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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44화 (144/438)

〈 144화 〉 일요일 (4)

* * *

화장실에서 얼굴에 물을 끼얹고 주방에 가 물을 한 잔 마신 다음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물을 뽑아 다시 어머니 방으로 갔다. 물컵을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가 양손으로 잔을 받고 꿀꺽꿀꺽 마셨다. 어머니가 잔을 돌려줬다. 오른손으로 받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온유야.”

“응.”

“새어머니랑은 잘 지내?”

불길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

“아니.”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잘 지내 그런 사람이랑.”

“그럼 왜 학폭위는 새어머니랑 했어?”

“... 나 학폭위 열린 건 어떻게 알았어?”

“네 새어머니가 나한테 전화 걸어서 알려줬어.”

머리카락이 쭈뼛 솟는 느낌이 들었다. 윤가영 그 미친년이 어떻게 우리 엄마한테 전화를 처할 생각을 했을까. 순진한 척은 존나 하더니. 역시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머리로 열이 솟았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더라. 몰랐다고. 남편 뺏어서 미안하다고.”

“...”

가슴이 뜨거웠다. 윤가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신 나간 년이었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내연녀면서 어떻게 우리 어머니한테 그딴 말을 처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의 가슴을 저며서 말려 죽이려는 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학폭위 사전조사 응하려면 너 어떤 애인지 잘 알고 있어야 되니까 알려 달라고,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그랬어. 그래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그랬지.”

“... 미안해 엄마.”

어머니가 힘없이 웃었다.

“아들이 미안할 게 뭐 있어.”

미칠 것 같았다. 윤가영을 믿을 게 아니었다. 속이 들끓었다. 토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온유야.”

“... 응.”

어머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 너만 보면 힘들어.”

“...”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그 사람 생각나...”

“...”

멍했다. 내가 들은 게 진짜인가 싶었다. 어머니가 등 돌려 누웠다. 아닐 거였다. 거짓말일 거였다. 아픈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가 마음 고생하지 말라고 일부러 아픈 말을 하면서 보내려고 하시는 거일 터였다. 차라리 자기를 미워하게 해서 내가 슬프지 않게 하려 하는 거일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자살하고 싶었다. 일어나서 어머니를 마주 보는 쪽으로 걸어갔다. 어머니가 다시 등을 돌렸다. 어머니를 마주 보는 쪽으로 가서 어머니가 더는 나를 피하지 못하도록 꽉 끌어안았다.

“엄마...”

어머니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흔들린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나 어디 안 가. 상처 주려고 해서 더 상처받지 마.”

“뭔 소리야 온유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픈 말 한 거로 엄마가 더 맘고생할 거잖아. 다 알아.”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나를 마주 안았다. 어머니가 그대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함께 펑펑 울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울어버렸다. 어머니의 눈물로 가슴을 적시며 마음으로 울었다. 심장이 타는 듯 아팠다. 어머니를 안고 어떤 아픔도 없는 곳으로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

어머니가 울음을 그치고는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한테 돌아오라는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문자를 보내고 점심으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오삼불고기라고 답했다. 바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주방으로 가고 냉장고를 열어봤다. 다행히 재료는 다 있었다. 양파, 대파, 청양고추, 손질된 오징어, 삼겹살을 꺼냈다. 오징어랑 삼겹살은 한 입 크기로 잘라내고 대파랑 고추는 어슷썰기했다. 양파는 반으로 자르고 적당히 얇게 썰었다.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불을 켰다. 그릇에 고추장, 간장, 청주, 고춧가루, 물엿, 다진 마늘, 카레 가루, 생강가루를 넣고 섞었다. 프라이팬에 연기가 올라왔다. 삼겹살을 넣고 소금이랑 후추를 뿌렸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뒤집어주고 소금이랑 후추를 또 뿌렸다. 다 익었을 때 삼겹살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아주고 오징어도 똑같이 볶아서 그릇에 옮겨 담았다. 다른 프라이팬을 꺼내 채소도 볶아주고 그릇에 옮겨 담은 다음 팬에 조금 고인 물을 싱크대에 버리고 설탕을 뿌려 불을 켰다. 설탕이 녹아가는 게 보일 때 식용유를 뿌리고 나무주걱으로 괜히 한 번 휘저었다. 채소, 오징어, 삼겹살을 다 투하하고 섞어주다가 양념장을 투하했다. 타지 않게 잘 뒤섞어줬다. 중간에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돌아왔다. 외할머니가 옆에 다가와 슬쩍 보시고는 왼손으로 내 등을 한 번 쓸어주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참기름을 살짝 둘러주고 불을 끈 다음 마지막으로 섞었다. 위에 통깨를 뿌리고 테이블에 밑받침을 두고 프라이팬을 놓았다. 냉장고에서 상추랑 깻잎을 꺼내 채반에 받쳐 물에 헹궈주고 소쿠리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외할아버지가 전기밥솥을 열어 주걱으로 그릇에 밥을 퍼담고 수저를 놓으며 테이블을 세팅했다. 어머니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설거지했다. 곧 어머니가 외할머니랑 같이 나왔다. 식사하면서 어머니가 내가 가져온 계약서 얘기를 꺼냈다. 외할아버지가 그럼 얼마 안 가서 우리 손자 티비에서 보겠네, 라고 말했다. 외할머니가 웃으면서 쌈을 만들어 어머니 입 앞에 들이밀었다. 어머니가 입을 벌려서 받아들였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그릇을 비워나갔다. 밥을 다 먹고 어머니랑 같이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잤다. 내가 깼을 때 어머니도 깨어 있었다. 잘 잤냐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멋쩍게 웃으며 잠을 못 잤다고 고백해왔다.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다시 올라가야겠다고 말하면서 집을 나섰다. 마당까지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의 배웅을 받고 조금 더 걷다가 집을 목적지로 택시를 불렀다. 심정상 어머니랑 더 있고 싶었지만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내가 등교 정지를 당했다는 것을 모르니 가야만 했다. 하늘을 봤다. 비라도 올 것처럼 흐릿했다.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내리고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쇼윈도를 봤다. 내 얼굴이 비쳤다.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는 어머니의 말이 완전히 거짓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내 등교 정지를 모르니까 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핑계였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의 곁에 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서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한 거였다. 택시 뒷문에 오르고 눈물이 차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래 울었다. 서러웠다. 어머니랑 함께 있고 싶은데 함께 있어서는 안 됐다. 어머니를 위로하고 싶은데 나는 위로할 수 없었다. 나는 왜 나일까. 나는 왜 아버지를 닮았을까.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나를 볼 때마다 힘들어했을 어머니의 심정도 모르고 어머니를 찾은 내가 미웠다.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를 닮은 내가 싫었다.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를 뺏어간 윤가영이 싫었다. 윤가영이 미웠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모든 게 아버지랑 같이 살기를 택하고 학폭위에 어머니 대신 윤가영을 불러낸 내 잘못인 듯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다 내 잘못이었다. 눈물샘이 텅 비었는지 더 울 수가 없었다.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흐느낌을 멈추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씩 진정했다.

“휴지 필요해요?”

택시기사님 목소리였다. 얼굴을 가린 두 손을 치우고 눈을 떴다. 기사님이 왼손은 핸들 위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콘솔 박스를 열어 주유소 티슈를 집어 들었다.

“네.”

목이 쉬어 있었다. 그럴 만했다.

“이거 써요.”

기사님이 백미러를 보면서 오른손을 뒤로 넘겼다. 양손으로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세 장을 뽑아 얼굴을 닦았다. 한 장을 새로 뽑아 눈두덩을 두드렸다.

“헤어졌어요?”

헤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막 슬퍼하지 마요 학생. 헤어진다고 그게 끝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다시 만나서 관계를 되돌릴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니까...”

커브 길이라 기사님이 브레이크를 밟아서 속도를 줄였다.

“아파하기만 하면 바뀌는 것도 좋은 것도 없으니까 다음을 생각해야 해요. 학생같이 젊은 사람은 특히.”

“... 감사해요.”

기사님이 멋쩍게 허허 웃었다.

“아뇨. 오지랖인데요 뭘.”

목이 멨다. 일단 입을 열었다.

“오지랖이라뇨.”

목이 아팠다. 오른손으로 목을 감싸고 큼큼거렸다. 기사님이 보지도 않고 오른손으로 콘솔 박스를 열어 500ml 물통을 꺼내 내 쪽으로 넘겼다.

“이거 한 입도 안 마신 거예요.”

“감사해요.”

두 손으로 받아서 뚜껑을 열고 입을 대지 않고 마셨다. 차가 막힐 때 주유소 티슈랑 돌려드렸다. 집에 도착하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기사님 말마따나 우울해하기만 한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기회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복수부터 해야 했다. 지금 당장.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를 다듬고 벼려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어 안에 들어갔다. 계단을 밟아 윤가영 방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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