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장례식 (5)
* * *
편지에서 엄마가 미래를 얘기할 때마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리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내 이름과 아들이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엄마를 부르고 싶었다. 김세은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눈물방울, 콧물 방울, 침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물을 묻히지 않기 위해 두 손을 멀찍이 뻗은 탓에 눈물 어린 시야에는 편지가 아득하게만 보였다. 안개처럼 자꾸 눈을 가리는 눈물을 왼소매로 닦아내면서 읽고 또 읽었다. 내일을 얘기해놓고 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잠시라도 더 엄마 곁에 있지 않았던 내가 싫었다. 머리에 있는 물이란 물은 모조리 안면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 감고 머리를 무릎에 박았다. 어지러웠다. 간장이 끊어지는 듯했다. 죽고 싶었다. 살 이유도 살 자격도 없었다. 온유야... 외할머니 목소리였다. 우는 소리를 최대한 죽인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목 놓아 울어버린 탓에 잠에서 깨신 모양이었다. 난 민폐만 끼쳤다. 아무 쓸모도 없었다.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에 주름진 손길이 느껴졌다. 울지 말아라... 외할머니가 다가와서 쓰다듬어주시는 듯했다.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멍청했다. 생각이 짧고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줄도 몰랐다. 쓰다듬는 손길이 머리에서 등으로 옮겨져서 토닥임으로 바뀌었다. 울음을 그쳐야 했다. 슬픔에 묻히려거든 나 혼자만 묻혀야 할 거였다. 입으로 심호흡했다. 흐흐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목에서 나왔다.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너무 울어서 목이 나가버린 듯했다. 물 가져와줄까...? 제가, 흡, 나가서 마실게요. 그래 그럼 물티슈로 눈물만 닦고 나가라. 네. 고개를 들었다. 외할머니가 물티슈를 다섯 장 뽑아 내게 건넸다. 두 손으로 받고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바닥에 둔 종이를 고이 접어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양치 도구를 오른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숨을 헐떡이며 문을 열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보고는 왼손으로 내 등을 툭툭 토닥여줬다. 음료수 냉장고 앞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아이고... 울었어...? 괜찮아? 괜찮겠어 이 사람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잘 모르는, 그렇지만 내게 호의적인 누군가가 등을 쓸어줬다. 아니 좀 비켜 봐요, 애 어디 가려는데 길 막아서지 말고. 그니까요. 뭐 필요해서 나왔니? 아, 저 물이요... 그래 내가 가져다줄게.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바닥에 놓인 물 500ml 페트병 묶음의 포장을 뜯어내고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저 근데 저기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 마시려 했는데요... 차가운 거 마시면 안 좋아. 미지근한 거, 밖에 내놓인 거 마셔야 돼. 울었을 때는 특히 더 그래. 안 그럼 몸이 놀라. 네... 뚜껑을 열고 느리게 한 모금 마셨다. 잘못하면 영락없이 붙잡혀서 오랫동안 얘기할 것 같았다. 난 외할아버지 옆에 있어야 했다. 물을 입에 머금고 잠시 고민했다.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저 얼굴 좀 닦으러 가볼게요... 아 그래. 사람들이 뒷걸음질 쳐줘서 길이 열렸다. 신발을 신고 나가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화장실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고 거울을 봤다. 순간 이준권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구역질이 났다. 변기칸으로 뛰어들어가 무릎 꿇고 아침에 먹은 걸 토해냈다. 일어나서 물을 내렸다. 사라지고 싶었다. 세면대 앞으로 가 입을 헹구고 양치했다. 화장실에서 나갔다. 장례식장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계단을 밟아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직 비가 추적이며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면서 입안이 시원해졌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빗방울이 몸을 때렸다. 머리가 차차 식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선 안 되니 이제 다시 들어가야 할 거였다.
멀리서 이쪽으로 검은 우산을 쓴 채 검은 옷과 바지를 입은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키가 커서 남자인가 싶었는데 조금 더 가까워져서 보니 몸매가 여자였다.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뭔가 걸음걸이가 익숙했다. 눈을 좁히고 시력을 집중해 얼굴 쪽을 봤다. 어려서부터 몇 번이고 본 긴 머리카락에 청순한 얼굴, 그러니까, 송선우였다. 시선을 내리깐 채 심각하게 얼굴을 굳힌 모습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송선우에게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입을 열었다.
“송선우.”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송선우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이온유...”
송선우가 잠시 멈춰섰다가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우산을 버리고 두 팔로 나를 껴안았다.
“괜찮아...?”
“아니.”
두 손으로 송선우의 양팔을 잡고 힘을 줘 밀어내려 했다. 송선우가 두 손으로 내 등을 툭툭 쳐주고 떨어졌다. 내려간 입꼬리가 퍽 서운해보였다.
“왜 그래... 위로해주려는 사람 무안해지게...”
“미안해. 와줘서 고마워.”
“...”
송선우가 몸을 굽혀 우산을 잡고 접은 다음 말없이 내 얼굴을 살폈다. 입을 열었다.
“근데 넌 어떻게 알았어?”
“하회탈 쌤이 반 애들한테 얘기하셨다고 해서 나도 전해 들어 가지고 알았어...”
“주소까지 얘기해주셨다고?”
“그냥 병원 이름 얘기해주셨지...”
“으응... 그래. 들어가자.”
“응...”
먼저 뒤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송선우가 어색하게 뒤따라왔다. 영좌 앞에 외할머니도 나와 계셨다. 더 자셨어야 했는데. 미안했다.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가운데에 섰다. 송선우가 봉투를 꺼내 넣고 명부를 작성한 다음 어머니의 영정에 절하고 외조부모님이랑 나를 향해 절했다. 맞절했다. 외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온유 친구니?”
“네? 네!”
“그럼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니...?”
“아 저 전치 3주여서 쉬고 있어 가지고 온 거예요...”
“그렇구나. 밥은 먹고 왔니?”
“아 저 아침 점심 사이에 먹고 왔어요.”
“으음... 그럼 지금 배고프지는 않다는 거니...?”
“그렇긴 한데 먹을 순 있어요.”
“그래 저기 앉아서 그럼 많이 먹고 가.”
“네.”
송선우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음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외할머니가 내 등을 툭 쳤다.
“왜요?”
“친구 왔잖니 같이 얘기해야지.”
“저 외할머니랑 있을 거예요.”
“헛소리하지 마라 온유야.”
외할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가라. 바로 와준 친구랑 관계 돈독히하는 게 효도다.”
“... 네.”
걸어갔다. 송선우는 구석에 앉아 있었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고 옆에 다가가서 앉았다. 송선우가 나를 쳐다보고 눈을 크게 떴다.
“너 왜 여깄어?”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친구랑 사이 돈독히 하라 해서.”
콜라를 건넸다.
“마셔.”
“으응...”
송선우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캔을 땄다. 한가한 듯한 사람들이 갑자기 주변으로 몰려왔다.
“여자친구니?”
“왜학교 안 가고 여기 와 있대?”
“온유가 여자친구 있다고 안 했잖아?”
“어휴, 저 얼굴에 여자친구가 없었겠어?”
“아니 질문 좀 그만 하고, 얘기를 들어야 될 거 아니에요.”
“어응, 그치.”
“저기학생, 온유 여자친구예요?”
내게 물을 건네준 중년 아주머니가 말했다. 송선우가 아, 하하, 하고 멋쩍게 웃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얘 전치 3주 받아서 잠시 학교 쉬어가지고 소식 듣고 바로 온 거구요, 저랑 유치원 때부터 봐온 애고, 남자친구도 없는 애예요.”
“옆에 친구 좀 얘기하게 해주지.”
“아뇨 얘 부담스러우면 말 잘 못하는 체질이에요.”
송선우가 나를 째려봤다.
“아니거든?”
“아니라잖아!”
“근데 지인짜 예쁘다 학생. 이름 뭐예요?”
“아 저 이름 송선우예요.”
“으음! 선우! 이름도 예쁘네에.”
“감사합니다.”
“선우 밥 먹게 좀 가주시면 안 될까요?”
“이야아, 이거!”
어떤 친척 남자분이 오른손으로 자기 허벅지를 탁 쳤다.
“안 사귄다면서 이러는 거면 사귀기 직전 느낌 같은데? 썸이라 그러나?”
“어휴, 애들이 안 사귄다는데 뭘 그런 얘길하고 있어, 방정맞게.”
“아니 할 수도 있는 거지이, 붙여보면 딱 선남선녀구만.”
어지러웠다. 어머니랑 외조부모님은 차분하신데 왜 외가 친척분 중에는 이렇게 목청이 좋은 사람들이 많은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송선우가 숟가락을 들고 건더기랑 함께 소고기무국을 한 입 맛봤다.
“어때요?”
송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요.”
“그쵸? 여긴 국이 제일 맛있는 거 같애.”
“오기 전에 밥 먹었어요?”
“저 아침 점심 사이에 먹었어요.”
“막 배고프진 않겠구만.”
“거 다 먹고 밥 한 그릇 더 비워요.”
“아, 하하, 네.”
“먹는 게 차암, 복스러워.”
“감사합니다.”
“거 말 좀 그만 시켜봐요 애가 밥을 못 먹네.”
가만히 있던 어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친척분들은 송선우에게 계속 관심을 표해주셨다. 송선우는 일일이 대답하면서 난감한 기색을 얼굴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처음엔 되게 어색해한 걸 생각하면 지금은 연기하는 거일 텐데 연기 같지 않았다. 연극부 할 때도 꽤 잘하는 거 같더니, 연기에 재능이 있었나? 조금 놀라웠다. 송선우가 밥을 한 그릇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온유랑 잠시 나갈게요.”
“으으응! 나가요. 비켜요 비켜.”
호들갑 떠는 친척 아저씨가 두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들 비켰다. 피곤해서 친척분들이 미워지다가도 내가 울적해지지 않게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기도 했다.
감정과 기분이 수시로 바뀌어서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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