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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58화 (158/438)

〈 158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9)

* * *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누나 언니 얘기해주세요.”

“응? 알겠어.”

강혜린이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 입을 열었다.

“언니가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고등학생 때부터 자기는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셰프 돼서 요리로 성공하겠다고 얘기했거든. 근데 그때마다 부모님은 집안에 애가 없어서 네가 데릴사위라도 데려와야 할 판국인데 애를 안 낳으면 그게 되겠냐고, 결혼은 꼭 하라고 했고.”

수긍되는 얘기였다.

“근데 언니는 진짜 결혼하기 싫었던 건지, 아니 일단 나한테 일 집중 못 할 거라고 결혼하기 죽어도 싫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언니가 정자은행에서 인공수정으로 스무 살 때 애를 가진 거야. 대학교 신입생인데.”

“아니 진짜 진짜예요?”

“응. 진짜 진짜로. 이게 규정이 2005년엔가 기준 세졌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언니가 딱 피해 갔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결단력이 좋아서 운 좋게 애를 가진 거지. 그래서 그거 보고 엄마랑 아빠 할 말 잃어버려서 언니한테는 뭐라고 안 해.”

진짜면 대단한 거였다. 아니 진짜일 테니까 강혜린의 언니라는 사람은 대단한 결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거였다. 그런 싱글맘이 된다고 하면 요즘이라도 눈살을 찌푸릴 사람이 많은데 그 옛날에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 됐다. 존경심이 들었다. 강혜린이 스트링 치즈 반절을 털어 넣고 우물거렸다. 용기를 들고 라면 국물을 한 입 마셨다. 강혜린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래서 나 유치원 선생님 되고부터는 맨날 나한테만 너 빨리 결혼 안 하냐, 다른 사람들 애 돌봐주면 뭐 하냐, 네가 애를 낳아서 그 애를 길러야지. 그런 잔소리만 계속해. 진짜 계에속. 그래서 집 자주 안 찾아가고 혼자 자취하고 살고 있어.”

“힘드시겠네요.”

“응. 좀 너무 밀어붙이셔서 오히려 반발심 생겨. 난 자만추하고 싶은데 선 보라 하시고.”

“근데 모솔이시면 여태 자만추는 성공을 못 하신 거네요?”

강혜린이 헤헤 웃었다.

“이게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나도 살폿 웃었다.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어요?”

“글쎄. 그냥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야 될 거 같아.”

“으음... 안타깝네요.”

“그니까. 나도 내가 안쓰러워 요즘에. 혼자 집 들어갈 때 특히.”

“금방 생기실 거예요. 누나 외모면.”

강혜린이 미소지었다.

“고마워.”

“근데 그럼 누나 언니분 애는 성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언니 거로 갖고 있어. 너랑 동갑일걸?”

강 씨에 나랑 동갑인 여자애라. 설마.

“강성연이에요? 이름?”

강혜린이 눈을 크게 떴다.

“응. 맞아. 아는 사이야?”

충격이었다. 뜯어보니 강혜린이랑 성연이 어머님이 은근 겹치는 면이 있었다. 성연이 어머님이 날카로운 인상인데 반해 강혜린은 느낌이 둥글둥글해서 바로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강혜린이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을까?”

“아뇨 그냥.”

“성연이랑 잘 아는 사이야?”

“네. 같은 학교 다녀서요...”

“으음! 그럼 나중에 성연이 보면 네 얘기 해야겠다. 좀 보고 배우라고.”

“보고 배울 게 있나요?”

“있지! 애들 대하는 매너나 그런 거. 성연이는 너 같은 부드러움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약간 그런 느낌이 좀 있죠.”

“그니까.”

강혜린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가만히 캔을 내려보았다.

“언니가 좀 엄하게 키워서 그런가?”

“어떻게 기르셨길래요?”

“으음... 그냥 내가 가끔 보러 갔을 때 기억이니까 완전 정확히 아는 건 아니긴 한데, 성연이를 약간 답답해하는 느낌이기는 했어. 막 몰아세우는 건 아니고, 결혼은 절대로 안 한다고 했던 언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진짜 잘 아껴주긴 아껴줬는데, 기대가 크다고 해야 하나?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더 잘하려고 안 하냐고, 약간 꾸짖듯이 말했었어.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그런 말을 했다는 것만 기억나.”

“으음... 기대를 크게 걸었다는 게 느껴지면 부담이 크긴 크죠.”

“그니까. 그래서 성연이가 조금 딱딱해진 건가 싶네.”

강혜린이 맥주를 마시다 목을 완전히 젖혀서 입에 털어 넣었다. 강혜린이 다 비워낸 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냥 지금 성연이한테 전화해볼까? 요즘 연락 좀 뜸했는데.”

놀라서 두 손으로 손사래 치며 입을 열었다.

“아뇨 아뇨.”

“응? 왜?”

뭐라고 말해야 하지? 당황스러웠다. 그 이유로 둘러댈 것도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해버려서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일단 입을 열었다.

“그냥 성연이랑 좀 어색해서요.”

“왜? 둘이 싸우기라도 했어?”

고백해야 하나. 그런데 지금 강혜린이 내가 성연이를 때렸다는 걸 알게 되면 여태 그런 것처럼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수요일까지는 웃으면서 보고 싶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강혜린이 눈을 좁혔다.

“진짜 싸웠어?”

입을 열었다. 말이 도저히 안 나왔다. 고개를 끄덕였다. 강혜린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싸웠길래?”

“그게요... 조금 사정이 길어요...”

“괜찮아 나 시간 많아. 얘기해줘.”

“네...”

이제는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이야기를 다시 풀었다. 아버지가 불륜을 저질러서 작년에 부모님이 이혼했다. 거의 곧바로 아버지가 재혼해서 새어머니랑 새여동생이 생겼다. 새여동생이 꽤 성질이 있는 애라서 걔랑은 티격태격대는 사이였는데, 걔가 폰을 자기 방에 충전시켜놓고 목욕하러 갔을 때 걔 썸남한테서 전화가 온 걸 내가 받았고, 그 썸남이 내가 여동생의 남친이고 자기가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오해했는지 걸레년이라 했다. 여동생은 썸남이랑 정리했고, 난 여동생의 남친인 척을 했는데 그 남자애가 생각보다 더 쓰레기여서 여동생을 씹고 다녀서 여동생이 학교에서 평판이 안 좋아졌다. 내가 여동생 남친인 척하는 거는 여동생한테 얘기를 안 하고 했던 거라 여동생한테 앙심을 사버렸고, 어느날 학교가 끝났을 때 여동생이 반으로 찾아와서 애들이 다 보는 가운데에서 나를 먹버남으로 만들어버렸다. 밴드부 단톡에 여태의 사정을 써서 보내고 다음날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오해를 풀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에 양치 도구를 챙기러 반으로 갈 때 강성연이 진짜 먹버한 거 아니냐고 뒷담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강성연이 그런 얘기를 해놓고 내가 반에 들어가니까 안 한 척 친구들이랑 게임 얘기를 하면서 나를 흘겨보길래 화가 치밀어올라서 못 참아 가지고 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화해하러 성연이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걔가 단둘이서만 남았을 때 또 여동생이랑 진짜로 한 거 아니냐면서 폭언을 퍼붓고는 내가 왜 그러냐 물어봤을 때 지금 나를 용서하면 자기만 쓰레기가 되는 거라서 용서 안 해준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래서 또 때려버렸다. 학폭위가 열렸고 강성연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결국엔 서면 사과랑 열 시간 사회봉사랑 열흘 등교 정지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등교정지로 학교를 안 나가고 있고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유치원 봉사활동을 신청해서 사회봉사 시간을 채우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고 흠, 으응, 그래, 같은 추임새를 넣어주며 이야기를 다 들은 강혜린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나올까 두려웠다.

“성연이가 맞을 만 했네. 화해하러 갔을 때 그런 말한 거는... 진짜 나쁘기도 했고.”

“...”

강혜린이 눈을 찌푸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듯했다. 강혜린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네가 등교정지 열흘 먹을 정도로 팬 거면 많이 심각했다는 얘기일 건데... 네가 생각해도 너무 심하지 않아? 성연이가 여자애인 데다가 몸집도 작은데. 너랑 비교하면 더 그럴 거고.”

눈물이 차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 죄송해요...”

“어어... 울지 마...”

강혜린이 일어나서 내게 다가와 왼편에서 오른손으로 내 등을 토닥여줬다.

“너 마음 되게 여리다...”

“네...”

“흐음... 근데 너 학교폭력으로 징계받았으면 가수돼서 수면 위로 드러나거나 하면 되게 힘들 거 같은데... 악플 엄청 심하게 다는 사람들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쓴 글 보고 바로 멘탈 부숴질 것처럼 보여. 연예인은 단단한 사람이 해야 되는데.”

“...”

“성연이랑 화해는 아직 안 했지?”

“네...”

“언니는 화해 주선 같은 건 절대 안 하고 성연이만 감싸고 돌았을 거고... 온유 너는 혼자 찾아가서 성연이랑 화해하기 좀 껄끄럽지?”

“그래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찾아갈 거예요...”

“으응...”

강혜린이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온유가 사람은 착하네.”

“감사해요...”

“만약에 성연이랑 화해할 때 도움 같은 거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해. 도와줄 수 있음 도와줄게. 자리 주선 같은 거.”

“말씀만으로, 감사해요...”

강혜린이 피식 웃고 내 뒷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쓸어주듯 쓰다듬었다.

“그럼 내가 나중에 예린 언니 만났을 때 언니한테 약간 너 변호하듯이 말하는 것만 할게. 언니면 성연이가 정확히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변호사한테 다 맡긴 다음 또 일에만 집중했을 수도 있거든. 그거는 되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 닦고. 이제 집으로 들어가야지.”

“네... 감사해요...”

오른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강혜린이 내 등을 토닥였다. 두드드, 오른 주머니에서 폰이 울렸다.

“온유야 너 전화왔어.”

“네...”

“안 꺼내봐도 돼?”

“아마 저 집 빨리 오라고 전화하는 거일 거예요...”

“그래? 그럼 빨리 가야지. 미안해 붙잡아서.”

“아니에요...”

전화가 끊겼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혜린이 얼굴을 가까이해와서 내 얼굴을 살피고 다시 얼굴을 멀리했다.

“으음... 눈 살짝 부었다. 어떡하지?”

“왜요...?”

“너 울었다는 거 티나면 누가 울렸는지 물어볼 거 아냐.”

“그렇네요...”

“음... 모르겠다. 만약에 물어보시면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왜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꾸짖어서 돌아오는 길에 울었다고 해.”

피식 웃었다.

“네.”

강혜린이 미소짓고 입을 열었다.

“쓰레기는 내가 정리할게. 빨리 가.”

“같이 해요.”

같이 쓰레기를 집어서 편의점 안에 들어가 버렸다. 강혜린이 밖에 나와서 자전거를 탔다. 강혜린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잘 가.”

“안녕히 가세요.”

“으응.”

강혜린이 앞을 보고 페달을 밟았다. 별장으로 향했다. 두드드, 오른 주머니에서 다시 폰이 울렸다. 꺼내봤다. 백지수였다. 연결하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나 지금 돌아가고 있어.”

침묵이 돌아왔다. 폰이 갑자기 안 되는 건가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소리가 들려왔다.

ㅡ지금 끝난 거야?

“아니. 끝나고 걸어오는 길.”

ㅡ어디인데 지금?

“거의 다 왔어.”

ㅡ알겠어. 빨리 와.

“응. 끊어.”

ㅡ어.

전화가 끊겼다. 폰을 다시 오른주머니에 넣었다. 왼손을 왼주머니에 넣어 키링을 만지작거렸다. 한바탕 울고 나니 조금 진이 빠졌다. 숨을 들이마시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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