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일요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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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얘기를 해보려 했는데 말이 잘 안 나왔다. 결국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어머니 얘기는 꺼내지 못 했다. 백지수는 괜찮으니까 잘 때 얘기하라고 말하고 씻으러 간다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고마웠다. 수저를 설거지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 머리에 물을 쏟았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백지수랑 함께 하루하루 보낼수록 김세은에 대해 죄가 쌓여 갔다. 하나 나는 죄짓기를 멈출 수 없었다. 백지수가 간절했다. 나를 보듬어 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절실했다. 애초에 김세은에게 털어놓고 또 김세은이 언제고 내 곁에 있었다면 백지수의 역할을 김세은이 해줬을지도 모르지만 김세은이 아이돌인 이상 김세은은 백지수가 될 수 없었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둘 다 좋았다. 두 명을 동시에 좋아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한 명도 포기할 수 없었다. 연인에게는 기만해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나는 둘 모두를 마음에 품고 있었기에 기만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자기모순이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입은 다음 화장실에서 나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웅웅거리는 소리에 생각이 달아나기를 바랐지만 머리는 복잡해지기만 했다.
내가 두 명을 만난다는 걸 언젠가는 둘 모두에게 들킬 거였다. 만에 하나의 확률로라도 들키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둘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만큼 동등하게 돌려주기는 어려울 거였다. 시간을 할애하는 비율만 생각해도 나는 백지수랑 김세은 둘에게 분산해서 쓸 테지만 백지수랑 김세은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내게 할애할 테니까 불공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헤어드라이어를 끄고 소파에 풀썩 앉아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김세은은 내가 백지수랑도 만난다는 걸 절대 견디지 못할 거였다. 내가 백지수를 포기하게 만들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날 더 가혹하게 죄어들려고 할 거고 동등성의 원리를 들이대며 사랑을 확인하려 들 게 뻔했다. 하지만 난 김세은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돌려줄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차라리 어머니 말대로 김세은을 놓아줘야 하는 걸까? 하지만 김세은은 내가 자신을 놓아준다는 걸 받아들일 리 없었다.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거나 아예 못들은 체할 거였다. 그도 아니면 마음을 준만큼 똑같이 돌려받지는 못한데도 상관없으니 버리지만 말라는 식으로 답할 거였다. 김세은은 어떤 특별한 계기를 맞이하지 않는 이상 쭉 내게 얽혀들려고 할 거였다.
백지수는 내가 바람피운다 한들 나를 미워하지 않고 바람 상대를 미워하리라는 말을 했지만 내가 원래 김세은이랑 사귀고 있었고 자기랑 바람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면 나를 피하거나 혐오할지도 몰랐다. 내가 자기랑 사귀는 게 처음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고 경험 많은 것처럼 보일 때 싫어하는 모습을 드문드문이라도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실망할 건 분명했다. 비록 백지수가 나를 생각하면서 자위하고 내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올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가 완전히 쓰레기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백지수가 과연 나를 좋아해줄 지는 확실치 않았다. 좋아하기보다는 제 발로 나를 벗어날 확률이 높아보였다. 백지수는 아직은 내게 김세은만큼의 집착을 하지는 않아서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것 같았으니까.
결국엔 둘 다 가지고 싶은 내 이기심은 성취되기 어려웠다. 사실 어떻게 기적적으로 성취된다고 해도 문제였다. 둘 다 나랑 결혼하기를 바랄 건데 일부일처제인 이상 결혼을 두 명과 할 수는 없었다. 한 명이랑 먼저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른 한 명이랑 결혼하는 식으로 해서 두 명과 동거하면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미친 짓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백지수는 몰라도 김세은이랑 나는 연예인이 될 건데 사람들이 늦든 빠르든 어떻게 알아내고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회적으로 매장할 게 뻔했다. 설령 기적적으로 매장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를 가지는 게 문제가 됐다. 사생아를 기르고 싶을 사람은 없을 거였으니 혼인 관계를 본인이 가져가고야 말 거라고 다툴 게 뻔했다. 아마 양상은 김세은이 내가 먼저 좋아했으니까 첫 결혼은 내가 할 거야, 라고 말해서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동안 있다가 이혼한 후 백지수랑 또 결혼해서 살다가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울 때 나는 사생아 못 낳아, 같은 소리를 하면서 백지수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나를 붙잡으며 빨리 나랑 다시 결혼하자, 라는 식으로 얘기할 거였다. 상상만 했는데 엄청 어지러워졌다. 아주 구체적인 것도 아니고 대략적으로 하기만 했는데도 이 정도면 현실이 되었을 때는 그냥 혼절하고 말 거였다. 수명도 팍팍 깎여서 제명에 못 죽고 단명하게 될 거였다. 한숨이 나왔다. 이건 그냥 생각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해답도 존재하지 않고 머리만 아파질 뿐이었다.
폰을 켜서 봉사활동이 뭐 있나 찾아봤다. 당장 내일부터는 할 게 없었으니 내일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봤다. 어린이집 도우미 봉사가 눈에 들어왔다. 유치원 선생님의 보조 역할만 하면 된다는 설명이 간략하게 쓰여있었다. 월요일이랑 화요일은 세 시간, 수요일은 네 시간 동안 하는 거로 신청했다. 다 오후 다섯 시부터 하는 거였으니 빨리 일어날 필요 없이 대충 있다가 점심을 챙겨먹고 느긋하게 가면 될 듯했다.
텍스팅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여덟시 반이 넘었을 때 살구색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에 검은 돌핀팬츠 차림인 백지수가 내려왔다. 또 오랫동안 자위해댄 모양이었다. 이제는 놀랍지 않았다. 백지수가 오른손을 들고 엄지를 세워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일어나서 백지수를 뒤따랐다. 백지수가 자연스럽게 샴푸 의자에 몸을 뉘였다. 발걸이를 올려준 다음 오른손으로 샤워기를 들어서 물을 틀고 수온을 확인했다. 적당히 미지근할 때 머리에 끼얹어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응. 빨리 감겨.”
“응.”
머리 감기는 건 빨리 하고 키스나 하자는 것 같았다. 존나 음란했다. 빠르게 머리 구석구석을 적셔 샴푸를 해주고 거품을 씻어 내린 다음 귀를 만져주면서 자리를 옮겼다.
“으음... 흥...”
“왤케 야한 소리 내?”
“그냥, 흐응... 좋아서...”
“존나 야해 백지수.”
상체를 숙이고 입술을 포갰다. 이제는 키스가 완전히 익숙해진 듯한 백지수가 내 윗입술을 애무하듯 입맞춰주기도 하고 능란하게 혀를 감싸오기도 했다. 내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했다.
“하움... 쮸읍... 하읏... 츄릅... 츕... 헤웁... 흥... 하웁... 쯉... 츄읍... 사랑해...”
“나도, 사랑해 지수야.”
“으응... 츄읍... 쯉... 사랑해... 쮸읍... 헤웁... 하움...”
백지수는 지금 유두를 세웠을까? 그랬을 거였다. 지금 왼손을 내려서 백지수의 민소매 속으로 넣고 브라를 비집어 가슴을 만지면 그대로 섹스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콘돔이 있으니까 쓰고 하자는 식으로 얘기는 할 거였지만 지금은 안 될 거라고 초치지는 않을 거였다. 섹스는 애초에 백지수가 원하는 거였으니까.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백지수를 따먹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미치도록 만족스러웠다. 고양감에 머리카락이 쭈뼛 솟기라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흥에 취하면 바로 백지수를 따먹기라도 할 듯했다. 하지만 아직은 안 됐다.
“헤웁... 으응... 츄읍... 쯉... 츄릅... 흣... 하움... 쮸읍... 하아... 츕... 너 진짜, 쮸읍... 안 할 거야...?”
“뭘.”
“츄읍... 그거... 쯉...”
“그렇게 말함, 몰라.”
“하움... 쮸읍... 고자야? 츕...”
“아니.”
“그럼, 헤웁... 왜 모르는 척해?”
“봐줘.”
“너 진짜, 쮸읍... 그러다 큰일 나.”
“무슨 큰일?”
“하움... 몰라. 츄읍...”
한동안 키스만 하다가 백지수가 이제 머리 물기 털어줘, 라고 말해서 수건을 가져왔다. 문득 궁금해져서 하체를 흘깃 봤는데 백지수의 돌핀팬츠의 도끼자국 주변부가 푹 젖어있었다. 보지물을 질질 흘려서 적셔버린 모양이었다. 발걸이를 내리고 수건으로 머리를 문질러 물기를 털어줬다. 내가 모르기를 바라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 백지수는 젖어버린 돌핀팬츠를 별 신경도 안 쓰는 것처럼 보였다. 엄청 찝찝할 건데. 괜히 괴롭히고 싶었다. 백지수의 몸을 세우게 해서 머리에 남은 물기를 마저 털어내면서 입을 열었다.
“머리 말려드리는 것도 할까요?”
“귀찮지 않으세요?”
“조금? 근데 이런 거 다 부려먹기로 하신 거 그쪽 아니에요?”
“맞는데 왜요.”
“아뇨 그냥 왜 안 부려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러시나 해서.”
“하... 말려, 하고 싶으면.”
“네.”
같이 거실로 나갔다. 백지수가 양반다리로 앉았다. 오른손으로 헤어드라이어를 잡아 틀고 왼손으로 머리를 만져주면서 말렸다. 백지수가 양손을 모아 몸 앞으로 가져가 보지 쪽을 가렸다. 보지를 적신 걸 들키기 싫은 모양이었다. 존나 귀엽고 야했다. 헤어드라이어를 내려놓고 이대로 무릎을 꿇게 한 다음 엉덩이를 내밀게 해서 뒤치기해주고 싶었다. 골반도 커서 손잡이처럼 쓸 수 있을 건데. 존나 따먹고 싶었다. 하지만그래선 안 됐다. 공연히 침만 삼키고 계속 머리를 말려줬다. 소리 없이 한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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