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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69화 (169/438)

〈 169화 〉 화요일 (7)

* * *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쪼그려 앉아 바닥에 늘어놓아진 것들을 뒷정리하며 내가 하는 얘기를 다 들은 유강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리를 멈추고 바닥을 내려봤다.

“혹시그 애 얼굴에 흉터 같은 거는 남을 거 같아요?”

“안 그럴거예요 아마...”

“으음...막 전력으로 세게 그런 건 아닌 거네요? 살짝 부은 정도?”

“네...”

“으응...”

“...”

유강은이 두 팔을 겹치고 자기 무릎 위에 얹었다. 유강은이 고개를 돌려 잠시 애들을 보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머리를 왼쪽으로 갸웃했다.

“근데 그럼 온유 쌤은 혜린 쌤한테 약간 미운 맘 들지 않아요?”

“왜요?”

“등교정지당하게 한 친구의 이모가 혜린 쌤이잖아요. 온유 쌤친구 어머니, 그니까 혜린 쌤 언니가 온유 쌤 등교 정지 당하게 한 데 큰 지분도 있고요. 학폭위에 변호사씩이나 불렀으니까.”

“...그래도 등교정지는 제가 당할 만하니까 당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으음... 저는 그래도 심한 거 같은데... 아마 온유 쌤이 착해서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얘기 못 해서 더 세게 받은 거 같아요.”

멋쩍게 웃었다.

“아닐 거예요...”

“... 지금 온유 쌤 보니까 확실히 알겠어요. 온유 쌤 좀 부당한 수준으로 징계받은 거예요.”

무슨 소리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유강은을 바라봤다. 유강은이 입을 열었다.

“온유 쌤 그런 타입이죠. 남들이 욕해오면 남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잘못돼서 손가락질받는 거구나 하는 그런 타입.”

“음... 맞는 말 같긴 한데요, 사실 안 그런 사람도 없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온유 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흔들리는 거 같아요.”

“그런, 가요...?”

유강은이 미소 지었다.

“봐봐요, 지금도 흔들리는데.”

“아... 그렇네요.”

“또 그러시고.”

“죄송해요.”

“죄송할 건 아니죠.”

유강은이 마지막으로 동화책 한 권을 책장에 꽂고 일어섰다. 레고 블록을 상자에 넣고 일어나서 기타 케이스를 등에 멨다. 유강은이 입을 열었다.

“갈까요?”

“네.”

같이 반을 나섰다. 유강은이 멈춰서서 나를 쳐다봤다.

“오늘도 걸어가요?”

“네 그러려구요.”

“으음... 알겠어요. 잘 가요.”

“네. 내일 봐요 강은 쌤.”

유강은이 미소 지었다.

“온유 쌤도 내일 봐요.”

웃으며 인사한 유강은이 문을 나서고 도로 닫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유강은이 미소 지으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마주 오른손을 흔들고 뒷모습을 보다가 원장실로 향했다. 오른손을 들어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이 스스로 열렸다. 술 냄새가 살짝 풍겨왔다. 바로 앞에 강혜린이 보였다.

“기다렸어 온유야.”

“네.”

강혜린이 뒤돌아서 종이랑 볼펜을 들어서 내게 건넸다.

“어제랑 똑같이 쓰면 돼.”

“네.”

양손으로 받고 책상에 놓은 다음 상체를 기울여 빠르게 적어나갔다. 다 쓰고 허리를 펴고는 강혜린을 바라봤다.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거 그 자리에 그대로 둬도 돼. 내일 정리하면 되니까.”

“네.”

“이제 나가자. 근데 너 내일도 올 건데 기타 그냥 여기에 두고 가도 되지 않아?”

“음, 그럼 그냥 두고 갈까요?”

“그게 편하지 않아?”

“그럼 두고 가죠.”

“으음...아니다 그냥 메고 가주라.”

갑자기 웬 변덕일까.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 아이들이 하는 짓이랑 똑같았다. 귀여웠다.

“알겠어요.”

“응.”

강혜린이 미소 짓고 문단속을 하며 나왔다. 발을 맞췄다. 밖에 나와 유리문을 잠근 강혜린이 뭔 생각을 하는지 나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입을 열었다.

“왜 웃어요?”

“오늘도 네 다리 좀 빌리자.”

“같이 자전거 타자고요?”

“응.”

“그럼 누나가 이거 기타 가방 메줘야 돼요.”

“응. 나 줘.”

“네.”

기타 케이스를 빼고 강혜린에게 넘겼다. 강혜린이 등에 메는 걸 어색해하길래 뒤에서 도와줬다. 같이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강혜린이 자전거를 뺐다. 내가 안장에 오르고 뒤에 강혜린이 올라타서 왼 볼을 내 목 가까이 닿게 하며 나를 껴안았다. 등에 느껴지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부드러움이 순간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눈을 두 번 깜빡이고 느리게 페달을 밟았다.

“온유야.”

“네, 누나.”

“나 오늘 갑자기 현타 세게 왔어.”

“왜요?”

“그게, 부모님이 나한테 하는 말이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막 든다 이상하게? 난 여태 남자 한 명도 못 사귀고 대학 졸업해서 바로 유치원으로 오고 원장되고. 근데 이러다가 진짜 평생 다른 사람들 애만 봐주고 나는 내 애 없이 혼자 살다가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팍 들었어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나 지금 슬픈데...”

“누나 아직 젊잖아요.”

“아니 근데 나이 서른 돼서는 다들 애 가지고 그러잖아...”

“애는 서른 넘어서도 낳는 사람도 많잖아요. 누나면 결혼하자고 달려들 남자도 많을 거고 시간도 있는데 왜 조급해해요.”

“아니 근데 이게 조금... 아... 그래... 그치... 사람 찾아보면 나랑 결혼해주고 애도 갖게 해줄 사람 있겠지...?”

“무조건 있을 거예요.”

“으응...”

갑자기 왜 이렇게 우울해할까. 이틀만 봤어도 밝은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 정도로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인데. 혹시 그 날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아뇨 저 그냥 좀 어이없는 생각해서요.”

“뭔데...?”

“까먹었어요.”

“흐응...”

강혜린이 나를 껴안은 왼팔을 빼서 왼손 검지로 내 왼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간지러워요.”

“하나도 안 간지러운 거 같은데?”

“참는 거예요.”

“으음...”

강혜린이 계속 내 옆구리를 찔러대다가 점점 타점을 내 배 쪽으로 옮겨갔다.

“근데 너 몸 진짜 좋다... 껴안으면서도 느꼈는데...”

“감사해요.”

“헬스해...?”

“하긴 하는데 막 본격적인 건 아니고 홈짐으로 패션 근육만 살짝 만든 거예요.”

“패션 수준이 아닌 거 같애...”

살폿 웃었다.

“누나 근데 술 얼마나 마신 거예요?”

“어...? 냄새 나...?”

“누나가 문 열어줬을 때 냄새 났어요.”

“아 그래...? 그럼 말해주지... 뭐라도 뿌렸을 건데...”

“괜찮아요. 별로 냄새 안 나요.”

“거짓말.”

“진짜예요.”

“흐응... 믿어줄게.”

“네.”

어제 강혜린이랑 같이 들러서 라면을 먹었던 편의점이 보였다. 편의점 앞에서 멈춰 서고 입을 열었다.

“누나.”

“응...?”

“누나 많이 취했죠.”

“아냐 많이는 안 취했어... 이 정도 마시고 혼자 돌아간 적도 많아...”

“누나 집 어디예요?”

“내 집...?”

“이대로 데려다줄게요.”

“아 나 진짜 괜찮은데...”

폰을 켜서 지도 앱을 열고 왼손에 폰을 들어서 돌아보지 않고 뒤로 건넸다. 강혜린이 받았는지 폰이 손에서 떠나갔다. 손을 뒤쪽으로 한 그대로 잠시 기다렸다. 이내 폰이 왼손에 올려졌다. 앞으로 가져와서 확인해봤다. 주소가 찍혀 있었다. 여기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었다. 핸드폰 거치대에 고정했다.

“나 진짜 괜찮은데...”

“걱정돼서 그래요.”

“왜...? 여기 치안 진짜 좋은데...?”

“그래도요.”

“...”

“난 누나 걱정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돼요?”

“...”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페달을 밟았다. 강혜린이 뒤에서 두 팔로 나를 껴안아왔다. 밤공기가 얼굴을 살살 건드렸다.

“... 야...”

“왜요?”

“너 왜 이렇게 말을 달콤하게 해...?”

“글쎄요?”

“...”

침묵은 무슨 의미를 품은 대답일까. 알고 싶지만 이대로 모르는 채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강혜린의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처럼 새근새근한 게 퍽 귀여웠다. 다리로 꾸준히 원을 그리며 천천히 바퀴를 굴렸다. 어디를 가든 한구석에라도 한 점의 빛발이 존재해서 완전히 어두운 곳이 없었다. 항상 일정한 빛을 뿌리는 가로등 아래로 카페인을 달고 사는 직장인과 술에 절은 대학생 무리가 서로 전혀 관련 없다는 듯 걸어가다가 같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인을 닮은 차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도로를 달려 목적지로 향했다. 한적함이라는 말을 모르는 듯 차 하나만 겨우 다닐 정도의 거리만을 두고 세워진 건물들 사이로 자전거를 몰았다. 얼마 안 가 강혜린이 사는 단독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작았지만2층짜리인데다 옥상까지 있었다. 백지수의 별장 크기를 2/3로 줄였다면 이런 모습일 듯했다.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강혜린이 자전거에서 내려와 내게 기타 케이스를 넘겨주고 오른 주머니에서 키링을 꺼내 대문을 열었다. 나도 자전거에서 내려 대문을 넘었다. 처마 아래에 자전거를 세워놓았다. 강혜린이 현관문을 열고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현관을 밝히는 백열등 불빛 아래 분홍빛으로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에 살짝 흐린 눈빛이 뭔가 야했다. 강혜린이 입을 열었다.

“들어올래...?”

목이 멨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혜린이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가서 문을 닫고 신발을 벗었다. 강혜린이 거실로 들어가다가 뒤돌아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문 좀 잠가줄래...?”

“네.”

심장 박동이 거세지는 게 느껴졌다. 이럴 이유가 없는데. 뒤돌아 오른손으로 문을 잠갔다. 거실로 들어갔다. 강혜린은 주방에서 냉장고를 열어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달콤한 향기가 코를 건드려왔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면서도 관능을 도발적으로 자극하는 향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향기가 강혜린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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