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장례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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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들어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먹을 걸 찾았다. 컵라면을 하나 집고 삼각김밥을 뭘 먹을까 보고 있는데 옆에 익숙한 여자가 보였다. 그러니까, 슬픔을 정교하게 빚어낸 듯한 애처롭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울상까지 한 윤가영이 오른손에 에코백을 들고 서 있었다. 무시하고 왼손으로 참치마요를 하나 잡은 뒤 음료수 냉장고로 가서 500ml 콜라를 하나 꺼내 카운터로 가서 현금으로 계산했다.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하나? 생각할수록 내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할 이유는 없는 듯 느껴졌다. 그냥 컵라면 위에 삼각김밥을 올리고 양손으로 든 다음 오른 손아귀에 콜라를 잡고 창가 테이블에 둔 다음 컵라면을 열어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자리에 앉았다. 멍하니 창밖을 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먹구름이 갠 하늘은 어제 아침이랑 비교하면 훨씬 밝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끔찍하게도 부당하게 느껴졌다. 콜라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주변 시야 오른편으로 윤가영이 의자에 앉는 게 보였다. 짜증 났다.
“왜 와요?”
“... 그냥... 엄마잖아...”
화가 치솟았다.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째려봤다. 윤가영이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내 엄마라고 사칭하지 마요.”
“...”
“밖이라서 큰소리 못 내는 줄 알아요.”
“미안해...”
“미안하면 미안할 짓 좀 하지 마요 제발.”
“... 미안해...”
한숨이 나왔다.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의심됐다. 라면 뚜껑을 열어 나무젓가락으로 휘젓고 면을 들어 후후 불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을 덥혔다. 윤가영이 전자레인지에 돌린 스트링 치즈를 야금야금 먹었다. 빨리 먹고 먼저 나가거나 해야 할 것 같았다. 면을 많이 집어서 입에 우겨넣고 우걱우걱 먹었다.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감칠맛이 나는 매콤하고 따뜻한 국물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목을 넘어가 속을 따스하게 해줬다.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열어 1/3을 한 입에 먹었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천천히 먹어 온유야...”
“내가 알아서 먹어요.”
윤가영이 콧숨을 내쉬었다. 측은하게 내려간 예쁜 눈매가 보기 싫었다. 다시 면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먹은 다음 국물을 마셨다. 윤가영이 제육볶음 삼각김밥을 열어 작게 한 입씩 먹었다. 더 빨리 먹어야 할 건데 윤가영이 스트링 치즈 하나에 삼각김밥 하나, 그리고 커다란 요구르트만 사서 식사 시간이 얼추 맞춰질 것 같았다. 마음에 안 들었다.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고 왼손에 컵라면을 들어서 오른발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여는 걸 눌러서 김밥이랑 국물을 버렸다. 나무젓가락이랑 삼각김밥 포장지까지 버리고 오른손으로 콜라를 들었다. 윤가영이 일어섰다. 또 따라오려는 건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른팔로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윤가영이 왼편에 따라붙었다. 속도를 더 냈다. 왼발목이 시큰거렸다. 윤가영이 꿋꿋하게 따라왔다. 멈춰 서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윤가영을 내려봤다.
“진짜 올 거예요?”
“응...”
한숨이 나왔다. 윤가영을 볼 때마다 한 번씩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아마 한숨과 함께 수명도 빠져나가지 않을까. 입을 열었다.
“나 당신 때문에 진짜 미칠 거 같은 거 알아요?”
“...”
윤가영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시선을 내려 바닥을 봤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만해요. 그만하면 됐어요. 나 엄마 한 명밖에 없어요. 당신 내 엄마 아니에요. 더 다가오지 마요.”
윤가영이 대답하지 않았다. 걸어갔다. 뭔가 불길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뒤를 봤는데 윤가영이 다섯 발짝쯤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윤가영은 나를 미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됐다. 내가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 걸 계속하는 걸 보면 그랬다. 어지러웠다.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켜 봤다. 6시 53분이었다. 정이슬이 일곱 시 반에 깨워달랬으니 조금 늦게 들어가도 될 듯했다. 뒤돌아서 윤가영에게 다가갔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면서 눈을 크게 뜨더니 멈춰섰다. 두 손으로 윤가영의 양팔을 잡았다.
“왜 따라와요?”
“... 나 네...”
“엄마라고 하면 진짜 죽여버릴 거예요.”
“... 미안해...”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없는 사람이었다.
“왜 자꾸 미안한 짓을 반복해요? 진짜 미안하기나 한 거예요?”
“... 진짜 미안해...”
“그럼 나한테 왜 그래요. 나 진짜 미칠 거 같다고요. 당신 볼 때마다 내가 뭘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돌아버리겠어요.”
“...”
“내가 당신 때려줘요? 원하면 말해요, 때려줄 테니까. 아님 내가 어디 한강이나 바다에 빠져서 죽을까요? 말해요, 나 지금 죽어도 하나도 안 아쉬우니까.”
“... 죽지 마아...”
윤가영의 두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윤가영이 고개 숙였다.
“지금 울어요?”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 저었다.
“울잖아요.”
“... 아니야아... 흑...”
“왜 당신이 울어요. 울어도 내가 울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윽... 미안해애...”
“...”
주위를 두리번거려 봤다.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시선을 피했다. 짜증 났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나를 죄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미웠다. 시선을 다시 돌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울지 마요. 사람들이 나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 흑... 미안해...”
“미안하면 울음 그쳐요.”
“흡... 응... 노력할게... 끅...”
윤가영이 훌쩍이면서 오른손등으로 눈물을 자꾸 훔쳤다.
“얼굴 좀 가려 봐요.”
“끕... 알겠어...”
윤가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상태로 어깨를 움츠린 채 들썩이니까 더 처량해 보였다. 미칠 것 같았다. 죄인은 내가 아니라 윤가영인데. 나만 나쁘다는 듯 흘겨보는 눈들이 끔찍했다.
“내가 잘못한 거예요?”
“흑... 아니야...”
“그럼 왜 우는데요?”
“나... 흡... 미안해...”
한숨 쉬었다. 내게 붙은 시선을 다 떨쳐내고 싶었다. 어떡해야 이 눈들이 다 사라질까. 위협해야 하나? 그럼 역효과만 일 것 같았다. 사진이 찍히거나 해서 인터넷에 올라올 수도 있을 거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윤가영을 다독여야 할 듯했다. 두 팔을 벌려 윤가영을 품에 안았다. 윤가영의 부드러운 몸과 떨림이 느껴졌다. 윤가영이 두 팔로 나를 와락 껴안았다. 샴푸 향이 올라왔다.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등을 토닥였다. 내가 왜 이 여자를 위로해야 하는 건지. 상황이 꼬이다 못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봤다. 한숨을 푹 쉬었다. 다시 고개를 내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나 때문에 우는 거 아니면 왜 우는데요?”
“나 어제, 흡... 너 가고 나서 준권씨한테, 흑... 전화 걸었는데... 끅... 여덟 번, 흑... 걸었는데... 읍... 다 안 받았어...”
“...”
가슴이 저렸다. 내가 뭐랬어요, 같은 말을 하면서 쏘아붙여야 했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바빴을 수도 있죠... 전화 잘 안 받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내가 전화 걸면, 흑... 잘 받아줬단 말야아... 윽...”
“아직 확실하진 않잖아요...”
“흡... 그래도오... 끅...”
“...”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어제는 저주했는데 실제가 되니 입맛이 썼다. 순간 속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내가 이준권이랑 뭐가 다를까. 우리 엄마와 윤가영을 울린 이준권이랑 김세은과 송선우를 울리고 이젠 백지수, 그리고 어쩌면 정이슬마저 울릴 내가 과연 어디가 다를까. 사실은 내가 더 악질인 거 아닐까. 머리가 새하얘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앞이 보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야가 흔들렸다. 왼발을 디뎌 균형을 잡았다. 시야가 흔들린 게 아니라 내 몸이 흔들린 거였다. 품에 안긴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시선을 마주쳤다. 윤가영이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온유야...? 흑...”
“네.”
“괜찮아...?”
“아뇨. 전혀, 하나도 안 괜찮아요.”
“흡... 왜...?”
“당신이 들어봐야 소용없어요.”
“...”
“다 울었어요?”
“... 응...”
“그럼 떨어져요.”
“알겠어...”
윤가영이 나를 안은 팔을 풀고 두 발짝 뒷걸음질 쳤다. 붉어진 눈시울이 보호 욕구를 자극했다. 불쾌했다. 말없이 몸을 돌려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왼편에 윤가영이 따라붙어서 나란히 걸었다. 말을 안 걸고 발길을 재촉했다. 윤가영이 계속 속도를 맞춰서 나란히 걸었다. 지독하게 눈치 없는 여자였다. 왼발목이 시큰거릴 걸 감수하고 달렸다. 윤가영이 따라서 달려서 양손으로 내 왼손을 붙잡았다. 속도를 차츰 줄여서 멈춰섰다.
“손은 왜 잡아요?”
“학... 같이 가고 싶어서... 하악... 근데 너 뛰니까, 헥... 어쩔 수 없었어... 하아... 미안해...”
“... 내가 같이 가기 싫어서 뛴 거는 알죠?”
“하아... 알아... 미안해...”
“... 알겠어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윤가영이 왼편에 붙어서 오른팔로 내 왼팔을 휘감아 팔짱을 꼈다. 윤가영의 부드러운 가슴이 왼팔에 닿았다. 발기했다. 미칠 것 같았다. 뭔 생각으로 이럴까? 윤가영을 바라봤다. 입을 벌려 헥헥대며 정면을 걷고 있었다. 별생각 없는 듯했다. 한숨이 나왔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헥... 왜...?”
“팔짱 껴야 돼요?”
“놓아주면 너 나 안 버릴 거야...?”
어지러웠다.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도 힘들 건데 의식 없이 어떻게 이럴까.
“안 버려요...”
“알겠어...”
윤가영이 팔짱을 풀었다. 나란히 걸었다. 윤가영이 걸어가면서 계속 나를 쳐다봤다. 짜증이 올라왔다. 윤가영을 마주 봤다.
“왜요 또?”
“고마워서.”
“... 네.”
윤가영이 살폿 웃었다. 순간 가슴이 떨렸다. 나 진짜 미쳤구나.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자괴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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