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장례식 (3)
* * *
“근데 저한테 반말해주셔도 돼요.”
“음? 응, 알겠어. 그럼 너도 말 편하게 해.”
“알겠어요 누나.”
정지연이 씨익 웃었다.
“그래.”
“근데 누나 몇 살이에요?”
“나 서른 한 살.”
“진짜 그렇게 안 보여요.”
“고마워. 살면서 남자친구를 안 사귀어서 그런가 봐.”
“여태 한 명도 안 사귀었다고요?”
“응. 다가오는 사람이 막 좋지도 않고, 사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그래서 안 사귀었어.”
정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 손잡이를 잡고 꺼냈다. 나도 일어섰다. 정지연이 우산을 펼쳤다.
“제가 들까요?”
“그래.”
정지연이 우산을 내게 건넸다. 오른손으로 받았다. 정지연이 내 옆에 붙었다.
“팔 좀 손으로 잡아도 돼?”
“잡아요.”
정지연이 두 손으로 내 오른 팔뚝을 잡았다. 장례식장 쪽으로 느리게 걸었다.
“안에 들어가면 잠 자는 데 있잖아. 거기에서 다 얘기해줘.”
“네.”
“녹음이랑 메모 다 해도 되지?”
“당연하죠.”
정지연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
건물 앞에 다다라 우산을 접고 정지연에게 건넸다. 마루 앞에서 신발을 벗었다. 나를 쳐다본 사람들이 일어서서 내게 다가와 위로의 말과 함께 등을 토닥였다.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정지연이 우산을 받아 통에 넣고 빠르게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은 다음 멀찍이서 나를 바라봤다. 잠시 할 일이 있다고 말해 양해를 구하고 벗어났다. 영좌 앞에서 서 계시던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나를 쳐다봤다. 외할아버지가 내 뒤를 흘깃 봤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봤다. 내 바로 뒤에 정지연이 있었다. 내가 풀려나자마자 따라붙은 듯했다. 외할아버지가 흐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민은 다 한 거냐?”
“네.”
외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하얀 문을 열어 방안으로 들어갔다. 정지연이 따라 들어와서 문을 닫고 왼손 검지로 구석 쪽을 가리켰다.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 최대한 못 듣게.”
“네.”
구석에 앉았다. 정지연이 최신형 폰을 내려놓고 녹음 어플을 열고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정지연이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바로 시작해줘, 라고 말하고 녹음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불화를 느낀 것부터 시작해서 이혼 전문 변호사가 내게 말해주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얘기 같은 세세한 것도 털어놓았다. 윤가영이 선상카페에서 버스킹을 할 때 찾아온 거랑 학폭위 때 어머니에게 전화 걸었던 일까지 다 얘기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외할아버지가 전화거셨을 때 깨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걸 듣고 바로 택시를 타고 왔다는 것까지 말하고 이야기를 끝냈다.
“끝?”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연이 오른손 검지로 폰을 두드려 녹음한 걸 저장했다.
“너는 약간 스토리 텔러 느낌이 있네...”
무슨 얘긴가 싶어서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하고 가만히 바라봤다. 정지연이 눈을 마주쳐왔다.
“그니까, 소연 언니의 죽음과 그 사유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한 느낌이었어.”
“아... 맞네요. 잘못 말했네요.”
“아냐 아냐 아냐. 괜찮아. 네가 해준 얘기 되게 좋았어. 쓸 수 있을 거 같아. 근데 그 이혼 전문 변호사님 연락처 좀 알려줄 수 있어?”
“네 알려드릴게요.”
“응 폰에 찍어줘.”
정지연이 전화 앱을 열고 폰을 내게 건네줬다. 번호를 찍고 돌려줬다. 정지연이 두 손으로 받고 연락처를 저장한 다음 정장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더 필요한 건 없나요?”
“음, 당장은 없어. 아마 나중에도 없을 거야. 믿고 다 나한테 맡겨.”
“감사합니다...”
정지연이 미소 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번호는 교환해두자.”
“네.”
폰을 꺼내고 전화 앱을 켰다. 서로 폰을 바꿔 번호를 적어주고 연락처를 저장했다. 정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게. 마음 같아선 사흘 동안 쭉 같이 있고 싶은데 해야 할 게 많아서 지금 가야 될 거 같아. 미안해.”
“괜찮아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도와주시는 것도요.”
정지연이 미소 지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확실히 끌어내릴게, 네 아버지. 내 능력 인맥 다 동원해서 스캔들 최대한 끌어내 가지고.”
웃었다.
“나락으로 떨어뜨려주세요.”
“응. 진짜 나갈게.”
“네. 안녕히 가세요.”
“그래.”
정지연이 문을 열고 나갔다. 나도 나가서 외할머니의 오른편에 똑바로 서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정지연이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겨 나가는 모습을 마냥 보다가 문상객이 오셔서 맞절했다. 사람이 차츰 모였다. 오는 길부터 우는 사람도 있었고 어머니의 영정을 보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울지 않고 담담하게 내 어깨를 토닥이며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례식장은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았다. 청력이 좋지 않으신 외할머니가 걱정됐다.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외할머니는 고개 저으며 장례식장은 적당히 웅성거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외할아버지가 왼쪽으로 몸을 휘청였다. 두 손으로 외할아버지의 양팔을 잡아드렸다.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 장남으로서 상주를 두 번이나 해보신 외할아버지도 당신의 자식의 상주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주무세요...”
“음...”
“자요. 나랑 손주랑 서 있을 테니까...”
“... 그럼 한 이십 분만 있다가 깨워줘요.”
“삼십 분은 자요.”
“그래요.”
외할아버지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하얀 문을 열어 안에 들어가셨다. 일어선 채로 가만히 있다가 문상객분이 오시면 절하고 위로받고 어느 학교를 다니냐는 둥 사소한 문답을 하고 다시 또 가만히 있다가 절하고 위로받고 문답하기를 반복했다. 외할머니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 깨울 시간인 거 같다, 라고 조용히 속삭이셨다. 고개를 끄덕이고 비좁은 방안으로 들어가 이불도 안 쓰고 베개를 두 개 겹쳐 머리를 벤 외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감긴 눈의 가장자리에는 옅게 물기가 어려 있었다. 주무시다가 눈물이 흘러 나온 건지 자기 전에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아서 차마 다 말라붙지 못해 아직도 남아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슬픔이 전염되기라도 한 듯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흘렀다. 볼을 타고 흐른 뜨거운 눈물 한방울이 나무 바닥 위로 떨어졌다. 무릎 꿇었다. 외할아버지를 깨워도 될까. 깨어나면 당신의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다시 느끼게 되실 텐데. 죄스러웠다. 하지만 깨워야 했다. 외할머니도 주무실 필요가 있어 보였다. 두 손을 외할아버지의 어깨에 얹고 살살 흔들었다. 낮게 목소리를 냈다.
“외할아버지, 일어나세요.”
“으음...”
외할아버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왼손을 들어 내 오른팔을 툭툭 쳤다.
“깼다.”
“빨리 나오셔요. 외할머니도 주무셔야 할 거 같아요.”
“그래.”
외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외할아버지의 눈밑이 파르르 떨렸다. 외할아버지도 더 주무셔야 할 것 같았다.
“그냥 저 혼자 서 있을 테니까 외할머니랑 같이 주무실래요...?”
“아니다. 많이 잤다.”
외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외할아버지가 옷걸이에 걸어둔 외투를 걸치고 나가서 나 깼으니까 좀 자둬요, 라고 말했다. 외할머니가 그래요, 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방안으로 외할머니가 들어왔다. 외할머니가 이불을 꺼내면서 내게 시선을 맞추고 싱긋 웃었다.
“손주도 자는 거야?”
“아뇨. 나갈 거예요.”
“그러지 말고 좀만 앉아서 쉬어라. 오래 섰잖니.”
다리가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네...”
외할머니가 빙긋 웃고 머리랑 다리에 베개를 하나씩 베서 이불을 몸 위에 덮은 다음 눈을 감았다. 폰을 꺼냈다. 열 시 삼십육 분이었다. 4분 있다가 나가야 할 듯했다. 문자 앱을 켰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어디 감?]
[미친 새끼야?]
[ㅈㄴ 뭐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고 연락도 씹는 거 뭔데?]
[개 배신감 느껴지네 개새끼]
[너 별장으로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
[미안해 온유야 나 진짜 몰랐어]
[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너 없는 거 보고 지각까지 해 가지고 갑자기 화나서 그랬어]
[진짜 미안해]
[학교 끝나고 바로 갈게]
[용서해줘]
별 생각이 안 들었다. 화날 만 했고 미안하다는 말도 했으니 미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그냥 지금은 이런 문자 하나에 감정이 들 수가 없었다.
[괜찮아]
다른 사람한테서 온 문자도 많았다. 다 조의를 표하는 것이었고 문자의 뒤에는 이따가 찾아가겠다는 말이 붙어 있었다. 메모에 감사하다는 말을 써서 복사하고 일일이 붙여넣어 보냈다. 폰을 오른 주머니에 넣고 나가서 외할아버지의 옆에 섰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왼손으로 외투 안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꺼냈다. 고이 접어서 쌓은 종이들이었다.
“이거 너만 읽으라더라. 까먹고 바로 못 줘서 미안하다.”
외할아버지가 종이를 내게 건넸다. 당신의 딸이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을 읽지 않고 버티려면 얼마나 큰 자제력이 필요할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진짜 안 읽으셨어요...?”
“그래. 딸이 한 마지막 부탁인데, 그걸 어떻게 안 들어주겠냐...”
목이 멘 외할아버지가 몸을 굽혀 바닥에 있는 500ml 페트병을 들어 물을 마셨다. 편지에는 눈물에 젖었다가 말라붙은 것 같은 자국이 많이 있었다. 잉크 대신 눈물로 쓴 것 같았다. 맨밑에 있는 걸 보기 위해 손을 뒤집어봤다. 종이 가운데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거 왜 피가...”
“소연이가 그거, 마지막 장 쓰면서, 피 토했거든. 그래서, 묻은 거다.”
“...”
“... 너 다 읽고 나면, 나도, 읽어도 되겠니? 많이, 많이 보고 싶구나...”
외할아버지가 더는 참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외할아버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외할아버지가 왼손 엄지랑 네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안에 들어가서 읽어라...”
“... 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닫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외할아버지께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구석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아직 펴지도 않았고 읽기도 전인데 울 것 같았다. 정말 울기 싫었다. 눈물로 편지에 얼룩 지우고 싶지 않았다. 종이를 내려놓고 두 팔을 겹쳐 무릎 위에 두고 얼굴을 묻었다. 외할머니가 깨시지 않게 조용히 울었다.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목이 말라서 콜라캔을 따서 그대로 다 마셨다. 편지를 두 손으로 조심히 들어서 하나씩 종이를 폈다. 어머니 특유의 아기자기한 글씨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맨 위부터 천천히, 글자 하나하나를 다 뜯어보듯이, 아주 느리게 읽어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