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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63화 (163/438)

〈 163화 〉 화요일 (1)

* * *

발작하듯 깨어났다. 아니 나는 발작한 줄 알았는데 실지로는 겨우 팔다리가 약간 꿈틀거리는 정도로만 몸이 움직였다. 그래서 사과할 작정을 하고 조심히 눈을 떴을 때 본 건 여전히 내 몸 위에 한쪽 팔과 다리를 올려 잘만 자는 송선우랑 백지수뿐이었다. 조금 김이 빠진 채로 조심히 송선우랑 백지수의 팔다리를 걷어내고 이불을 덮어준 다음 1층으로 내려갔다. 이온 음료를 꺼내 입을 안 대고 마신 다음 갈아입을 팬티와 옷을 챙겨 화장실에 들어가 간밤의 기억으로 자위했다. 여섯 번 정액을 싸질렀는데 미안한 마음도 안 들었다. 그렇게 꼴리게 했으면 이쯤 자위하는 것도 솔직히 정당했다. 빠르게 샤워하고 물기를 닦아낸 다음 옷을 입고 나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한숨이 나왔다. 이대로 별장에 계속 있다가는 송선우가 누누이 말하는 대로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아니 송선우가 가세해서 그 일이 생길 확률이 더 높아져 버린 듯했다.

오늘도 아침밥을 해야 할 거였다. 일단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가서 확인해 봤다. 어제 써놓은 걸 지우지 않았는지 아침잠이 많으시네요, 점심 잘 챙겨 드시고요, 저녁으로 갈비찜 해놓으세요, 라고 써진 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화이트보드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주방으로 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어제 술을 엄청 마셔댔으니 해장용 요리를 해야 할 텐데, 도통 머리가 안 돌아갔다. 이럴 때는 경험상 뭘 쥐어짠다고 해도 전혀 나오지 않으니 그냥 폰을 켰다. 다섯 시 오십삼 분이었다. 밥은 느긋하게 해도 될 듯했다. 문자 앱을 켰다. 정이슬에게 문자 폭탄이 와 있었다. 확인하기 무서워서 아래로 스크롤링하려 했는데 실수로 눌러버렸다.

[이온유]

[이온유이오늉]

[이온유이온유이언유]

[ㅑ]

[ㅑ]

[ㅑ]

[ㅑ]

[ㅑㅑㅑㅑㅑㅑㅑ]

[ㅑㅑㅑㅑ]

[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ㅑ]

[ㅑ]

[ㅑㅑ]

[ㅑ]

[ㅑ]

[ㅑ]

[ㅑ]

[ㅑ]

[ㅑ]

[ㅑ]

[ㅑ]

[선영락 좀 해ㅐㅐㅐㅐ!!!!!!!!!!]

[ㅁ!!!!!!!!!!!!!!!]

[ㅓㅓㅓㅓ???????????]

[???]

[???????]

[????????????]

이렇게 광기 어린 문자는 처음 받아봤다. 뭐라 할까 고민하다 그냥 폰을 끄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다음 냉장고를 열어 이온 음료를 꺼내 컵에 따라 마셨다. 다시 폰을 켜고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텍스팅했다.

[누나 좀 무서워요]

뒤로 가기를 누르고 다른 문자들에도 답장했다. 그러다 정이슬에게 문자가 온 걸 확인하고 들어가 봤다. 꽤 빨리 깼거나 새벽 동안 안 잔 모양이었다.

[네가 선연락 앞으로도 절대 안 하면]

[난 더 무서워질 수 있어]

[어떻게 되는데요?]

문자가 오자마자 확인했는지 바로 문자를 쓰는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기다려봤다.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이어서 또 문자를 쓰는 중이라고 표시가 떴다.

[어쨌든 넌 상상도 못 할 방식일 거야]

왠지 농담 같지 않았다. 무서워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먼저 연락할게요]

[그래]

[안 하면 그땐 진짜]

[알지?]

[잘할게요]

[두고 볼 거야]

[네]

뒤로 가기를 누르고 폰을 껐다. 인터넷에 숙취에 좋은 식재료를 검색했다. 토마토, 달걀, 콩나물, 초콜렛 정도가 눈에 띄었다. 대충 토마토 달걀 볶음에 콩나물국을 하고 메인으로 하나 더 만든 다음 초코 라떼를 만들어주면 될 듯했다.

냉장고를 열어봤다. 우유랑 달걀은 있는데 토마토랑 콩나물이 없었다. 검정 트위드 자켓을 걸치고 키링을 왼손에 들었다. 신발을 구겨 신고 문단속을 하면서 밖에 나간 다음 왼 주머니에 키링을 넣었다. 근처 소형 마트에서 토마토랑 콩나물을 찾아 왼손에 들었다. 배추김치가 봉지에 포장된 게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으로 집어 들어 카운터에 놓고 즉석밥도 세 개 가져와 모두 계산한 다음 별장으로 돌아갔다. 주방에 있는 테이블 위에 봉투를 내려놓고 냉장고를 열어 사용할 식재료를 다 꺼냈다. 콩나물국은 식어도 괜찮으니 제일 먼저 하면 될 듯했다.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손질된 멸치를 대충 한 줌 집어넣은 다음 커다란 계량컵을 들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뽑았다. 냄비의 불을 켜고 나무주걱으로 멸치를 볶아주다 고소한 냄새가 올라올 때 뜨거운 물을 부어 넣고 다시마를 하나 넣었다. 물이 끓을 때까지 토마토를 약간 크기가 있게 썰었다. 보글보글 소리가 들릴 때 다시마를 건져 싱크대에 버리고 콩나물 봉지를 뜯어 커다란 채반 위에 올려 헹궈준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핸드폰으로 타이머를 9분 맞춰놓고 스테인리스 보울에 계란을 세 알 까서 포크로 풀어주고 소금을 한꼬집 넣어 간했다.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올리브유를 넉넉히 둘러준 다음 불을 켰다. 손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뜨거운 느낌이 들 때 계란물을 풀고 강불인 상태로 나무로 된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약간 덜 익은 상태에서 넓은 접시에 옮겨 담고 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준 다음 불을 살짝 줄였다. 토마토를 넣어 나무주걱으로 휘젓다가 간장이랑 굴소스를 한 큰술 넣고 잘 섞어줬다. 토마토가 흐물흐물해질 때 접시에 옮겨 놓았던 스크램블 에그를 넣고 그대로 볶았다. 다 익었을 때 불을 끄고 참기름을 넣은 다음 섞어줘서 마무리했다. 팬째로 테이블에 옮긴 다음 뚜껑을 덮었다.

토마토 달걀 볶음은 했고 콩나물국은 하는 중이니 이제 차돌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야 했다. 나무 도마 하나를 가져와 우선 김치 봉지를 열어 집게로 들어 옮겨주고 먹을 만큼만 잘라내어 도마에 남긴 다음 나머지는 다시 봉지 안에 넣었다. 김치 한 조각을 집게로 들어서 맛봤다. 맵지도 시지도 않은 일반적인 김치였다. 타이머가 끝났는지 폰에서 소리가 났다.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알람을 끄고 국물을 우린 멸치를 채로 걷어냈다. 위생백을 하나 꺼내 김치 봉지를 밀봉하고 냉장고에 넣은 다음 씻어놓았던 콩나물을 냄비에 집어 넣어줬다. 새로운 프라이팬을 하나 꺼내 냄비 옆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나무 도마에 파랑 청양고추를 올려 잘게 썰어줬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불을 켰다. 파를 집어넣고 나무주걱으로 휘저으며 볶아주면서 냄비도 흘깃흘깃 봤다. 콩나물의 숨이 죽었을 때 다진 마늘 반 큰술이랑 간장 한 큰술, 액젓 한 큰술, 도마에 썰어둔 파랑 청양고추를 넣어주고 나무 숟가락으로 휘저어줬다. 프라이팬에 파기름이 났을 때 썰어둔 김치를 다 넣고 테이블에 꺼내놓았던 차돌박이도 한 줌 반 넣어줬다. 다진 마늘, 설탕, 맛술, 후추를 조금 넣고 강불인 채로 볶았다. 고기가 금방 익었다. 즉석밥 세 개를 뜯어 넣고 나무주걱으로 눌러서 부쉈다. 콩나물국을 끓인 냄비의 불을 껐다. 냉장고에서 고추장을 꺼내 반 스푼 넣고 고춧가루도 살짝 뿌려준 다음 색이 고르게 나도록 섞었다. 불을 끄고 냉장고에서 들기름을 꺼내 조금 넣고 잔열로 볶아줬다. 프라이팬을 테이블에 옮겼다.

이제 초코 라떼를 만들어야 했다. 아침밥이 식으면 맛이 안 나니 일단 백지수랑 송선우부터 깨워야 할 듯했다. 컵을 두 개 꺼내 이온 음료를 붓고 잔을 양손에 들어 2층으로 올라가 백지수 방으로 갔다. 컵을 침대 옆의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침대 가운데로 기어가 송선우랑 백지수의 어깨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둘 다 비슷한 타이밍에 으음, 거리며 몸을 뒤척여서 자신이 깼음을 알렸다.

“빨리 내려와 아침밥했어.”

“알겠어...”

송선우가 답했다.

“물 없어...?”

백지수가 말했다.

“테이블에다가 놨어 이온 음료.”

백지수가 왼손을 들어 엄지를 세워 보였다.

“센스 굿.”

“빨리 내려와야 돼.”

“으응...”

백지수가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고 컵을 잡아 홀짝였다. 송선우가 침대 위를 기어 두 손을 내밀었다.

“나도 주라...”

백지수가 왼손을 뻗어 잔을 잡고 송선우의 손에 건넸다. 두 손으로 받은 송선우가 목을 살짝 젖히고 손을 써서 이온 음료를 마셨다. 입이 저절로 열렸다.

“너 되게 게을러 보인다.”

“응 감사.”

송선우가 바로 흘려냈다. 1층으로 내려가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생크림이랑 설탕이랑 다크초콜릿을 넣어놓고 불을 켜 약불로 조절했다. 너무 배고파서 그릇이랑 숟가락을 하나 꺼내 차돌 김치볶음밥을 조금 옮겨 넣고 먹으면서 거품기로 초코 소스를 슬슬 섞었다. 잘 녹았을 때 불을 껐다. 선반에서 수건을 꺼내 반으로 반으로 접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스팀완드를 감싸서 잠깐 틀었다. 1000ml짜리 스테인리스 스팀 피쳐에 우유를 붓고 스팀완드가 살짝 잠기게 집어넣은 다음 틀어서 공기를 주입했다. 우유의 부피가 커지면서 살짝 위로 올라왔다. 컵을 세 잔 꺼내 테이블에 놓고 컵 바닥에 초코 소스를 깔아준 다음 스팀 밀크를 부었다. 거기에 휘핑크림을 올리고 초코 시럽을 대충 동그랗게 뿌렸다.

고개를 들고 허리 스트레칭을 한 다음 주방을 둘러봤다. 한숨이 나왔다. 설거지할 게 너무 많았다.

근데 초코 라떼까지 다 만들었는데 아직도 안 올 수가 있나. 빨리 내려오랬는데 샤워를 하는 건 아닐 테고. 올라가서 데려와야 하나. 근데 속옷을 갈아입고 있거나 하면 내가 변태가 되는 거였다. 그냥 폰을 켜봤다. 송선우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진짜 다 했으면 그때 불러줘]

[나 너무 피곤해]

[이거 지수가 한 말 그대로 옮긴 거임]

어이없었다. 자기들만 피곤한 것도 아닌데. 전화 걸었다. 바로 연결됐다.

“빨리 내려와.”

할 말만 하고 바로 끊은 다음 의자에 앉았다. 조금 유치한가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 화내는 건 정당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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