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장례식 (7)
* * *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어 하회탈을 필두로 학교의 선후배와 친구들이 찾아왔다. 밴드부는 모두 왔지만 강성연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명부에 이름을 작성하고 절을 한 뒤 나를 껴안은 하회탈이 나를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힘내라고, 슬픔에 파묻히면 안 된다고 한마디했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는 세네 명씩 단체로 절을 하고 나를 껴안을 사람들은 껴안아주며 힘내라고 한마디씩 했다. 장례식장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하회탈을 제외하고는 다들 처음엔 위축되어 있다가 아직까지 남아주신 친척분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어서 분위기가 살아났다. 외할아버지가 학생들이 모인 곳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를 바라봤다.
“온유 네가 학교 생활은 잘한 모양이다.”
멋쩍게 웃었다. 외할머니가 왼손으로 내 등을 툭 쳤다.
“가, 애들한테.”
“네...”
걸어갔다. 하회탈이 외할아버지 쪽으로 가면서 나를 껴안더니 두 손으로 내 등을 툭툭 쳤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봤다.
“항상 응원한다.”
미소 지어 보였다.
“감사해요.”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콜라를 마시던 정이슬이 나를 바라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온유!”
앉아서 밥을 먹거나 떠들고 있던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정이슬이 좌식 탁자를 약하게 탁탁 쳤다.
“여기 내 앞에 앉아!”
“야 네 앞에 나 있는데 그러시면.”
김민우가 당황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럼 내 왼쪽으로 와 온유야.”
멋쩍게 웃으면서 자리를 살폈다. 구석에서 나를 째려보는 백지수랑 눈이 마주쳤다.
“저 구석으로 갈게요...”
“응? 왜?”
“그게 편할 거 같아서요...”
구석으로 가서 백지수랑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백지수가 국을 한입 떠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이슬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백지수 옆에 앉았다. 공간을 살짝 두어 내 옆자리에 있던 송선우가 두 손으로 바닥을 기어와서 내 옆으로 붙어왔다. 불편했다. 정이슬이 싱긋 웃었다.
“이온유 오자마자 여자 몰고 다니는 거야?”
평소 같았으면 그냥 웃으며 넘겼겠지만 지금은 뼈가 아팠다. 정이슬이 내 표정을 살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 너무 눈치 없었다...”
정이슬이 일어나서 테이블을 빙 돌아 걸어오려 했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등을 쓸었다.
“언니 그냥 자리에 있어요. 제가 위로해줄게요.”
“아냐 내가 해줘야지.”
정이슬이 내 뒤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었다. 다 나를 쳐다보는데 미치도록 부담스러웠다. 자리가 거북했다. 입을 열었다.
“근데 성연이는 안 와요...?”
“성연이? 몰라?”
김현우가 말했다.
“걔도 알기는 알걸? 하회탈 쌤이 얘기하고 거의 소문나는 것처럼 돼서.”
김민우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오라고 문자는 했거든? 근데 아직 안읽씹하고 있어.”
“헐...”
서유은이 소리를 냈다. 시선이 쏠렸다. 서유은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어... 죄송해요...”
정이슬이 피식 웃었다.
“아 진짜 유은이 너무 귀여운 거 아냐?”
정이슬이 벌떡 일어나서 서유은에게 달려가고 쪼그려 앉아 서유은을 껴안고 서유은의 왼 볼에 오른 볼을 비볐다.
“진짜 내가 너 사랑해 유은아.”
“어, 언니...”
서유은이 당혹스러운 듯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정이슬은 정말 종잡을 수 없었다. 언제 한 번 세게 혼내겠다고 한 게 기억났다. 오한이 들었다. 두려웠다. 얼마나 큰 자리에서 공개고백을 할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온유야.”
백지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응?”
“그... 미안해.”
계속 내 등을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보던 송선우가 백지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응? 뭐가?”
“그냥 온유 어머님 돌아가셔서... 마음 불편하다고...”
송선우가 눈꼬리를 휘었다.
“으응...”
설마 백지수랑 내가 동거한다는 걸 까발리려는 걸까? 송선우를 보며 고개를 얕게 저었다. 송선우가 나를 바라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기 있기 싫었다.
“유은이도 온유 좋아하지?”
정이슬 목소리였다. 아니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고개를 돌렸다. 정이슬이 서유은을 껴안고 일으켜세우려 하고 있었다.
“왜, 왜 그래요오...”
“온유 옆자리 가고 싶잖아. 내가 보내줄게.”
술에 취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저럴까. 순수하게 미친 사람이었다. 섬뜩했다. 백도영 같이 연기해서 광기를 꾸며내는 사람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서유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적당히 해 정이슬.”
김민우가 두렵다는 듯 말했다.
“말 잘했다 민우야.”
하회탈 목소리였다. 고개 돌려 뒤를 봤다. 표정이 싸늘했다. 하회탈과 오니 가면 사이의 무언가였다. 아마 외조부모님이랑 얘기하시다가 시끄러워져서 오신 모양이었다. 정이슬이 화난 하회탈을 보고 얼어붙었다.
“자제해라.”
“네... 죄송합니다...”
정이슬이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온유야...”
“괜찮아요.”
하회탈이 돌아갔다.
“저, 저 좀 놔주세요...”
서유은이 정이슬의 품에서 꿈틀댔다. 몇몇이 서유은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만약 이 자리에 서유은이 없었다면 정이슬 때문에 분위기가 악화되기만 해서 그대로 질식했을지도 몰랐다. 정이슬이 서유은을 놓아줬다. 서유은이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백지수의 옆에 가 앉았다. 정이슬이 내 뒤로 와서 쪼그려 앉고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정이슬이 무릎 위에 턱을 올리고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나 그냥 너 표정 좀 풀리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랬는데 너무 선 넘었나 봐...”
“... 괜찮아요.”
“고마워.”
정이슬이 발가락을 세워 바닥에 무릎 찧듯이 하면서 무릎을 꿇고 뒤에서 나를 껴안아왔다. 등에 부드럽게 눌려오는 가슴이 느껴졌다. 뭘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재고는 절대로 안 하고 바로 움직이는 걸까?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됐다. 아찔했다. 왠지 오줌이 마려워졌다.
“누나 저 진짜 괜찮으니까 자리로 좀 가주세요...”
“알겠어.”
정이슬이 일어나서 도로 반대편으로 가서 백지수랑 서유은 사이에 앉았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옆에서 걸어나온 지 10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방 안으로 들어가서 자고 싶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의 기를 빠는 걸 능력으로 쳐준다면 정이슬은 희대의 천재였다.
“어. 봤다.”
김민우가 폰을 보더니 말했다. 시루떡을 우물거리던 김현우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뭐 봤는데?”
“내가 뭘 본 게 아니라, 강성연이 문자를 봤다고.”
사위가 조용해졌다.
“답장은?”
“안 하네? 언제 봤는진 몰라도.”
“흐음...”
분위기가 전에 없이 가라앉았다. 김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그래.”
김현우가 답했다. 김민우가 신발을 신고 나갔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등을 쓸었다. 오른손으로 송선우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안 해줘도 돼.”
“그래도.”
“...”
“근데 성연 선배 진짜 안 올까요...?”
서유은이 말했다.
“안 오면 손절해야지. 그럼 진짜 개 미친놈인 건데.”
백지수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정이슬이 헤 웃었다.
“오겠지... 아직 안 온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막 그러지 마...”
“알겠어요.”
백지수가 말했다. 조용해졌다. 누군가 아무 말이나 해서 다른 화제로 넘어갈 물꼬를 터줬으면 했는데 다들 섣불리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엔 김민우가 돌아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정이슬이 입을 열었다.
“성연이 전화 받았어?”
“받았어.”
“온대?”
“아니. 아파서 못 온다던데.”
“...”
“미쳤네.”
김현우가 말했다.
“걔 저번에 병문안 갔을 때 별로 아파보이지도 않더만. 부은 거도 다 나아가지고.”
“야 그런 말을 왜 해...”
정이슬이 김현우를 타박했다. 강성연이 안 오는 거야 별로 상처도 되지 않았다.
더는 소변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선우가 나를 올려 보더니 자기도 일어섰다.
“왜 일어나요...?”
서유은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 화장실 좀 가려고.”
“그럼 선우 언니는 왜 일어났어요...?”
“나 부모님한테 전화 좀 하려고 일어났어.”
“네...”
송선우랑 같이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화장실에 들어가고 소변을 눈 뒤 손을 씻고 나왔다. 바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와준 건 모두에게 고마웠지만 함께 있는 건 부담이 너무 컸다. 지하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유리문 쪽으로 향하는데 가는데 뒤에서 누가 내 왼 팔목을 잡았다. 뒤돌아봤다. 송선우였다.
“왜?”
송선우가 한 발짝 다가왔다. 키스하기에 적절한 거리였다. 뒤로 물러서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송선우가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장례식 끝날 때까지... 너랑 같이 있어줘도 돼...?”
“너 집은 안 가게?”
“네가 된다고만 하면 엄마랑 아빠한테 나 친구 장례식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주겠다고 하려고...”
“... 말만으로 고마워.”
“... 같이 있어도 된다는 뜻이야...?”
씁쓸하게 웃었다. 송선우의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할 때마다 송선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입을 열었다.
“넌 나 왜 좋아해?”
“... 그게 무슨 질문이야...”
“그냥 궁금해서.”
“... 나도 몰라... 그냥 네가 좋아... 정확히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는데... 내 맘속에 네가 스며들어 있었어... 너무 깊숙이 들어가서... 네가 안 꺼내져...”
“...”
송선우가 오른손을 들어 내 가슴 중앙에 대고 왼팔로 내 몸을 감싸안으며 내 가슴에 머리를 박았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할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송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내가 이기적이라...”
“...”
“같이 있어주고 싶어...”
“... 안 돼.”
“...”
송선우가 오른손을 내 가슴에서 떼고 두 팔로 나를 껴안아왔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송선우가 고개를 들어 그 커다랗고 예쁜 두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분홍빛 입술이 열렸다.
“알겠어...”
“...”
송선우가 두 팔을 풀어줬다.
“같이 돌아갈까...?”
“... 너 먼저 들어가.”
“응...”
송선우가 뒤돌아 서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은 여전했다. 폐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고, 이내 입에서 잿빛 김이 피어올랐다. 한숨의 색깔은 담배 연기와 같았다.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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