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장례식 (13)
* * *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꺼질 줄 모르는 도시의 불빛이 길을 밝혔다. 연인이고 무리를 지은 사람이고지나치는 많은 이가 윤가영과 나를 자꾸 힐끔힐끔 봤다. 확실히 꼴이 이상하기는 할 거였다. 머리가 산발인 정신 나간 여자랑 너무 젊어 보이는 남자가 같이 있으니 어딘가 수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정차해 있는 택시의 뒷문을 열고 윤가영을 뒷좌석에 들어가게 한 다음 오른편에 탔다.택시기사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나랑 윤가영을 보더니 다시 앞을 보고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까요?”
“근처 무인텔로 가주세요.”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가라앉아 있던 눈이 휘둥그레 됐다. 외할머니한테 붙잡혀서 혼나서 그런지 목이랑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게 색정적으로 보였다. 부끄러워졌다. 고개를 돌렸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름을 말해주셔야죠.”
“어디든 돼요. 제일 가까운 데로 가주세요.”
“...”
택시기사가 콧숨을 내쉬었다. 한숨이라도 쉬고 싶었을 터였다.
“네.”
출발한 지 삼 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무인텔 앞에 도착했다. 기사가 한숨을 쉰 이유가 있었다. 현금을 내고 윤가영의 오른팔을 잡아끌고 나왔다. 밤공기가 찼다. 택시를 탄 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나오는데 가까운 무인텔로 데려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급하고 멍청하게 보였을까. 게다가 상복을 입고 있는 남자랑 여자인데. 분명히 짐승으로밖에는 안 보였을 거였다. 얼굴이 붉어지는 듯했다. 생각 없이그냥 바로 택시를 잡을 게 아니라 지도 앱을 켰어야 했다.
무인텔로 들어갔다. 숙박을 누르고 현금으로 결제했다. 윤가영이 나랑 키오스크 기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오른팔로 윤가영의 왼팔을 팔짱 낀 채 복도를 걸었다. 아응, 흥, 하악, 하고 음탕한 소리가 자꾸 들렸다. 결제할 때도 왠지 저렴하더라니. 방음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윤가영을 놓고 문을 닫았다. 윤가영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뭐 해요?”
“...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요.”
“그냥... 다 미안해...”
한숨이 나왔다. 하읏, 으으응, 학, 좋아 미친년아, 하고 음탕한 소리가 끊임없이 벽을 타고 넘어와서 머리가 지저분해졌다. 왼팔에 든 윤가영의 에코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윤가영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지 계속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주저앉고 있을 거예요?”
“... 아니...”
“그럼 일어나요. 비극적인 척하지 말고.”
“... 알겠어...”
윤가영이 바닥을 짚고 일어나더니 오른손으로 벽을 짚고 걸어가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진 그리 크지 않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윤가영의 실루엣이 보였다. 씻으려는 건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소리는 안 들렸다. 윤가영의 형체가 바지를 내리고 하얀 골반과 허벅지를 드러내며 변기에 앉는 게 보였다. 아까부터 발기한 자지가 껄떡거리면서 배를 툭툭 두드렸다. 나 진짜 미쳤나? 이대로 있으면 안 될 듯했다. 윤가영의 에코백을 들고 침대로 가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었다가 갑자기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져서 도로 문을 닫았다. 안으로 걸어가는데 화장실의 불투명한 유리로 변기에 앉은 윤가영이 몸을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또 우는 걸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침대로 돌아가 에코백을 벌리고 양쪽을 잡아 뒤집어서 물건을 다 떨어뜨렸다. 폰, 폰 충전기, 지갑, 블루투스 이어폰, 500ml 물 페트병, 청심환, 그리고 사전 피임약이 있었다. 피임약을 집어 들고 주머니에 넣은 다음 다른 걸 다 도로 에코백 안에 넣었다. 약국에서 다시 사면 될 건데, 괜히 심술부리고 싶었다. 물소리가 들렸다. 씻는 것 같았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장실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가 왜 이럴까. 미친 것 같았다. 비좁은 샤워실 안으로 들어간 윤가영의 실루엣이 보였다. 불투명한 유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하얀 살결이 잔뜩 발기한 자지를 앞뒤로 움직이게 했다. 창피했다. 오른손으로 자지를 억누르고 도로 돌아갔다. 가라앉히려 했는데 아으응, 흐응, 으읏, 하아악, 하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음탕한 소리 탓에 도저히 수그러들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옆방에 신음을 잘 내는 사람이 오늘 이 시간에 있는 걸까.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자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어떻게 할까. 입으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한숨 쉬었다. 스스로 한심했다. 의자에 앉아 두 팔꿈치를 허벅지 위에 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혐오감이 몰려왔다. 물소리가 끊겼다. 금방 씻은 모양이었다. 얼굴에서 손을 치우고 시선만 위로 올렸다. 몸에 커다란 수건을 걸친 윤가영이 걸어오다가 흠칫하고 멈춘 게 보였다.
“아직 안 갔어...?”
“네.”
“으응...”
윤가영이 커다란 아치형 거울이 있는 탁자 앞 의자에 앉더니 오른손으로 헤어드라이어를 잡고 플러그를 꽂아 머리를 말렸다. 뒤로 다가갔다. 윤가영이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봤다. 동공이 흔들리는 게 어떤 의미에서든지 내가 접근하는 게 긴장되는 듯했다. 멈춰 서고 거울을 봤다. 수건이 차마 다 가리지 못한 커다란 가슴이 극도로 야했다. 윤가영이 떨리는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오른손에 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가만히 지켜봤다. 윤가영이 오른쪽 머리도 매만졌다. 왼 팔꿈치가 잘못해서 수건을 건드렸는지 수건이 흘러내렸다. 윤가영의 둥글고 예쁜 가슴이 드러나 분홍색 유륜이랑 유두가 가감 없이 보였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눈이 커진윤가영이 헤어드라이어를 급히 꺼서 내려놓더니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보지 마...!”
“... 네.”
뒤돌았다. 난 왜 계속 여기 있는 걸까. 아하윽, 으긋, 좋아, 보지, 보지 쑤셔줘, 하고 음탕한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헤어드라이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멈췄다. 뒤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윤가영이 나를 스쳐 지나가 침대 쪽으로 갔다. 샴푸 향이 짙게 남았다. 윤가영이 에코백을 뒤져 폰이랑 블루투스 이어폰, 그리고 폰 충전기를 꺼냈다. 그대로 계속 뒤적거리던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가 다시 에코백 안을 내려봤다.
“피임약 찾아요?”
윤가영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붉었다.
“... 응...”
“버렸어요.”
“...”
“이준권이 애 가지기 싫대요?”
윤가영이 고개만 끄덕였다.
“당신은 애 낳고 싶고?”
“... 갖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안 했어...”
“... 그쪽 여기에서 자고 어떡할 거예요?”
“어떡하긴... 너랑 있어야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똑같은 꼴 될 거라고 생각 안 해요?”
“난 당해도 싸니까...”
“당해도 싸면, 그대로 머리 쥐어뜯기고 맞고 그럴 거예요?”
“...”
“그렇게 하면 정당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꿈 깨요. 자기 만족하지 마요. 용서해줄 생각 없어요.”
윤가영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미안해... 잘못했어...”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한숨이 나왔다. 왜 이런 사람이 아빠 앞에 나타나서는. 기구했다. 화장실 안에 들어갔다. 아흑, 으흐으응, 존나 좋아, 하고 야한 소리가 더 노골적으로 들렸다. 윤가영이 금방 나온 이유가 있었다. 선반에서 수건을 찾았다. 높지 않은 수건걸이에 물에 젖은 윤가영의 검은 브라, 하얀 팬티, 그리고 검은 양복이 널려있었다. 내가 나간 줄 알고 옷을 다 적시고는 어떻게 헤어드라이어를 쓰든 해서 하루 동안 말려 다시 입으려 한 모양이었다. 그럼 그냥 수건으로 몸을 둘러 한기를 막았다가 잘 때는 이불을 덮고 나신으로 잠들려고 했던 걸까? 지독히도 음란한 버릇이었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옷을 다 벗고 선반에 넣어둔 다음 왼손으로 벽을 짚고 신음을 들으며 자위했다. 너무 물소리가 안 들리면 의심할까 봐 샤워기를 틀었다 끄면서 세 번 사정했다. 성욕이 그나마 가라앉는 듯했다. 몸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다음 옷을 입어 밖에 나왔다. 화장실이 너무 더워서 그런가 퍽 시원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침대를 짚은 채 바닥을 내려보고 있던, 수건으로 야한 몸을 둘러서 가린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윤가영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쳐졌다. 의미심장했다. 아까 가슴을 보여준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그럴 만도 한 것 같았다. 입을 열었다.
“잘 있어요.”
“... 응... 아침에 봐...”
“두 번은 안 챙겨줘요.”
뒤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무인텔을 빠져나와 걸어가면서 윤가영이 왜 나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을까 이유를 생각했다. 그 웃음은 단순히 유두랑 유륜이 보였다는 것만으로 지을 표정은 아니었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보다는 남의 치부를 봤을 때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내 치부를 봤다면, 내가 자위하는 걸 본 걸까? 왜? 어떻게? 내가 있으니까 물에 적신옷을 화장실에서 꺼내서 젖은 상태로라도 입으려 했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윤가영에게내가 자위하는 걸 들켰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죽고 싶을 정도로창피했다.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왼 발목이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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