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치즈케이크랑 아이스 바닐라 라떼 (2)
* * *
네가 좋아 너무 좋아
내 모든 걸 주고 싶어
너에게만은 내 마음
난 꾸미고 싶지 않아
서유은이 허둥대며 양손을 밑으로 내려 바지 주머니를 더듬댔다. 벨소리는 아역배우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부터는 가수 활동까지 하는 서예은이 리메이크한 버전이었다. 서유은이 왼손으로 폰을 꺼내서 화면을 한번 보고는 나를 쳐다봤다.
“오빠 저 전화 좀 받을게요.”
“응.”
서유은이 바로 화면을 누르고 오른 귀에 가까이 댔다.
“네 언니.”
ㅡ왜 이리 늦게 받아 유은아.
작게 들렸지만 분명히 서예은 목소리였다. 드라마에서도 듣고 노래로도 수십 수백 번 들은 목소리라 헷갈리는 게 도리어 어려웠다. 서유은이 서예은 동생이었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아, 죄송해요오...”
킥킥거리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 웃음소리도 틀림없는 서예은이었다.
ㅡ뭐 하고 있었어?
서유은이 내 눈치를 봤다.
“아 저, 학교 선배랑 같이 밥 먹고 있었어요...”
ㅡ학교 선배? 남자 선배 여자 선배?
서유은이 나를 쳐다봤다. 그냥 대답하면 될 걸 왜 내 눈치를 보는 걸까. 소리 없이 입을 뻐금거려서 그냥 말해, 라고 했다.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남자 선배요...”
ㅡ뭐? 딱 한 명이랑?
“네에...”
서유은이 볼륨을 줄였다. 대충 두 번 누른 듯했는데 소리가 꽤 작아졌다. 숟가락으로 메추리알 하나랑 떡볶이 국물을 조금 떠 입에 넣었다.
ㅡ너 그 선배라는 애한테 호감 있어?
“그건...”
서유은이 또 내 눈치를 봤다. 귀여웠다. 밀떡을 하나 집어먹었다.
ㅡ있구나?
“몰라요오...”
악동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서예은인 게 확실해졌다. 서유은의 얼굴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서예은의 얼굴을 떠올리며 비교해봤다. 서유은이 서글서글하고 귀여운 상이라면 서예은은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약간 날카로운 듯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론 청순한 오묘한 상이었다. 느낌은 많이 달랐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니 닮은 게 보였다.
ㅡ잘생겼어?
“그런 거 묻지 마요오...”
ㅡ잘생겼나 보네. 넌 사심 없어도 걔는 사심 있을 확률 높으니까 적당히 거리 둬.
“...”
ㅡ싫어?
“아, 알겠어요오...”
ㅡ그래. 언니 대충 네 시면 들어갈 거거든? 그때까진 집에 들어와 있어.
서유은이 볼륨을 더 줄였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아닌 척 집중했다.
“네에...”
ㅡ잘 씻고. 내 침대에 누워있고.
“알겠어요...”
ㅡ응. 끊을게.
“네에...”
전화가 끊겼다. 서유은이 폰을 다시 왼주머니에 넣었다. 잘 씻고 침대에 누워있으라니, 서예은이랑 서유은이 다 벗은 상태로 서로의 보지를 핥는 모습만 상상됐다. 절대 그럴 리 없는데, 미안했다. 서유은이 치즈 돈까스를 집어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었다. 밀떡이랑 어묵을 같이 집어 먹었다. 씹어 넘기고 콜라를 한 모금 마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누구야?”
서유은이 우물거리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제 언니요.”
“언니 있었어?”
“네에...”
서유은의 시선이 내려갔다. 서유은이 쌀떡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서유은이 여러 번 씹다가 꿀꺽 삼키고 왼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왠지 결연해보였다.
“제 언니가 서예은이에요.”
“배우 서예은?”
“네.”
“으응...”
“안 닮았죠, 언니랑 저.”
“분위기는 조금 다르긴 한 거 같아. 근데 이목구비는 닮았는데?”
서유은이 살폿 눈웃음지었다.
“말씀은 감사한데요, 아닌 거 저도 알아요...”
“아냐 진짜 닮았다니까.”
“진짜 닮았으면 사람들이 딱 저 처음 봤을 때 바로 언니 얘기했을 건데 초면에 저랑 제 언니랑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 진짜 저 한 명도 본 적 없어요. 꼭 제가 언니 동생이라는 거 말하고 나서 그때 좀 닮았다고 말하구...”
“나이 터울이 있어서 자매라는 걸 연결을 못 했나 봐. 일단 나도 그랬고. 그리고 네 언니가 인터뷰 같은 데에서 너 언급을 많이 안 했던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 것도 있는 거 같고.”
“그거 제가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 거예요.”
“왜?”
“언니 동생인 거 알려지면 막 비교당할까 봐요.”
“대충 어떤 식으로?”
“언니는 키도 173센치고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데 저는 키도 150대인데다 연기 같은 거 하나도 못 하고 그러니까...”
“너 노래 잘하잖아. 난 네 언니 목소리보다 네 목소리가 더 좋고 네 노래가 더 좋은데.”
“진짜요...?”
“응. 너랑 네 언니 같이 찍힌 거 인터넷이 올라오거나 하면 막 ‘이게 유전자다’, ‘여동생은 데뷔 언제 하냐’, 이런 소리 엄청 많을걸?”
서유은이 미소지었다.
“오빠 말 되게 예쁘게 하시는 거 같아요.”
“난 나보단 네가 더 말 예쁘게 잘하는 거 같아. 이렇게 보면 너 장점 진짜 많은데? 예쁘고 말 착하게 잘하고 노래 잘 부르고 악기도 잘 다루고.”
“이제 저 슬슬 창피해요.”
“겸손하고 생각 깊고 마음씨 곱고.”
“그만해주셔도 돼요...”
미소지었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너 자존감 낮은 모습 보일 때마다 내가 무호흡으로 계속 칭찬할 거야.”
“안 그럴게요 앞으로...”
“믿을게.”
“네에...”
쌀떡을 하나 집어 먹었다. 서유은이 치즈 돈까스를 집어 먹었다. 조금 씹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요즘 학교 어때?”
서유은이 눈웃음지으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빠 방금 말한 거 뭔가 아빠 바이브였어요.”
“그래?”
“네. 아닌 척 딸 어떻게 사나 엄청 궁금해하는 그런 무뚝뚝한 스타일 아빠.”
“너희 아버지는 어떤 스타일이신데?”
“그냥 대놓고 다정해요.”
“으응. 좋겠다. 어머니도 비슷하셔?”
“네.”
부럽다, 라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언니는 너 어떻게 대해 줘?”
“잘, 대해 주죠?”
서유은이 오른 어깨 쪽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가 말하면서 왜 의아해 하는 것처럼 그럴까, 엉뚱한데 또 귀여웠다.
“왜 의문형이야?”
“어... 아뇨. 그냥 기억 되살린 거예요. 잘 대해 줘요 언니도. 저 한 살일 때 언니는 아홉 살이었으니까 막 귀엽게 봐주고 맛있는 것도 잘 사주고 그랬어요.”
서유은이 말하고 히죽 웃었다. 귀여웠다.
“너 진짜 귀엽다 웃는 거.”
서유은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빠 갑자기 칭찬하는 거 좀 고치셔야 될 거 같아요.”
“왜?”
“그냥 좀 너무 훅 들어오셔서 제 심장에 안 좋아요.”
“나 네 화법 진짜 너무 좋아.”
“또 그러신다 바로...”
“미안해.”
“됐어요.”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밴드부는 어떻게 되고 있어?”
“음... 그냥 크게 다른 건 없는 거 같아요. 오빠랑 성연 선배 없는 거 빼면.”
피식 웃었다. 서유은의 두 눈이 슬프게 처졌다.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왜 웃어요오...!”
“아니 그냥. 나나 성연이 언급 같은 건 없어?”
“가끔 있어요. 근데 많이는 안 해요, 분위기 처져서.”
“얘기가 어떻게 되길래?”
“저희 1학년은 별말 안 하구요, 그냥 선배들 사이에서 둘 다 비슷하지 않나, 라고 하다가 성연 선배가 나빴다고 얘기 나오고, 맞긴 맞는데 뒷담은 하지 말고 정 얘기하고 싶으면 성연 선배한테 개인 톡 보내라고 하고, 이제 오빠보다는 성연 선배가 먼저 올 건데 그때 다 같이 얘기 나누자 하고 그래요. 오빠는 여론 되게 좋아요.”
“으응...”
“걱정하셨어요?”
“조금. 막 걱정하지는 않았어.”
서유은이 콜라를 한 모금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빤 진짜 걱정 하나도 안 하셔도 돼요.”
웃음이 나왔다.
“네가 여론 조성해주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요, 암튼 밴드부 완전 오빠 편이니까 마음 안 쓰셔도 돼요. 그리구 전 진짜 진짜 오빠 편이에요.”
“고마워.”
서유은이 헤헤 웃었다. 나도 마주 미소지었다. 서유은은 마주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잡담하며 나머지 음식을 천천히 먹어치웠다. 조금은 남겨서 버렸다. 서유은이랑 테이블을 치웠다. 정리를 마쳐갈 때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저 죄송한데 3시 되면은요...”
“응.”
“나가주실 수 있으세요...? 저 까먹었는데 일 있어 가지고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안 물어봐도 되는 건데.”
“그냥 제가 죄송해서요... 집까지 불렀는데...”
“괜찮아. 오늘 보자고 한 것도 나 위로해주려고 한 거잖아. 난 고맙지 오히려.”
“감사해요...”
서유은의 표정이 울상이었다.
“너 지금 표정만 보면 울 거 같아.”
“아... 안 울어요... 저 자주 울게 생긴 상이라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귀여웠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허리 굽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입을 열었다.
“유은아.”
“네...?”
“나중에 너 데뷔하면 내가 너 팬클럽 만들어도 돼?”
“팬클럽이요...?”
“응.”
“그럼 오빠가 팬클럽 회장하시는 거예요?”
“그냥 초대 회장으로 잠깐 하게. 내가 1호팬인 거 인생 업적으로 달고 살려고.”
서유은이 피식 웃었다.
“오빠 진짜 이상한 거 같아요.”
“오늘 만나기 전에 통화했을 땐 조금 이상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진짜 이상한 사람으로 바뀌었네.”
“진짜 이상하니까요.”
서유은이 말하고 나를 쳐다보며 헤헤 웃었다.
“장난이에요.”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껴안아서 양쪽 볼에 입 맞춰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 * *