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수요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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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고 왔을까? 멍청한 의문이었다. 당연히 백지수 아니면 백도식에게서 듣고 왔을 거였다. 당황스러워서 뇌가 잘 안 돌아가는 건가. 정신을 차려야 했다. 머리에 한 번 더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만약에 백지수에게서 듣고 왔다면 백지수가 내게 전화든 문자든 해서 자기가 오빠랑 연락해서 내 얘기를 했다는 걸 언질해줬을 터였다. 아마도 백도식에게서 전화나 문자로 내 얘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아직도 바닥에 있는 봉투를 들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손부터 씻고 냉장고를 열었다. 위스키랑 어울리는 요리가 뭐 있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안심을 꺼내고 도마에 두 덩이를 올렸다.
“두 덩이로 되겠어?”
“괜찮지 않을까요?”
“뭔 소리야. 너 그렇게 먹음 안 배고파? 너 근육 키우지 않아?”
“진지하게 막 키우는 건 아닙니다.”
“됐어 키우면 키우는 거지. 하나씩 더 해.”
“... 네.”
두 덩이를 더 꺼내 올리브유를 바르고 소금이랑 후추를 뿌려 양면에 고루 묻혔다. 폰을 보던 백도영이 갑자기 전원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아예 꺼버리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도마를 바라봤다.
“요리 잘하나 봐? 백지수는 베이킹은 몰라도 요리는 잼병인데.”
“... 먹을 만은 합니다.”
“먹을 만하게 하는 게 잘하는 거지. 고기 바로 굽자 이거.”
“네.”
냉장고에서 버터랑 통마늘을 꺼내고 통마늘을 가로로 반으로 갈랐다.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강불로 틀었다. 팬이 달궈져 연기가 올라올 때 올리브유를 둘렀다. 도마를 들어 아직 안 쓴 프라이팬 앞으로 가서 집게로 안심을 집어 조심히 올렸다. 치이익, 소리가 났다. 속으로 30초를 세는데 백도경이 갑자기 내 오른편에 와서 멈춰섰다.
“고기는 누구 돈으로 샀어?”
“이건 제 돈으로 샀습니다.”
“네가 생각해도 존나 이상하지?”
“...”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백도영이 나를 쏘아봤다.
“기구해 보이긴커녕 존나 잘만 산 거 같고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이, 굳이 여자애랑 동거하면서 ‘남자친구 아니다’라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으면 내가 그걸 믿어야겠어?”
“... 저 진짜 지수 남자친구 아닙니다.”
백도영이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잠시 말없이 나를 노려봤다. 30초가 지나 고기를 다시 뒤집었다.
“너 여동생 있지?”
“...”
“네 여동생한테 어떤 등교 정지당한 놈팡이가 달라붙어서 살면 넌 어떡할 거냐? 상상만 해도 손이 근질근질하지 않냐?”
미칠 것 같았다. 이수아랑 등교 정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백도식한테는 얘기하지 않은 거였는데.학교에 연락하기라도 했나? 백도영이 프라이팬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고기 타겠다.”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올리브유를 더 끼얹었다. 고기를 옆면으로 세우고 팬을 기울여 온도를 집중시켰다. 다시 고기를 눕히고 반으로 자른 통마늘과 로즈마리, 타임을 넣었다. 허브향이 코를 찔렀다. 한숨이 나왔다. 불을 중불로 줄이고 스테이크를 뒤집은 다음 버터를 넣었다. 버터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통마늘 위에 스테이크를 올리고 팬을 기울인 채 숟가락으로 아로제했다. 스테이크를 뒤집고 집게로 마늘을 집어 팬이랑 닿은 면으로 비벼서 향을 입혔다. 다시 아로제했다.
“그 기름에 마늘 플레이크 좀 만들어줄래?”
“네.”
불을 끄고 도마에 스테이크를 올린 다음 호일을 덮어 레스팅했다. 핸드폰으로 5분 타이머를 맞추고 마늘을 얇게 썰었다. 보울에 물을 담고 편마늘을 넣은 다음 대충 손으로 휘젓고 물을 빼고 해서 네 번 헹궈줬다. 체에 올려 물기를 털어내고 키친타올로 물기를 없앴다. 프라이팬에 불을 켠 다음 카놀라유를 넣어주고 편마늘을 넣었다. 노릇노릇 익어갔다. 나무주걱으로 살짝 섞어줬다. 타이머가 울렸다. 백도경이 타이머를 끄고 호일을 빼서 가운데를 잘라 안을 확인했다.
“잘 구웠네.”
백도영이 그대로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썰어내고는 접시에 옮겨 스테이크 조각들이 서로에게 기대어지게 비스듬히 해서 플레이팅까지 마쳤다. 솜씨가 꽤 능숙했다. 마늘 플레이크를 다시 뒤섞었다. 백도영이 접시를 테이블에 옮기고 냉동고에서 얼음 봉지를 꺼내 올드 패션드 글라스 두 잔에 얼음을 세 개씩 넣었다.
“저 미성년잔데요?”
“백지수가 술을 마시는데 네가 안 마신다고?”
“...”
백도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재지 말고 말해. 짜증만 나니까.”
“위스키는 별로 안 마셔봤습니다.”
“그럼 이 기회에 좀 마셔봐.”
백도영이 글라스에 맥캘란을 따르고 양손에 들어서 내게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 마늘 플레이크를 뒤섞었다. 백도영이 오른손에 든 글라스를 내게 건넸다.
“한 손으로 받아도 돼.”
“네.”
왼손으로 받았다. 백도영이 먼저 작게 한 모금 머금고 삼켰다.
“넌 안 마실 거야?”
“...”
불편해서 속이 더부룩한 상태에 공복이기까지 한데 술을 마시라니. 황금빛의 위스키가 독처럼 보였다.
“얼음 녹으면 맛없어. 빨리 마셔.”
“... 네.”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우디한 향이 코에 감돌았다. 달달한 맛과 함께 미세하게 고소한 맛이 났다. 꼴깍 삼켰다. 맥캘란이 부드럽게 목을 넘어갔다. 스파이시한 느낌이 남았다. 잘은 몰라도 좋은 위스키였다. 맛있다, 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기침이 나왔다. 글라스를 내려놓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무 주걱을 든 채 오른손으로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큭큭. 술 못 마셔?”
난 잘 마시는 편인 거 같은데. 지금은 왠지 그냥 못 마신다고 긍정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네.”
백도영이 갑자기 정색했다.
“대답할 때 간 보지 말라고.”
선뜩했다. 미친 사람인 게 확실했다.
“알겠습니다.”
백도영이 프라이팬을 내려봤다.
“이거 접시에 옮기고 빨리 먹자.”
“네.”
백도영이 내 글라스를 잡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접시에 마늘 플레이크를 옮겨놓고 프라이팬에 뚜껑을 덮어뒀다. 백도영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백도영이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었다.
“먹자.”
“네.”
백도영이 곧장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백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맛있네.”
“감사합니다.”
“너도 들어.”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고 스테이크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었다. 맛은 있는데 즐겁지는 않았다. 마늘 플레이크를 하나 먹고 오른손으로 글라스를 잡았다. 백도영이 나를 보고 오른손으로 자기 글라스를 잡아 들었다. 나도 들어서 가까이 했다. 잔을 부딪치고 같은 타이밍에 각자 맥캘란을 한 모금 마셨다. 백도영이 포크로 스테이크를 한 점 찍으며 입을 열었다.
“오기 전에 인터넷에 네 영상 떠다니는 것들 대충 훑어봤어. 뭐 가수 될 생각이었나봐?”
“네.”
백도영이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했다.
“근데 못하지 않아? 애 때려서 학교폭력으로 등교 정지당했는데. 다른 비전은 없어?”
“없습니다, 다른 비전.”
“그럼 뭐 기생충이라도 되겠다고? 지수한테 붙어서?”
“... 기생충이라뇨.”
“미래에 할 거 하나 생각 안 해두는 놈이 빌붙어 먹으면 그게 기생충이 아니고 뭐야?”
“저 가수 될 수 있습니다.”
백도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백도영이 맥캘란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 될 수야 있겠지. 뭐 좀 뜨다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바로 가라앉고 나서 그대로 우울증 호소하면서 지수한테 달라붙어 가지고 나 좀 살려달라고 하면서 기생충이나 되겠지.”
일부러 계속 긁어대는 건가? 오빠로서 화를 어느 정도 내는 건 이해했지만 초면이면서 이렇게 끊임없이 비아냥대는 건 선을 넘는 거였다. 슬슬 화가 치밀어올랐다.
“기생충 안 됩니다. 애초에 학교폭력 논란으로 망하지도 않을 겁니다.”
맥캘란을 한 모금 마셨다. 백도영을 노려봤다.
“그리고 저 진짜로 지수 남자친구 아닙니다.”
백도영이 벌떡 일어났다. 뭔가 할 일이 예상됐다. 두 손으로 테이블 양옆 끝을 잡았다. 백도영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탕 소리와 함께 접시가 흔들렸다. 스테이크 두 점이랑 마늘 플레이크 여러 개가 테이블에 떨어졌다. 완전히 세게 내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내려치는 타이밍도 조금 느렸다. 정말 테이블을 엎고 싶었다면 일어서면서 내려치거나 테이블 옆쪽을 잡고 던지듯이 하면서 일어나야 했을 거였다.
백도영은 어딘가 이수아랑 비슷한 느낌이 났다. 그러니까, 뭔가 연기 같았다.
“끝까지 지랄하네 이 개새끼가!”
큰 소리를 낸 백도영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내 쪽으로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해왔다. 이것도 과장된 액션이었다. 지금 보니 생김새나 몸이나 젊은 연기자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백지수랑 여덟 살 터울이면 스물여섯 살일 거였고, 그렇다면 군대를 다녀왔다가 대학을 졸업했을 거였다. 아니면 군휴학 말고도 더 휴학을 해서 다시 다니고 있거나. 느낌상 학과는 연영과일 것 같았다.
뭘 위해서 연기를 하면서 날 몰아세우는 걸까? 당장 알지는 못할 듯했다. 그래도 지금 괜히 열받을 필요는 없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욕도 무례도 다 진심이지는 않을 거였으니까.
지금은 그냥 간을 보면서 목적이 뭔지 파악하고 최선을 다해서 말을 받아치면 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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