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56화 (156/438)

〈 156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7)

* * *

유강은이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온유 쌤. 지금여덟 시 삼 분 전이에요.”

“안 돼요 가지 마요.”

성하윤이 내 왼편에서 몸통을 감싸 안아왔다.

“가지 마요!”

김정수라는 명찰을 단 남자애가 내 오른편에서 몸통을 감싸 안아왔다.

“하윤아 정수야. 선생님 가셔야 돼.”

유강은이 말했다. 성하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유강은이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혜린 쌤 불러올게요.”

“네.”

유강은이 달려나갔다. 성하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윤아 선생님 좀 놔줄래?”

“싫어요.”

정말 떠나보낼 생각이 없는지 성하윤이 나한테 계속 달라붙었다. 왼손을 들어 성하윤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고개를 돌려 김정수를 바라보았다. 입을 열었다.

“정수야 선생님 좀 놔주라.”

“안 돼요.”

계속 눈을 마주 봤다. 김정수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김정수가 떨어졌다. 이제 하윤이도 날 놔주면 되는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하윤이 내 배 왼쪽에 왼 볼을 붙이고 있었다.

“하윤아.”

“네.”

“선생님 좀 놔주면 안 돼?”

“안 간다고 약속하면 놔줄게요.”

웃음이 나왔다. 억지를 부리는데 귀엽기만 했다. 성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하윤이 고개를 들고 볼을 부풀렸다.

“머리 쓰다듬지 마요.”

“쓰다듬는 거 싫어해?”

“네.”

손을 뗐다. 성하윤이 입을 열었다.

“다시 쓰다듬어주세요.”

“응?”

“쓰다듬어달라구요.”

“알겠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성하윤이 고개를 내리고 내 상체에 얼굴을 박듯이 했다. 쓰다듬는 게 싫다고 했다가 또 쓰다듬어달라고 하는 건 또 뭘까. 이해하기 힘든 애였다. 문 쪽을 바라봤다. 유강은이 먼저 들어오고 강혜린이 들어와서 하윤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강혜린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혜린 쌤.”

강혜린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의아해 보였다.

“네 온유 쌤.”

“유치원 언제까지 하나요?”

“아홉 시요.”

“그럼 그때까지 계속 있을게요.”

“아 진짜요?”

성하윤이 고개를 들었다. 화색을 띤 게 하나도 앙큼하지 않고 귀엽기만 했다. 왼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성하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 말라는 것 같아서 쓰다듬는 걸 멈추고 위로 들었다. 성하윤이 눈을 마주쳐오며 입을 열었다.

“다시 쓰다듬어주세요.”

다시 성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성하윤이 내 상체에 얼굴을 박았다. 뭘 고민하는 건지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입을 감싼 채 밑을 보면서 있던 강혜린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온유 쌤 남아 있으신 만큼 봉사시간 더 주고, 또 원하는 거 있으면 들어주는 걸로 할게요.”

미소 지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럼 제가 나중에 밥 사줄게요.”

유강은이 내 오른편으로 다가와 강혜린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혜린 쌤 저도 밥 얻어먹고 싶은데 같이 가도 돼요?”

“되죠. 근데 온유 쌤 의견이 중요한 거니까 들어봐야죠.”

강혜린이 나를 쳐다봤다.

“저는 상관없어요. 강은 선생님 오셔도.”

“그렇다는데요?”

유강은이 강혜린을 보면서 말했다. 강예린이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그럼 다 같이 먹는 거로 하고, 자세한 건 또 나중에 얘기하죠?”

“네.”

내가 답했다. 유강은이 미소 짓고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홉 시 되면 원장실로 와요.”

“네.”

강혜린이 반에서 나갔다. 레고 블록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어떤 남자애가 울었다. 유강은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다. 누가 우는 건가 확인했다. 이지성이 울고 있었고 그 옆에 어떤 여자애가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이지성의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순간 몸을 조여드는 힘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려봤다. 성하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

“왜 하윤아?”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화장실? 저기에 있잖아.”

“문 앞에서 지켜주세요.”

웃었다. 유난스러운 애였다.

“알겠어.”

성하윤을 뒤따랐다. 성하윤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 반을 한번 봤다. 유강은이 이지성 옆에 앉아서 레고 블록을 같이 쌓아주면서 수습하고 있었다. 시선을 돌렸다. 김민정이라는 명찰을 단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애가 싱긋 웃었다. 마주 웃었다. 김민정이 고개를 다른 데로 획 돌렸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뭐가 있는지 봤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별 이유 없이 그런 듯했다. 등을 돌려 벽을 향해 서고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켜봤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선우랑 재밌게 노셨어요?]

[마음대로 손님 초대도 하시고.]

[집주인 다 되셨네 아주?]

[내쫓아서 진짜 집주인이 누군지 몸소 알게 해드릴까?]

[죄송해요]

[저 근데 유치원 끝날 때까지 있다가 가기로 했어요]

[가지 말라고 붙잡는 애들이 좀 있어서]

뭐 더 보낼 말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없어서 그냥 폰을 끄고 도로 오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뒤돌아봤다. 팔자 좋게 누워서 잠자고 있는 애가 두 명 보였다. 지금 자면 또 밤에 못 자서 부모님 피곤해지시는 거 아닌가. 괜히 걱정됐다. 곧 화장실 문이 열렸다. 화장실에서 나와 문을 닫은 성하윤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쳐다봤다. 성하윤이 입을 열었다.

“진짜 지켜주셨네요?”

“하윤이가 지켜달라고 했으니까.”

“흐흫. 맞아요.”

성하윤이 웃었다. 올라가는 입꼬리의 끝에 작게 패인 볼우물이 귀여웠다. 미소지었다. 성하윤이 두 팔을 벌렸다.

“안아주세요.”

“알겠어.”

무릎을 접고 앉아서 성하윤의 두 무릎 뒤로 오른팔을 넣고 등을 왼팔로 받쳐서 성하윤을 안아 들었다. 성하윤이 내 어깨 위로 두 팔을 올려서 나를 껴안았다. 두 팔에 약간 반동을 줘서 성하윤의 몸을 들썩여줬다. 성하윤이 꺄르르 웃었다. 이지성이 이쪽을 쳐다봤다. 눈을 마주쳤다. 이지성이 레고 블록을 쌓다 말고 벌떡 일어서서 다다다 달려왔다. 뭐지 싶었는데 이지성이 내 앞에 멈춰섰다.

“저도 태워주세요.”

성하윤이 고개를 돌려 이지성을 내려봤다.

“안 돼. 선생님 내 거야.”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은 물건이 아니에요.”

성하윤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쳐왔다. 의아해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성하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했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돼요?”

“음. 글쎄. 그래도 일단 사람한테는 네 거 내 거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성하윤이 고개를 돌려 이지성을 내려봤다.

“선생님은 내 사람이거든?”

헛웃음이 나왔다. 하윤이는 왜 이렇게 소유욕이 강할까. 이지성이 성하윤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야 너 내가 너 그림도 그려주고 그랬는데 양보 안 해줄 거야?”

“응. 안 해줄 거야.”

유강은이 이지성 왼편으로 다가와서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어떡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난감하기만 해서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이지성이 나를 쳐다봤다.

“저 목마 태워 주세요 이온유 선생님.”

공략 대상을 나로 바꿔야 할 정도로 하윤이가 고집이 센가. 성하윤이 나를 쳐다봤다.

“저 내려놓지 마요.”

유강은이 성하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윤아 그냥 선생님이 안아줄까?”

성하윤이 유강은을 바라봤다.

“아니요.”

“나보다 온유 쌤이 좋아?”

“선생님도 좋은데 온유 쌤이 더 높아서 좋아요.”

“으응... 근데 지성이도 온유 쌤한테 업혀보고 싶어 하는데 잠깐만 양보해주면 안 돼?”

“안 돼요!”

“왜?”

“안 되니까요!”

헛웃음이 나왔다. 억지를 부리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평소에도 이렇게 응석을 자주 부리는 성격일까. 문득 하윤이가 부잣집 아이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입을 열었다.

“지성이 잠깐만 목마 태워주면 안 될까?”

“알겠어요.”

“야 너 왜 내가 말할 땐 안 된다고 하고 온유 쌤이 말하니까 바로 알겠다고 해!”

“내 맘이거든.”

“흥!”

무릎을 접어 성하윤을 내려주고 유강은 선생님의 보조를 받아 이지성을 목마 태웠다. 반을 한 번 돌아주고 이지성을 내려주고 나니 애들이 다가와서 저도 태워주세요, 라고 부탁해왔다. 거절할 수 없어서 태워달라는 애들은 다 태워줬다. 아까까지만 해도 잠자고 있던 두 명도 태워달라고 해서 업어주고 목마를 태워주는 것만 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결국엔 아홉 시가 엄청 가까워졌을 때 성하윤을 다시 태워줬다.

“이럴 줄 알았어요.”

성하윤이 말했다. 미소지어졌다.

“그래서 처음에 허락 안 해주려던 거야?”

“네.”

왼손으로 성하윤의 뒤통수를 쓰다듬어줬다.

“고마워. 다 알면서도 양보해줘서.”

“흐흫. 저 착하죠.”

“응. 우리 하윤이 진짜 착해.”

“들썩들썩해주세요.”

“알겠어.”

두 팔에 반동을 줬다. 성하윤이 꺄르르 웃었다.

“얘들아 여덟 시 오십오 분이야.”

유강은이 바닥에 장난감이랑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왼손으로 성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내려줘야겠네 하윤이.”

“저 나가서 내려주세요.”

“하윤이 신발 신어야 되잖아.”

“나가서 신을래요.”

“그럼 안 되지.”

성하윤을 내려줬다. 성하윤이 앞에서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고 올려봤다.

“선생님 얼마나 더 와요?”

“나 수요일까지 있을 거야.”

“왜 이렇게 조금 신청했어요? 봉사시간 더 채워야 되는 거 아니에요?”

웃기는 애였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무슨 이윤데요?”

“말 못 해주는데.”

“그럼 안 들을 테니까 봉사활동 하면 또 여기로 온다고 약속해요.”

“알겠어.”

성하윤이 오른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고리 걸고 복사까지 했다. 아이들이 신발 신는 걸 보고 같이 반을 나가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보내주고 반으로 돌아가서 창문부터 닫고 유강은이 뒷정리하는 걸 도와줬다. 유강은이 동화책을 책장에 꽂으며 입을 열었다.

“목마 태워 달라고 한 지성이 있죠.”

“네.”

“걔가 하윤이 좋아해요.”

“으음... 그랬어요?”

“네. 그래서 선생님이 하윤이 독차지하니까 질투 나서 그랬을 거예요.”

“되게 귀엽네요 지성이.”

“그쵸. 애가 감수성도 풍부하고. 예술 쪽으로 재능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하윤이는 지성이 그렇게 좋아하는 거 같진 않아요.”

“좀 안타깝네요.”

“그니까요.”

정적이 흘렀다. 정리를 마치고 유강은이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온유 쌤은 돌아갈 때 어떻게 돌아가요?”

“저 되게 가까워서 걸어서 가면 돼요.”

“으음... 알겠어요.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강은 쌤도 수고 많으셨어요.”

유강은이 미소지었다. 같이 신발을 신고 반을 나섰다. 유강은이 문을 닫고 돌아섰다. 입을 열었다.

“전 원장실 가볼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네. 온유 쌤도 안녕히 가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유강은이 미소짓고 문 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유강은이 멋쩍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저 죄송한데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세요?”

“아, 네.”

폰을 꺼내 전화 아이콘을 누르고 건넸다. 유강은이 입을 열었다.

“연락처가 되게 많네요?”

“네 어쩌다 보니까.”

“으응...”

유강은의 폰에 번호를 적고 이름을 써 저장했다. 유강은도 다 했는지 폰을 내게 돌려줬다. 유강은이 입을 열었다.

“이제 진짜 가볼게요.”

“네 진짜 안녕히 가세요.”

유강은이 미소 지었다.

“내일 봐요 온유 쌤.”

“네.”

유강은이 뒤돌아 걸어가서 문을 나섰다.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려 했는데 유강은이 뒤돌아봐서 눈이 마주쳤다. 유강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가 이내 곱게 휘어졌다.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지만, 그건 정말 여자의 눈이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