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장례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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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이 울렸다. 왼팔을 뻗고 폰을 잡은 다음 오른손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눈두덩이에 빛이 안 느껴지는 걸 보면 아직 새벽인 거 같은데. 누가 전화했을까. 하품하고 눈 떴다. 외할아버지께서 전화 거신 거였다. 불길했다. 세 시 사십사 분인데 전화를 거실 일이 뭐가 있을까. 한 가지밖에 안 떠올랐다. 다른 경우를 떠올리려 해도 생각은 고정됐다. 전화가 끊겼다. 너무 오래 안 받은 듯했다. 잠금을 해제하고 연락처를 켜 최근 기록을 보고 외할아버지에게 전화 걸었다. 바로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어, 온유야...
외할아버지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 듯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외할아버지가 우신 기억은 없었다.
ㅡ소연이가, 네 엄마가, 하늘로 갔다.
거짓말이죠. 아니, 외할아버지, 아니죠...? 으흐흐흑, 하고 흐느끼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흡, 미안하다. 진짜다. 주소 보냈으니 병원으로 와라. 미안하다. 전화가 끊겼다. 화면이 꺼지면서 사위가 어두워졌다. 다시 폰을 켰다. 엄지로 패턴을 해제하려 했다. 세 번을 틀리고 다시 시도해서 풀었다. 할아버지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려 했는데 자꾸 다른 문자로 들어가졌다. 하루에도 수백 번은 폰을 눌렀을 엄지가 자꾸 빗나갔다. 뒤로 가기도 자꾸 성급하게 두 번 이상 누르면서 다시 문자앱으로 들어가면서 시간이 지체됐다. 다른 사람들이 보내온 문자 세 개를 들어가고 나서야 외할아버지의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병원은 서울에 있었다. 주소를 복사하고 바로 택시를 불렀다.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 오줌이 마려워졌다. 변기 앞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왼 무릎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변기에 앉았다. 대변까지 누고 말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빨리 가야 하는데. 역겨웠다. 이 몸뚱이는 항상 말썽이었다. 시의적절하게 생리를 조절할 줄을 몰랐다. 좀만 꼴린다 싶으면 좆만 발딱 세워대는 것부터 사람의 몸이라기보다는 짐승의 몸뚱이었다. 지겨웠다. 그리고 비참했다. 손을 씻고 나와 검정 트위드 자켓을 걸쳤다. 우산을 챙기고 신발을 구겨 신은 다음 나가 문을 잠그고 대문을 나서자마자 왼발로 밀어서 닫았다. 택시가 와 있었다. 뒷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좌석에 앉았다. 빨리 가주세요. 네엡. 기사의 입을 때리고 싶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반쯤 미쳤을지도 몰랐다. 오른손을 주먹 쥐고 내 허벅지를 짓눌렀다. 성이 안 찼다. 두 손으로 허벅지를 쥐어뜯듯이 했다. 아팠다. 죽고 싶었다. 비명 지르고 싶었다. 간담이 찢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파왔다. 오른손으로 조수석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몸을 수그렸다. 학생 괜찮아요? 기사가 속도를 줄이며 나를 흘깃 보고 다시 정면주시하면서 물었다. 괜찮아요. 빨리 가주세요. 택시가 아니라 앰뷸런스를 불렀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말투가 너무 가벼웠다. 짜증났다. 화내고 싶었다. 하지만 꾸짖기엔 너무 무고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신호에 걸려 택시가 정차했다. 아이고 심각하네... 아니에요... 기사가 오른손으로 뚜껑 없는 콘솔박스에 들어 있던 자기 폰을 쥐었다.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여기서라도 앰뷸런스 부를까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저, 흡, 안 아파요... 택시가 다시 움직였다. 관성으로 몸이 뒤로 쏠려 등이 좌석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그럼 무슨 일이에요? 제 엄마가, 끅, 돌아가셨어요... 기사가 할 말을 잃었는지 말없이 입을 벌렸다가 오므렸다. 미안해요 학생. 빨리 갈게요. 기사가 악셀을 밟았다. 여태 타본 택시 중 가장 빠른 속력이었다. 대형트럭 같은 게 지나가면 차체가 흔들릴 거 같은데 그럼 고꾸라지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왔어요 학생.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기사의 등이랑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기사가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빨리 몰아본 적은 처음이라... 고개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네. 문을 열고 나갔다. 우산을 펼쳤다. 외할아버지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연결됐다. 온유야. 저 왔어요. 어 알겠다. 문앞에 있어라. 네. 전화가 끊겼다. 유리문 근처에 가서 뒤돌아 섰다. 입으로 심호흡했다. 폐에 들어오는 밤공기가 차가웠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우산을 쓴 외할아버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주 걸어갔다. 한껏 움츠린 어깨가 외할아버지 같지 않았다. 붉어진 눈시울도 이번으로 처음 보았다. 두 발짝 쯤 걸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니 담배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코가 절로 찡그려졌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냄새 많이 나냐. 네. 미안하다. 외할아버지가 뒷걸음질치면서 외투를 벗으려 했다. 우산 저 주세요. 그래. 외할아버지의 우산을 대신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어깨 부분을 잡아 허공에 탁탁 털었다. 가만히 기다렸다. 외할아버지가 외투를 왼팔에 걸치고 다가왔다. 담배 냄새가 살짝은 났다. 가자. 네. 안으로 들어갔다. 외할아버지가 앞장섰다. 발걸음이 빨랐다. 지나가던 여자간호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옆에 나란히 걷던 여자간호사가 눈을 찡그린 간호사의 등짝을 한 대 때렸다. 왜요? 따님 돌아가신 분이야... 속삭이는 소리였다. 아... 외할아버지가 비상구로 갔다. 3층부터 외할아버지가 헉헉댔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으셨다. 야 여기가 5층이냐? 네. 외할아버지가 왼손으로 문을 열고 구부정한 자세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외할아버지가 오른손 검지로 침대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있다. 네. 먼저 갈게요. 대답도 안 듣고 성큼성큼 걸었다. 침대에 발끝부터 머리까지 시트가 덮어져 있었다. 사람이 있다기에는 너무 얇고 평평해 보이는 게 몸이 말라 비틀어진 상태의 어머니의 체격이 확실했다. 숨이 턱 막혔다. 침대 왼편에 외할머니가 주저앉아 계셨다. 펑펑 울고 기진맥진하신 건지 초점 없는 눈을 하고 말그대로 정말 숨만 쉬고 계셨다. 저 왔어요. 어, 어...? 외할머니가 두리번거렸다가 나를 올려봤다. 손주... 외할머니가 오른손으로 등받이 없는 의자를 짚었다. 일어나시려는 거 같아서 바로 몸을 굽혀 두 손으로 외할머니의 옆구리를 잡았다. 외할머니의 왼발이 바닥에 주욱 미끄러졌다. 아... 그냥 앉아 계세요 외할머니. 그래야겠다... 외할머니를 끌어안아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혔다. 외할머니가 슬픈 눈을 하고 두 손을 뻗어와 내 볼을 어루만졌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온유야... 우리 손주... 외할머니의 목이 멨다. 탈수가 올까 걱정스러웠다. 그만 우셔요. 어떻게 안 울겠니...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었는데에... 외할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가 다가와 무릎 꿇고 외할머니를 안았다. 눈물이 흘렀다. 가운을 입은 여자 의사가 다가왔다. 돌아가신 분 아드님... 이시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인해보시겠어요...? 네... 의사가 두 손 엄지랑 검지로 조심히 시트를 잡고 머리 쪽을 걷어서 보여줬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얼마나 뽑혀나갔는지 머리에 두피가 듬성듬성 보였다. 감은 두 눈에 짙게 내린 다크서클 아래로 움푹 패인 볼에 다크서클의 빛깔을 한 그림자가 졌다. 피부색은 아직 완전히 창백해보이지 않았다. 자는 것처럼 보였다. 눈이 부릅 뜨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사의 멱살을 쥐었다. 의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멱살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의사가 두 손으로 가운을 쓸면서 주름을 폈다. 괜찮아요... 말없이 몸을 돌려 침대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만졌다. 차가웠다. 엄마는 정말 돌아가신 거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목이 멨다. 고개 숙였다.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아, 아아... 엄마아... 입에서 침이 흘렀다. 고개를 들어봤다. 엄마는 내 부름을 듣지 못했다. 다시 고개 숙였다. 난 엄마를 볼 자격이 없었다. 죽고 싶었다. 내 잘못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내가 잘못해서 돌아가신 거였다. 너무 자주 엄마를 찾아가서 끝없이 이준권을 떠올리게 한 내 잘못이었다. 학교폭력으로 등교 정지나 당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걱정하게 해서 속을 썩인 내 잘못이었다. 학폭위에 윤가영을 불러 이준권도 모자라 당신의 자식마저 뺏긴 듯한 느낌이 들게 한 내 잘못이었다. 몸을 일으켜서 엄마를 끌어안았다. 잘못해써어... 미안해애... 누가 내 등을 쓸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온유야. 외할아버지 목소리였다. 왼쪽으로 돌려 외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외할아버지는 몰라요... 내가 뭘 모른다고 그러냐. 그니까아, 흑, 다 제가 잘못한 거라고요... 외할아버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소연이, 네 엄마 내 딸이다. 소연이 아빠로서 말하는데,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콧물이 흘러 입에 들어갔다. 침이랑 함께 그대로 삼켰다. 외할아버지가 오른 무릎을 꿇고 나를 품에 안아 등을 토닥여주셨다. 외할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입으로 가쁘게 호흡하는데 숨이 모자랐다. 몸이 왼쪽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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