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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51화 (151/438)

〈 151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2)

* * *

보울의 물을 다시 갈아주고 소파에 누웠다. 지도 앱을 켜 유치원 주소를 넣고 경로를 확인했다. 갑자기 양심이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홧김에 유치원 봉사활동을 신청하긴 했는데 뭘 해야 하는지는 하나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가면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봉사시간만 날로 챙겨 먹는 게 될 거였다. 그럴 수는 없었다. 폰으로 유치원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네 번 가고 연결됐다.

ㅡ네 여보세요?

꽤 젊은 듯한 여자 목소리였다.

“아 네 저 오늘 다섯 시에 세 시간 동안 봉사활동 신청한 고등학생인데요.”

ㅡ아 네 네.

“제가 어린이집에서는 처음 봉사활동해보는 거라서요, 뭐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가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ㅡ아 그래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비웃음 같지는 않았다.

ㅡ고마워요 전화 줘서. 원래는 봉사자들이 와 가지고 설명 듣고 그러거든요.

“제가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어버버하는 성격이라서요.”

또 웃음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밝은 사람인 것 같았다.

ㅡ목소리만 들으면 되게 침착할 거 같은데. 목소리 되게 좋아요, 조금 뜬금없긴 한데.

“아 감사합니다.”

ㅡ많이 들어봤죠? 목소리 좋다고.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ㅡ으응, 그쵸. 그럴 거 같아요. 와서 뭐 해야 하는지 알려달랬죠? 일단 기본적으로 일은 다 쉬워요. 그냥 선생님들이 순간 순간 도움 필요하면 뭐 해달라고 부탁드릴 거니까 선생님들 하시는 거 보고 따라서 보조 맞춰주면 돼요. 사람 많은 거 싫어하거나 애들 싫어하면 진짜 힘들 거긴 한데, 그럼 굳이 자원해서 봉사활동 신청하지 않았을 거구. 그니까 별 준비 안 해도 괜찮을 거예요. 오후 다섯 시에 오는 거죠? 그럼 일단 오셔서 자원봉사자 앞치마 입고, 애들이랑 조금 놀아주고 부모님 오셔서 하원하는 애들한테 인사하고 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은 이제 맞벌이 부모님들이 일하셔야 해서 유치원에 남는 애들이 조금 있거든요. 그 애들 좀 봐주면 되는데, 저녁 식사하고, 양치질시키고, 쉬면서 개인행동하고 노는 거 봐주면 돼요. 레고 가지고 노는 애들 특히 조심해서요. 입에 넣는 애들 가끔 있으니까 주시해야 해요. 아, 동화도 들려주고 동요도 가르치기도 하는데, 온유 학생이 해볼래요?

“동화는 읽어줄 수 있는데 동요는 제가 잘 몰라서요.”

ㅡ으음, 그래도 옆에 선생님이 먼저 불러주면 애들이랑 같이 따라 부르는 식으로 하면 될 거 같아요. 노래 잘 불러요?

“아마도요?”

ㅡ되게 잘 부르나 보다. 보통 이런 거 물어보면 아니라고 빼는데.

살짝 웃었다.

ㅡ일단 좋아요, 노래 잘 부르면. 피아노 칠 줄도 알아요?

“치긴 치는데 잘 치지는 못 해요. 그나마 기타 약간 쳐요.”

ㅡ으음! 기타 좋죠. 근데 우리 유치원에 기타가 장난감 기타밖에 없어서 직접 가져와야 될 거예요.

“아 네. 가져갈게요.”

ㅡ좋아요 좋아요. 최곤데요? 준비성도 철저하고 목소리 좋고 특기도 확실하고.

멋쩍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ㅡ아뇨 제가 고맙죠. 또 궁금한 거 있어요?

“물어볼 건 다 물어본 거 같아요.”

ㅡ으음, 알겠어요.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끊을게요. 다섯 시에 봐요.

“네 그때 봬요.”

웃음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다. 원장님이실 텐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젊을까. 이십 대 중후반 같았는데 원장을 할 수 있는 건가. 장이야 나이랑 무관하게 당연히 할 수 있는 건데 그냥 내가 나이 든 사람이 장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박힌 걸까? 아마 그런 듯했다.

이제 송선우가 오면 나가야 할 텐데. 아점으로 김치찌개를 먹었긴 했어도 네다섯 시가 되면 배가 고파질 것 같았다. 뭘 먹어놓아야 할까. 고민됐다. 일단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보고 빵 바구니도 확인해봤다. 대충 빵 중에 하나 골라서 커피랑 같이 먹으면 될 듯했다. 머그잔에 원두 스틱을 타고 정수기 물을 조금 뽑은 다음 젓가락으로 섞었다. 우유를 붓고 시럽을 조금 넣어 섞어준 다음 맛봤다. 적당히 달았다. 젓가락을 바로 설거지해준 다음 수저통에 도로 놓았다. 빵 바구니에서 초코 도넛을 꺼내고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한 입 한 입 먹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컵을 설거지한 다음 보울의 물을 다시 갈았다. 소파에 앉아 눕듯이 몸을 기대고 폰을 켜봤다. 송선우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 가는 중]

[도착하면 문 열라고 고성방가함]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왜 굳이 고성방가를 해요,,,,]

[그냥 전화나 걸어주세요]

[싫엉]

[;;;;;]

[다한증 있어?]

[아뇨]

[아]

[나 문장부호 중에 세미콜론이 제일 싫어]

[왜?]

[진짜 존나 더럽게 생겼어]

[땀 많은 사람 옆에서 보는 느낌임]

[ㄹㅇ 개개개 씹 극혐]

[ㅈㄴ 싫어 진짜]

[땀 많은 사람 혐오를 멈춰주세요]

[아니]

[나 땀 많은 사람 혐오한 적 없음]

[방금 하셨는데요?]

[ㄴㄴ]

[그냥 땀이 싫은 거지]

[땀 많은 사람이 싫은 거는 아니잖아]

[그냥 땀만 싫다고?]

[ㅇㅇ]

[근데 너 운동하잖아]

[그럼 땀 흘릴 거고]

[운동하는 그 순간은 상쾌하니까 ㄱㅊ]

[그리고 끝나면 바로 샤워]

[그니까 상관없음]

[기준 너무 들쭉날쭉인데]

[자기한테만 관대하고]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나는 관리를 하잖아요 땀을]

[흘리면 바로 닦고]

[근데 땀 줄줄 흘리면서 어떻게 훔치지도 않거나 목욕도 안 한다?]

[바로 그냥]

[(고양이가 오른 앞발을 말아쥐어 허공에 주먹질하는 이모티콘)]

[그건 그냥 더러운 걸 싫어하는 거잖아]

[ㅇㅇ]

[그게 내 말임]

[땀은 헐떡이면서 흘릴 때는 괜찮지만 흘리고 나서 그거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으면 더러움]

[이해함]

[ㅇㅋ 내가 이김]

[축하드립니다]

[이겼는데 뭐 없어?]

[같이 벚꽃 보러 가드림]

[ㅇㅋ]

[그럼 내일도 같이 벚꽃 보는 걸로]

[?]

[왜 갈고리?]

[아니 오늘 벚꽃 보면 되는 거 아냐?]

[장소가 달라지면 의미도 다르죠]

[에반데;]

[아 존나]

[글로 땀 흘리지 마세요]

[세미콜론 금지]

[싫어요;;]

[아]

[너 만나면 개 팸]

[(고양이가 오른 앞발을 말아쥐어 허공에 주먹질하는 이모티콘)]

[너 그 이모티콘 좋아하나 봐?]

[ㅈㄴ 귀엽잖음]

[맞다]

[별장에 길고양이 온다매]

[엄청 뻔뻔한 애]

[거의 이온유 급으로]

어이없었다.

[왜 갑자기 내가 나와요?]

[내가 한 말 아님]

[지수가 그 고양이 얘기해줄 때 덧붙인 말임]

[거짓말 같은데]

[사실 거짓말 맞음]

[에반데]

[제가 뻔뻔해요?]

[네]

[ㅈㄴ 개뻔뻔하세요]

[어디가요?]

[그냥 다]

[진짜요?]

[ㅎㄷㄷ;;;;;;;]

[아 씨바 진짜]

[뒤져따 이온유]

이온유 나와!

밖에서 송선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앞에 온 모양이었다. 근데 진짜로 소리를 지를 줄이야.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식적으로 안 그러겠지, 라고 생각해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온유우우우우우!

빨리 뛰어가서 신발을 대충 발만 집어넣고 현관문을 열은 다음 걸음을 옮겨 대문을 열었다. 바로 앞에 흰 후드티에 검은 레깅스 차림의 송선우가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세 뭐임?”

“호쾌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자세.”

송선우가 말하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대문을 닫고 같이 별장으로 들어갔다. 송선우가 몸을 굽혀 신발을 벗었다. 입을 열었다.

“혹시 요새 중2병 걸리셨어요?”

“아니. 신조협려 읽었어. 알아?”

“무협?”

“응.”

“그런 거 읽어?”

“그런 거라니!”

“왜 발끈하세요, 당황스럽게.”

“너 무협 본 거 있어?”

“있지.”

“뭐 있는데.”

“쿵푸팬더.”

송선우가 흥, 하고 코웃음 쳤다. 귀여웠다. 송선우가 의기양양해진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쿵푸팬더도 무협이긴 하지.”

“그럼 된 거 아냐?”

“아니? 근본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지.”

송선우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나 요구르트 줘.”

“요구르트 없는데.”

“그럼 이온 음료 있어?”

“응.”

“그럼 그거 줘.”

이온 음료를 꺼내 냉장고를 닫고 컵에다 따라주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송선우가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와이 헛웃음?”

“네가 너무 당연하게 행동해서요.”

“너도 거의 집주인처럼 행동하잖아.”

“그니까. 그게 기막힌 거임.”

송선우에게 컵을 건네줬다. 양손으로 받은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한 모금 마셨다. 송선우 오른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신조협려는 왜 봤어?”

“응?”

송선우가 컵 손잡이를 오른손에 쥔 채로 컵을 자기 오른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나 아빠가 무협 개 좋아해서 나도 중딩 때부터 아빠 따라서 드라마 보고 책도 읽고 그랬어.”

“으응...”

“넌 무협 책으로 본 거 아예 없어?”

“글쎄... 기억 안 나는 거 보면 없는 듯?”

“그럼 봐 걍. 사조영웅전부터. 그게 근본이야.”

웃음이 나왔다.

“상당히 열정적이시네요?”

“응. 나 무협에 진심임.”

“보면 뭐 해줄 거야?”

“뽀뽀 백 번 해줄게.”

“그건 사양할게요.”

“그럼 열 번으로 줄여줄게.”

“왜 더 줄어들어요?”

“그럼 천 번 해줄까?”

“에반데. 나 만약에 마음대로 땀 흘릴 수 있었으면 지금 땀 비 맞은 것처럼 흘렸다.”

“개 극혐. 아 맞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컵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주먹 쥐었다. 몸을 틀고 양손을 가슴 앞으로 올렸다.

“왜 그러세요.”

“냥냥펀치 다섯 대만 맞자.”

“아니 넌 복서잖아요.”

“안 아프게 패줄게.”

“아 살려줘.”

“그럼 세 대만 함.”

“... 진짜 살살.”

“어. 팔 대.”

“...”

왼팔을 내주었다. 송선우가 오른 주먹으로 상완을 팍 팍 팍 때렸다. 아파서 입술을 입안에 넣고 꽉 물었다. 끄응, 하고 소리가 나왔다. 송선우가 끅끅 웃으면서 그대로 오른손을 내 왼 어깨 위에 올리고 몸을 숙여왔다. 샴푸 향이 올라왔다. 입을 열었다.

“꿀밤 한 대만 쳐도 돼요?”

송선우가 고개를 숙인 채로 도리질했다.

“아 진짜 개 아픈데...”

오른손으로 왼 상완을 쓸었다. 조금 진정한 송선우가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나를 바라봤다.

“진짜 꿀밤 딱 한 대만.”

“노노. 여자 때리는 건 협의에 어긋나니까 안 됨.”

“무협충.”

“너 내 아빠한테 이름.”

“일러봐.”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왜?”

“우리 아빠 싸움 개 잘함. 복싱 아마추어여 가지고. 나 복싱 아빠한테 배우는 거야.”

“그럼 죄송.”

송선우가 피식 웃고 오른손바닥으로 내 왼 어깨를 약하게 툭 쳤다.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 말하면 또 맞을까 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송선우가 미소지은 채 이온음료를 마셨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나 이거 다 마시면 나가자.”

“응.”

송선우랑 벚꽃 구경 다 하면 유치원 봉사활동도 가야 하는데, 벌써 피곤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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