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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57화 (157/438)

〈 157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8)

* * *

원장실로 가는데 복도에서 강혜린을 마주쳤다. 왜 여깄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열었다.

“원장실에 계신 거 아니었어요?”

강혜린이 멋쩍게 웃었다.

“온유 쌤이 너무 안 와서 뭐 하고 계시나 궁금해져 가지고 가보려고 하고 있었어요. 뒷정리할 게 많은 거면 도와드리려고.”

“아, 네. 감사해요.”

강혜린이 미소 짓고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원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오후에 봐서 익숙한 종이랑 볼펜을 건네받고 날짜랑 시간, 활동 내용을 작성했다. 강혜린이 볼펜을 연필꽂이에 넣고 종이를 파일에 넣어 서랍 속으로 놓은 다음 그대로 밀어서 닫았다. 책상에 올려진 에코백을 든 강혜린이 걸어 나오면서 시선은 내게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갈 때 어떻게 가요?”

“걸어서요. 올 때도 걸어왔어요, 가까워서.”

“내가 태워다 줄게요.”

강혜린이 원장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나란히 걸었다.

“아뇨 저 진짜 가까워서 안 태워주셔도 돼요.”

“삼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예요?”

“그건 아닌데요.”

“그럼 타요 그냥.”

같이 문밖으로 나오고 강혜린이 도어락을 잠근 다음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진짜 안 탈 거예요?”

왠지 안 탄다고 하면 안 될 듯했다. 하는 수 없이 타야 할 것 같았다.

“아뇨. 감사히 타겠습니다.”

“좋아요.”

강혜린이 배시시 웃었다. 주차장 쪽으로 갔는데 차는 안 보이고 자전거만 하나 있었다. 설마. 오른손 검지로 자전거를 가리키고 강혜린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 자전거예요?”

강혜린이 고개를 올려 나를 쳐다보고 꺄르르 웃었다.

“맞아요.”

당황스러워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혜린이 자전거를 뒤로 빼고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타요.”

입을 뻐끔거리다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두 개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네 아니면 아니요. 지금 이 상황에 아니요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결국엔 답이 정해져 있었다.

“네.”

안장에 올랐다. 강혜린이 내 뒤에 올라 자연스럽게 나를 껴안고 계속 꺄르르 웃었다. 등에 느껴지는 가슴이 너무 크고 부드러웠다. 윤가영보다 컵이 큰 게 확실했다. 뒤에 있어서 발기한 자지를 못 보는 게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이십 대 중반은 될 텐데 무슨 이런 장난을 치는 건지. 아이 같았다. 애들이랑 오랫동안 있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느릿느릿 페달을 밟았다. 문득 강혜린이 결혼은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입을 열었다.

“혜린 쌤.”

“네 온유 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요.”

“혜린 쌤은 결혼했어요?”

강혜린이 꺄르르 웃었다. 무슨 말을 해도 웃기만 하는 게 진짜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었다.

“왜 웃으세요?”

“아니, 저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원장 쌤 된 거냐고 물어볼 줄 알았거든요. 저 처음 보는 사람은 다 그것부터 물어봐 가지고요. 근데 예상치 못한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웃음이 나왔어요. 저 결혼 안 했어요. 남자친구도 없고.”

모솔일까? 그런 의문을 가진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럴 리 없었다. 강혜린처럼 밝은 성격에 예쁘기까지 한 여자한테 들러붙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건데 그중 한 명과도 사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요?”

“스물여덟이에요. 원장 선생님 된 지는 올해가 3년째고요.”

“되게 젊으시네요 진짜.”

“근데 여기에서 충격적인 건 제가 모솔이라는 거예요.”

“이건 거짓말이네요.”

“아니 진짜예요.”

웃었다.

“안 믿어요 그런 거짓말.”

“진짠데. 그럼 제가 더 어이없는 거 하나 알려줄까요?”

“뭔데요?”

“제가 언니가 있거든요? 저보다 아홉 살 더 많은데, 그 언니가 모솔이에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더 말도 안 되는 게 뭔지 알아요?”

들떴는지 신난 목소리였다. 강혜린은 자기가 하는 얘기를 듣는 사람도 비슷한 기분이 들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빨리 말해주세요.”

“딸 있어요, 제 언니.”

이해가 안 됐다. 모솔인데 딸이 있다니. 윤가영처럼 강간당해서 덜컥 가진 건가? 그랬으면 이렇게 신나서 얘기하지 못했을 건데.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 궁금했다.

“그게 말이 돼요?”

“되더라구요, 신기하게.”

“어떻게 애 가지신 건데요?”

“우선 제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 이해가 돼요.”

그런데 어느새 별장 가까이에 와버렸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편의점이 보였다. 입을 열었다.

“저 좀 배고픈데 편의점에서 뭐 사서 먹으면서 들어도 돼요?”

“음! 좋아요. 나도 좀 목말랐는데.”

편의점 앞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같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컵라면이랑 소시지 핫바랑 콜라 500ml를 집고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강혜린이 과일 맥주 두 캔을 왼팔로 안아 들고 오른손에는 스트링 치즈를 셋 들고 와 카운터에 올리고 입을 열었다.

“같이 계산할게요.”

“감사합니다.”

강혜린이 미소 지었다.

“이 정도는 매일 사줄 수도 있어요. 매일 오기만 하면.”

“아쉽네요. 매일 얻어먹고 싶은데.”

강혜린이 씨익 웃었다. 컵라면을 열어 스프를 뿌리고 물을 부은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끝을 봉했다. 전자레인지에 스트링 치즈랑 핫바를 같이 돌렸다.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온유 쌤은 말 되게 예쁘게 하는 거 같아요.”

“감사해요. 근데 저는 혜린 쌤이 말하시는 방식이 좋아요.”

“어떤데요? 제가 말하는 방식이?”

“그냥 좋아요, 같이 얘기하고 있으면.”

전자레인지가 소리를 냈다. 스트링 치즈랑 핫바를 꺼냈다.

“밖에서 먹을래요?”

강혜린이 물었다. 좋다고 말하고 핫바를 라면 위에 올려서 양손으로 조심히 든 다음 오른팔로 문을 밀어서 나갔다. 강혜린이랑 같이 테이블 앞에 먹을 거를 내려놓고 의자를 뒤로 빼 자리에 앉아 마주 보았다. 강혜린이 왼손으로 맥주캔 몸통을 잡고 오른손 검지로 따면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좋은 거예요? 저랑 얘기하고 있으면.”

“그냥 좀 즐거워요. 아예 똑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게 말해도 어떤 사람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말하잖아요. 혜린 쌤은 후자 중에서도 후자 같은 느낌이에요.”

“너무 과장인데?”

강혜린이 스트링 치즈를 입에 물고 고개를 뒤로 쭈욱 뺐다. 스트링 치즈가 늘어났다. 강혜린이 왼손 엄지랑 중지로 늘어진 치즈의 중간 부분을 잡고 늘려서 뗀 다음 입에 넣었다. 생각 없이 보다가 시선을 내려 젓가락을 들고 반으로 가른 다음 핫바를 옆에 내려놓고 라면 뚜껑을 열어 면을 휘저었다. 컵라면 위로 연기가 화악 올라왔다. 평균 기온이 올라 벚꽃은 빨리 폈지만 밤은 아직 서늘했다. 라면을 먹기에는 딱 좋은 온도였다. 젓가락으로 면을 크게 집어 올려 공기랑 접촉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과장은 아니고, 그냥 제가 받은 느낌이 그랬어요.”

“으흥...”

치즈를 먹으면서 강혜린이 콧소리를 냈다. 뚜껑을 도로 닫고 그 위에 젓가락을 올려 놓은 다음 핫바를 한 입 먹었다. 강혜린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유 쌤.”

“네?”

“여태 여자친구 얼마나 사겼어요?”

“네?”

강혜린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장난이에요. 말을 되게 사람 기분 좋게 해 가지고. 여자친구 수십 명 사귀었겠구나, 해서.”

멋쩍게 웃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칭찬이죠?”

“일단 칭찬이죠. 듣기에 따라서 느낌은 달라질 수도 있겠는데.”

강혜린이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요 온유 쌤.”

“네.”

“나 말 놔도 돼요?”

“네. 편히 놓으세요.”

“좋아. 근데 나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

“네. 하세요.”

“근데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그래.”

웃었다.

“뭐예요 그럼.”

“내 마음을 읽어줘. 텔레파시 보낼게.”

강혜린이 테이블에 두 팔을 대고 눈을 감은 다음 고개를 숙여 두 검지 끝에 관자놀이가 닿게 했다.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는 건가. 진짜 아이 같은 발상이랑 행동이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소리가 안 나게 참았다. 뭐길래 부탁하기 꺼려지는 걸까. 바로 전에 말을 놓아도 되냐고 물었고 그다음에 또 부탁할 게 있다고 했으니까 대화와 관련된 것일 확률이 조금 높았다. 강혜린이 눈을 뜨고 시선만 올려서 나를 쳐다봤다.

“텔레파시 갔어?”

“온 거 같아요.”

“그럼 말해줘.”

“알겠어요 누나.”

“어!”

강혜린이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잡아 몸을 뒤로 물리더니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대박. 뭐야 진짜? 진짜 텔레파시 간 거야? 받았어?”

웃었다. 강혜린의 놀란 표정이 너무 순수했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안 받았어요.”

“근데 어떻게 알았어?”

“그냥 누나가 말 놓아도 되냐고 물어봤다가 또 부탁할 거 있다고 했으니까 대화 관련한 거인가, 하고 생각했고요. 그다음은 부탁하기에는 조금 창피한 거라는 단서가 있으니까 뭐일까 하다가 딱 떠오르는 게 호칭이라서 그냥 찍었어요.”

“와.”

강혜린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근데 생각할수록 너 진짜 미쳤다...”

웃음이 나왔다. 자유분방한 문법까지 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칭찬으로 받을게요.”

“아냐 이건 칭찬 아냐. 넌 네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지금도 순수한 느낌 주려고 모르는 척하는 거지.”

“아뇨 진짜 모르겠어요.”

“하...”

강혜린이 맥주를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를 내려놓고 눈을 찡그린 강혜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냐 걍 신경 쓰지 마.”

“네.”

“근데 지금도 좀 이상해 너.”

“왜요 또?”

“그냥 맺고 끊음이 확실해서.”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아, 그냥 내가 너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런 거 같아요.”

“너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 무슨 의민 줄 알고 그렇게 얘기해.”

“모르죠 저는.”

“흐음...”

콧소리를 낸 강혜린이 두 손으로 스트링 치즈를 들고 오물오물 먹었다.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라면 뚜껑을 아예 뜯어버렸다. 조금 양을 많이 집어 들어 한입 가득 넣고 용기를 들어 국물도 입에 넣었다. 매콤한 맛이 입안을 건드리고 따뜻함이 속을 채웠다. 입안이 면으로 차지 않았다면 탄성이 나왔을 거였다. 반절 정도 씹어 넘긴 다음 핫바를 한 입 베어 물고 씹어 먹었다. 또 국물을 입에 넣었다. 만족감이 차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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