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89화 (189/438)

〈 189화 〉 장례식 (4)

* * *

[생각해보니까 우리 온유한텐 처음으로 손편지 쓰는 거네.

앞으론 손편지 좀 많이 써야겠다. 남는 게 시간인데.

아니 사실 시간이 막 많이 남은 거 같진 않아.

그게 몸으로 느껴져. 그래서 쓰고 있는 거야.

저번에 온유 네가 꽃 가져왔을 때 엄마가 되게 못되게 말했잖아. 그거 사실 아들 말대로 아들 상처 줘서 나 못 보게 하려고, 일부러 밀어내려고 그랬던 거야. 우리 아들 엄마 아픈 모습 보면 되게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니까, 그냥 차라리 나를 못 보게 해야겠다 하고.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또 엄청 바보 같은 생각이었구나 느껴. 내가 만약에 죽기라도 하면 아들은 왜 내가 그때부터 엄마를 안 봤을까, 하고 자기를 탓하고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정말 하면 안 되는 짓이었어. 미안해 온유야. 용서해줘.

근데 진짜 우리 아들이 엄청 똑똑해서 다행인 거 같아. 그때 아들이 엄마 꿰뚫어 보지 못 했으면 우리 둘 다 상처만 남았을 거잖아. 너무 대견해.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마워. 정말 너무 사랑해 아들.

이거 편지는 사진 찍어서 문자로 보낼까 고민했는데 나중에 모아서 줘야겠다고 마음 바꿔 먹었어. 첫머리가 너무 우울하잖아. 나중에 같이 웃으면서 읽자 그때.

사랑해 우리 아들♡

세상에서 가장 온유를 사랑하는 온유의 1호팬 엄마가.]

[하루에 한 편씩은 꼭 써야겠다 생각 들어서 또 적어.

매일 편지 쓰면 읽어야 할 거 엄청 쌓일 텐데.

내가 읽어주면 읽다가 목 아파지겠다.

우리 아들한테 소리 내서 읽으라고 시켜야겠어. 그래 줄 거지?

오늘 엄마는 점심으로 소고기죽에 간장 살짝 넣어서 먹었어. 우리 엄마가 자꾸 나한테 죽 만들어서 줘. 난 먹기 싫은데. 싫다고 해도 살 좀 찌라면서 그냥 계속 먹여. 사나흘에 한 번은 꼭 먹는 거 같아. 근데 질린다 싫다 해도 막상 먹으면 맛은 있어. 아니 맛은 있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맛있어 되게. 나중에 제대로 배워서 우리 아들한테 가르쳐줘야겠다. 그럼 아들은 또 여자친구한테 만들어주고.

그러고 보니까 세은이랑은 요즘 어떻게 지내? 잘 사랑해주고 있어? 우리 아들이면 당연히 잘할 거라고 믿는데 하나만 말해주고 싶어. 사랑한다는 표현은 박하게 하면 안 돼. 사랑한다는 말을 적게 해주면 아무리 잘 대해줘도 갈증이 남아. 약간 물이랑 비슷한 거 같아. 매일 일정량은 꼭 챙겨줘야 하고, 혹시 못 챙기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필요하니까. 그리고 다다익선이기도 하고.

물이랑 비유해서 생각난 건데, 사람의 70%는 사랑으로 이뤄진 거 같애. 진짜 정말 농담이 아니라. 여태 받아온 사랑으로 잠시는 버틸 수 있어도, 더 채워주지 않으면 정말 살 수가 없으니까. 그니까 꼭꼭 세은이한테 사랑한다고 얘기해줘. 물이랑 사랑한다는 말이 다른 점은 물은 과다하게 마셨을 때 저나트륨혈증이 일어나도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나 받든 부작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뿐이니까. 무조건 많이 많이 해줘. 이건 나랑 약속해야 돼. 여기까지 입으로 읽었으면 나랑 새끼손가락 거는 거다? 알겠지?

말로 시키기만 하면 안 되니까 엄마가 먼저 모범을 보여줄게. 사랑해 우리 아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의 열혈 러브 코치 엄마가]

[하루 한 편씩이랬는데 할 말이 자꾸 생기네?

우리 아들이랑 같이 있을 땐 말이 잘 안 나왔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막 생각이 나.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근데 아들 편지 읽다가 목 아파지면 안 되는데.

아들 좋아하는 커피 미리 챙겨둬야겠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또 세은이 관련한 거야.

너랑 세은이는 일이 바쁘거나 해서 서로 자주 못 보게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럴 땐 세은이가 보고 싶다고 투덜댈 수도 있고, 막 불안하다고 하면서 널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라도 세은이한테 가서 꽉 끌어안아줘. 사랑이 언제나 일보다 중요한 거니까. 이 명제의 참은 사람의 70%는 사랑이다, 라는 엄마의 지론으로 증명되는 거니까 절대 잊지 마. 아 이건 나중에 방송 나갔을 때 부모님한테 배운 것중 가장 소중한 게 뭐예요, 같은 질문 있으면 이 얘기하면 될 거야. 나중에 영상으로 나오면 꼭 볼 테니까 이 얘기해야 돼? 기대할게.

하나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사랑 때문에 일을 망가뜨리라는 것도 아니야. 자기 때문에 서로의 커리어가 망가졌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 가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진짜 최악이야. 희생은 올바른 사랑의 형태가 아니야. 명심해둬. 세은이한테도 말해주고. 근데 이거 얘기할 때 출처는 꼭 밝혀야 돼?

아니다. 그냥 네가 지어낸 말이라고 해도 될 거 같아. 세은이가 너한테 더 푹 빠지게. 그냥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

평소처럼 끝은 똑같은 말로 맺을게. 사랑해 우리 아들♡

항상 온유를 생각하는 사랑 전문가 엄마가]

[또 또 편지 쓰고 있어.

오늘로 세 번째 편지야 이게.

내가 왜 이럴까? 왜 말이 많아지지? 나도 늙어가는 건가?

편지 너무 많이 쌓여서 아들 읽는 거 귀찮아하는 거 아냐?

그럼 안 되는데. 근데 또 편지는 계속 쓰고 싶고.

일단 그냥 내 욕심대로 쓸 만큼 쓸게.

별로 맘에 안 들어도 엄마니까 봐줘 아들.

엄만 지금 병원에 입원해있어. 우리 엄마가 너 안 되겠다고, 입원 안 하면 집에서 내쫓는다고 해가지고. 막 울면서 화내는데 보면서 되게 속상했어. 엄마랑 아빠 엄청 속 썩였겠구나, 나 진짜 불효자구나, 그런 생각 들고. 그래가지고 이제는 괜찮아질 때까지 병원에 있다가 나아지면 또 엄마 아빠 집에서 살려고.

아무튼. 속상하다는 말 떠올리고 너랑 세은이 생각나서 편지 써야겠다 하고 지금 쓰고 있어. 나중에 너랑 세은이랑 서로 속상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서로 잘못 탓하고 미운 맘만 들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게. 흐른 시간순으로 구분해 가지고.

만약에 서로 싸우고 있는 그 순간이면 막 화가 나서 서로 감정만 악화시킬 확률이 높아. 그니까 그 순간에는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좋아. 그렇게 서로 잠시 감정을 식히고 무슨 일이었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다음에 얼굴 마주 보고 얘기하는 거야. 말할 땐 나 전달법 쓰고. 뭔지 알지? 만약에 모르면 입으로 읽는 바로 이 시점에 알려달라고 해. 알려줄게.

서로 싸우고 나서 시간이 얼마 안 지났을 때는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 일단 내가 어떤 상태였었고 무슨 감정이 들었다는 걸 확실히 머릿속으로 정리해두고. 평소 세은이가 좋아했던 거, 아니면 가지고 싶어 했던 거를 사서 선물로 주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한 얘기를 하는 거야. 근데 꼭 머릿속으로 정리하지 않아도 돼. 손편지를 써서 선물이랑 같이 주거나. 아니면 네가 손으로 쓴 걸 읽어주겠다고 하거나 해도 좋아. 농담이 아니라 네가 그 글 쓴 거를 읽어주면 세은이는 귀엽다고 생각할 거야. 그럼 벌써 마음으로 반쯤은 용서했을 거고. 이건 꿀팁이니까 별 좀 그려줄게. ☆☆☆☆☆

만약에 서로 크게 싸워서 얼굴 안 보겠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는 뭔가 선뜻 하기가 되게 어려울 거야. 보고 싶다는 생각 들어도 여태 흘러온 시간이 장벽처럼 서 있어서 다가가기 어려울 거고, 감정이 곪았다면 그건 그대로 또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럴 때는 하나를 잘 생각해봐야 해. 내가 만약에 십 년, 아니면 이십 년이 흘러서 내 옆에 그 사람이 없어도 나는 괜찮게 지낼 수 있을 건지. 만약에 잘 지내지 못할 거 같다면, 살짝이라도 허전하다는 마음이 들고 그걸 네가 안다면, 큰맘 먹고 화해하러 가야 해.

결국에 정말 중요한 건 사랑이야 온유야. 그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사랑해 온유야♡

항상 우리 아들을 응원하는 화해의 달인 엄마가]

[아침인데 몸에 기운이 없다 온유야.

약 때문인가? 약간 나른해.

근데 비 너무 내린다. 좀 그치지.

비 진짜 싫다. 이럴 땐

아 나 순간 잠깐 졸아서 무슨 말 쓰려 했는지 까먹어버렸어. 어떡하지? 나중에 생각나면 이 편지 아님 다른 편지에다 쓸게.

사랑해 우리 아들♡

자면서도 우리 온유를 떠올리는 잠 많은 미녀 엄마가]

[그냥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엄마 책 써볼까?

대충 제목은 ‘현대인의 올바른 사랑법’ 정도로 하고.

왠지 괜찮을 거 같지 않아? 그만둔 지는 오래됐어도 엄마 기자였었으니까.

혹시 유명해지면 막 사인회도 하고 강연도 다니겠지?

너무 호들갑인가? 호들갑일 거야 아마.

근데 요즘 너무 할 게 없어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모르겠다. 뭐 해야 할지. 나중에 보면 뭐 해야 할지 알려주라 온유야.

아 근데 병원밥 진짜 맛없다. 지금 저녁으로 나온 거 먹기 싫어서 잠시 밀어두고 종이랑 펜 꺼내고 쓰는 거야 이 편지. 우리 아들이 해줬으면 훨씬 맛있을 건데. 나 저번에 네가 해준 오삼불고기 아직도 생각나. 또 먹고 싶어. 온유가 해준 밥 먹고 싶어.

엄마 먹고 싶은 거 해줄게.

네가 말한 거다? 귀찮아도 내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거 꼭 해줘야 해? 알겠지? 고마워.

사랑해 온유야♡

온유가 해준 음식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반찬 투정하는 동심 가득한 엄마가]

[매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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