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장례식 (16)
* * *
윤가영이랑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 밑을 보면서 신발을 벗었다.
“온유야!”
정이슬 목소리였다. 깨워달라 했으면서 자기가 먼저 일어났나? 생각해보니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가 일어나서 깨웠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손으로 두 신발을 잡고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좌식 탁자 앞에 앉은 정이슬의 맞은 편에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가 같이 앉아 있어서 등이 보였다. 외조부모님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나를 쳐다봤다. 외할머니가 내 왼편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저건 왜 데려온 거니?”
“데려온 건 아니고 따라온 거예요.”
외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윤가영이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봤다. 정이슬이랑 외할아버지도 일어나서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윤가영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무슨 낯짝으로, 무슨 낯짝으로 온 거야 이 꽃뱀 년아...”
욕을 평생 안 해보신 건지 영 어색했다. 외할머니의 두 손에 힘이 빠져가는 게 보였다. 외할머니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외할머니가 주저앉으셨다. 정이슬이 외할머니의 오른편에 쪼그려 앉아 외할머니를 품에 안고 오른손으로 외할머니의 등을 쓸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봤다.
“온유야.”
“네.”
“내쫓아라.”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윤가영이 에코백을 떨어뜨리고 외할아버지의 앞에 서서 느닷없이 오체투지로 몸을 최대한 옴츠려 절을 했다. 바지가 살짝 내려가서 윤가영이 입은 하얀 레이스 팬티가 보였다. 그것 말고도 가슴이랑 골반, 엉덩이가 너무 큰 탓에 눈에 띄어서 야하게 보였다. 왜 이런 상황에도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오는 건지.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온유 외할아버님...”
“... 됐으니까 나가요.”
“장례식 끝날 때까지, 온유랑 같이 있고 싶습니다...”
“...”
외할아버지가 나를 봤다가 다시 윤가영을 내려봤다.
“온유한테 의사를 물을 테니 온유가 가라면 돌아가요.”
“알겠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윤가영을 내려봤다. 윤가영을 옆에 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반대로 윤가영을 보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것도 딱히 없었다. 아니 외할머니가 윤가영을 보기 힘들어하시니 보내는 게 맞을 거였다.
“온유야.”
정이슬 목소리였다. 시선을 돌렸다. 두 팔로 외할머니를 안고 있는 정이슬이 사뭇 진지한 눈빛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이슬이 두 손으로 외할머니의 등을 살살 쓸었다.
“울지 마세요 할머니.”
“흑, 그래...”
정이슬이 할머니를 안은 팔을 풀고 무릎을 짚어 일어나 내게 다가와 까치발을 하고 나를 껴안았다. 당황스러웠다. 정이슬이 속삭이는 소리가 왼 귀에 엄청 가깝게 들렸다.
“온유야.”
목에서 전신으로 소름이 자르르 타고 흘렀다. 괜히 긴장됐다. 최대한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네?”
“잠깐만 나랑 얘기하자.”
“... 네.”
정이슬이 뒤돌아서 외할아버지를 봤다.
“온유 외할아버지, 저 온유랑 얘기 좀 하고 와도 될까요?”
외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약간 얼떨해 보였다.
“그래.”
슬리퍼를 신고 정이슬이랑 걸어 나가 장례식장에서 조금 멀어졌다. 정이슬이 멈춰 서고 나를 쳐다보면서 팔짱을 끼고는 입을 열었다.
“저 사람 왜 온 거야?”
“... 왜요?”
“저 여자가 어머니한테서 뺏은 거잖아. 네 아버지.”
“... 그쵸.”
“근데 온다고? 진짜 정신 나간 거 아냐?”
“...”
“넌 저 여자 왜 데려왔어?”
“데려온 건 아니에요.”
“그럼 따라오게 둔 건 맞지.”
“...”
“아님 네가 마음이 약해서 못 떨쳐낸 거야? 그럼 내가 대신 내쫓아줄게.”
“...”
정이슬이 뒤돌아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불러 세워서 막는 것도 뭔가 이상할 것 같아서 그냥 뒤따라 갔다. 정이슬이 슬리퍼를 던지듯 벗고 걸어가 여전히 오체투지하고 있는 윤가영의 뒤에서 두 손으로 어깨를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그대로 힘세게 내팽개쳐서 윤가영의 등이 바닥에 닿게 했다. 뒤집힌 윤가영이 눈을 크게 뜨고 정이슬을 쳐다봤다. 입을 벌리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게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당혹스럽기는 할 거였다. 외할머니의 곁에 앉아 오른손으로 등을 쓸어주시던 외할아버지가 오른손으로 턱을 더듬고 있으신 게 당신도 퍽 당황하신 듯했다. 정이슬이 윤가영의 골반에 앉아서 두 손으로 윤가영의 멱살을 잡았다. 정이슬의 눈빛이 살짝 위험해 보였다.
“양심도 없어요? 찾아올 데를 찾아와야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요. 당신 여기 있을 자격 하나도 없어요.”
“...”
윤가영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나였어도 너무 기막혀서 할 말을 잃었을 거였다. 이상하게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질질 끌고 나가기 전에 제 발로 나가요.”
정이슬이 말하고 두 손바닥으로 윤가영의 가슴을 누르면서 일어났다. 윤가영이 흣,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가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아니 왜 저기에서 하필이면 가슴을 누르면서 일어났을까.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이슬이 팔짱을 끼고 윤가영을 내려봤다.
“안 일어나요?”
“... 넌 누군데 그러는 거니...?”
“저 온유 여자친구 희망자요.”
“...”
윤가영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정이슬을 쳐다보고 있으니 정이슬이 갑자기 쪼그려 앉아서 윤가영의 무릎에 두 손을 넣고 몸을 일으켰다. 윤가영의 다리가 들리면서 삼각형으로 되자 정이슬이 두 팔을 무릎 뒤에 넣어 고정했다. 윤가영의 종아리로 정이슬의 가슴이 짓눌리는 게 보였다. 정이슬이 뒷걸음질을 쳐 윤가영을 질질 끌면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윤가영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최대한 안 끌려가려고 힘을 주는 모양이었다. 둘의 모양새가 보면 볼수록 어이없으면서도 우스웠다. 정이슬이 멈춰 서고는 한 번 한숨을 쉬고 다시 뒷걸음질 쳤다. 잠시 한숨을 돌리던 윤가영이 황급히 두 손으로 다시 바닥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만해주면 안 되겠니...?”
정이슬이 멈춰섰다.
“알아서 나갈 거예요?”
“그건...”
정이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신발장 앞에 다다랐다. 정이슬이 두 팔을 놓고는 똑바로 서서 한숨을 돌렸다.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이슬이 일어난 윤가영을 째려봤다.
“빨리 나가요. 또 걸레로 써버리기 전에. 다음엔 엘리베이터까지 갈 거예요.”
“...”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봤다가 다시 정이슬을 바라봤다.
“... 내가 왜 가야 하니? 넌 나보고 나가라고 할 자격은 있는 거니? 너 온유 여자친구도 아니라고 네 입으로 직접 말했잖아?”
“여기 있는 사람 다 당신 싫어해요 이 눈치 없는 아줌마야.”
“외조부모님이랑 온유가 날 싫어하는지를 네가 어떻게 판단하니?”
“그냥 상황이랑 외할머니가 당신 보고 하는 반응만 봐도 알죠. 이걸 이해 못 해요? 바보세요?”
“결국엔 다 네 짐작일뿐인데 뭘 그리 확신하는 거니?”
“그럼 온유한테 물어보시든가요.”
정이슬이 나를 쳐다봤다. 난감했다. 정이슬에게 다가가서 두 팔을 잡고는 몸을 살짝 숙여 왼 귀 가까이에 입을 댔다.
“고마워요 누나. 이제 됐어요.”
“너 저 여자 안 싫어?”
“밉죠. 근데 복잡해요.”
“뭐가 복잡하다는 거야?”
“있어요.”
“...”
“누나 학교 가야 되잖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그래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해주세요.”
“그냥 바로 싫다 하면 되는데 뭘 해?”
“싫다 해서 바로 갈 사람 아니에요.”
“그래도 일단 그냥 싫다 하면 안 돼? 나 저 여자 되게 싫은데.”
“알겠어요.”
정이슬을 놓아줬다.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한숨이 나왔다.
“가세요 그냥.”
“...”
윤가영의 표정이 굳었다. 왠지 굉장히 상처받은 듯 보였다. 정이슬이 내 왼편에 다가와서 섰다.
“안 가요?”
“...”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나한테 대체 뭘 기대하는 걸까. 답답했다. 그냥 좀 물러나 주면 안 되나? 입을 열었다.
“좀 가요 빨리.”
“... 알겠어...”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왜 울려고 하지? 이해가 안 됐다. 윤가영이 신발을 신고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살짝 수그러든 뒷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외할머니를 다독이고 사과하려고 찾아와준 정이슬을 한 번 껴안고 학교로 전송하고 나서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자꾸만 잘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 들 이유가 전혀 없는데. 싱숭생숭했다. 편의점에서 산 500ml짜리 콜라를 마셨다. 순간 윤가영의 에코백이랑 윤가영의 에코백에서 떨어져나온 듯한 대형 요구르트가 보였다. 요구르트를 잡고 에코백에 넣었다. 윤가영 번호로 전화를 걸까 하다가 에코백 안을 들여다봤다. 폰이 들어 있었다. 식장을 지켜야 할 내가 찾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으면서 윤가영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 오기를 기다려야만 할 듯했다.
요구르트를 꺼내 음료수 냉장고에 넣었다. 에코백을 들고 하얀 문을 열어 방 안에 내려놓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아침 여덟 시도 안 됐을 건데 벌써 엄청 피곤했다. 그냥 베개를 베고 누웠다. 다시 잠들고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