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91화 (191/438)

〈 191화 〉 장례식 (6)

* * *

일어서고 송선우랑 같이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었다. 송선우가 우산을 챙기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뒤따랐다.

“어디 가?”

“옥상.”

“열려 있나?”

“가 보면 알지.”

“닫혔으면?”

“그냥 밖에 나가는 거고.”

“으응...”

건물이 그리 높지 않아서 금방 최고층에 다다랐다. 송선우가 옥상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잠그지 않았는지 그냥 열렸다. 송선우가 발을 내딛었다. 뒤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송선우가 우산을 펼치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나를 바라봤다. 송선우가 왼팔을 벌려왔다.

“뭐?”

“들어와. 저기까지 걷자.”

“굳이?”

“굳이라니, 그런 말할 거면 옥상에 오지도 말았어야지.”

“그니까. 좀 후회하고 있어.”

송선우가 픽 웃었다.

“그냥 좀 와, 비 맞지 말고.”

“여기 있음 비 안 맞잖아.”

“누가 나올 수도 있잖아. 길막하면 안 되지.”

“누가 나오려고 하면 그때 피해주면 되지.”

“그래 그럼 이대로 있자.”

송선우가 옆에 바짝 붙어서 왼팔로 나를 안았다. 오른손으로 송선우의 왼팔뚝을 툭툭 쳤다.

“안지 마 어색해.”

“나도 어색해.”

“그럼 관둬.”

“여기에서 어정쩡하게 팔 풀면 더 어색해질 걸?”

“몰라 걍 풀어.”

“알겠어.”

송선우가 내 등 뒤로 나를 감싸던 왼팔을 빼고 정장 주머니에 왼손을 넣었다. 송선우가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 입을 열었다.

“왜 나오자고 한 거야? 아무 말도 안 할 거면.”

“그냥 너 힘들 거 같아서. 친척분들 사이에 껴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힘든 건 너 아냐?”

“아냐 나 괜찮았어. 처음에는 그냥 좀 당황한 거지.”

“그래.”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려대는 소리가 정적을 메웠다. 비 오는 오후의 서늘한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한숨이 나왔다.

“왜 한숨 쉬어?”

“그냥.”

“...”

송선우가 왼손을 내 오른 어깨 위에 올리고 토닥거렸다.

“그러지 마.”

“왜.”

“그냥 하지 마.”

“싫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떼라는데 왜 네가 싫다 그래요.”

송선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눈을 마주쳤다. 송선우가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난 너 위로하면 안 돼?”

“...”

“몇 년 동안 봐온 지기인데, 너 힘들 때 위로 정도는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든 우산을 놓아버리고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는 나를 끌어안아 내 오른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내 가슴에 맞닿은 송선우의 가슴이 부드럽게 짓뭉개졌다. 송선우의 긴 머리카락이 내 목을 간질였다. 두 팔을 들어 송선우를 마주 안으려다가 그냥 도로 밑으로 떨어뜨렸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이 멨다. 내가 지금 이렇게 송선우에게 위로받아도 될까. 알 수 없었다. 송선우가 말없이 오른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송선우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눈물이 흐른 길이 시원해졌다. 송선우의 머리칼이 나부껴 내 두 귀를 간질였다. 송선우가 오른손을 뒤로 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다가 끌어 모아서 움켜쥐었다. 송선우의 입김이 오른 귀를 간질였다.

“나 잠깐만 머리카락 좀 정리하고 다시 안아줘도 돼?”

“... 응.”

송선우가 떨어지고 한 발짝 뒷걸음질치더니 왼소매를 걷었다. 손목에 얇고 검은 머리끈이 있었다. 오른손 검지를 집어넣어 머리끈을 꺼낸 송선우가 머리끈에 다섯 손가락을 끼워 넣은 다음 펼쳐서 두 손을 뒤로 해 머리카락을 야무쥐게 잡아 머리를 느긋하게 묶었다. 윤기가 나는 하얀 목이 드러났다. 나를 안아줄 때 땀을 흘린 모양이었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온유야.”

나긋한 목소리가 달콤했다.

“응...?”

“울었어?”

“응...”

송선우가 어느새 머리를 다 묶고 다시 까치발을 들어 나를 안아왔다. 오른 귀에 간지러운 입김이 닿아왔다.

“더 울어. 울고 싶은 만큼.”

“...”

주문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나 껴안지 마...”

“왜애.”

목소리가 장난스러웠다. 사랑스러웠다. 가슴이 철렁였다.

“무서워...”

“뭐가 무서운데?”

“나... 안 돼...”

송선우가 왼손을 내려 두 팔로 조이는 느낌이 들게 꽉 안아왔다.

“무서우면 안 무서워질 때까지 이렇게 꽉 안아줄게.”

“그게, 흑, 그러는 게 무서워...”

“안아주는 게 왜?”

“흡, 넌 몰라...”

“그럼 가르쳐줘. 왜 무서운지, 내가 어떡하면 되는지.”

“... 그냥, 그냥 놔줘...”

송선우가 내 오른 어깨에 턱을 올린 채 고개를 얕게 양옆으로 저었다. 두 손을 송선우의 옆구리랑 배에 대고 약하게 밀어냈다.

“왜?”

“나 안아주지 마...”

“알겠어.”

송선우가 나를 놓아주고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송선우가 두 손을 들어 엄지로 내 눈 밑을 스윽 닦아줬다.

“울보다 너.”

“...”

송선우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내 볼을 잡았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다.”

“뭔 소리야...?”

“이렇게 잘생긴 자식이 효자이기까지 하잖아.”

“... 고마워.”

송선우가 싱긋 웃고 두 손을 내렸다가 두 팔로 왈칵 내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포개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발기했다. 두 손으로 송선우의 팔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

“하움... 츄읍... 츕...”

송선우가 계속 내 입술을 탐하면서 버텼다. 억지로 떼어내고 송선우를 뒤로 밀어냈다. 송선우가 내 눈을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나 같은 미인이 좋아해주기도 하니까.”

“... 미쳤어...?”

송선우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지러웠다. 머리가 뜨거웠다. 송선우의 분홍빛 입술이 열렸다.

“아니.”

“나... 너, 나, 왜...?”

송선우가 픽 웃었다. 나는 심각한데 왜 웃을까.

“그렇게 충격이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선우가 히히 웃었다.

“티 나지 않았어? 내가 너 좋아한다는 거.”

“...”

“나 너 좋아해.”

“... 안 돼...”

“너 좋아하면 안 돼?”

“응...”

송선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어떡해? 나 이미 중학생 때부터 너 좋아해버렸는데.”

“...”

송선우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송선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송선우가 끅끅거렸다. 송선우의 뒤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빗방울이 송선우의 등을 때렸다. 바람이 도저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오른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잡았다. 송선우가 왼손을 포개면서 고개 저었다. 입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자.”

송선우가 말없이 고개 저었다.

“... 알겠어. 손 놔줘. 안 열게.”

송선우가 왼손을 놓았다. 문손잡이에서 오른손을 떼고 송선우의 우산을 잡고 송선우의 뒤로 가서 비를 막았다. 바람이 빗방울과 함께 우산을 때려 후웅, 투두둑, 후웅, 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송선우의 움츠린 어깨가 들썩였다.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송선우가 뒤돌아봐왔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송선우가 한 걸음 다가왔다.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송선우가 세 걸음 가까워졌다.

“오지 마.”

송선우가 고개 저었다. 뒷걸음질 쳤다. 송선우가 내가 물러나는 대로 따라붙었다. 우산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위로 올렸다. 더 뒷걸음질 쳤다. 등이 가드라인에 닿았다. 끝까지 다가온 송선우가 나를 껴안고 내 왼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 안지 마...”

“안게만 해줘...”

“...”

송선우가 계속해서 흐윽거렸다. 가슴팍이 젖어왔다. 속이 타들어갔다. 난 왜 주변 여자들을 불행하게밖에는 못 만드는 걸까. 한숨이 흘러나왔다. 송선우가 고개를 들어 내 목 왼쪽에 입술을 맞췄다. 발기했다. 왼손을 올려 목을 감싸 송선우의 입을 막았다.

“하지 마.”

“그럼, 흑, 머리 쓰다듬어줘...”

“... 알겠어.”

송선우가 다시 고개를 숙여 얼굴을 내 왼 가슴에 묻었다. 왼손을 들어 송선우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직도 불어오는 바람이 빗방울과 함께 우산을 때려댔다. 송선우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얼마 안 가 그치겠다 싶었는데 흐윽거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유지된 채 도통 끊기지 않았다. 나를 계속 끌어안으려고 연기하는 듯했다. 입을 열었다.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가자.”

“싫어.”

역시 울음은 그친 거였다.

“들어가자.”

송선우가 윽, 끅, 거리면서 딸꾹질했다. 왼손으로 송선우의 등을 툭툭 쳤다.

“들어가자.”

“끅, 나 딸꾹질 멈출 때, 윽, 까지만. 흑, 여기 있자.”

“알겠어. 일단 문 앞에만 가 있자.”

“읍, 응...”

송선우가 떨어졌다. 같이 문 앞으로 걸어갔다. 송선우가 문에 등을 기대고 나를 바라봤다. 딸꾹질은 멈춰 있었다. 딸꾹질도 꾸며낸 거였다.

“온유야.”

“... 응.”

“나 너 아니면 안 될 거 같은데 어떡해?”

“...”

“대답해줘. 나 어떡해야 돼...?”

“... 내가 아니면 어떻게 안 된다는 건데.”

“너 아니면 다른 사람 못 사귈 거 같아.”

“...”

“너 아니면 미래가 안 그려져.”

“...”

송선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네 대답인 거지?”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송선우가 갑자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고 입술을 쪽 맞춘 다음 몸을 뗐다.

“난 포기 못 해. 이게 내 마음이야.”

송선우가 뒤돌아서 문손잡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에 무거운 짐이 하나 더 들어섰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