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장례식 (12)
* * *
어깨를 털어 윤가영의 손을 떨쳐내고 휘청이면서 걸어갔다. 왼 손목이 두 손에 붙잡혔다. 왼쪽으로 돌아섰다. 윤가영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서 느리게 밑으로 흘렀다. 윤가영이 숨을 헐떡이며 왼 눈을 감았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여서 가증스러웠다. 찐득하고 검붉은 감정이 차올라 순식간에 가슴을 메워 속에서 마구 찰랑거리는 듯했다가 한순간 모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 찐득한 감정을 그대로 품고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아예 외면해버린 걸까. 순간 숨 쉬는 법을 잊었다가 입으로 가쁘게 호흡했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목에서짐승이 이빨을 드러낼 때처럼 들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왔어요?”
“... 네 어머님 장례식이니까...”
“...”
윤가영이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미안해...”
가슴이 다시 답답해져 갔다. 계속 윤가영을 보다가는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냥 다 쏟아버리고 싶었다.
“당신한테 여기 올 자격이 있는 거 같아요?”
“ ...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요. 우리 엄마 당신이랑 이준권이 죽인 거예요.”
“미안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 미안하다고요...?”
두 손으로 윤가영의 양팔을 붙잡았다. 두 손아귀에 약하게 힘을 줬다. 윤가영이 입술을 입안에 넣고 꽉 물었다.
“으음...”
“미안하면 우리 엄마가 돌아오기라도 해요...?”
입에서 침이 한 방울 튀어나갔다. 윤가영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서는 바닥을 내려봤다.
“미안해...”
“미안해서 어쩌라고요. 내가 당신 감정 신경 써야 해요?”
“... 아니...”
“왜 왔어요.”
“나 그래도 네 새엄마니까...”
손아귀에 더 세게 힘을 줬다.
“엄마요? 그쪽이 내 엄마라고요?”
“...”
꾹 다물린 윤가영의 탐스러운 분홍빛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을 올려 윤가영의 목을 감싸 쥐었다.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눈빛이 흔들리는 게 피해자처럼 보였다. 꼴 보기 싫었다.
“개소리하지 마요.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 미안해...”
윤가영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두 눈에 맺힌 눈물이 나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미안해졌다. 왜 내가 미안해하는 걸까.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독해진 마음에 물을 탄 듯 농도가 옅어졌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를 죄인으로 만들고 미안하게 하고 무력하게 했다. 윤가영의 목에서 왼손을 떼고 윤가영의 왼팔에서 오른손을 뗐다. 윤가영이 놀랐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헛웃음이 나왔다. 오른손을 들었다. 윤가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엄지로 눈물을 닦아줬다. 윤가영이 또 커다란 눈을 떠서 나를 쳐다봤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당신 때릴 것 같았어요?”
“흑... 아니... 읍... 아니, 응...”
헛웃음이 나왔다.
“바로 다시 솔직해질 거면 거짓말은 왜 해요?”
“아냐... 둘 다, 흑... 진짜였어... 이미 손을 놔줬으니까, 읍... 온유면 때리려 하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흑... 맞아도 싸다고도 생각했으니까... 흡...”
“...”
윤가영이 울지만 않았다면 한 대 정도는 때렸을지도 몰랐다. 시선을 괜히 다른 데로 돌렸다. 가까이 있는따스한 가로등 불빛이랑 멀리 있는 도시 고층 빌딩들의 차갑고 밝은 불빛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내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놈은요?”
“윽, 그놈이라니...?”
“이준권이요.”
“... 얼마 전에, 흑... 해외로 출장 가서 못 온 거야... 흡...”
“그 사람도 우리 엄마 죽은 거는 알죠?”
“흑... 으응... 끕...”
비릿하게 웃었다.
“당신도 버려질 거예요. 일하는 데서 만났댔죠?”
“... 흡...”
“우리 엄마 기자였을 때 이준권 인터뷰이로 처음 봐서 결혼한 거였어요. 뭔가 딱 느낌 오지 않아요? 이준권이 하는 짓. 일하면서 우연히 연 생긴 여자 건드리기.”
윤가영의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마음이 시궁창으로 가라앉아갔다.
“이준권 지금 다른 여자 꼬실 거예요. 당신도 이제 버려질 거예요... 알아요...? 아냐고요...”
목소리가 점점 움츠러들다 못해 소리가 아예 사라지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왜 저주하면서 내 가슴이 찢어질까. 왜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머리가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목이 아팠다.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비참했다. 처참했다. 왜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지. 난 왜 이 여자한테서 위로받는 건지. 죽고 싶었다. 난 왜 살까. 왼팔을 막 휘둘렀다. 왼손등에 뭔가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아! 윤가영 목소리였다. 아으... 땅에 엉덩이를 찧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일어나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뛰어서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왼 발목이 시큰거렸다. 신발을 던지듯 벗어버리고 음료수 냉장고에서 도수가 높은 전통주를 꺼내 뚜껑을 열어 입에 들이부었다. 목부터 속까지 모조리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 꿇어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눈가에 바로 눈물이 맺혀서 시야를 가렸다. 욱, 우욱. 헛구역질했다. 다시,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온유야... 참을 수 없었다. 몸을 돌려 윤가영을 쳐다보고 두 손으로 멱살을 쥐었다. 꺼져요. 아니면 죽어요. 또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당신 볼 때마다 죽을 거 같아요. 제발 좀 사라져요. 제발... 목에서 더는 소리가 안 나왔다. 멱살을 놓고 두 손으로 바닥을 기듯이 하다가 일어나서 신발을 구겨 신은 다음 화장실로 뛰어갔다. 왼 발목이 아팠다. 변기 앞에 무릎 꿇고 바로 토를 쏟아냈다. 취하고 싶은데. 자고 싶은데. 한순간이라도 엄마를 잊고 아픔을 지우고 싶은데. 몸은 취하지 않으려 하고 이성은 잠시라도 아픔을 지우려 하고 마음은 엄마를 한순간도 아니 잊으려 했다. 어지러웠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을 텐데. 목을 따끔히 건드리는 위액 탓에 고통스러워서 기절도 못 할 것 같았다. 한 점의 건더기조차 게워내고 헛구역질만 다섯 번을 했다. 몸이 왼쪽으로 쓰러졌다. 변기 왼편에 옆으로 누워서 입으로 숨을 쉬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죽을 것만 같아도 숨은 쉬어졌고 호흡은 안정되어 갔다.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도 이 몸뚱이가 그런 것처럼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숨이 막히고 죽고 싶어졌으면 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고 무릎을 짚고 일어나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다. 화장실 티슈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고 혹시 외조부모님이 걱정하시면 안 되니 두 손으로 몸 곳곳을 털어낸 다음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 갈아 죽일 년... 우리 딸 어떡해... 우리 딸...”
외할머니 목소리였다. 내지르는 소리가 비명 같이 느껴졌다. 역정을 내실 분은 아닌데. 발걸음이 빨라졌다. 왼 발목이 아팠다. 내가 왜 빨리 걸을까? 어차피 당하는 사람은 윤가영일 텐데.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할머니가 두 손으로 윤가영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쥐어뜯을 듯이 마구 흔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외할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관망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오른편으로 다가섰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흘깃 보고 입을 열었다.
“왔냐 온유야.”
“네...”
“소연이 어떡할 거야...”
“죄송합니다...”
윤가영이 무릎을 꿇었다. 외할머니가 손아귀에 계속 힘을 주고 있는 게 힘들었는지 왼쪽으로 휘두르듯 거칠게 손을 놓았다. 윤가영의 머리카락 일곱 가닥이 뜯겨서 바닥으로 느리게 떨어져 내렸다. 나도 모르게 왼발을 뻗었다. 왼 발목이 새큰거렸다.
“그만하세요...”
외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내 양팔을 붙잡았다.
“네 외할머니가 막돼먹은 사람은 아니라서 그만해야 할 때 알아서 그만할 거다.”
“지금 머리카락 뜯으셨는데...”
“몇 가닥 뜯은 거로 성이 차겠냐? 네 엄마 죽인 년인데.”
외할아버지의 눈빛이 사나웠다. 외할아버지 같지 않았다. 무서웠다.
“외할아버지...”
“...”
외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 외할아버지의 눈빛이 서글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라면 나도 말릴 거다. 지금은 내버려 둬라.”
“... 안 되겠어요. 그냥 제가 내쫓을게요.”
“... 그래.”
왼 발목의 통증을 참고 꼿꼿이 걸어가 외할머니를 껴안았다.
“외할머니... 이 여잔 제가 내쫓을게요...”
외할머니가 윤가영을 향해 왼손을 뻗어 허공을 휘적거리다가 나를 껴안았다.
“흐윽... 온유야...”
“울지 마세요...”
외할아버지가 다가와 외할머니의 뒤로 가서 외할머니를 껴안았다.
“저 여자 데리고 나가라 온유야.”
“네...”
몸을 돌렸다. 바닐라 베이지로 물들인 중단발의 머리카락이 미친 여자처럼 마구 헝클어져 있는 윤가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윤가영의 양옆 팔을 잡고 오른 무릎을 꿇은 다음 입이 최대한 안 움직이게 해서 조용히 소리를 냈다.
“내가 팔 잡고 일으키면 같이 나가요.”
윤가영이 아무 반응도 안 했다. 일어나서 윤가영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끌고 나가면서 왼팔에 윤가영이 가져온 에코백을 들었다. 데려가는 데 힘은 별로 안 들었다. 내 말을 듣기는 잘 들은 듯했다. 신발을 신고 왼손에 윤가영의 신발을 들은 다음 윤가영의 왼팔에 오른팔을 팔짱 껴서 연행하듯 나갔다. 장례식장 문을 나서고 신발을 내려줬다. 윤가영이 신발을 안 신으려 했다. 다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왜 신발을 안 신으려 하는 걸까. 왼무릎을 꿇고 억지로 신겼다. 두 다리에 신발을 신기고 일어나서 윤가영을 바라봤다.
“가요.”
“...”
윤가영이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억지로 왼팔에 오른팔을 넣어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미쳐버릴 것 같은 건 나인데 왜 자기가 정신이 나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주황빛을 내는 가로등 아래로 갔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끔찍할 정도로 생각 없고 손이 많이 가는 여자가 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지 않은 걸까. 지독히도 죄스러웠다. 한숨이 나왔다. 하얀 입김이 먹구름이 흩어진 맑은 밤하늘로 서서히 올라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