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화요일 (9)
* * *
“너 진짜 5년만 일찍 태어나지... 그럼 내가 바로 너한테 사겨보자고 했을 건데...”
살폿 웃었다.
“2년 뒤에 저 어른 되고 나서 하면 되잖아요, 사귀자는 건.”
“안 되지...”
“왜요? 그때면 성인끼리 사귀는 건데.”
“아니... 2년 뒤면 나는 서른 살이고 너는 스무 살인데 그럼 완전 도둑년인 거잖아... 넌 잘생겼고 노래 잘 부르고 요리도 잘하고 착하고 애들 잘 보고 다 완전 최곤데...”
“누나도 예쁘잖아요. 서른 살 돼도 저랑 나이차도 안 나 보일 것 같은데.”
“거짓말...”
“진심이에요.”
“아니, 막말로 네 말대로 나이차 안 나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 열 살이나 차이 나는데 그럼 욕 먹지...”
“욕 먹어도 상관없지 않아요?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 너 자꾸 왜 그래...?”
“뭐가요?”
“왜 자꾸 기대하게 해...? 왜 내가 진짜로 너랑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해...?”
“가능한 일이긴 하니까요.”
“...”
강혜린이 눈을 감고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소주를 꼴깍 삼켰다. 치즈를 올린 닭고기를 두 점 집어 입에 넣고 밥을 다 털어넣었다. 이젠 정말 나가야 했다.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갈 거야...?”
“가야죠.”
“나 진짜 딱 하나만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 있는데...”
“뭔데요?”
“기타 치면서 ‘사랑은’ 불러주라...”
“마미손 노래요?”
“응...”
“알겠어요.”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고 소파에 앉아 폰으로 악보를 찾았다. 강혜린이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에 두 팔을 얹고 턱을 올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멜로디를 떠올려보고 바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성대를 울렸다.
ㅡ사랑은 헷갈리게 하지않아
그게 너라면 아깝지않아
강혜린이 미소 지었다. 이렇게 예쁘게 웃는 사람인데 왜 여태 남자친구가 없었을까. 이해가 안 됐다. 강혜린이 두 눈을 감았다.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이 예뻐서 자꾸만 시선이 빼앗겼었는데 눈을 감은 덕분에 다른 곳도 보이기 시작했다. 오똑한 콧날 아래로 보이는 혈기가 도는 분홍빛 입술이 마구 키스해주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웠다.
ㅡ이런 내가 널 좋아한다면
그니까 내가 널 맘에 둔다면
오후 네시 좀 넘어가는 해 비출때
너와 매일 난 걷자할거야
강혜린이 입을 다문 채 낮은 소리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음이 꽤 정확한 걸 보면 강혜린도 노래를 잘 부르는 듯했다. 기회가 된다면 강혜린이 노래 부르는 걸 들어보고 싶었다. 그냥 내일 강혜린이 반으로 들어온다거나 했을 때 내가 봉사 첫날에 당했던 것처럼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잡생각을 하느라 기타 치는 박자가 살짝 밀렸다. 강혜린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멋쩍게 웃고 바로 다시 똑바로 불렀다. 강혜린이 다시 눈을 감았다.
ㅡ난 너만을 넌 나만을 남겨둬
강혜린이 눈을 뜨고 의자에서 일어나서 두 손을 내게 뻗어오며 내게 다가왔다.
“흐으응... 고마워 온유야.”
기타를 소파에 내려놓고 미소 지으며 강혜린의 두 손을 맞잡았다.
“왜 이리 애 같아요 누나는?”
“응...? 왜...?”
“그냥 행동이나 말하는 거나 애들 느낌이에요. 순수하고 귀엽고.”
강혜린이 맞잡은 두 손을 어색하게 놓고 한 발짝 뒤로 걸은 다음 입을 열었다.
“너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면서 귀엽다는 말 막 하면 어떡해...”
“근데 진짜 귀여운데 어떡해요. 얼굴도 어려 보이고.”
“...”
“누난 남자친구 만들려고만 하면 금방 생길 거예요.”
강혜린이 순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 으응... 이제 가야 되지...?”
“가야죠.”
“그래...”
기타를 케이스에 넣고 지퍼를 닫은 다음 들어서 등에 멨다. 강혜린에게 잘 있으라고 말하고 손인사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인도로 나와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켜봤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 빨리 가야 할 듯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뭔가 내 앞으로 쭈뼛쭈뼛 다가오려는 것 같은 여자가 보여서 폰으로 백지수에게 전화를 걸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다행히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바로 뚝 끊긴 게 아니라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 걸 보면 나를 차단했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모양이었다. 단단히 화난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화를 풀어줘야 할까. 단 거를 줘야 하나? 헛웃음이 나왔다. 백지수가 애도 아닌데 단 거를 받고 화를 풀어줄 리 없었다. 그냥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용서를 구해야 할 거였다.
왼손 검지에 키링을 끼워놓고 있다가 별장이 보이자마자 바로 빼서 대문을 열고 닫은 다음 바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쯔북쯔북쯔북, 하고 익숙한, 하으윽, 흐응, 야한 소리가, 하읏, 들려왔다. 거실에서 자위하는 건가?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백지수가 1층에서 자위를 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 1층에서 자위를 한 적이야 있을지 몰라도 내가 온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때는 자제했을 텐데 왜.
“하아앙... 하윽... 흐으읏... 흐으응... 후으으으응... 흐으응... 아흐으윽...! 아아아... 하악... 하아악...”
가버리고도 자위를 멈추지 않는지 쯔붑쯔붑쯔붑 거리는 소리가 한 5초 간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심장이 터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백지수는 내가 현관문을 연 소리를 들었을까? 내가 들어왔다는 걸 알까? 당장이라도 도망치거나 해야 했는데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지 속에서 자지가 껄떡거렸다. 백지수의 발정 난 보지에 푹푹 쑤셔 박아주고 싶었다.
“아... 아하아아... 아 씨발... 아윽... 으응... 흥... 헤윽... 흐윽... 흐으응... 하악... 응... 아 죠아... 아앙... 앙... 앙...”
드르륵,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잠근 다음 신발을 벗어 버리고 유리문을 열어버린 거였다. 쯔붑쯔붑 거리는 소리랑 신음이 멈췄다. 아니 신음 소리는 거친 호흡 소리 사이로 계속해서 들려왔다. 다만 최대한 억눌린 것뿐이었다. 들켜버렸다. 말없이 모르는 척 도망치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 지금 나간다면 그 후로 영원히 손절당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수습은 된다고 해도 한동안은 서로 존나 어색해질 거였다. 어쩌면 몇 년 동안 사이가 소원해질 수도 있었다. 기타 케이스를 벽에 세워두고 거실로 갔다. 롱소파 왼쪽 벽에 딜도가 붙어 있었고 그 밑으로 물이 흥건해서 얕은 웅덩이 같은 게 만들어져 있었다. 오른편 팔걸이 위로 땀으로 젖은 더벅머리가 보였다. 몸을 숨긴다고 숨긴 모양이었지만 너무 허술했다. 심장이 너무 뜨거워서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 지수야...”
“으응...?”
“자위... 했어...?”
“...”
멍청한 질문이었다. 백지수가 고개를 수그렸다. 창피해하는 거 같았다. 부끄러워할 거면 왜 거실에서 자위를 했을까.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면... 지금 내가 밖에 나가서... 한 삼십 분...? 한 시간...? 어디 있다가 다시 올 테니까... 아예 없던 일처럼...모르는 척해줄 테니까... 그렇게 할래...?”
“... 야...”
백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응...?”
“... 내 앞으로 와봐...”
다 벗었거나 옷이 애액이랑 땀으로 젖은 상태일 텐데 왜 오라고 하는 걸까? 자위하다 걸린 걸 창피해하면서 무슨 심리로 이러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왜요...?”
“씨발... 오라면 와봐...”
“네...”
조심히 발걸음을 떼서 다가갔다. 다 벗어서는 다리를 m자로 벌린 채 두 팔로 커다란 가슴을 가리고 푹 젖은 하얀 수건으로 아랫배랑 보지를 덮어서 가린 백지수가 보였다. 얼굴이 엄청 붉은 게 흥분해서인지 술에 취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취해서 홧김에 자위했던 걸지도 몰랐다.
백지수가 말없이 내 하반신에 잠시 시선을 맞추더니 고개를 숙였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존나 음탕했다. 목이 멨다. 백지수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마주쳐오며 입을 열었다.
“이온유.”
“네...?”
“너 나 좋아하지.”
“네...”
“너 나 생각하면서 자위한 적 있지.”
“...”
“있어 없어.”
“있어요...”
“너 나랑 하고 싶지.”
“...”
“말 안 해?”
알몸으로 거실에서 자위하다 걸려서 얼굴을 붉힌 채 애액으로 젖은 수건으로 보지를 가리고 두 팔로 커다란 가슴을 가린 사람치고는 너무 도발적이고 당돌하게 말하고 있었다. 큰 가슴을 다 가리려다 보니 허술하게 틈이 생겨서 두 팔 사이로 오른 가슴의 바짝 선 유두가 보였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빨리 말해.”
“... 안 돼요...”
“내가 질문한 게 그거야?”
“... 하고는 싶은데...”
“하고는 싶은데 뭐.”
“하면 안 되지 않아요...?”
“왜. 저번에 송선우가 말한 그거 때문에?”
송선우가 말한 그거라니. 밥 먹다가 갑자기 미성숙한 남녀 간의 섹스가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던 거 말하는 건가? 아마 그런 듯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수가 5초 정도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 섹스가 안 되면... 서로 자위 도와주는 정도는 되지 않아...?”
“자위를... 도와줘...?”
“응.”
“어떻게...?”
“서로 거기 만져주거나... 아무튼 그렇게.”
“...”
“존나 뚫어져라 보지 마 창피하니까...”
고개를 주방 쪽으로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알겠어...”
“... 나 안아 올려서 침대로 옮겨줘.”
“지금...?”
“그럼 언제 옮기게.”
“... 그럼 지금 나 너 봐...?”
“어.”
다시 백지수를 바라봤다. 백지수는 여전히 두 팔로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이, 두 팔 사이로 보이는 바짝 선 분홍빛 유두가, 푹 젖은 수건 아래에 가려진 보지가 야했다. 무릎을 굽히고 백지수를 안아 들었다. 보지를 가리던 수건이 흘러내려서 바닥에 떨어졌다. 분홍색 백보지가 드러났다. 백지수가 꺅, 하고 비명 지르고 손을 허둥거리다가 오른손으로 보지를 가리고 왼팔로 가슴을 가렸다. 가슴이 짓눌려서 살이 눌리는 게 도리어 야해 보였다. 앞을 보며 말없이 걸었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수, 수건...!”
“돌아가서 줍는 것보단 그냥 가는 게 더 낫지 않아...?”
“그럼 빨리 좀 가...!”
“응...”
백지수 방으로 가서 백지수를 침대에 눕혔다. 백지수가 바로 이불을 끌어 쥐고 팍 당겼다. 바로 몸이 가려지지 않고 다리만 가려졌다. 백지수의 분홍색 백보지에서 애액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씨발...”
백지수가 다시 이불을 당겨 몸을 가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거실에서 자위한 걸 들키고 당돌하게 몰아붙인 건 다 빨리 나랑 진도를 더 나가려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억지로 연기한 거였나? 그리 생각하니존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지금 존나 개 쪽팔리니까 꼬나보지 말고 빨리 씻고 와...”
“... 알겠어.”
1층으로 내려가서 팬티만 챙기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옷을 벗었는데 팬티에 쿠퍼액이 엄청 묻어 있었다. 팬티는 세숫대야에 던져 놓고 물을 채워 넣은 다음 샤워했다. 곧 죄를 짓는다는 생각과 백지수의 몸을 떠올리며 생기는 흥분이 가슴을 쥐어짰다. 머리랑 온몸이 뜨거워졌다. 수온을 차갑게 바꿨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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