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장례식 (2)
* * *
등이 뜨거웠다. 땀으로 온몸이 젖은 느낌이었다. 보일러를 심하게 틀어댄 듯했다. 눈 떴다. 처음 보는 벽지랑 전등이 보였다. 몸을 일으켰다. 몸을 덮은 보라색의 얇은 이불도 처음 보는 거였다.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려봤다. 비좁은 공간 한구석에 이불이랑 베개가 있는 서랍장이랑 옷걸이가 여섯 개 매달린 원목 옷걸이 행거가 있었다. 행거에는 외할아버지가 쓰는 외투가 옷걸이에 끼워져서 걸처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하나밖에 없는 하얀색의 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문이 스스로 열렸다. 오른 팔뚝에 상주 완장을 찬 외할아버지가 보였다. 오래 잠을 못 주무신 건지 눈빛이 조금 흐렸다. 깼구나. 네... 외할아버지가 안에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저 오래 잤어요? 아니. 오래 안 잤다. 지금 아침이야. 우느라 기 다 빠졌을 건데 나가서 밥 좀 먹어라. 옷부터 갈아 입고. 저깄다. 네. 옷을 벗고 바닥에 곱게 접힌 흰 셔츠와 검은 정장, 검은 바지를 입었다.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고 볼이 살짝 들어간 모습이 수년은 바짝 늙으신 것처럼 보였다. 외할아버지도 식사하세요. 그래. 같이 먹자꾸나. 외할아버지가 행거로 걸어가 외투의 오른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엄마랑 끊는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외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외할아버지의 두 눈에 눈물이 어렸다. 약속한 사람이 갔는데,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냐. 외할아버지의 왼손이 덜덜 떨려서 담뱃갑을 바지 왼주머니에 넣으시는데 손이 네 번이나 빗나갔다. 피울 거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오른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네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했다. 학교 끝나고 오신다더라. 네... 나가서 밥 먹자. 외할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같이 밖에 나왔다. 장례식장을 메우는 국 냄새 사이로 미세하게 담배 냄새가 풍겼다. 피어오르는 향의 잿빛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액자 속에 담긴 흑백 영정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 어머니는 은은히 미소 짓고 있었다. 액자 앞에는 하얀 국화가 네 송이 놓여있었다. 무릎 꿇고 향을 집어들어 양초에 대 불 붙이고 허공에 살짝 흔들어 불을 껐다. 두 손으로 향을 꽂고 일어섰다. 두 번 절하고 탁자에 늘어놓인 국화를 집어 헌화했다. 물러나서 고개 숙이고 두 손을 맞잡아 어머니의 평안을 기도했다. 알고 있는 모든 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루는 건 어떤 종교의 어느 신이든 상관없었다. 이뤄지기만 하면 됐다. 눈 뜨고 고개를 돌려봤다. 장례식장 안에서 사람이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빼면 일곱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장례지도사 한 명이랑 음식을 만들고 옮겨주시는 분 두 명을 제외하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온 사람은 네 명뿐이었다. 아무 자리에나 앉아라. 네... 한 식탁에 둘러 앉은 외가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손짓했다. 어느 중년 아주머니가 자기가 앉은 자리 오른쪽 바닥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이리 와. 비좁아보이는데 일단 다가갔다. 네... 사람들이 내 자리 만들어주려는지 엉덩이를 옮겼다. 가운데에 앉았다. 네가 소연이 아들이구나... 네... 진짜 잘생겼다. 아들은 엄청 잘 낳았어. 밥은 먹었어? 먹었겠어? 애한테 들어야지. 아직 안 먹었어요. 그래, 그럼 밥 먹어야지! 앉아 있어 봐 내가 가져올게. 여기가 딴 건 몰라도 국은 맛있더라. 뒤 빼고 앞이랑 양옆에서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왔다.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근하게 대해주셨다. 국에 밥을 말아서 한 그릇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일어나냐? 상객을 맞아 절을 하고 돌아와 국을 떠 드시던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저 잠시 밖에서 공기 좀 쐬려구요. 그래. 저기서 콜라 하나 쥐고 나가라. 남으면 가져가야 된다. 네. 콜라캔을 하나 꺼내고 신발을 신었다. 뒤에서 누가 손가락으로 내 등을 쿡쿡 찔렀다.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처음 보는 검은 정장과 치마에 검은 스타킹을 신은 젊은 여자가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자연 갈색으로 보이는 날개뼈 밑쪽까지 닿을 긴 생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은 외가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아보였다. 질문 공세에 답하며 정신 없이 밥 먹는 사이 찾아온 사람인 모양이었다. 네. 여자가 우산을 챙겼다. 나도 우산이 필요할 거 같은데. 그냥 제 거 같이 써요. 여자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같이 계단을 밟았다. 근데 이 사람은 왜 나랑 같이 나가려는 걸까?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굳이 묻지는 않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먹구름이 추적추적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여자가 우산을 펼치고 내 옆에 다가섰다. 입으로 조용히 심호흡했다. 도저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어머니 집에 가면 침대에 누운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내게 왼손을 뻗어 반길 것만 같았다. 영좌에 두 번 절한 정도로는 어머니의 죽음이 내게 와닿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나를 따라와서 옆에 선 여자가 눈을 찡그린 채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시선이 느껴졌다. 무시할까? 고민하는데 여자가 발을 돌려 몸까지 내 쪽으로 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고개를 돌려 마주 봤다. 여자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건가? 오른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여자가 빙긋 웃었다. 뭐 하는 사람일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게 아는 방법이었다.
“누구세요?”
“기자예요. 이름은 정지연이고요.”
“기잔데 왜...?”
“그거 얘기하려면 말 좀 길게 해야 하는데.”
정지연이 왼손 검지로 지붕이 있는 나무 벤치를 가리켰다. 근처에도 있는데 굳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리 있었다.
“일단 저기 벤치에 앉을래요?”
“그래요.”
같이 나무 벤치로 걸어가 나란히 앉았다. 정지연이 우산을 접고 우산통에 넣었다. 정지연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소연 언니 기자였던 건 알죠?”
조금 의아했다. 우리 엄마를 두고 언니, 라고 칭하기에 정지연은 너무 젊어보였다.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언론사 처음 들어갔을 때 언니가 저 대학교 후배라고 되게 챙겨줬거든요. 성도 같은 정씨고, 연자 돌림인 것도 같은데 쓰는 한자까지 고울 연자로 똑같이 써서 이건 거의 운명이라면서 진짜 터울 좀 있는 친언니 친동생처럼 지내고 같이 술도 마시고 그랬어요. 언니가 일 그만두기 전까지는.”
뭐라 반응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정지연이 고개를 돌려 지평선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언니 동생 한 게 있으니까 가끔 따로 만났어요. 최근만 해도 저번주 금요일에 집에 찾아가서 언니랑 보기도 했구요. 지금은 언니 아버지한테 전화와서 바로 차 몰고 달려왔어요.”
“...”
“저 담배 좀 피워도 돼요?”
“네 피우세요.”
정지연이 오른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왼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 정지연이 익숙하게 불을 붙였다. 정지연이 담배를 한 입을 쪼옥 빨고는 오른손 중지랑 검지로 담배를 잡고 입술을 모아 후 불면서 연기를 뱉었다.
“그냥 바로 얘기할게요. 무슨 사정인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어요? 언니 이혼부터 하나하나.”
“... 아시려는 이유가 뭐예요?”
“복수하려고요. 언니 버린 놈한테.”
“뭐 어떻게 하시게요?”
“기자랬잖아요, 저. 기사 써서 해야죠.”
“... 어머니 관련해서 기사 쓰시려면 우선 외조부모님께 허락받아야 할 거예요.”
“이미 받았어요. 이제 언니 아들한테서만 받으면 돼요.”
“...”
정지연이 싱긋 미소 짓고 담배를 입에 물어 한 번 쪽 빨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연기를 내뿜었다. 왜 흡연자들은 힘들 때면 담배를 입에 무는 걸까. 내가 멘탈이 깨졌을 때 술을 마시는 거랑 비슷한 느낌일까? 그럴 듯했다. 담배는 대체 무슨 맛이길래 흡연자들이 차마 끊지 못하는 걸까. 긍금했다.
“담배는 무슨 맛이에요?”
“맛 같은 거 없어요. 그냥 니코틴 빨려고 피우는 거지.”
“니코틴만 필요한 거면 니코틴 패치 같은 거 쓰면 되지 않아요?”
“꼭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정지연이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뱉으면서 고개 숙여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담배는 맨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피우는 거니까.”
정지연이 오른발로 담배를 비벼 끄고 정장 왼주머니에서 주유소 물티슈를 꺼내 한 장 뽑아 담배를 주운 다음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지연이 다시 벤치에 털썩 앉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허락해줄 거예요?”
“네. 당연히 해야죠.”
정지연이 미소 지었다.
“근데 그렇게 선뜻 답하지 말고 좀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왜냐니요. 누가 뭐래도 일단은 본인 아버지잖아요. 뭐 이건 솔직히 개소리고. 본인 아버지 이미지 무너지면 본인도 어떻게 영향받을 수도 있으니까 좀 신중하게 생각해봐요. 연예인한다면서요.”
“진짜 괜찮아요 전.”
“그래요?”
정지연이 빙긋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면 진짜 허락하는 걸로 알게요.”
오른손을 뻗어 맞잡았다. 정지연이 오른손을 놓더니 큭큭 웃으면서 고개 숙이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샴푸 향이 풍겨왔다. 인상이 날카로워서 그런가, 아이처럼 웃는 모습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정지연은 본모습은 이렇게 부드러울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니 꽤 귀여워 보였다. 미소 지어 보였다.
“왜 웃어요?”
“아니, 언니가 봤으면 하지 말라고 말렸을 거 같아서요. 우리 아들 인생 망칠 일 있냐고 하면서.”
“제가 원한 거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정지연이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언니는 저만 혼낼 거예요. 온유씨만 엄청 편애해 가지고.”
어머니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미소 지어졌다. 동시에 울적해졌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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