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70화 (170/438)

〈 170화 〉 화요일 (8)

* * *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이랑 1.5L짜리 콜라를 꺼내 양손에 든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의자에 앉아.”

“네.”

기타 케이스를 거실 소파 왼편에 세워놓고 테이블 앞 의자에 가 앉았다. 강혜린이 소주랑 콜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너 지금 배고파 온유야?”

“딱히 안 배고픈데 뭐 주시면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으음... 그래?”

강혜린이 갑자기 냉장고를 닫고 나를 쳐다봤다.

“너 요리 잘하지.”

“음, 적당히 하죠?”

“그래서 내가 뭐 만들어 가지고 너 대접해주기 조금 창피해. 어떡해?”

살폿 웃었다.

“그럼 제가 요리 만들어드릴까요?”

“그래줄 수 있어?”

“네. 술안주 필요한 거예요?”

“그럼 좋지...?”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일단 냉장고에 뭐 있는지 제가 봐도 돼요?”

“응.”

다가가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먹다 남은 닭발이 락앤락통에 담겨 있었고 1회용 포장용기에 건더기가 조금 많이 남은 짬뽕 국물이 있었다. 그 두 개를 제외하고는 식재료들이 썩은 것 없이 정상적으로 있었다. 강혜린이 옆에 서서 멋쩍게 웃었다.

“아 좀 창피하다...”

“뭐가요?”

“이거 남긴 거...”

“이 두 개 정도면 완전 정상이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누나가 되게 깨끗하게 사는 거일 걸요?”

“그런가...?”

“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나 닭갈비 먹고 싶어...”

“알겠어요. 근데 이거 쌀뜨물이에요?”

강혜린이 까치발을 서고 두 손으로 내 왼 어깨를 붙잡으며 확인했다.

“맞아.”

“쓸게요. 자리에 앉아요 누나.”

“으응...”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서 테이블에 옮겼다. 도마에 뼈가 발라진 닭고기를 올리고 한입 크기로 썰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너무 마시지는 마요. 내일도 애들 봐야 되는데.”

강혜린이 뚱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봤다.

“나도 알아. 그래서 맨날 조절해서 마셔.”

살폿 웃었다. 보울에 쌀뜨물을 붓고 닭고기를 집어넣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해본 소리예요.”

새 스테인리스 보울을 꺼내 간장, 고추장, 설탕, 청주,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숟가락으로 섞고 후추, 참기름을 조금 넣어 섞으면서 양념장을 만들어갔다.

“근데 누나 집에서 좋은 냄새 나요.”

“좋은 냄새...? 그거 아마 저거 오렌지 자스민 냄새일 걸...?”

강혜린이 오른손 검지로 가리키는 곳을 봤다. 창가에 있는 2단 화분 거치대에 늘어선 여덟 개의 화분이 있었다. 그 모든 화분 속으로 초록빛 잎들 사이로 다섯 개의 하얀 꽃잎을 피운 식물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한 종류만 기르는 거예요?”

강혜린이 헤헤 웃었다.

“응. 여러 종류 기르는 건 조금 부담돼서. 관리 방법도 다 다를 거니까. 그냥 향기도 괜찮겠다 해서 오렌지 자스민만 기르고 있어.”

“으음... 좋은 방법인 거 같아요.”

쌀뜨물에 잠시 넣어 조금이라도 잡내를 없앤 닭고기를 양념장이 담긴 보울에 넣어 주고 위생장갑을 오른손에 착용해 주무르며 섞어줬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있어요? 철판이랑.”

“응. 있어.”

강혜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생 장갑을 뒤집어주면서 빼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양배추, 양파, 대파, 감자를 썰어줬다. 강혜린이 테이블에 올린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철판을 두고 불을 켰다.

“남은 건 내가 냉장고에 넣을게.”

강혜린이 말했다.

“감사해요.”

강혜린이 선반에서 랩을 꺼내와 남은 채소를 싸고 냉장고에 넣었다. 대파의 초록색 부분만 도마에 남기고 양배추가 맨 밑에 가게 해서 채소들을 다 안에 넣어줬다. 양념에 버무린 고기도 위에 올렸다. 도마에 깻잎이랑 청양고추도 썰어두고 의자에 앉았다.

“뭔가... 되게 간단하게 한 거 같아.”

“요리가 막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난 되게 어렵던데...”

강혜린이 오른팔을 테이블에 대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나무 주걱으로 슬슬 섞어줬다.

“안 해본 거면 어려울 수 있죠.”

“으음... 그럼 자주 해봐야 하나...?”

“그래야죠. 근데 저 화장실 좀 가고 싶은데 어딨어요?”

“화장실? 저기.”

강혜린이 오른손 검지로 가리키는 곳을 봤다. 방이 있기에는 비좁아 보이는 공간에 하얀 문이 있었다. 대충 봐도 화장실인 게 보였다. 나무 주걱을 건넸다.

“이거 한 번씩 섞어주세요. 어느 정도 익으면 도마에 있는 초록 채소들도 안에 넣어주고요.”

“응.”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고 문을 잠갔다.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 앱을 켰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너 언제 오는데?]

[아홉 시면 끝나는 거 아니야?]

뭐라 답할까 잠시 고민하고 텍스팅했다.

[맞아]

[근데 송선우는 갔어?]

[갔어]

[너 왜 송선우부터 찾냐?]

[그냥 궁금해서]

[근데 나 지금]

[유치원 선생님이랑 잠깐 야식 좀 먹고 가려고]

[조금 늦을 듯]

[뭐 술 마시고 그러는 거 아니지?]

[아니지 당연히]

[어떤 성인이 본 지 이틀밖에 안 된 고등학생이랑 술을 마시려고 그래. 그것도 유치원 선생님이.]

[그렇겠지]

[근데 여자야 남자야?]

[여자 선생님]

답장이 즉각적으로 왔다가 이번에는 바로 오지 않았다. 조금 간담이 서늘해졌다. 답장을 쓰고 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이내 문자가 전송되어왔다.

[너 진짜 미쳤냐?]

[왜?]

[왜??????]

[왜?????????????????????????]

[왜라고?????????????]

[뒤지고 싶냐 이온유?]

[잘못했어요]

[너 오늘 나가서 자고 싶어서 그래?]

[아니요]

[진짜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너 거기서 죽치고 있으면 존나 뒤져 나한테]

[앞으로 영원히 안 들여보내줄 줄 알아]

[언제까지 들어가면 돼?]

또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다. 여기에 화날 포인트가 있었나? 언제까지라고 한 게 잘못이었나?

[알아서 해봐]

좆된 것 같았다. 비속어가 하나도 없는 짧은 문자 안에서 응축된 화가 느껴졌다. 최대한 빨리 들어가야 할 거였다.

[미안해]

[아냐]

[미안할 거 없어]

[왜 미안해해 이런 거로]

[진짜 미안한 짓 한 거도 아닌데]

[야식 나눠 먹을 수도 있지]

[봉사활동에서 만난 지 오늘로 이틀된 성인 여자랑 하하호호 웃으면서]

[그렇게 야식 나눠 먹을 수도 있지]

[미안해]

[막 못 할 짓도 아니잖아?]

[이온유쯤 되는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이해해야지]

[이온윤데]

좆됐다.

[미안해 진짜]

[아냐 천천히 먹고 와]

[뭐라 안 할게]

[진짜 미안해]

[아니 난 괜찮다니까?]

[천천히]

[느리게 먹다가 늦게 와]

[너한테 열쇠도 있잖아]

열쇠도 줬는데 네가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냐고 비꼬는 게 분명했다. 속이 탔다. 강혜린한테 양해를 구하고 빨리 가야 할 듯했다.

[빨리 갈게]

[아냐 됐어]

늦게 갔다가는 손절당할지도 몰랐다.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소변만 눈 뒤 변기 물을 내리고 싱크대에서 손을 씻은 다음 화장실을 나섰다. 주방에서 강혜린이 나무 주걱으로 철판을 휘적이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누나 저 집에서 빨리 오라고 불러 가지고요...”

“아직 열 시도 안 되지 않았어?”

“그쵸...”

“되게 엄하시구나... 그래도 많이 했는데 좀만 먹고 가.”

“그럼 저 진짜 조금만 먹고 갈게요.”

강혜린이 미소 지었다.

“좋아.”

강혜린이 일어나서 맥주잔을 두 잔 가져왔다.

“누나 소주 맥주잔으로 마셔요?”

“응. 귀찮아서.”

강혜린이 오른손으로 소주병을 들고 뒤집어가면서 흔들었다. 콜라 뚜껑을 열고 잔에 따랐다. 강혜린이 소주 뚜껑을 따서 맥주잔을 2/3 정도 채우고 일어나서 냉장고에 소주를 넣은 다음 즉석밥을 하나 꺼냈다.

“냉장고에 치즈 있어요?”

“치즈?”

강혜린이 즉석밥을 살짝 열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 다음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있어.”

“넣어서 드실래요?”

“으음... 그래.”

강혜린이 모차렐라 치즈가 소분된 봉지를 하나 들고 와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전자레인지에서 즉석밥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나무 주걱으로 철판 가운데에 공간을 만들었다. 강혜린이 모짜렐라 치즈를 붓고 빈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왼손에 집게를 들고 오른손으로 가위를 들어 고기를 하나 집은 다음 잘라봤다. 잘 익어있었다.

“이제 먹으면 될 거 같아요.”

“그래. 근데 나 밥 반 나눠 먹어주라.”

“...”

반 공기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는 백지수도 봐줄 것 같았다.

“네.”

“고마워.”

강혜린이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하나 가져와 즉석밥을 반 덜어줬다.

“고마워요.”

“응.”

닭고기 한 점이랑 양파, 깻잎을 동시에 집고 입에 넣었다. 적당히 매콤했다. 감칠맛이 돌아서 계속 들어갈 것 같았다. 국물을 한술 떠서 맛봤다. 술 생각이 났다. 지금 마실 수야 없었다.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강혜린이 닭고기를 두 점 집어먹고 소주를 한 입 마신 다음 눈을 찡그리면서 크으, 하고 소리 냈다. 귀여웠다.

“너 근데 요리 진짜 잘한다...”

“감사해요.”

닭고기랑 밥을 입에 넣고 국물을 한술 떴다. 강혜린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천천히 먹어주면 안 돼...?”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서요.”

“으음...”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저도 누나랑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어요.”

“... 너 그런 말 쉽게 하면 안 돼.”

“알겠어요.”

“...”

강혜린이 소주를 홀짝이고 고개를 숙였다. 각도 탓에 돋보이는 긴 속눈썹 때문인가 술에 취해 발그레한 볼 때문인가 강혜린에게서 색기가 넘쳐흘렀다. 발기했다. 이대로 계속 있으면 안 될 거였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