“싫음 그냥 돌아가요.”
“아냐... 고마워...”
윤가영이 신발을 벗고 왼손으로 잡아 신발장에 넣은 다음 안으로 들어왔다. 음료수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고 뒤돌아봤는데 윤가영이 안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서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간 듯했다. 뛰어들어가야 할까 싶었는데 윤가영이랑 외할머니가 말하는 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내가 들어가 봐야 도움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니 일단 멈춰 섰다. 사실 윤가영을 도와야 할 필요를 못 느꼈기도 했다. 처음 몇 초 말고는 고함이 안 들리는 게 어떻게 잘 얘기가 되는 듯했다. 그냥 자리에 앉았다. 얼마 안 가 말소리가 끊기고 낮게 울음소리가 들렸다. 외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와서 음료수 냉장고를 보며 걸어오다가 나를 바라봤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어요?”
“네 새엄마가 죄송하다 하고 네 외할머니가 같이 있어도 괜찮다고 허락했다. 네 새엄마가 소연이랑 처지 좀 비슷한 거 알고 봐준 거 같더라.”
외할아버지가 물을 꺼내고 돌아서서 방 쪽으로 걸어갔다. 일어서서 뒤따라갔다. 윤가영이 외할머니의 왼편에 앉아 오른손으로 외할머니의 등을 쓸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 앞에서 왼무릎을 꿇고 페트병의 뚜껑을 따고는 한바탕 운 게 얼굴에 드러나는 외할머니가 두 손으로 페트병을 쥐게 해줬다.
“왜 이렇게 차가워요...?”
“냉장고에서 꺼냈으니까 차갑지. 싫음 다시 미지근한 거로 가져와요?”
“아뇨 됐어요. 고마워요.”
외할머니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눈시울이 붉은 윤가영에게 다가가 요구르트를 건넸다.
“고마워...”
윤가영이 두 손으로 요구르트를 받고 뚜껑을 따 꼴깍꼴깍 마셨다. 어떻게 외할머니를 설득했을까. 입이 저절로 열렸다.
“저기요.”
“응...?”
“잠깐 나와봐요.”
“... 알겠어...”
윤가영이 일어섰다. 먼저 문을 나서서 신발을 신으러 갔다. 난 왜 윤가영을 부른 걸까. 그냥 외할머니한테 뭐라 했길래 허락받은 거냐고 물어보려 한 걸까.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나오고 바로 옆에 있는 벽에 등을 기대 팔짱을 꼈다. 이내 장례식장을 나온 윤가영이 내가 어딨는지 찾으려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나랑 눈을 마주쳤다. 윤가영이 다가와서 내 앞에 섰다. 말없이 윤가영을 노려봤다. 윤가영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왜...?”
“몰라요.”
“모른다니...?”
“왜 불러세웠는지 모른다고요.”
“...”
한숨이 나왔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물어볼 건 많았다. 여기에 온 이유가 정말 자기가 내 새엄마라서 그런 건지 궁금했다. 어떻게 외할머니를 설득한 건지, 외할머니는 윤가영의 잘못을 얼마나 아는지도 궁금했다. 이수아는 왜 얼굴을 안 비춘 건지도 물어보고 싶었고 앞으로 이준권이랑 어떡하고 싶은지도 궁금했다. 입을 열었다.
“윤가영씨.”
“응...?”
“외할머니는 당신이 우리 엄마한테 무슨 잘못 했는지 다 알고 있어요?”
“...”
윤가영이 고개 저었다.
“그럼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상대 속이면서 용서받으면 그게 진짜 용서받은 거예요?”
“... 아니겠지...”
“그럼 얘기해요. 나 버스킹할 때 당신이 찾아온 거부터, 당신이 학폭위 때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준권 뺏어서 미안하다는 식으로 얘기해서 농락한 거까지 다 말해요.”
“...”
윤가영이 눈물을 글썽였다. 진짜 툭하면 운다. 이수아가 잘 우는 게 이해됐다. 윤가영한테서 눈물샘과 감상적인 성격을 물려받아서 그런 거일 터였다.
“흑... 미안해...”
속이 들끓었다.
“미안하면 왜 미안할 짓을 하냐고요.”
“몰라... 흡... 나 바보야... 흑... 잘못했어...”
“...”
윤가영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훌쩍임은 영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울 거예요?”
“흑... 아니...”
“그럼 그쳐요 빨리.”
“흡... 알겠어...”
윤가영이 오른팔로 눈을 가렸다. 애를 괴롭히기라도 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는데 도저히 쏘아붙일 수 없었다. 짜증 났다. 윤가영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어깨를 들썩이는 게 차츰 잦아들었다. 윤가영이 오른 소매로 눈물을 스윽 닦고 눈 떴다.
“... 다 울었으면 들어가서 말해요.”
“윽... 응...”
윤가영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초라한 뒷모습이 애처로웠다. 심란했다. 계단을 밟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비가 언제 왔냐는 듯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어 바깥은 더없이 밝았다. 마음에 안 들었다. 벤치에 앉았다. 허무감이 찾아왔다. 난 이제 뭘 위해 살아야 할까. 나를 움직이는 커다란 톱니바퀴 하나를 송두리째 뺏긴 느낌이었다. 기약 없이 나를 떠나버린 톱니바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지 못하고 빈자리를 남겨둔 채로 살아야 할 거였다. 외로웠다. 김세은이 보고 싶었다. 널찍한 침대에 누워 김세은을 품에 끌어안고 잠들고 싶었다.
주변 시야 왼편으로 누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고개를 돌려 봤다. 외할아버지였다. 표정이 퍽 혼란스러워 보였다. 외할아버지가 왼편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온유야.”
“네?”
“그, 아침에 온 그 여자애 있잖냐.”
“네.”
“그 애가 네 여자친구 아니냐...?”
“... 네.”
“그럼 그 여자친구 희망자라고 말한 건 뭐냐...?”
“...”
난감했다.
“그게, 그 누나가 그렇게 남이 들으면 당황할 걸 툭툭 말하는 게 거의 반 습관이라서 그런 말 한 거예요.”
“네 새엄마가 한 말 받아치려고?”
“네 아마도...”
“그럴 거면 그냥 여자친구라고 하든가 해야지 왜 하필이면 희망자를 붙이고 그러냐 그 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외할아버지가 흠, 하고 콧숨을 내쉬었다.
“내가 나이 들어 노파심이라는 게 생겼는지 괜히 막 이상한 걱정도 든다. 지금도 생각 하나 들고 있고.”
외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는데 외할아버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말씀하세요.”
“... 아니다. 됐다.”
외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 준비하고 있으니까 좀 이따 들어와라.”
“네. 근데요 외할아버지.”
“응?”
“그 여자가 얘기는 했어요? 자기가 무슨 짓 했는지?”
“... 말했다.”
“외할머니가 내쫓지는 않으셨어요?”
“안 내쫓았지. 그랬으면 이미 밖에 나와서 터덜터덜 돌아가지 않았겠냐.”
“... 네.”
외할아버지가 바지 오른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나를 내려봤다.
“... 응?”
양손을 모아 내밀었다.
“담배 피우지 마세요.”
“... 그래.”
외할아버지가 내 손 위에 담뱃갑을 올리고 왼 주머니에서 라이터도 꺼내서 왼손 쪽에 놓았다. 담뱃갑이랑 라이터를 왼 주머니에 넣었다.
“... 안 버리냐?”
“버릴 거예요.”
외할아버지가 왼손을 내밀었다.
“그냥 내가 버리마.”
“아뇨, 제가 버려요.”
“... 알겠다.”
외할아버지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개 돌리고 정면을 보면서 두 팔꿈치를 무릎에 댔다. 바람이 불어 살구나무의 연분홍빛 꽃잎이 살랑거렸다. 병원 조경을 한 사람은 분명 윤동주를 좋아하겠구나, 하고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왼 다리에 깁스를 대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운 환자복 차림의 여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살구나무 그늘이 진 벤치에 앉았다. 저 깁스 안에는 하얀 다리가 있을까. 그렇다기에는 갈색 단발을 한 여자의 얼굴과 목, 그리고 팔 등은 너무 건강하게 타 있었다.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도 불었고, 저 여자는다리가 하얗지도 않을 거였고, 가슴을 앓지도 않을 거였다. 시선을 올리는데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너무 빤히 본 듯했다. 멋쩍게 웃었다. 여자가 마주 미소 짓고 일어나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말을 걸 생각은 없었는데. 난감했다. 자신감이 느껴지는 눈빛과 입꼬리가 인상적인 여자는 꽤 운동능력이 꽤 좋은지 순식간에 코앞에 왔다.
“옆에 앉아도 돼요?”
“... 네.”
여자가 내 오른편에 앉고 목발을 내려놓은 다음 나를 쳐다봤다.
“가족분, 상 치르시는 거예요...?”
“네. 어머니 상 치르고 있어요.”
“헉...”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죄송해요...”
여자가 왼손을 들어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내 등을 쓸었다.
“진짜 죄송해요...”
멋쩍게 웃었다.
“괜찮아요. 저 등 안 쓸어주셔도 돼요.”
“아, 네...”
여자가 왼손을 떼고 벤치에 댔다. 시선을 돌리고 살구나무를 바라봤다. 바람이 살구나무 가지를 건드렸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입을 열었다.
“왜 오신 거예요?”
“... 저... 눈 마주쳐서 말씀하실 거 있나 하고 왔어요...”
“없어요. 그냥 윤동주 시 떠올라서 본 거예요. 오해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그럼 그 떠올리신 윤동주 시 제목이 뭐예요...?”
“병원이요.”
“병원...”
여자가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고 양손 엄지로 화면을 두드렸다. 여자가 오른손 엄지로 폰을 스크롤링하면서 으음, 하고 소리 냈다. 내가 왜 계속 이 여자 옆에 앉아 있는 걸까. 두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저 일어나볼게요.”
“저기저 잠시만요...”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가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왜요?”
“정말 죄송한데...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세요...?”
씁쓸하게 웃었다.
“아뇨. 죄송해요.”
“아, 네...”
시선을 거두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다가오는 여자에게단호히 거절하는 걸 연습해야 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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