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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53화 (153/438)

〈 153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4)

* * *

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세 시 십이 분이었다. 송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슬슬 가야 될 거 같은데.”

“왜 벌써? 봉사 다섯 시라매.”

“나 지수 저녁으로 먹을 갈비찜 만들고 기타 치는 것도 조금 연습하고 해야 돼서.”

“연습한다고? 기타 치는 거를?”

“응.”

“너나랑 같이 있기 싫어?”

아니 김세은도 아니고 무슨 이런 질문을 할까.

“응.”

송선우가 씨익 웃고 내 오른팔을 낚아채서 왼팔로 팔짱을 끼고 오른손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고정했다. 상완으로 송선우의 가슴이 조금 닿아서 부드러움이 은근하게 느껴졌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해볼래?”

“너랑 있기 싫어요.”

“이 개새끼가?”

“욕하지 마.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송선우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야.”

“응?”

“귀 대봐.”

“왜?”

“대라면 대라.”

“네.”

오른 무릎을 살짝 굽히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송선우가 내 오른 귀 가까이에 입을 댔다.

“욕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무 예뻐서 쳐다보는 거예요.”

입술을 입안에 넣고 깨물었다. 그대로 죽같이 걷는데 계속 생각나서 결국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팔을 착 때렸다.

“아! 왜 때리는데?”

“맞을 만했으니까.”

“아니뭐 어디가요.”

“또 맞을래?”

“아니진짜 왜?”

“맘에 안 들게 말하잖아.”

“내가 꼭 네 맘에 들게 말해야 돼요?”

“네.”

“왜요?”

“너 왜라는 말 자주 쓴다? 나한테만 그러지?”

“네.”

“왜 그러는데?설명 제대로 안 하면 또 때릴 거야.”

“개에반데.”

“얘기나 해.”

잠깐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상식 밖의 일을 많이 하고, 오래 봐와서 편하니까요?”

“으응, 내가 편하시구나 이온유씨는.”

“네.”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팔을 한 대 더 때렸다.

“아! 왜 때리는데요?”

“얄미워서.”

“아니 얄미울 게 어딨다고.”

“지금도 얄미워.”

헛웃음이 나왔다. 송선우가 오른손을 펴서 들어 올렸다.

“미안해요.”

“미안할 짓을 하지 마세요 애초에.”

“아니 근데 내가 말한 것 중에 뭐 못할 말 한 거는 없지 않아요?”

“못할 말 했지.”

“그니까 뭐요?”

“내가 편하다면서요?”

“그럼 안 편해요? 초딩 때부터 봤는데?”

“유치원 때도 보긴 봤거든?”

“아 맞다.”

“이거 완전개새끼네.”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팔을 한 번 더 때렸다.

“이건 때린 거 인정해드림.”

“그 말 하니까 한 대 더 치고 싶어진다.”

“죄송. 근데 내가 편하다고 말한 게 왜 못할 말이에요?”

“아니 이걸 몰라? 너무당연한 거 아냐?”

“내가 모르겠으니까 물어봤고 그럼 안 당연한 거 아닐까요?”

“개 유치해, 말하는 거.”

“반사.”

“진짜 때리고 싶게 만드네.”

“왜 이리 폭력적이세요.”

“네가 날 폭력적으로 만들잖아요.”

“어떤 사유가 있더래도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어요.”

“그걸 아는 놈이 내 가슴에 엘보우를 날려요?”

헙, 하고 숨을 갑자기 들이마시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봤다. 어떤남자랑 팔짱을 끼고 있는 키 작은 여자가 황급히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고 왼손 검지로 남자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남자가 어정쩡하게 몸을 돌리고 여자랑 함께 뒤돌아갔다. 고개를 돌려 송선우를 바라봤다. 송선우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짓고 있었다. 눈꼬리가 휘어진 게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보였다.

“나 이상한 사람 됐잖아.”

“나쁜 사람 아니고?”

“정확히는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지.”

“오, 자기 객관화 좀 하는 놈인가?”

“개 오래된 유행어 쓰는 거 뭔데? 트루 아재세요?”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팔을 두 대 때렸다.

“아 또 왜 때리는데요.”

“말 하나하나가 다 시비여서요.”

“아니 나 근데 너 때리는 거 진짜 아픈데 안 때리면 안 돼?”

“그럼 나한테 말 좀 예쁘게 해봐. 유은이나 지수 같은여자애들이나 이슬 언니 같은 선배들한테는 존나 달고 느끼하게 얘기하면서 맨날 나한테만 시비조야.”

“내가 언제 존나 달고 느끼하게 말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거야 진짜 억울한 거야?”

“억울하지 당연히.”

“하. 양심 어디? 너 입 거의 허니버터칩 디스펜서 수준인데?”

웃겼다.

“뭔데 그 무근본 비유는?”

“뭐 비유에도 근본 같은 게 있어?”

“꿀처럼 달콤하다든가, 버터처럼 느끼하다든가.”

“방금 내가 다 했네.”

“허니버터라서?”

“어.”

웃음이 나왔다.

“인정.”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또 내 왼팔을 한 대 착 때렸다.

“아니 나 이번엔 진짜 왜 맞았는지 이해 하나도 안 가.”

“그냥 때렸어.”

“미치겠다 진짜...”

“아냐 이유 생각해볼게.”

“생각해보는 건 또 뭐야.”

송선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골몰히 생각하는 건지 시선이 밑으로 가 있었다. 말없이 계속 걸었다. 대충 20초 정도가 지났다 싶었을 때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설득되고 나서 인정이라고 말해서 때렸어. 생각 없이 나한테 딴지부터 걸고 봤다는 거니까.”

“네에, 네에.”

“또 맞고 싶어요?”

“아뇨.”

“그럼 대답 좀 잘해요?”

“네. 근데 나 편하다고 말한 게 왜 잘못인지 이유 못 들은 거 같은데.”

“아 그거. 그건 쉽게 말해서, 내 존심이 상한다는 거예요.”

“존심이 왜 상해요?”

“일단 나 봐봐. 내가 얼마나 예뻐.”

입술을 입안에 넣고 깨물었다. 송선우가 눈을 찡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입술을 빼내고 이를 악물었다. 송선우가 도로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걸으면서 입을 열었다.

“남자면 우리 아빠 아닌 이상은 나랑 같이 걷는 것만으로 어깨에 힘 빡 들어가고 긴장하는데 너는 내가 편하다? 이건 존심 팍 상해버리지.”

웃음이 터져나왔다. 진짜 참을 수 없었다.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팔을 약하게 착착착착 때렸다. 한동안 웃다가 겨우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무슨 중2병 걸리셨어요? 자의식 과잉 진짜 세시네.”

“아니 진짜거든?”

“네가 말한 게 진짜여도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는 레알 중2병 아니고서야 힘들거든요.”

“또 또 또 시비야.”

“아니 이건 딴지를 안 걸 수가 없어. 오히려 딴지 안 걸어주는 게 친구 아닌 거야 진짜로.”

“됐어, 다 왔으니까 열쇠나 꺼내.”

“어.”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키링을 꺼내고 열쇠를 대문에 꽂아 열었다. 송선우가 대문 안으로 들어와 대문을 잡고 닫을 동안 현관문도 열어서 안에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주방으로 가 손부터 씻었다. 냉장고를 열어 소갈비를 넣은 큰 보울을 꺼냈다. 송선우도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내 옆에 다가와 보울을 봤다. 엉덩이를 왼쪽으로 내밀어서 송선우를 툭 쳤다. 송선우가 피식 웃고 옆으로 비켜섰다. 오른손으로 소갈비가 빠져나가는 걸 막아주고 보울을 기울여 싱크대에 핏물을 버렸다. 물을 한 번 넣어 헹궈주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양념장을 만들 재료들을 꺼내는데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

“음.”

일단 그릇에다가 설탕, 맛술, 물, 진간장, 다진 마늘, 생강, 참기름을 넣었다. 도마에 대파도 한 대 썰어서 그릇에 넣어줬다. 송선우가 뚱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안 도와줘도 되나 봐?”

“아냐. 이거 설탕 가라앉은 거 숟가락 등으로 긁어서 다 녹을 때까지 섞어줘.”

“알겠어.”

숟가락을 하나 가져와 송선우에게 건네줬다.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받은 송선우가 열심히 그릇의 양념장을 섞었다. 큰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두고 주방용 계량컵을 가져와 정수기 물을 뽑았다.

“다 했어.”

“고마워.”

비커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소갈비가 들어간 보울을 왼손으로 들어 큰 냄비 안에 넣었다. 송선우가 옆에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봤다. 송선우가 왼손에는 계량컵을, 오른손에는 양념 그릇을 들고 있었다. 미소지었다.

“센스 좋은데?”

“기본이지.”

양념을 안에 넣고 계량컵의 물도 넣어줬다. 송선우가 다 쓴 그릇이랑 컵을 받아서 싱크대에 가져가 바로 설거지했다.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입을 열었다.

“진짜 고마운데 어떡하지?”

“내일 벚꽃 또 보면 되지.”

“그건 좀.”

“그건 좀이라니. 죽을래?”

“아뇨?”

“조심하세요 그럼.”

“알겠습니다.”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선반을 뒤졌다. 후추를 안 넣었다. 통후추를 여덟 알 꺼내 냄비 안에 넣었다. 송선우가 안 보였다. 주방에서 나와 두리번거려봤다. 언제 갔는지 송선우는 소파에 누워 폰을 보고 있었다. 돌아가서 냉장고에서 무, 당근, 감자, 양파, 표고버섯, 청양고추, 대파를 꺼냈다. 당근, 감자, 표고버섯부터 조금 크기가 있게 썰어서 큰 그릇 하나에 담아주고 청양고추랑 대파랑 양파랑 무를 썰어 도마에 내버려 뒀다. 이제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갈비가 부드러워지면 무 먼저 넣고 무가 좀 익으면 그릇에 모은 걸 넣고 그게 또 익으면 양파를 넣고 고추를 넣어서 마무리하면 됐다. 시간이 좀 비는 동안 기타나 치면 될 듯했다. 기타방으로 가는데 송선우가 나를 쳐다보고 일어나서 따라왔다. 내 기타 케이스를 열어 기타를 꺼냈다. 송선우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왜 따라왔어요?”

“나 심심해서.”

송선우가 베이스를 꺼냈다.

“너 베이스도 칠 줄 알아?”

“조금.”

“오 송선우.”

“들어보지도 않고 오 이러네. 뭐 칠 거야?”

“나보단 너 맞춰줘야 되는 거 아냐?”

“넌 연습해야 된다면서요, 난 안 해도 되는데.”

“오 자신감 뭔데.”

“빨리 뭐할지나 말하세요.”

“‘blackberry’. ‘TheColorGrey’ 거.”

“오키.”

“가능?”

“쌉가능.”

송선우가 폰으로 악보를 찾았다. 가능하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송선우가 베이스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기타를 쳐 반주를 따라갔다. 입을 열어 성대를 울렸다.

ㅡSee me for love

You can come and see me for pleasure

송선우가 베이스를 내려보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쳐다보면서 씨익 웃었다. 마주 미소지었다. 송선우가 다시 베이스를 내려보았다. 긴 속눈썹이 하늘을 뚫을 듯한 자존심이 이해 갈 만큼 예뻤다.

ㅡGot places to be but I feel like the place to be is in you

And I know just what to do

크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던 가사가 어째선가 새삼스러웠다. 아마 안 불러본지 오래인 노래를 부르는 거라서 괜히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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