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일요일 (3)
* * *
어머니가 끄응, 하고 신음을 내면서 몸을 뒤척였다. 내 왼편 의자에 앉은 외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랑 마주 보는 쪽으로 걸어가 침대에 두 손을 짚고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려 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 괜찮아 엄마...”
외할머니가 오른손을 어머니의 왼 볼에 올렸다.
“딸. 병원 가자.”
“아냐 나 괜찮아 엄마...”
“...”
외할머니가 더는 말하지 않고 어머니의 왼 볼을 쓰다듬었다. 외할머니의 두 눈꼬리는 영구적인 슬픔이 깃든 듯 한껏 처져있었다.
“소연아. 네 아들 왔어. 온유 왔어. 얼굴 좀 보여줘.”
“온유...?”
“그래.”
“어디...?”
“네 뒤에 있어.”
어머니가 느리게 몸을 뒤집었다. 마주 보기 두려웠다. 어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흐릿하고 어두운 눈빛 속에서 어째선가 김세은이 보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온유야.”
“응 엄마.”
어머니가 내게서 시선을 거둬 문 앞에 서 있는 외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빠 나 온유랑만 얘기하고 싶은데 잠깐 나가주면 안 돼?”
어머니가 바로 고개를 돌려 외할머니를 봤다.
“엄마도.”
“알겠어.”
외할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같이 들으면 안 되는 거냐.”
외할아버지가 뒤에서 서운한 듯 말했다. 어머니가 작게 미소지었다.
“모자간의 비밀이야.”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왼팔에 두 팔을 감아 팔짱을 꼈다.
“카페나 가요. 바보 같이 서 있지 말고.”
“아 알겠어. 끌어당기지 마.”
외할아버지가 등 돌렸다.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가 바깥으로 나섰다.
“온유야 문 좀 닫아줄래?”
“응.”
왼손으로 방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들 것처럼 보이는데. 오른손에 든 꽃다발을 언제 어떻게 줘야 할까 고민됐다. 어머니가 꽃다발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꽃들이야?”
“아, 이거?”
플로리스트가 꽃을 집으면서 꽃말을 얘기해줬는데. 꽃다발을 내려보며 기억을 되살렸다.
‘흰장미는 순수, 젊음, 새로운 시작 같은 꽃말을 갖고 있어서 결혼식장 화환으로 자주 써요. 이게 특이한 게 꽃봉오리가 나는 당신에게 어울려요, 나는 당신을 사랑할 만해요,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고백할 때 많이 쓰기도 하구요.’
왼손 검지로 흰장미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는 흰장미. 꽃말은 순수, 새로운 시작이랑, 나는 당신을 사랑할 만해요래.”
“응.”
어머니가 은은히 미소지었다. 어머니는 결혼식 때 흰장미를 봤을까? 그랬다면 흉터를 긁어버린 게 되는데. 너무 생각 없이 가져와 버렸다.
‘이 버바스쿰은 좋은 추억, 건강 기원, 그리고 용기를 내세요가 꽃말이에요.’
왼손 검지로 중간에 있는 흰 버바스쿰을 가리켰다.
“이건 버바스쿰이라고, 건강 기원이 꽃말이래.”
“응.”
불편했다. 좋은 추억이라는 꽃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가 꽃을 자주 선물했던 탓에 내가 말하지 않은 꽃말이래도 어머니가 모두 알 것 같았다.
‘스톡은요, 꽃말이 영원한 사랑, 영원한 아름다움이에요. 로맨틱한 사람은 당신은 나에게 영원히 아름다워요, 라고 말하기도 하구요. 관련한 전설도 몇 개 있는데, 이건 좀 tmi라, 들어보실래요?’
‘네. 얘기해주세요.’
‘중세시기에 어느 백작의 딸이 왕국의 왕자랑 강제로 약혼을 하게 됐대요. 그런데 그 딸은 그 전에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요. 백작은 딸이 왕자랑 결혼하게 하고 싶으니까 자기 딸을 성에 가뒀대요. 그 딸의 연인이었던 청년은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으니까 음유시인으로 변장해서 딸을 찾아다니고, 결국에는 그 딸이 있는 성을 알아내서 매일 같이 가 가지고 창 밑에서 같이 도망치자는 뜻을 시로 전했대요. 그러다 어느 날에 백작 딸이 평소 청년이랑 같이 좋아하던 꽃인 스톡을 창 밑으로 한 송이 던져서 도망치자는 사인을 보내요. 그래서 백작 딸이 탈출하려고 높은 성벽에 밧줄을 내리고 타고 내려오는데, 그때 실수로 성벽에서 떨어져 죽어버려요. 백작 딸을 사랑한 청년은 방랑시인으로 살면서 스톡만 보면 그녀를 떠올리면서 모자에 달고 살았대요. 백작 딸을 찾아다니는 때에도, 그리고 백작 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고지순하네요.’
‘네. 이 전설 때문에 스톡이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거예요. 아마도.’
‘아마도가 뭐예요.’
‘히히. 확실치 않아서요. 그래도 그럴싸하잖아요.’
‘그쵸.’
‘그리고 스톡은 어떤 역경도 이겨내는 강인한 사랑을 뜻하기도 해요. 전설의 스토리가 방금 말씀해주신 대로 지고지순하다 보니까 프랑스에서는 남자가 절대 바람피우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서 사랑하는 여자한테 꽃을 모자 속에 넣어서 선물한다고 하더라구요.’
‘로맨틱하네요.’
‘그쵸. 그래서 제가 연인한테 선물하려고 찾아오신 분이시면 무조건 스톡은 넣고 조합 생각하고 그래요.’
왼손 검지로 보랏빛 스톡을 가리켰다.
“이건 스톡. 꽃말은 영원한 사랑,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영원히 아름다워요래.”
“... 응.”
어머니의 두 눈에 물기가 어렸다. 기억을 건드린 듯했다. 꽃을 가져온 게 후회됐다. 과거의 나를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 억지로 입을 열었다.
“꽃은 어떡할까?”
“밖에 있는 창고에 꽃병 여러 개 있으니까 몇 개 가져와서 거기다 넣으면 될 거야.”
“으응...”
“가져와 줄래? 냄새 맡아보게.”
“알겠어.”
일어서고 다가가 상체를 기울인 다음 오른팔을 뻗었다. 어머니가 양손으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살짝 들어 올려 눈을 감고는 얼굴을 꽃다발에 묻듯이 했다. 마음속으로 5초를 셌다가 오른손을 느리게 멀리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양손으로 내 오른 손목을 붙잡았다. 살짝 놀랐다. 어정쩡하게 가만히 있었다. 대충 40초 정도가 흐르고 나서 어머니가 도로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의 양쪽 볼에 눈물방울이 흐른 길이 나 있어 형광등의 흰 빛에 반짝였다. 도로 자리에 앉아 꽃다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종이봉투는 뭐야?”
왼손으로 종이봉투를 들고 오른손을 집어넣어 계약서를 꺼냈다. 다시 다가가 건네주면서 입을 열었다.
“엔터 계약서. 아역배우부터 시작한 내 나이 또래 배우한테 제시했던 계약서랑 조건 거의 완전 똑같대. 굳이 비교하면 내 거가 더 유리하게 쓰였대. 나 되게 좋게 봤나 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양손으로 계약서를 받은 어머니가 계약서 내용을 훑으며 빠르게 장을 넘겨 갔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진짜 발굴한 애한테 내민 거라고 보기에는 말도 안 되게 좋네. 우리 아들 최고다.”
“그치.”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응. 근데 우리 아들은 더 조건 좋게 가져가야 하는 거 아냐?”
김민준 실장이 말한 게 들어맞았다. 미소지었다.
“맘에 안 드는 건 조정하면 되니까.”
어머니가 씨익 웃고 계약서를 왼손에 들어서 내 쪽으로 뻗었다. 양손으로 받아서 다시 종이봉투에 넣고 다시 자리에 앉아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가 여전히 왼손을 뻗고 있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온유 얼굴 좀 만져보자.”
“응.”
일어서서 다가가고 무릎 꿇었다. 어머니의 왼손이 내 얼굴에 닿았다. 눈을 마주쳤다. 어머니가 왼손으로 스윽스윽 내 오른 볼을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요즘 세은이랑은 어떻게 지내?”
찔렸다. 가슴에 정을 대고 망치로 쾅쾅 박아넣는 느낌이 들었다. 김세은에게 너무 큰 죄를 지었다. 입을 열었다.
“요즘 세은이랑 연락이 안 돼. 이번 달 말에 데뷔한다고 소속사에서 폰 뺏어가 가지고. 만나지도 못해.”
“으응... 데뷔하면 폰 돌려준대?”
“아마도. 근데 몇 개월 더 단속할지도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겠지... 세은이 많이 힘들겠다. 우리 아들 못 만나서.”
씁쓸하게 웃었다. 김세은을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세은이 만나면 바로 끌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많이, 진짜 많이 얘기해줘. 세은이 불안하지 않게. 못 만난 시간이 다 보상되는 느낌 들게.”
“알겠어.”
“알아서 잘할 수 있지?”
“... 응.”
어머니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조차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왼손 엄지랑 검지 둘째 마디로 내 오른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대답이 늦는데에?”
“잘할게요.”
“진짜지?”
“응.”
어머니가 왼손을 내려 침대에 놓았다. 어머니의 두 눈 주변이 파르르 떨렸다. 걱정됐다.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도 엄마 아파하는 거 알아서 엄청 걱정하시는데.”
“부모님이 자식 과도하게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
“난 엄마 자식인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똑같이 걱정하잖아.”
“그건 우리 아들이 듬직해서 그런 거고.”
어머니가 미소지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다 말았다. 웃는 것도 힘든 걸까. 어머니의 모든 생기를 앗아간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를 벌하지 않고 어머니만 아프게 두는 세상이 미웠다.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그 모든 미움보다 크게 설움과 슬픔이 차올라서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가 다시 왼손을 들어 내 오른 볼을 쓰다듬었다. 어머니를 품에 안고 소리 없이 눈물 흘렸다. 영원히 슬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몸이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눈물이 빠져나갈수록 눈물샘이 비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 사실마저 서러워서 어머니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이 순간에도 어머니에게 위로받는 것에 또 북받쳐와서 나도 모르게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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