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화요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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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우한테 나간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서서 유치원으로 향했다.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생각해 보니 등에 기타 케이스가 없었다. 어제 까먹고 유치원에 기타를 두고 별장으로 가버린 모양이었다.
유치원으로 들어가 원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 너머에서 들어와요, 라고 말하는 강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강혜린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온유 쌤!”
“안녕하세요 누나.”
“응 안녕. 근데 너 어제 기타 잃어버렸지.”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왠지 귀여웠다. 웃음이 나왔다.
“네.”
강혜린이 씨익 웃고 오른손 검지로 내가 선 곳의 오른쪽을 가리켰다.
“거기 있어.”
고개 돌려봤다. 기타 케이스가 세워져 있었다. 두 손으로 잡아 들어서 오른 어깨에 끈을 멘 다음 다시 돌아봤다.
“감사해요.”
“응. 아직 다섯 시 아니지?”
“네.”
“그럼 잠깐만 얘기 좀 하자. 여기 소파에 앉아봐.”
강혜린이 오른손 검지로 왼쪽 벽 가까이에 있는 1인용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타 케이스를 옆에다 눕힌 다음 자리에 앉았다. 강혜린이 컴퓨터 책상 뒤에 있는 냉장고에서 뭘 꺼내더니 컴퓨터 의자를 탄 채 두 발을 움직여 내 맞은편에 왔다. 강혜린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어두운 갈색빛의 네모난 상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혜린이 오른손으로 상자 위를 톡톡 쳤다.
“뭐인 거 같아?”
“모르겠어요.”
“일단 네가 받을 거라는 느낌은 왔어?”
“글쎄요?”
“네 거야. 근데 진짜 내가 가지고 싶어.”
“많이 맛있는 거예요?”
“응. 진짜 진짜 진짜 맛있어.”
강혜린이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했다. 스물여덟이랬는데 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애였다. 귀여웠다. 살폿 웃었다.
“그럼 같이 먹죠?”
“고마워. 말은 고마운데, 너 먹어보면 그 말 후회할 수도 있어. 그니까 일단 먹어보고 숙고해본 다음에 그런 말을 하는 걸 추천할게.”
“얼마나 맛있길래 그래요?”
“진짜 그냥 최고야. 내가 먹어본 것 중에서.”
아이들이 하는 호들갑일지 아님 진짜 맛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뭔지 엄청 궁금해지기는 했다.
“일단 싱크대에서 손부터 씻어봐봐.”
“누나는 씻었어요?”
“아니? 같이 씻자.”
“네.”
일어서서 상자를 내려놓고 먼저 싱크대에 가서 손을 씻고 이어서 강혜린이 손을 씻었다. 물기를 털어낸 다음 자리로 돌아와 앉고 상자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강혜린이 컴퓨터 의자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제 언니한테 얘기해준댔잖아.”
“네.”
“집에 돌아가서 한 아홉 시인가? 전화 걸어서 잠깐 잡담하다가 네 얘기했거든. 네가 봉사활동으로 왔다는 거 얘기하고, 너랑 성연이랑 무슨 일 있었는지도 얘기하고.”
“... 그래서 누나 언니는 성연이가 무슨 말 했었는지 알고 있었대요?”
“어...”
강혜린이 멋쩍게 웃었다.
“아니...”
“네.”
“미안해. 언니가 업장이 여러 갠데 맨날 돌아다니면서 체크하고 자기 이름 내건 식당도 가서 총괄해 가지고 다른 일들엔 좀 많이 소홀하거든... 그래도 언니가 완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어제 내가 한 얘기 듣고 오늘 너 주라고 아침에 나한테 이거 전달해줬으니까.”
강혜린이 오른손 검지로 상자 윗부분을 톡톡 두드리고 두 손으로 들어 내게 건넸다. 양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지금 한 번 열어볼래?”
“... 네.”
상자를 열었다. 모양이 다양한 작은 초콜렛이랑 브라우니 같은 초코 기반 디저트가 종류별로 열여덟 개가 들어가 있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반으로 접힌 분홍색 편지지가 있었다. 이동하거나 할 때 그쪽으로 쏠린 모양이었다. 강혜린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설마 편지야?”
“그런 거 같은데요?”
“헐 대박. 빨리 봐봐. 아 나도 보고 싶은데. 봐도 돼?”
피식 웃었다.
“저 먼저 읽어 보구요.”
오른손으로 편지지를 잡고 펼쳐 들었다. 첫눈에 공백이 들어와서 시선을 내려 글자를 찾아야 했다. 편지지의 가운데에만 화려하게 예쁜 글씨로 몇 자가 있었다.
[미안해 온유야.
우리 성연이가 그런 말을 했었던 건 잘 몰랐네.
그거 관련해서는 내가 알아서 혼낼게.
병원에서 네 잘못만 꾸짖었던 건 잘못했어. 미안해. 용서를 빌게.
이 디저트들은 다 내가 손수 만든 거는 아니야. 그래도 일곱 개는 직접 만들었어.
사람들은 없어서 못 먹는 거니까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다시금 미안해 온유야.]
“뭐라 쓰여있어?”
강혜린이 물었다.
“그냥 직접 보실래요?”
“그래도 돼?”
“네.”
편지를 건네줬다. 강혜린이 두 손으로 받아서 빠르게 눈을 굴렸다. 강혜린이 편지를 든 두 손을 밑으로 내리고 나를 쳐다봤다. 얼굴에 걸쳐진 웃음이 어색했다. 아무리 동생이어도 이런 성의 없는 편지는 변호하기 힘들 거였다. 그래서 뭐라 말할지가 오히려 더 궁금했다. 묵묵히 강혜린을 바라보면서 강혜린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강혜린이 말없이 입을 벌렸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가 소리를 냈다.
“온유야, 이게.”
강혜린이 음 이탈을 했다. 피식 웃었다. 강혜린이 왼손으로 목을 감싸고 큼큼, 하고 괜히 소리 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가 누구한테 미안하다고 손편지 쓰는 건 내가 진짜 처음 보거든? 그니까 이게 언니가 할 수 있는 사죄 표현 중에 가장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편지 내용만 보면 별로 안 그래 보여도 되게 미안해하는 거라고 내가 장담할 수 있어, 언니 동생으로서. 그리고 사람들 중에 표현이 조금 박한? 그런 사람이 있잖아. 언니가 그런 사람 중에서도 특히 더 무뚝뚝한 사람이거든? 그래서 이건 진짜 미안하다는 거야, 언니가 언니인 걸 고려했을 때. 그리고, 언니가 요리를 직접하는 편은 아니거든? 그니까 누구를 위해서 다 다른 종류로 뭔가를 일곱 개나 만들었다는 건 진짜 진짜 미안하다는 뜻일 거야.”
피식 웃었다.
“알겠어요.”
“내 말 다 이해했지.”
“네.”
“고마워 진짜. 언니가 막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
“그런 거 같아요. 누나 십 분의 일만 닮았어도 착한 사람일 테니까.”
“응?”
강혜린이 미소 지었다.
“야 너 나 홀리면 안 돼. 나 잡혀 가.”
“제가 홀렸어요?”
“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미소 지었다. 장난기가 들었다.
“일부러 그런 거 맞아요.”
“어, 어...?”
“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강혜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 너 한 대만 때려도 돼?”
“안 돼요.”
오른손으로 브라우니를 집어 들었다.
“근데 지금 몇 시예요?”
“지금?”
강혜린이 오른손으로 폰을 들고 켰다.
“네 시 사십구 분.”
강혜린이 폰을 끄고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브라우니 반 나눠 먹을래요?”
“좋아. 고마워.”
브라우니를 반 갈랐다. 강혜린이 오른손바닥을 내밀었다. 왼손에 든 걸 올려줬다. 작게 한 입 베어물어 맛봤다. 브라우니 특유의 꾸덕꾸덕한 식감과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크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혀가 녹는 듯했다. 브라우니를 계속 먹고 싶다는 욕망과 브라우니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동시에 들었다. 강혜린이 왜 그렇게 맛있다 맛있다 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의 맛이었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맛있어요.”
강혜린이 히 웃었다.
“그치.”
강혜린이 브라우니를 반절 베어 물고 씹어먹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 너 진짜 능글맞다.”
“어디가요?”
“그냥 다 뭔가 능글맞은 느낌이야.”
“감사해요.”
강혜린이 픽 웃고 나머지 브라우니를 입에 넣었다. 강혜린이 나를 마주 보면서 오물거리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 왜 신기하게 귀엽지 너는?”
“귀여운 거에 왜 신기하다는 말이 붙어요?”
“아니 너무 막 능글맞은 짓하면 좀 징그럽고 그러잖아. 근데 넌 안 그래. 신기하게.”
“죄송해요.”
“음? 왜 죄송해?”
“하지 말라고 돌려 말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했으면 징그러울 짓이라는 거니까.”
“아냐 넌 너니까 계속 해도 돼.”
피식 웃었다.
“사람 차별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유치원장 선생님이면.”
“애들은 차별 안 하니까 괜찮아. 어른들한테는 해도.”
“저도 어른 아닌데요?”
“어... 그렇네?”
“저도 2년 뒤면 어른이니까 명예 어른이라고 하죠.”
“아냐, 빨리 어른돼 봐야 좋을 거 없어.”
“적어도 하나 있는데요?”
“뭐? 술담배 가능해지는 거?”
“아뇨.”
강혜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누나랑 사귈 수 있는 거요.”
“어?”
강혜린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너어는 진짜 위험한 애다. 좀 멀리해야겠어.”
큭큭 웃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죄송해요. 누나가 장난 되게 잘 받아줘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막 나와요 입에서.”
“이걸 내 탓으로 돌린다고?”
두 손으로 박스 옆을 잡고 들었다.
“하나 원하는 거 드릴 테니까 봐주세요.”
“하나 다 주는 건 좀 그렇고, 반 나눠 먹자.”
“그럼 두 개 고르게 해드릴게요.”
강혜린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
“검지로 찍어주세요.”
“나 이거랑.”
강혜린이 슈가 파우더가 뿌려진 퐁당 오 쇼콜라를 골랐다.
“이거.”
두 번째로는 안에 크림이 들어간 소형 초코 케이크인 딩동을 골랐다.
“뭐부터 드실래요?”
“딩동부터.”
양손으로 가운데를 잡아서 최대한 균등하게 반으로 가르고 왼손에 든 걸 건넸다. 강혜린이 오른손으로 받아서 한입에 넣었다. 눈웃음 짓고 똑같이 한입에 넣었다. 강혜린이 오물거리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강혜린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수로 한 번에 먹어버렸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게 왜 실수예요?”
“좀 창피하잖아. 이미지라는 게 있는데.”
“전 한입에 넣어서 볼 빵빵해져 가지고 오물거리는 게 귀여워서 좋던데요.”
“그럼 다행이구.”
강혜린이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고 초코 우유를 두 개 꺼내 자리에 앉으면서 하나를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응.”
다리를 꼬는 게 습관인지 강혜린이 오른 허벅지 위로 왼 다리를 올리고는 빠르게 빨대의 포장을 뜯어내 바로 입구에 꽂아서 빨아마셨다. 나도 빨대 포장을 뜯고 입구에 꽂아서 마셨다. 왠지 단맛이 저녁까지 남아서 밥을 못 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퐁당 오 쇼콜라까지만 먹을까요?”
“그래.”
퐁당 오 쇼콜라를 집어들어 반으로 가르는 순간 안에 들어있던 쇼콜라가 흘러내렸다. 강혜린이 어, 어,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면서 두 손을 모아 쇼콜라 밑을 받쳤다. 쇼콜라가 강혜린의 손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
“죄송해요...”
“어 아냐 괜찮아. 반 나 줘.”
“네.”
왼손에 든 걸 강혜린의 손 위에 올려줬다. 강혜린이 두 손을 입 가까이에 가져가고 퐁당 오 쇼콜라를 베어 물고 오물거리다가 혀를 내빼며 손바닥에 떨어진 쇼콜라를 핥았다. 미친. 자지를 붙여놓은 왼 허벅지가 가려지도록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로 올려 꼬았다. 강혜린이 손바닥을 혀로 핥아대면서 순박한 눈을 하고 나를 올려보았다. 분홍색 혓바닥에 쇼콜라가 묻어나고 그대로 입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존나 야했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의심됐다. 강혜린이 왼손바닥을 위주로 혀를 날름거려서 깨끗하게 핥아내고는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 왜 안 먹어?”
“저...”
“그렇게 보면 나 창피해. 개처럼 먹고 있는데 지금.”
“죄송해요...”
강혜린이 눈웃음 지었다.
“봐줄게.”
“네...”
퐁당 오 쇼콜라 반을 한입에 넣었다. 강혜린이 긴 혀를 내밀어 열심히 오른손바닥을 핥아댔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두 눈을 감고 입을 오물거렸다. 어지러워질 정도로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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